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4월 9일 금융 세금제도에 관한 국회 정책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했었다. 흔히 토론회 참석자를 위해 토론회를 열기 전에 의견서를 미리 제출하라고 한다. 5~6분 주어지는 시간에 맞추어 짧게 쓴 글이다.
<패널 의견>
우선 오늘 발표하신 것들에 대한 제 소감을 말씀 드리고 나서, 제가 생각하는 금융투자에 대한 세금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관해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박훈 교수님은 자본시장 경쟁력 회복과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 대상으로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에 관해 논의하셨습니다. 요약하면 파생상품 거래량 순위가 2011년 5위에서 2012년 8위로 하락하는 마당에 자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그 시행시기를 연기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파생상품 양도소득세 부과 여부를 파생상품 거래량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우선, 한국의 파생상품 거래량 세계 순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무엇이 좋아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순위가 높았던 시절이라고 해서 한국 자본시장이 지금보다 더 발달했다고 할 수도 없거니와, 앞으로 더 순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이 자본시장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둘째,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수백억 원의 세수를 예상한다고 하는데 겨우 그만한 돈을 거두지 않는다고 해서 자본시장이 더 발달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이 문제를 자본시장에 관한 전체적인 세금제도의 틀에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본 시장의 주요 상품으로는 주식, 채권, 외환, 파생상품, 그리고 펀드 상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형태는 달라도 근본적으로는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 잉여자와 자금 필요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세금 제도는 각 상품에 따라 각각 상이합니다.
현재 상장 주식은 배당 소득세와 거래세는 있지만, (일반 투자가의 경우) 양도 소득세는 없습니다. 채권은 이자 소득세는 있지만 거래세도 없고 양도 소득세도 없습니다. 주로 주식과 채권을 엮어 만들어지는 파생상품에는 거래세도 없고 양도 소득세도 없습니다. 이렇게 각 상품별 세금제도가 다르고 다른 유가증권의 경우 양도소득세가 없는데 유독 파생상품에 대해서만 지금부터 양도소득세를 매기자고 하는 정책적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초 자산에는 양도소득세를 매기지 않으면서 이를 조합한 파생상품에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자는 것은 파생
상품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됩니다.
또, 박교수님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증권거래세 인하에 관해서는 시도할 만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동의 합니다. 그러나 동의하는 이유는 박교수님과 다릅니다.
박교수님은 거래세 인하에 관한 논의를 주로 주식 시장의 거래량과 연결시켜 논의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시각이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거래세가 이렇게 높아도 한국 투자가들의 거래 회전율은 그리 낮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한국의 주식 시장의 거래 회전율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게다가 거래소 시장의 경우 개인의 거래비중이 50%를 차지하고 코스닥은 80%를 차지합니다. 이 비중이 더 높아진다고 해서 좋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객의 거래세를 낮추어서 주식 거래가 더 많아진다면 증권회사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국가적으로 어떻게 좋은 것인지가 불확실하다면 굳이 자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이것을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얘기하지만 자본시장 활성화가 꼭 거래량 증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래세가 자본시장에 보이지 않는 폐단을 낳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래세가 주식시장 거래량에 미치는 영향보다 거래세가 파생시장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영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자본 시장에서 파생상품은 이미 확고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식 거래세가 있으면 파생상품의 적절한 가격을 산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개별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한 3년 기한으로 ELS를 발행하면 증권사는 이 부채를 헷지하기 위해 수시로 기초자산인 주식을 거래해야 합니다. 3년간 얼마나 자주 거래해야 할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식 거래세가 30bp 나 있으면 헷지 거래의 비용을 미리 추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과거에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서 이런 비용을 감안하고도 상품 설계가 가능했지만 요즘처럼 변동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내려온 상황에서는 개별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ELS를 만들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개별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 시장이 발달하지 않고 인덱스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만 지나치게 발달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래세의 목적이 무엇인가 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과거에는 어쨌든 간에, 지금의 증권거래세는 세수 확보를 위한 것 말고는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세수 차원에서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자본시장에 관한 정부의 조세 정책의 틀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주식에만 거래세를 부과하고 다른 상품에는 거래세를 부과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상품별 소득세를 별도 분리 과세하고, 주식과 채권에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으면서 파생상품에는 부과하겠다는 생각이 무슨 정책 틀에서 나온 것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본시장 관련 조세 정책을 파편화 해서 얻는 장점이 무엇입니까?
오윤 교수님은 국민재산 증대 및 재정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으로 우선 모든 금융소득을 하나로 묶어 이익과 손실을 상계한 순소득을 계산해서 과세하는 방식을 제안하시면서 한국형 ISA를 도입할 때 연금저축에 대해 다른 세금을 적용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교수님은 현행 세제의 특징으로 금융상품간 과세상 중립성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들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투자의 중립성을 가장 중요시 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또 수익금액에서 자본이득은 과세하면서 자본손실은 소득 계산시 감안하지 않는 비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순소득 기준으로 과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역시 찬성합니다.
지금부터 제 개인적인 소감을 얘기하겠습니다. 사실 한국의 자본시장과 금융자산에 관한 세금 제도는 하도 복잡하고 수시로 바뀌다 보니 이제는 거의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헷갈릴 지경입니다. 요즘 해외투자에 대한 차별적인 과세제도에 관해 모 일간지에서 다룬 기사를 인용하겠습니다.
"예컨대 1억원을 해외주식인 애플에 투자해 3000만원(수익률 30%)의 수익을 냈다고 하자. 펀드를 통해 투자했다면 세금으로 462만~1254만원을 떼인다. 해외주식형 펀드 투자로 얻는 소득은 배당소득으로 분류돼 최고 41.8% 세율이 적용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애플 주식에 직접 투자했다면 세금은 605만원만 내면 된다. 해외주식 직접 투자로 얻는 양도차익은 다른 소득과 분리해 과세(지방소득세 포함 22%)해서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변액보험에 가입했다면 10년 유지했을 때 아예 세금을 한 푼도 안 문다. 심지어 채권도 개인이 직접 투자하면 매매차익에 과세하지 않지만 펀드를 통하면 세금을 물린다." (중앙일보 2015. 3. 31)
누가 보기에도 너무 복잡할 것입니다. 고객을 응대하는 저희 직원들도 헷갈려 하는데 고객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정책 당국자들이 무슨 의도에서 해외투자에 관한 제도를 이렇게 설계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발표에서도 보셨겠지만 선진국 금융저축 과세제도에서 세금 혜택에 관한 정책의 틀은 금융저축의 목적에 의거해서 운영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중산층의 자산 형성 목적, 자녀 학자금 형성 목적, 은퇴 후 노후자금 목적 등에 따라 목적 별 세금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만들고 그 안에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지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정책은 아무리 들여봐도 무슨 정책의 틀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제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잊으셔도 좋습니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십시오.
한국 정부 정책을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면 특정 권역과 특정 상품에 대한 특수 대우라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목적 별 과세 특례 제도가 조금씩 도입되는 중이지만 아직도 한참 부족합니다. 여전히 특정 업체들이 파는 예금에 세금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별첨에서 보여드리겠지만 그 종류만 나열해도 세 페이지가 됩니다. 단순 예금은 물론 보험 상품에 왜 아직도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과거 경제개발 초기에는 자본 축적이 부족해서 장기 저축을 장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은 더 이상 저축이 부족한 나라가 아닙니다.
연금 제도도 너무 왜곡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퇴직 연금도 선진국의 기업 연금과 많이 다릅니다. 말이 연금이지 연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돈이 DB 형에 들어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그냥 퇴직할 때 줄 퇴직금을 기업 바깥에 적립해놓았다는 것일 뿐 선진국처럼 은퇴 후 생활을 할 때 받을 혜택이 미리 정의 되어 있다는 뜻에서의 원래 의미, Defined Benefit, 과는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이렇게 제도 준비를 안 하고 있는 사이 우리 나라는 어느덧 고령사회가 되었습니다. 부동산에 지나친 세제 혜택을 주어 국민들의 돈이 너무 많이 부동산에 잠겨 있어서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은퇴할 사람들은 많아지고 젊은 층은 줄어드는데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을 동시에 많은 사람이 처분하려면 가격이 폭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과 금융저축 상품에 관한 세금제도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자본시장에 대한 세제의 틀을 확립해야 합니다. 금융저축 상품에 세금 혜택을 줄 것이면 특정 권역과 특정 상품에 주지 말고 목적 기준으로 과세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그 혜택을 예금을 하는데 쓸 것인지, 보험을 할 때 쓸 것인지, 아니면 투자를 하는데 쓸 것인지는 소비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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