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7일 목요일

작은 승리라도 좋다: 노인기초연금 논란을 보면서

박근혜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초연금을 두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첫째, 박근혜가 공약집과 대통령 토론에서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주는 방안을 말했는데 당선 후 말을 바꾸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미 국민연금에 가입된 사람들로서 20만원도 못받는 사람들과 형평성 문제다. 셋째는 그 재원을 국민연금기금에서 일부를 헐어서 마련할 것인가이다. 

한국의 다른 사회복지제도와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제도 역시 관료가 주도해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제도의 구조에 대해 잘 모른다. 이번 기초연금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많은 부분도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지에 연유한다. 박근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알게 될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이 글을 이러한 무지와 오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썼다. 나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다. 국민연금제도는 매우 복잡한 제도다. 여러가지 사회통계가 필요하고, 많은 분야의 고려가 통합되어야 한다. 자기 글에 대해 책임성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얘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 언론에서 오가는 얘기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불합리한 오해와 왜곡이 횡행한다.  

현재의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누가 나서든 간에 뚜렷한 해결책을 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기존의 국민연금제도가 워낙 부실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문제, 박근혜가 당선 후 말을 바꾸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연금 문제는 원래부터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국민 모두에게 관련된 문제이고 한번 만들면 오래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오랜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선거 한두달 전에 선거공약으로 들이댄 제안을 그대로 실시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갖고 말을 바꾸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은 비생산적인 뒷다리걸기에 불과하다. 벌써 대선 3차 토론 때 박근혜의  얘기를 듣고 일부 똑똑한 유권자들은 모두 기초연금을 받게 되면 국민연금을 가입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지적했었다.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은 그것도 모르고 구경만 하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법석을 떨고 있다.

우선 무엇이 가장 이상적인지부터 생각해보자. 현대 국가들이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을 따져보면, 공적연금제도는 노인이 되어 경제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소득이 끊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산업화가 되면서 전통적인 농촌에서와 같이 자식이 부양을 하는 방식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주는 기초연금제가 가장 이상적이다. 기껏 만들어 놓고 나서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만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안 준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국민연금제도 도입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돈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아서 저축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발달한 형태가 일정 소득 이하인 사람들에게는 정액으로 기초연금을 주고, 그 이상 소득자에게는 소득비례 연금을 주는 방식이다. 누가 듣기에도 합리적이고, 많은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당장은 실행하기가 어려운 방안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애초부터 한국의 공적연금제도가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제도로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적연금제도는 크게 국민연금과 공무원과 사립교원을 위한 직역연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전 국민 대상의 기초연금이 없다는 것이다. 직역연금이 먼저 탄생했고, 그 후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도 기초연금의 개념이 없이 출발했다.  

그래서 아직도 사각지대가 많고, 진정한 모든 국민을 위한 연금제도가 아니다. 경제활동인구 약 2천2백만명 중 백만명이 실업인구이고 여기에 그냥 일을 안하고 있는 비경제활동인구 9백만명을 합치면 거의 1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적용 대상자가 아니다. 문제는 취업자 약 2천 1백만명 중 소득이 낮거나 불규칙적이어서 예외로 되어 있는 사람과 그냥 안 내는 미납자와 미가입자가 아직도 거의 700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취업자 2천백만명 중 약 1/3이 가입을 안한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민연금이 임의가입제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상용직중에서는 98.5%가 가입했지만 임시 일용직에서는 18% 정도만 가입되어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소득이 낮은 사람일 수록 가입률이 낮다. 100만원 미만 소득자 중 약 17.5% 정도만 가입되어 있고, 100만원~200만원 사이에서는 약 59.5%만 가입되어 있다.


이를 명실상부한 국민개연금(Universal National Public Pension)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연금을 신설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가입율이 낮아서도 안된다. 즉 모두가 받는 연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는 구조로 먼저 만들어 놓아야 한다. 모두가 내고 있지 않는데 모두에게 주겠다면 어떤 방식을 택하든간에 모순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소모적인 형평성 논란이 일게 되어 있다. 모두에게 주어도 모순이 발생하지만 소득 하위 70%에게만 주어도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이 문제는 정답이 없다.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참에 국민개연금제로 개혁하면 안되나? 불가능하다. 국민개연금과 같은 이상적인 개혁안은 연금 조달방식부터 증세까지 대대적인 재편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단기간에 실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금융실명제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소득도 불투명한 나라이기에 더욱 힘들다. 처음부터 재원조달 방식을 보험방식이 아니라 조세방식으로 했으면 소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적용 대상자는 되었을 것이지만, 소득이 불투명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실시하면 온갖가지 폐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국민개연금제로 가려면 금융실명제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도 제대로 도입해야 했을 것이다. 한국은 소득 투명성 면에서 이런 기초도 아직 못갖춘 나라다. 

이와 같이 박근혜 정부가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한 것은 선거를 의식한 것이거나, 아니면 당장 실시하려고 할 경우 발생할 모순을 간과한 것이다. 그래도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비판만 할 일도 아니다. 아무리 작은 승리라도 승리할 수 있을 때 하고 볼 일이다.  조금이라도 노인들 빈곤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말을 바꾸었든 아니든 간에 환영하고 볼 일이다.

세번째 문제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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