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1일 금요일

한국 정치의 블랙 코메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


지난 번에는 현재 경제민주화에 대해 정치권에서 오가는 논의를 보면서 드는 의구심을 제기했었다. 첫째, 이번 대통령 선거전의 특징은 양쪽 모두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양극화를 들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당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거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작 경제민주화를 위한 방책으로 주로 거론되는 것은 재벌개혁 관련된 이슈들뿐이고, 그것이 어떻게 양극화 내지 경제민주화와 연결되는지 양쪽 모두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여당이 말하는 재벌개혁은 진심인지가 의심스럽고, 야당은 재벌개혁 외에도 뭔가 더 있어야 하는데 빠진 것 같다.

나는 단순한 의구심을 벗어나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양 정당으로부터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한국 정치의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지금부터 왜 그러한지 들여다보자.
(나는 작년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특위의 일원으로 출발 초기에 참여했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

무엇보다도 경제민주화라는 말 자체의 뜻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제학 교수들이 경제민주화가 무엇이냐고 물을 지경이면 일반 시민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에게 경제민주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엉뚱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심지어 대학에서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회사원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개념이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을까?

첫째, 경제민주화란 개념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다. 민주화란 말 자체가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다, 민주화라는 개념을 정치가 아닌 경제에 붙여서 사용하니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민주화라면 자유와 평등의 양 축 사이에서 움직이는 체제인데 경제민주화라면 경제적 자유화를 뜻할 수도 있고, 경제적 평등화를 뜻할 수도 있다. 실제로 경제민주화를 경제자유화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를 필자가 겪어보기도 했다. 만약 경제민주화가 경제 평등화라면 그것은 소득분배 개선, 나아가 양극화 해소를 뜻할 것이다. 소득분배나 양극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개념인데 왜 굳이 경제민주화란 새로운 용어가 필요한가?

둘째, 용어 자체가 낯설다. 비록 1987년 제정된 헌법 119 2항에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 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2011년 전까지 이 조문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정치세력은 없었고, 2011년 전까지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거론된 적이 없던 것으로 안다. 대다수 시민들에게 양극화, 복지국가, 성장 대 분배, 독과점, 재벌개혁 등은 한국사회의 주요 주제로서 단골처럼 등장해와서 낯익은 용어이지만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작년 말이나 올해 처음 들어본 말이다. 민주당 역시 2011년 여름 경제민주화특위를 시작할 때 25년 전에 만든 헌법에 이 표현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마치 대단한 발견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낯선 만큼 그 내용이 일반 대중의 머리 속에 들어가기 어렵다.

셋째, 추상적이고 낯선 용어인 만큼 개념적으로 정립하기가 쉽지 않다. 김종인 박사 말에 의하면 87년 당시 이 조항을 포함시키려고 했을 때 민주당을 대표하는 의원이 도리어 이에 반대했었다고 한다. , 이에 대한 논쟁 역시 주로 재벌 쪽에서 제기했을 뿐 야당이나 시민사회에서 적극 찬성을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가가 경제에 시시콜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개입을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던 당시 한국사회에서 이 조항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시 한국사회의 시민세력의 역량에 비추어볼 때 그 당시 이 조문의 잠재적 의미를 파악했던 것이 그나마 재벌뿐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119 2항 헌법 조문 모두를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문장을 최대한 줄이면 국가는 (가와 나와 다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가 된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기 보다는 경제 규제 조항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경제민주화는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는 목적으로 든 여러가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경제의 민주화도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해서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선 조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하다. , 여기서 경제주체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조화 (또는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경제주체로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그룹은 기업과 노동자 또는 기업과 소비자일 것이다. 그리고 기업 부문 안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들 수 있다. 노동 부문에서는 노조 소속 노동자와 비노조 노동자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헌법 상 나타난 경제민주화란 기업과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조 노동자와 비노조 노동자 사이의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된다.

그러나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내는 경제 민주화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헌법에 설명되어 있지 않다. 물론 헌법이 문구 하나하나를 모두 정의할 수는 없다. 그 문구가 이미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그 정의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이루어져 있는 상태를 전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어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정의하지 않은 채 헌법조항에 사용되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면 한국 바깥에서 경제 민주화 또는 경제적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로 쓰일까? 우선 경제적 민주주의 또는 경제의 민주화란 용어는 외국에서 흔히 쓰는 용어는 아니다. 그리고 쓰인다면 주로 정치학자들이 정치적 평등만으로는 진정한 평등을 이룰 수 없으므로 경제적 평등 또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사회화를 통해 경제활동에도 평등을 달성하자는 학술적 논의를 할 때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저술을 많이 썼고 국내에도 여러 차례 번역된 로버트 달이 쓴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序言(A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기업의 경영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체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고전적인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정치적 평등, 정치적 자유,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전제하지만, 현대와 같이 경제 활동의 상당 부분이 기업에 의해 영위되는 기업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 체제에서 경제적 자유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다. 이러한 경제적 자원의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을 야기하고, 다시 정치적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을 구조화시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종업원소유회사와 같은 방법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해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 말고도 현실적으로 경제적 자원의 불평등 문제를 줄여 정치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세제개혁이나 사회복지제도를 들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외국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라는 말은 일반 대중이나 정치권에서 흔히 쓰는 용어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 용어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대중에게 혼란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 경제적 불평등 해소, 소득분배 개선, 양극화 극복, 최근 들어서는 1% 99% 등 더 구체적인 용어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양당 모두 경제민주화라는 용어의 모호함에 대해 눈감기로 했을 뿐 만이 아니라 이를 대중 선전의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경제민주화 개념의 모호성을 제대로 지적하고 나온 측은 재벌과 새누리당 일부 지도층이었다.)

실제로 경제민주화라는 주제 아래 거론되는 개혁 과제 역시 그동안 자주 언급되어 익숙한 문제들이다. 백낙청(창작과 비평, 2012 가을)재벌규제, 불공정거래 근절, 중소기업 육성, 노동권 보호 등을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구체적 정책구상으로 꼽았다. 경제민주화특위에 참여했던 김진방(사람과 정책, 2012년 봄)은 경제민주화의 세 과제로 재벌개혁, 동반성장, 노동개혁을 들었다. 이미 그 동안 익히 알려져 왔던 문제들을 재탕하고 있다. 그럴 것이면 무엇하러 새로운 용어를 끌고 나왔을까?

여기서 한가지 더 이상한 현상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주로 거론되는 것이 재벌개혁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세제개혁이나 사회복지제도가 있고, 더 나아가면 생산수단 즉 기업 소유권이나 경영권에 대한 시민의 참여 등이다. 여기에 비해 다른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불평등 조장 세력이 있다. 관료, 재벌, 귀족노조들이다. 또 이러한 과두체제에 의해 피해를 보는 층이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등도 한국에서만 유달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라면 재벌 외에 이들 다른 세력이나 계층에 대한 정책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여야 모두 주로 재벌개혁에만 주관심이 가있다. 김진방은 위에서 말한 재벌개혁, 동반성장, 노동개혁을 들면서, 재벌개혁이 다른 두 부문의 개혁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재벌개혁이 선행 또는 병행 되지 않고서는 다른 두 부문의 개혁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왜 그런지 설명도 없고 개인적으로 동의하기도 어렵지만, 십분 양보해서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지금처럼 세제개혁이나 복지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또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대책은 없이, 줄곧 재벌개혁 논의에만 몰두하는 여야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세제개혁은 증세를 말해야 하니 겁이 나고, 사회복지나 동반성장, 노동개혁 등에 별다른 대책을 준비하기가 어려우니 우선 손쉬운 인기몰이용으로 재벌때리기 경쟁에 나선 것은 아닐까? 과연 그런 얄팍한 정당들이 정권을 잡고 난 후 재벌개혁이나마 제대로 할까?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양 정당으로부터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바로 이러한 한국 정치의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모두 그 동안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방관하거나 조장해왔던 당이다. 그러던 정당이 이제 와서 그냥 경제불평등을 야기해왔던 주요 문제들을 개선하겠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야 모두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붙일 필요가 있었다. 경제민주화를 양당 모두 주창하고 나서게 된 뒷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외환위기 이후 10년에 걸친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악화된 양극화가 한나라당 정권 아래에서도 계속되자 그야말로 갈 길을 잃은 유권자들을 다시 한 번 더 회유하기 위해 양당 모두 그럴듯한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고, 그 용도로 발굴해낸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이명박정권의 동반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새누리당은 체면불구하고 경제민주화라는 브랜드를 도용하기로 했고, 정권을 쥐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던 민주당이 그게 원래는 자기 것이었다고 불평하는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블랙 코메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 3개:

  1. 한국을 바깥에서 보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평등이 이조시대를 방불케 하는 형상. 재벌 과 노조는 그 문젯점의 일부이며 그나마 생산을 하며 국가경제를 키워가는 조직이니 고칠 점을 찿아 시정하도록 권장하는 실질적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 저것 시비삼아서 잘못만 들추어 정치쇼에 이용하는 헛대질만 하지말고. 일않하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같고 그 들은 경제 민주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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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벌과 노조는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가 없지도 않지요. 이문제는 앞으로 점차 써서 올릴 작정입니다.

      일 안하고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아마 대부분은 관의 인허가 사업이나 자신의 부동산 투기, 부모의 부동산 투기 및 탈세 상속 덕분에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인허가 산업 규제 개선, 부동산 투기를 막을 제도나 탈세 상속을 막는 체제가 되어야 하겠지요.

      이런 범주 외에 다른 어떤 경우를 보셨으면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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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ttp://tnfm.tistory.com/641

    여러 개 무단도용 당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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