물론 이번 경기 부양책에 대한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아마 정책 당국자라고 해서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추경예산을 짜야 한다는 여당의 요구에 밀려 뭔가 하는 흉내를 내야 하는 공무원들도 죽을 맛일 것이다. 발표를 맡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 최상목의 말에서 속 마음이 드러난다.
“마른 수건을 짜니까 안 나와서 여러 가지 모아서 수건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기자가 연내에 추가로 할 계획은 없느냐라고 질문하자 "생각하기도 싫다."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정책결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특징이 드러난다. 바로 행정부에게 과도하게 위임된 재량권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와 대형가전에 대한 개별 소비세를 1.5% 인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발표 다음날 9월 11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개별세법 시행령을 즉각 고치겠다고 했다. 어떻게 세율을 국회 의결 없이 바꿀 수 있는가? 정부보도자료에 의하면 개별 소비세는 법에서 정한 세율에 대해 30% 안에서 행정부가 조정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5%이니 30% 한도내에서 1.5% 포인트 내린 것이다.
이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자동차 구매자와 자동차 업자들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것도 비싼 차를 사는 사람일수록 혜택이 많다. 소나타를 사면 약 40만원, K9을 사면 약 120만원을 소비세에서 절감한다. 또, 비싼 차일수록 기름을 더 먹으니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도 더욱 더 문제가 많은 정책이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국회 동의 절차가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윤증현이 매경 인터뷰에서 마치 국민이 잘못해서 석유수입이 많은 것처럼 말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했던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 호주 사람을 만났는데 한국은 물이 충분한 나라냐고 비아냥거리듯 묻더라. 사무실에 와보니까 밥을 먹으러 나갈 때도 전깃불을 하나도 안 끄고 나간다고. 호주에서는 샤워한 물조차 반드시 한 번 더 사용한다고 하더라.한국의 전기 값은 영국에 비해 45%, 프랑스에 비해 60%에 불과하다. 석유값이 급등하는 데도 그전부터 국제적으로 너무 낮은 전기 값을 누른 것은 바로 윤증현이 기재부 장관(2009.5~ 2011.10)을 했던 이명박 정부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을 하더니 이명박의 유체이탈 화법도 배운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행정부 권한으로 대형 차량에 더 많은 세금 감면을 주겠단다.
결국 전기와 물을 생산하는 게 뭐냐. 석유다. 우리가 지난 1년간 원유를 수입하는 데 쓴 돈이 얼마인지 아나. 1007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다. 우리나라 1년 국내총생산(GDP)이 1조2000억달러인데 그중 10%를 원유를 사는 데 펑펑 쓴 것이다.
작년 한 해 국제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309억달러인데 기름을 아껴 원유 수입을 줄였다면 흑자 규모가 1000억달러는 넘었을 거다. 이게 몇 년 지속되면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 1조달러에 금방 도달한다. 그만큼 글로벌 경제위기 등 외풍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차곡차곡 축적되는 거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주택분양가 상한제를 예외적인 경우에만 실시하겠다는 국토해양부의 어제 발표다. 앞으로는 주택가격이 급등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지역과 보금자리 주택 등에만 실시한다는 것이다. 또 상한제 적용 아파트를 분양 받은 뒤 일정 기간 전매를 제한하는 것도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정하는 경우로만 제한한다고 했다. 분양가 상한 적용과 전매 제한 여부를 국토부 장관에게 위임한 것이다. 폐지 자체는 잘 하는 일이지만 여전히 행정부에게 재량권을 주는 것은 부동산을 경기 조절용으로 쓰는 나쁜 폐습의 연장이다. 국토부 공무원들의 부패가 대개 이런 재량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잘못된 방식이다.
박정희 시대가 끝난지 30년이 지났지만 행정부가 국회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중요 정책을 행사하는 폐풍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기업에게 부과하는 세금도 자기들이 멋대로 주무르고, 석유값이 아무리 올라도 정치적 이유로 전기 값을 억누르고, 아파트 분양 가격도 자기들 허락을 받아야 정하게 해놓고도 도리어 국민들에게 눈을 부라리는 한국의 관료는 어떻게 해야 없어질까?
사실 경제민주화 논의에는 이런 것도 들어가야 한다. 아니, 다른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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