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알려진대로 한국 언론의 전문성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 특히 경제, 금융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체적으로 기사를 취재할 능력이 떨어지니 정부나 기업이 주는 보도자료를 약간만 수정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업도산 문제는 금융와 법이 만나는 분야라서 기자들이 다루기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웅진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서는 비교적 발빠르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9월 26일 법정관리 신청 당일 극동건설만이 아니라 극동건설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도 같이 신청을 한 것이 예상 밖이었고, 웅진홀딩스 지분 약 79%를 가진 윤석금이 신청 당일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끈 것 같다. 아니, 회장님이라 불리던 사람이 지주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었어? 그러나 한국의 기업 부실과 구조조정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사실 웅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부실 규모도 2조가 안된다.(수정: 웅진 도산으로 금융권이 입을 손실이 2조 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문제는 그 부실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현행 부실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고, 다른 하나는 법원 밖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하여 처리하는 워크아웃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보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기업이 훨씬 많다. 금호아시아나 등 수많은 기업이 워크아웃 중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 워크아웃 문제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이런 와중에 김상조가 이에 관하여 경제개혁연대 뉴스레터와 프레시안 컬럼을 썼는데 경제문제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은 꼭 둘 중 하나의 전문을 읽기를 권한다. 그는 금융위원회가 최근 통합도산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개정 계획을 발표한 것에 의심을 제기했다. 기존의 통합도산법 안에서 얼마든지 폐해를 관리할 수 있는데도 웅진 사태를 빌어 지금까지의 관치금융을 연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게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갑갑하던 차에 경제개혁연대의 뉴스레터 글을 보고 반가와서 칭찬을 하니, 김상조 왈, 자기가 썼단다. 한국 사회에 그나마 그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기서는 김상조가 자신의 글에서 설명을 생략한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부실기업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왜 한국에서 금융위기가 반복되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웅진의 법정관리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곧 기존 경영진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해주는 한국의 도산법 관련 관행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도산 관련 전문가가 아니면 대부분 처음 들어봤을 생소한 용어인 기존 관리자 유지제도(Debtor in Possession)에 대한 설명이 신문 지면에 나오게 된 것도 그런 관심의 결과다. 이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놔두는 미국 제도인데, 과거 한국에서 회사가 완전히 회생불능이 될 정도로 악화될 때까지 도산 신청을 하지 않고 버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 도입되었다. 나름 합리적인 제도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경제적 구조가 다르다. 그래서 귤이 회하를 넘으면 탱자가 되는 현상이 여기서도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가 많고, 지분 역시 분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달리 지분이 분산되어 있지 않으며, 경영진이 바로 지배주주 또는 지배주주의 지휘하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2009년 미국의 GM이 법정관리에 들었을 때 그 경영진이 갖고 있는 지분은 매우 적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주가가 폭락해도 그 경영진이 입을 손해는 그가 갖고 있는 전체 재산의 일부에 그친다. 또,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에 책임을 물어 해임을 해도 그가 받는 손해는 연봉에 그친다. 법원에서는 해당 기업을 회생시키는데 가장 적절한 경영진이 누구인지만 판단하면 된다. 기업 외부에 전문 경영진 인력 시장도 활발하다. 그러니 채무자(Debtor)에게 재산 관리(in Possession)을 하도록 해도 큰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배주주가 경영진인 경우가 많아서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지배주주 개인이 입을 수 있는 손해가 막대하다. 그러니 지배주주는 필사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보신주의에 물든 은행 경영진은 지배주주의 동귀어진 전술에 끌려다닌다. 또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나서 경영진이 밖에서 선임되면 그동안 지배주주의 숨겨진 행위가 드러날 위험도 있고, 빼돌리기를 계속하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지배주주는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로비를 한다. 그런데 한국 법원은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전문적 지식도 부족하고 인력도 달린다. 외부 전문 경영진 시장도 발전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법정관리 후에도 기존 경영진에게 경영권을 그대로 놔두는 법원의 관행이었고, 이런 식의 관리자 유지제도는 지배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방임하는 제도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시중에 워크아웃으로 알려진 제도다. 여기에서도 귤이 탱자로 변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기업부실이 드러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질 위기에 봉착했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도산 관련 제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워크아웃이었다. 법정관리에 가기 전에 채권단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워크아웃이 문제인 것은 이것이 말로만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자율협약이고 대부분은 정부가 뒤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워크아웃을 할 기업과 법정관리에 들어갈 기업을 가려내는 작업을 주도한다. 예를 들어,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나타난 신조어가 있는데 "대주단 협약"이 바로 그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만든 '부도유예협약'과 유사하다. 부도유예협약이란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서 거북하니까 새로 만든 용어다.
이는 간단히 요약하면 건설업체에 돈을 빌려준 대주(貸主)인 채권금융회사들이 일종의 채권단을 꾸려 자금을 지원하거나 회수를 유예해주는 방식이다.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가 대주단협약에 가입을 신청하면
대주단이 회생가능 여부를 판단해 가입을 승인한다. 대주단협약에 가입하면 1년간 채무상환이 유예되고 신규 차입도 가능하다. 가입
대상은 처음에는 도급순위 100대 기업이었으나 300대 기업으로 확대됐다. 도입 당시 기업 입장에서는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것 같지만 막상 자기는 신청하지 않겠다고 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건설사들이 대주단협약에 가입하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도 꺼렸던 이유는 대주단이 회생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지원을 중단하면 실제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실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정부와 금융권의 속내를 알기에 부실 기업인 주제에 도리어 배짱을 부렸다.
워크아웃은 주채권은행이 협상을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 주채권은행의 이해와 다른 채권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주채권은행이 자신의 채권 회수는 확실하게 챙기고 회사와 다른 채권자에게는 껍데기만 남기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채권자간 이견이
있으면 해당기업이나 주채권은행은 "금융당국"의 개입을
요청하고, 온갖 이해집단에 의한 로비가 난무한다. 여기에는 언론에 불리한 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하는 로비도 포함된다. 어쩌다가
지난 8월 오리엔트조선 같이 채권자간 내부 분쟁이 소송으로 가면서 언론에 보도될 때도 있으나 이는 드문 일이다.
대주단 협약은 올해 말 기한이 끝난다. 이명박 정부와 같이 시작해서 이명박 정부와 같이
사라진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금융을 이용하는 관치금융의 최신 버전 중 하나인데, 노무현 정권 말기 부동산 경기가 주춤하면서 시작된
건설사 부실이 이명박 정권 기간 중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위가 나서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관치금융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권이 자기 재임기간 중 부실을 덮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부실에 눈감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정권과 금융 관료들의 담합이었다. 그러나 저축은행과 마찬가지로 결국 많은 기업들이
버티지 못하고 부실화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금융위와 금감원 지휘하에 채권단이 부실회사들에 대해 공동 등급을 매겨서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강제할 법적인 근거가 없지만 다들 알아서 잘 따라온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부 주도하에 금융기관들이
담합으로 부실을 숨기는 것이다. 1990년대 외환위기 발생 전까지 기업 부실을 정부와 은행이 담합해서 숨기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채권단 사이 분쟁 못지 않게 큰 문제는 지배주주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는 한국의 관행이다. 예를 들면,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두 회사는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 3월 채권단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각각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박삼구 가족에게 각각 14%와 10%의 지분을 배정했다. 비록 건설업체인 금호산업의 경우 유상증자 시 지불한 가격(9,100원)이 현 시가(2,805원)보다 훨씬 높지만 자회사로 금호산업은 자회사 아시아나 항공의 지분 32%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박상구 가족에게 이 지분의 가치는 주가 등락으로만 계산할 일이 아니다. 또 주가가 그 후 폭락했으니 나중에 채권단이 팔 주식의 값도 낮아질 수 밖에 없고, 박삼구 일가가 내야 할 비용도 낮아진 꼴이 된다. 제 삼자가 나중에 인수하고 싶어도 이미 발을 밀고 들어선 박삼구 일가의 지분을 인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부담을 갖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인수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삼자 매각은 어려워진다. 박삼구 일가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어쨋든, 이는 2014년까지 회사가 정상화되면 채권단이 자신의 지분을 처분할 때 박삼구 가족에게 우선권을 주겠다는 시그널인데, 박삼구 일가는 이렇게 10% 내외 남짓의 지분만으로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할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 과정을 그냥 사실 보도만 했을 뿐, 아무도 이 거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곳은 없었다. 도리어 박삼구 일가의 경영권 획득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처럼 보도했다. 야당 역시 금호가 호남 기업이라는 이유로 문제화 하는 것을 기피했다. 모두들 재벌가에게는 이토록 너그럽다. 모두들 은행이 출자전환으로 차지하게 된 기업을 재벌에게 넘기고 싶어한다. 한국사회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모델을 불신한다.
이 모든 현상은 한국은 아직도 정권이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상시적으로 금융부문을 조종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관치금융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고, 기재부 관료를 중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특히 1990년대부터 소득 양극화로 부진한 국내수요 부족을 증세와 복지 대신 대출로 대처하려고 하면서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 김영삼 정권 시 대기업 부실에 따른 외환위기, 김대중 정권 시 신용카드 위기, 노무현 정권시 부동산 담보 가계대출, 이명박 정권의 전마불사 정책이 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한국경제의 뿌리 깊은 왜곡을 극복하지 못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부실을 부실이라고 부를 정직성을 한국사회는 안 갖고 있다. 반복되는 금융산업 위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무리한 대출 확대는 결국 부실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기업이나 가계에 부실이 생겼을 때 이 문제를 자신의 집권기간이나 관료의 재직 기간 중 드러나지 않도록 뒤로 미루고 싶은 인센티브를 제어할 장치를 한국이 안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금융기관도 안 갖고 있다. 문제를 덮고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신주의 욕구만 있을 뿐이다. 요즘 나오는 부동산 정책이나 가계부실 대책이 모두 그런 욕구의 표현이다. 관료들은 이미 암암리에 다음 정권에게 제시할 대책 준비 중이라고 한다. 5년에 한번씩 정권이 바뀌는 한국에서는 그게 그들이 나름 터득한 생존전략이다.
김영삼 정권도 그러다가 임기 말년 외환위기를 당했고 김대중 정권에게 넘겼다. 김대중은 신용카드 빚을 노무현에게 넘겼다. 노무현은 가계 빚과 건설사 빚을 이명박에게 넘겼다. 이명박은 자신이 미루다가 더 키운 건설사 부실과 가계부실 문제를 넘기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자기 집권 기간 중 기업과 가계의 부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미봉책을 남발했다. 그러나 워낙 5년이란 세월이 길어서 작년 말부터 그 꼬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적어도 임기 도중 위기가 터진 김영삼 꼴은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년 초 무슨 일이 벌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1997년과 다른 점은 한국은행에 외환이 많고 대기업의 재무구조가 좋은 반면, 대신 세계 경기가 안좋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버블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국민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든 새 대통령은 자기의 집권 구상을 구체화하기도 전에 그동안 이명박이 미루어 놓은 경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주진형님의 글을 보고 김상조님의 글에서 잘 이해 못하였던 부분이 명쾌하게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글들중에서 제게는 제일 유익하였습니다
답글삭제http://tnfm.tistory.com/612 만수르 라는 블로그에서 님의 글을 출처없이 자신이 쓴것 처럼 무단 도용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답글삭제무서운 현실입니다.. 지금 제가 살고있는 이 나라가... ㅠ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다들 문제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이 문제있는 체제의 늘 문제있는 상황에 적응이 되어있어 선뜻 칼을 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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