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7일 목요일

김종인을 논한다: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서평 (I)

한나라당의 변신과 김종인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의 당선으로 끝났다. 1년에 걸친 선거 과정에서 가장 큰 주제로 부각된 것은 경제민주화였다. 사실 이건 야당이 아니라 박근혜 덕이 크다. 야당이야 원래 그러련 하겠는데 여당 후보도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경제민주화는 모두의 과제가 되었고, 과연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촛점이 쏠리게 되었다.

그 경제민주화 논란의 한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었던 인물은 김종인이었다. 아마도 작년 정치권 보도에서 세 대선 후보를 제외하고 언론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이 김종인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재작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양당은 국민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야당은 단일화 경선에서 시민 운동가 출신 박원순에게 지면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아침에는 민주당이 버스를 대절하여 조직을 동원했지만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 시민들에게 밀렸다. 여당도 박원순에게 졌다. 토론과정에서 박원순은 준비가 안된 티나 너무도 났고, 선거 유세도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박빙을 예상했던 선거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보다 큰 차이인 7.2%의 표차로 박원순이 이겼다. 

그 후 한나라당 지도부는 궤멸했고, 예정보다 빨리 12월 중순부터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그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구성했을 때 당 외에서 영입한 인물 여섯 중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었던 사람이 김종인이었다. 그는 정책쇄신분과위원장을 맡아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이끌었다. 그는 한나라당이 창조적 파괴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서는 이상돈 교수와 함께 인적 쇄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압박했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한나라당 정책의 선두에 올려놓았다. 과거 한나라당으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변화였다. 박근혜 측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선택한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과감하기 짝이 없는 변화였다. 박근혜도 과감했고, 김종인도 과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한나라당의 변신에 반신반의했다. 한나라당의 과거 행적이나 새누리당의 이름을 바꾼 후의 행보만을 보면 의심할 만도 했다. 당내에서도 이러한 인적 쇄신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도 막상 이상돈과 김종인의 요구에 비해 인적 쇄신에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러한 새누리당의 변신은 성공했다. 박근혜는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의제 진지에 거침없이 쳐들어와 자기 것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고, 이명박 정권 심판을 외치는 야당의 주장에 김을 뺐다. 야당은 처음에는 차출한 인물 문재인을 내세웠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출몰한 인물 안철수와 단일화에 몰두하다가, 겨우 선거 2주일을 남기고 뒷북 캠페인에 나섰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왜 졌는지 모른단다. 자기들끼리 정리되고 나면 연락 주기를 바란다.)

모호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방안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막상 여당에서 그 경제민주화에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가 선거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새누리당 내에서도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정책 공약으로 가다듬어진 것은 11월 중순이었다. 일년 내내 가장 중요한 의제라고 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이 드러난 것이 선거를 겨우 한달 남겨둔 시점이라는 것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사실 이런 새누리당의 혼란에는 김종인의 탓이 크다. 그 동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대표적 주장자로 알려져 온 그가 작년 말 박근혜 측에 합류했을 때부터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김종인은 이에 대한 답변을 하는 대신 주로 경제민주화가 여당 내에서 주요 의제로 채택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만을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줄 곳 지금 자기 생각을 얘기하면 그것 갖고 싸움만 일어나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무엇을 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박근혜 후보가 빠르면 10월 중으로 대선 공약으로 무엇을 발표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정치과정에서 국회보다 집권자의 의지를 더 중요하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한나라당을 통한 혁신에는 큰 기대가 없었고, 그보다는 박근혜를 통한 혁신을 더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의 책 출간

 그런 김종인이 선거 바로 전 11월 중순에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을 냈다. 경제민주화를 한나라당의 정책으로 집어넣고 난 후 일 년이 거의 다 지나고 나서야 김종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를 설명하는 책을 낸 것이다.

출판 날짜가 묘하다. 11월 20일이다. 박근혜가 그가 위원장으로 있었던 행복추진위원회의 제안 중 일부를 삭제하고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한 것이 11월 16일었다. 그 후 약 20여일 간 그는 새누리당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사이에 책이 나온 것이다. 출판 시기로는 최악이라 할 만하다.

책을 출판한 시기가 이미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확정되고 난 후였기 때문에 이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방안 구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어떻게 박근혜 정책 공약으로 귀결될 것인가를 모를 때였다. 이미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발표되고 난 후에는 그의 흉중의 생각에 대해 한국 사회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한해 한국을 뒤흔든 경제민주화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김종인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진영 논리를 벗어난 김종인

김종인은 거의 30년에 걸쳐 시종일관 공개적으로 재벌의 탐욕스러운 행태에 대해 비판을 해왔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노태우 정권 시절까지 경제정책에 직접 참여하면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등 복지제도의 기초를 닦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87년 개헌 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남도록 공헌을 했고,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하면서 재벌들로 하여금 업종 전문화를 하도록 압박했고 투기를 위해 매집해 놓은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게 했다. 그 후에도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재벌의 탐욕을 막아야 한다고 했고, 후배들로 하여금 재벌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했다. 김상조, 전성인, 김우찬 같은 개혁 성향의 젊은 학자가 보이면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나서 격려하고 이들의 연구를 후원했다.

이는 보수 정부 직책을 맡거나 정부 정책에 참여했던 경제학자로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관변 경제학자들은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도 대부분은 공개적으로 재벌에 대해 각을 세우는 것을 꺼린다. 또, 관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처음에는 재벌에 대한 비판적인 소리를 내던 사람도 정부에 들어가거나 사회에서 알아주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 목소리가 잦아든다. 다들 한국 주류 사회에서 출세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가 알아서 말조심, 몸조심을 한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그처럼 일관되게 강한 목소리로 탐욕스러운 재벌과 소득 양극화에 소극적인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이 없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양분화된 한국의 정치 진영 논리를 뛰어 넘나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그의 할아버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잃고 조부 슬하에서 컸다고 한다. 그의 조부 김병로는 의병 운동에 참여했고,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고,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정권에 대항했고, 박정희 정권 초기 야당 대표를 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김병로는 정당 내력 만으로는 야당 인사지만 보통 한국의 보수 야당 인사와는 조금 다르다. 신간회 시절부터 좌우 대화와 타협을 주장했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강화되자 아예 경기도 양주에 내려가 13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타협을 거부했고, 해방 후 처음에는 독자 정권 수립을 반대하고 좌우합작을 주장했고, 무상 토지개혁을 주장하면서 한민당 내에서 충돌했다. 그 험난한 시대에 자기 삶을 통해서 권력과 금력에 굴하지 않은 모습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젊은 청년 시절 조부의 비서로 야당 정치를 경험한 그는 조부 사후 독일 유학에 갔다가 돌아온 후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정책에 참여했다. 5공 시절 비례대표로 국회의원들 두 번 했으며, 노태우 정권에서 보사부장관과 경제수석을 지냈다. 비록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갈라져있던 시절 민주당 전국구 의원을 한번 더 했지만 사회경력 만으로 보면 보수 쪽에 가깝다. 혹시 젊은 나이에 조부를 통해 알게 된 야당인사들의 행태에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의 정책 노선은 지난 30년 간 항상 진보에 가까웠다. 비록 한국에서 진보라는 용어가 운동권의 급진적 성격 때문에 오염이 된 면이 있으나, 시장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과 사회통합을 위한 복지증대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진보진영의 주장과 같다. 그는 박정희 정권시절 의료보험과 재형저축을 주장해서 관철시켰고, 기업 노조가 아니라 산업노조를 도입하는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다.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의 위험에 대해 경종을 울렸고, 재벌의 탐욕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회통합을 위해 복지체제 강화를 강조해왔다. 외환위기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재벌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했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를 부담스럽게 느껴 그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김종인을 보면서 느끼는 혼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야당 집안에서 태어나 보수진영에서 일했는데 막상 그가 주장하고 추진한 정책은 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이었다. 보수 정권에 있으면서 복지제도 강화를 주장했고 재벌 개혁을 밀어붙였다. 김대중이 구조조정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했고, 노무현이 재벌 개혁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고, 소득 양극화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권의 규제완화, 감세, 기업친화정책을 정신 나간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신의 신조를 펼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5년 전 줄푸세를 주장하던 박근혜를 돕겠다고 나섰다. 못 말리는 독자행보(도꼬다이)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돈키호테적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한자리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면서 노욕, 노추라고 깎아 내렸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그가 나이가 들면서 자기의 꿈을 실현해 줄 정치가나 나타나지 않자 초조해진 것은 아니냐고 했다. 언론에서는 그가 말하는 주장 보다는 주로 언제 그가 박근혜와 충돌해서 자발적으로 나가거나 팽을 당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진보 언론은 박근혜과 새누리당이 겉으로만 이미지를 변신하는데 그를 이용하고 있다고 빈정댔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는 이렇게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고 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종인은 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만의 행보를 계속해왔다. 한국의 진영 논리를 벗어나, 자신의 정책 경험에 기반을 두어, 재벌 규제와 복지국가를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이를 실행에 옮길 대통령감을 찾아왔다.

김종인의 선택

이명박 덕분에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소득 양극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데에 합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가 기존의 한나라당 정책 노선을 이 정도까지 수정하게 된 것은 가히 혁신적이라 할 만하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박근혜의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여기까지 왔을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김종인은 한국사회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여당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당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쇄신이 되어야 한국 사회의 쇄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는 그 쇄신을 위해 박근혜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 그의 판단이 맞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이념적 주장이 횡행하고, 교활한 정치논리가 설치고, 집요한 이익집단의 억지가 버젓이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김종인만큼 줏대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온 지식인의 사고와 경험이 담겨 있는 책을 선거가 끝났다고 그냥 넘겨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계속)

댓글 2개:

  1. 오랫만에 잘 정리된 서평을 읽었다. 진영논리에 빠지지않고 우리사회를 바라보는게 필요한데도 그러지 못하는 많은 지식인들을 본다. 또 일부에서는 정체성운운하면서 진영논리로 편가르기를 강요한다. 우리사회를 아우르는 공유가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종인은 그런사람이다. 자기가 서있는 곳을 넘어서,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몇 안되는 한국의 지도자이다. 한국사회를 사랑하는 지서인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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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쩌면 이렇게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한 경제정책가를 평가하실 수 있는지 감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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