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이 지난 11월에 출판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는 사실 평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서평을 쓰는 것을 계속 미루어왔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여러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40년간 그가 교수, 국회의원, 장관, 경제수석 등을 거치면서 겪은 것을 회고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가를 정리하고, 또 그에 덧붙여 경제민주화를 위한 주요 정책과제도 분야별로 훑고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책을 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완결된 글로서의 촛점을 잃고 책의 각 부분을 단순 요약 서술하는 서평이 되기 쉽다.
그의 전력에 비춰봐서 그의 짧은 회고담은 70~80년대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특히 1977년 의료보험 도입에 관한 부분은 한국에서 복지제도 도입을 추진할 때 부딪치게 마련인 관료들의 현상유지 위주의 저항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약 반을 차지하는 경제민주화에 관한 부분은 아마도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에 관해 쓰여진 글 중 가장 읽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 글일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상호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경쟁과 평등은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누가 양보해야 하나? 자본주의가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둘 다 같이 살 수 있다. 누가 할 것인가? 국가가 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해야 한다. 그래야 둘 다 산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생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시장경제는 인간의 탐욕을 전제로 하지만 그렇다고 그 탐욕을 그냥 놔두면 필연적으로 경제력 집중을 초래하게 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국가 뿐이다. 국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그 개입의 대상은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을 해치는 독과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이 필연적으로 낳는 소득 양극화이다. 독과점을 놔두면 경쟁의 효율성을 해치고 소득 양극화를 그냥 놔두면 사회 불안정이 심화되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해친다.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재벌이 독과점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낳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사회 안정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시각은 전후 유럽의 신자유주의와 독일 기민당의 정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알려져 있는 신자유주의는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영미권의 신자유주의다. 규제완화, 민영화, 시장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라고 하지만 독과점에는 너그럽다. 그에 비해 2차대전 후 유럽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 심지어는 케인지안 정책에도 반기를 들면서 나타난 유럽의 신자유주의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신봉하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독과점을 엄격히 배격한다. 또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사회의 유대감과 안정을 해치는 소득 불균등에 국가가 사회적 기구를 통해 개입해서 완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를 인간의 자유를 완성시키는데 필요한 절대적 선이라고 본 헤겔과 그 이후 독일 철학계의 국가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가 바로 전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원천이었다. 1948년에서 1963년까지 15년간 아데나워 정부 기간 내내 경제상을 맡아 경제부흥을 이끈 사람이 바로 에르하르트였다. 그 에르하르트가 주창한 것이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가격 통제나 양적 통제 등 시장경쟁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면서도 독과점 역시 엄격히 배척했다. 이 때 그가 세운 독일경제체제는 지금까지도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국가가 국가적 기업을 운영하고, 정부가 시장경제에 직접 개입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김종인이 한국의 지식인들이 흔히 빠지는 외국 모델 추종론에 빠져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한국이 독일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그가 한국에서 경제정책에 참여하면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다. 유럽과 독일의 역사적 전통과 특수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지 유럽 지역이나 국가의 사회경제체제를 한국의 모델로 삼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정책가라면 세계적 차원에서 현대 국가가 직면하는 주요 흐름과 모순의 보편성을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살고 있는 특정 사회의 전통과 구조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다. 즉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이 같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예의 주시하면서, 행동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재벌 개혁을 주창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당분간은 재벌 개혁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런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한 훌륭한 해설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부문별 정책 과제에 대한 논의가 그 중대성에 비해 논의 수준은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요 정책과제에 대해 언급한 것들은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한 얘기들이 하나도 없다. 하나 하나가 모두 그것 하나만으로도 온 나라가 들썩일 정책 과제들이다. 또, 이들에 대한 그의 시각 역시 한편으로는 급진적으로 들릴만큼 신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만큼 대단한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하다. 예를 들면, 그는 교육과 보육을 복지로 볼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복지는 소득의 중단을 막기 위한 것인데 교육과 보육은 출산과 생산성을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퍼주기 타령을 할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또, 노동조합을 기업 밖으로 내보내야한다고 했다. 단순히 산업노조로 가자는 말에 그치는 주장이 아니라 노사관계를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적 관계가 되도록 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조와 기업 모두 펄쩍 뛸 얘기다.
국민연금제도에 관해서는 적립식과 부과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온 계층이 1960~70년대 근로자들, 즉 지금의 노년층인데 이들의 생계보장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기초노령연금에 관련된 논쟁의 핵심이 바로 이것인데, 그는 국민연금제도가 처음부터 잘못 고안되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이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국민연금을 깎는 쪽으로 개악한 것은 참으로 아쉬웠다. 그 당시 진보 진영 학자 중 유일하게 이 바보 같은 짓을 적극 비판한 것이 유종일 뿐이었을 정도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지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이를 추진했다는 이유로 유시민을 일 잘한 장관이라고 한단다.
그는 또 국민연금기금을 유가증권, 특히 주식 사는데 쓸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재정사업, 그 중에서도 출산율을 올리는데 쓰자고 한다. 이 역시 진작부터 누군가가 제기했어야 하는 문제의식이다. 지금처럼 적립기금이 늘어날 때는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 적립기금을 줄어들 때쯤 되면 주식을 팔아야 한다. 그 때가 되면 주식시장은 대폭락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지 않고 기업연금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착오다.
이 책에는 이런 뛰어난 통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그냥 지나가면서 놓치지 쉽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아주 평이하게 쓰여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에 관해 쓰여진 글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쉽게 읽히는 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장점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단점이 될 수 있다. 무겁고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주제인데 쉽게 풀어서 쓴다고 해도 일부 독자는 너무 어려운 용어가 횡행해서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또 다른 독자층은 도리어 깊이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그가 툭툭 던지듯이 언급하고 넘어가는 얘기 중에는 어지간한 독자가 아니면 그 깊은 의미를 모르고 지나가기 쉬운 것들이 많다. 또 그런 얘기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은 채 넘어가서 과연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기가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책은 어려운 주제와 쉬운 서술이라는 양자간의 긴장을 성공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나라에서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평이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쓰여졌다. 그러나 이 책에는 구체적인 정책과 액션플랜은 없다. 그는 서문에서 이를 차기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바쁜 일정 사이에 단기간에 써낸 책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또 써보았자 실행에 옮겨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짧은 책에서 많은 분야를 모두 다루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개별 정책
분야에서는 수박 겉핥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김종인 특유의 주옥 같은 통찰이 여기저기 그냥 널려져 있어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정책가로서 인정을 받고 난 후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책을 쓴 적이 없다. 치밀한 글을 쓴 지가 오래된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오랜만에, 그것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에 쓴 글이다. 주의를 기울여 읽는 독자만이 그 통찰의 편린을 겨우 엿볼 수 있다. 보일 듯 보일 듯 하지만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의 용 같다. 누군가가 그를 쫒아 다니면서 집요하게 그의 머리 속 생각을 더 끌어내었으면 좋겠다.
정책가는 일종의 교향악 지휘자와 비슷하다. 한 악기에 깊이 천착하는 대신 다양한 악기에서 나는 소리의 화음과 박자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 이 책은 그가 지휘자로서 들려주었을 지 모르는 음악의 일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그가 지휘하는 교향악을 들을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책 이야기를 통해 저자를 보여주는군요. 김종인에 대해 문외한이었는데, 그의 새로운 교향곡 1악장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일면의 통찰을 주네요. 고맙습니다.
답글삭제매우 좋은 서평 잘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읽을 많한 것들이 가득하군요... 감사하게 보겠습니다. 그리고 당에서 좋은 역할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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