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3일 목요일

경제민주화 논쟁에 대한 의심

요새 사람들을 만나면 경제민주화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 기업인들은 물론, 심지어는 경제학자들도 물을 때가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생소한 용어이고 주제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가장 큰 화두다. 지금 전개되는 경제민주화 논의의 중심에는 재벌개혁이 있다. 재벌개혁에 대한 논의 수준도 1년 사이에 급속도로 변했다.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김종인 박사와 인터뷰를 한 김상조 교수가 말하기를 “1 년 전에 한국을 떠날 때는 제가 과격한 재벌개혁론자였는데, 돌아와보니 중간밖에 안되더라”고 말했다. 2011년 초만 하더라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용어인 경제민주화가 갑자기 가장 중요한 사회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경제민주화 관련 제기된 재벌개혁 주제들이 현재 한국 시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불안 및 고통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잘 안보인다는 것이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총수를 감옥에 몇년 처박는다고 해서 일반인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지 막연하다. 재벌개혁 없이 경제 민주화가 안된다고 하는데 사실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중에 재벌개혁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재벌개혁을 하면 경제민주화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경제민주화가 되면 양극화도 개선되는 것일까?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별개의 주제로 놓는 것 같은데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여기서 잠깐 숨을 돌려 지난 2년간 흐름을 복기해보자. 시작은 이명박이 2010년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를 거론하고 나오면서부터였다. 당선 당시 약속한 7% 성장이 무색해지자 2009년 친서민을 들고 나왔지만 별 내용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2010년 공정사회를 운운했을 때도 그 후의 행적을 보면 대단히 준비를 해서 한 말이 아니라 그저 수사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전두환이 정의사회를 주장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했고, 처음에는 이명박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거니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사회는 공정사회라는 화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 경축사 후 얼마 안가서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의 딸이 특채로 외교통상부에 들어간 사실이 탄로나면서부터 사람들은 공정사회라는 말로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그 사건 후에도 김태호 총리지명 등에서 보인 이명박정권의 행태와 한국사회의 해묵은 문제를 공정사회라는 개념으로 되비춰보는 틀이 형성되었다.

예상치 않은 열렬한 반응을 본 이명박 정부는 얼떨결에 급기야 공정사회 추진 과제 선정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드디어 그 다음해 2월 처음으로 정부는 공정사회추진회의를 개최했고, 이자리에서
이명박은 병역, 납세, 근로, 교육 등을 자기가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사회의 반응은 미미했다. 그러나 재경부가 3월 2차회의에서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언론은 여러 과제들 중에서도 이를 특히 주목해서 다루었다.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재벌의 유통업 진출도 문제로 대두되었고 골목상권, 동네빵집 같은 문제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명박정부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때는 이미 늦어 2011년 4월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를 당하면서 여당 내에서 2012년 총선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위기감은 5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진영과 소장그룹들의 결속으로 황우여/이주영 티켓이 원내대표와 정책위원장으로 선출되는 결과를 낳았고, 황우여는 반값등록금, 감세철회, 무상급식 수용등을 주창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과 비판을 의식한 여당으로서는 무엇이 되었든 이명박 정부를 부정하는 정책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서구와 달리 조세부담율이 낮고 사회보장수준이 낮은 한국에서 감세 정책은 사실 뜬금없는 구석이 많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뽑은 것은 막연한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는데 3년간 이명박 정부가 한 것이라고는 사대강 준설과 감세 밖에 없었으니 실망할 만도 했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본 민주당으로서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한나라당 안에서 거론되는 정책들 중에는
기존 민주당 주장보다 더 개혁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은 여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경제민주화특위를 7월에 결성했다. 그러나 민주당 안에서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고 당내 인사들의 참여도 거의 없었다.

그동안 경제개혁을 주장해온 학자들도 약간은 어리둥절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하긴 그럴 법도 한 것이 자기들이 정권을 갖고 원내 다수당일 때도 경제개혁에 관해 한 일이 없다시피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가 3년이 지났고, 다음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 가서야 경제민주화특위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민주당의 무능과 무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결국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당은 원내대표 뿐만이 아니라 최고위원회에서도 친이계를 축출하고 박근혜체제를 구축했다. 박근혜는 5년전 줄푸세로 요약되는 자신의 정책틀을 버리고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을 내걸어 변신을 꾀했다. 이러한 여당의 변신(Rebranding)에 한명숙이 이끄는 민주당의 무능과 오만이 겹치면서 여당은 다시 한번 국회선거에서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제 대선을 남겨두고 있다. 또, 여당 내 개혁파들은 경제민주화모임을 결성하고 횡령배임죄 양형기준 상향,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융사 의결권 제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재벌개혁안을 내고 있다. 야당은 이러한 여당의 움직임이 당론이 아니고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도리어 논의의 주도권을 빼앗긴 형국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과정은 하도 전광석화 같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지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다. 경제 개혁을 주장해온 사람들조차도 그 전개과정이 빨라 숨이 가쁠 지경이다. 어떻게 보면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과 그 개념의 범위 조차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들 급히 뛰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 경제민주화라는 주제 아래 논의되는 주요 의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로서는 재벌개혁 이슈가 촛점으로 떠올랐는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재벌개혁과 양극화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명쾌하지가 않다. 실제로 재벌개혁은 일반 시민들에게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어서 선거의 중요 이슈가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개혁에 관한 논의만 왕성한 지금의 사태는 이상하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논의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양극화와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금, 정부지출, 복지제도 등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다고 해서 양극화가 개선될리 만무하다. 문제를 재벌개혁만으로 좁혀서 보더라도, 기존의 순환출자를 해소하더라도 다단계 출자로 전환하기는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여러 회사로 순환되는 출자 고리 중 가장 약한 고리 하나만 해소하면 순환출자는 다단계 출자가 된다. 또, 횡령을 저지르면 감옥에 보낸다고 해서 재벌총수의 지배권이 위협을 받지도 않고, 소득 양극화가 해소되지도 않는다. 한국사회가 과연 반칙과 특권만 막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과연 반칙과 특권만 막으면 다 되는 것일까?

실행으로 옮길지도 의심스러운 재벌개혁 논쟁을 하면서 막상 시민들의 민생에 직결된 얘기는 묵과하는 지금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의심스럽다.

댓글 4개:

  1. 현재의 경제민주화논의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정말 모르셔요? 이명박식 유체이탈화법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박근혜가 봉하마을 찾아가고 전태일 재단 찾아가고 하는 것 또한 그냥 그 장면 보여주려는 것, 그뿐인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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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ttp://tnfm.tistory.com/377
    만수르라는 블로그가 경제관련 포스팅 한답시고 이 블로그 글들을 꽤나 많이 도용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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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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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주진형 선생님, 이 시대의 참어른으로서 해 주시는 말씀, 깊이 새겨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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