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인사
청문회 절차가 남은 인사들이 있지만 드디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인사를 잘못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돌고 있다. 야당에서 그런 소리하는 것이야 그러련 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현 정부에 비교적 호의적인 사람들도 인사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청와대도 그렇지만 해당 부처 장관을 하기에는 리더쉽도, 식견도, 경험도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87년 민주화 이후 인사에 성공한 대통령은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 취임과 같이 시작한 내각 인사들은 대부분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교체되었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일을 잘 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사람들도 별로 없다. 특히 정권 초기 장관일수록 그렇다.
어렵기만 한 인사
회사 다니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회사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사라는 것이다. 마땅한 사람은 드물고, 시키고 싶은 사람은 고사하고, 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은 몰려든다. 다른 일은 경험에 의지해서 일을 하면 자기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데 고위직 인사는 처음 예상을 벗어날 때가 많다. 많은 경우 조직 임원 인사는 최선도 아니고 차선도 아니어서, 그냥 있는 자원으로 돌려막기에 그칠 때가 많다.
임명 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기 뜻대로 하려고 들기 마련이다. 또 인간이기에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성격도 있어서 자기 행동이 자기 뜻대로 안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임명할 때 가졌던 기대에 못미치는 게 다반사다. 특히 조직 상층부로 갈수록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주기 때문에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까지 맡은 일을 잘해서 승진을 시켰는데 새 직무에서는 실망스러운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외부 인사는 물론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을 거친 내부 승진의 결과인데도 그렇다.
이렇게 인사가 어려운데도, 한국에서는 사장이 되기 전에 인사를 해보고 사장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장은 전략, 생산, 영업, 재무 출신이고 인사 출신이 사장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임원 기간 중 인사를 맡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사장이 된 후 인사 경험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는다. (나는 그래서 사장감으로 키울 인재는 임원 시절에 인사 업무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한국적 조직 운영 방식 탓도 크다. 아마도 군대 조직 운영 방식에서 유래한 것일텐데, 인사 관련 권한을 사장과 인사팀이 틀어쥐고 중간 임원에게 재량권을 별로 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발령이 나서 가보면 이미 같이 일할 아래 임원이 다 짜여져 있다. 임원 평가도 사장이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어서 직접 상위자가 한 평가를 무시할 때도 많다. 그래서 사장이 된 후에서야 인사권을 처음으로 갖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개별 인사는 물론이고 인사제도에 관해서는 더욱 문외한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 기업이 시정해나가야 할 숙제다.
신임 대통령의 행정부 인사
하물며 작은 기업 조직도 그러한데 수십만명을 지휘하는 행정부는 어떨까? 나는 항상 한국에서 신임 대통령이 행정부 조직을 짜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정부 운영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어떻게 정부 조직 인사를 잘할 수가 있을까? 회사로 치면 회사 운영 경험이 없는 사람이 사장으로 와서 사업본부장 인사를 하는 것에 해당한다. 당연히 잘 할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이 외부 인사인 신임 대통령이 조직의 수장으로 처음 와서 외부 인사로 정부를 채우는 것은 일반적인 조직 운영 경험 상 위험하다. 외부인사 출신 장관은 업무와 조직 파악하는데 적어도 1년은 걸린다. 국회 나가서 혼나고 여기저기 행사장 돌아다니느라 차분히 일을 볼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업무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으로만 인사를 할 수도 없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라도 행정부의 과장, 국장급의 중간 관리층에 자기가 원하는 인사를 임명할 수 없다. 따라서 관료 이외에는 행정부 경험을 가질 수가 없다. 이런 식의 정부조직 운영방식 아래에서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인사에서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다. 정권 초기에 외부 인사를 장관으로 쓰고 난 후 실망하게 되면서 정권 후기에 가면서 점점 관료 출신으로 내각이 짜여지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다.
관료제 시스템 개혁
차라리 정권 초기에는 전현직 장차관 출신 관료를 장관으로 쓰고, 차관과 차관보 자리에 외부 인사를 영입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그들을 장차관으로 승진시키는 것은 어떨지? 근본적인 개혁은 과장과 국장 자리 중 일부를 외부인사로 채울 수 있게 하는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이들은 다시 학교나 기업 등 민간부문으로 나가거나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을 하고, 정권이 바뀌면 다시 정부에 복귀해서 고위 행정직을 맡으면 어떨지? 공무원법을 고쳐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뿌리깊은 고시 관료들의 기득권과 부딪칠 일이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임 대통령이 당선 후 짧은 시간 안에 청와대만이 아니라 장관직까지 외부 인사를 쓰는 것은 일반적인 조직 운영의 원리 상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 지난 정권이 겪었던 문제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지 싶다.
4년 전에 쓰신 글이라지만, 사리 이치에 꼭 들어맞는 생각입니다. 개혁이라는 건 꼭 번잡하게 돈을 들여가며 할 필요 없이, 사람, 조직,구조에서 풀어가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답글삭제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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