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관계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와 무슨 관계인지 좀더 들여다보자.

실제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사이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밝힌 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예외적으로 유종일의 <진보경제학>, 김기원의 토마토TV 인터뷰 정도가 있을 뿐이다.) 

재벌개혁에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김기원, 김진방, 김상조 3인을 들 수 있다. 김기원은 토마토TV 인터뷰에서 재벌 문제를 첫째, 재벌총수와 기업 사이의 이해 불일치, 둘째, 재벌그룹과 국민경제의 이해 불일치, 셋째, 재벌그룹과 국가 이해 불일치 문제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 중 양극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두번째, 재벌그룹과 국민경제의 이해불일치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하청기업의 격차 문제다. 그러나 그 해소방안으로는 주로 실질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보장을 통해 실질임금 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에게  집단 협상권을 주자고 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흔히 불공정 하도급을 해결하면 될 것 같이 얘기하는 일반 언론과는 조금 보는 시각이 다르다.

김진방도 재벌개혁,특히 지배구조 개혁과 경제민주화 사이의 거리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 경제력 집중을 막고, 소유지배 괴리를 줄이기 위한 개혁은 그 성과를 단기에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은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데 주력하면서 상속과 세습의 과정에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렇지만 집중된 경제력으로부터 나오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막는 일은 경제민주화의 당면 과제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고치는 개혁이고, 그 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 노동개혁이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사람과 정책, 2012. 봄 , p. 15)
그렇지만 그 역시 재벌개혁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지 못한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동반성장과 노동개혁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이 두 과제도 재벌 개혁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 (p. 27)
동반성장과 노동개혁이 더 중요하지만 재벌개혁이 핵심이라는 그의 말은 뭔가 어색한 데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핵심이 아니고, 덜 중요한 것이 핵심이다? 더우기 그는 재벌개혁 없이 동반성장이나 노동개혁이 어려운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거의 20년을 재벌개혁 문제에 관해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가 명확하게 그 관계를 제시하지 못할 정도라면 적어도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사이의 관계가 그다지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7월 인터뷰 기사는  가장 최근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그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마나 이들 정도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리적인 연결을 시도할 뿐, 대부분은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재벌문제를 꼽고난 후, 곧장 그러므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재벌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에서 만악의 근원이 재벌이니 당연히 경제민주화를 하자면 재벌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거 조금 이상하다.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는 옛날에 더 심각했다. 그래도 그 때는 양극화가 지금처럼 문제되지 않았다. 이는 양극화와 재벌문제가 상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지라도 재벌문제가 양극화의 주범이 아니거나 양극화와의 관계가 생각만큼 명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김기원의 논의에서 보듯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벌개혁 관련 논의에는 세 차원이 중첩되어 있다. 첫째,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 둘째, 재벌의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문제, 그리고 셋째, 재벌의 과도한 정치, 사회적 영향력 행사 문제가 그것이다. 이 중 첫째와 셋째는 양극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둘째에 관해서도 여러 제안이 나오지만 별 신통한 방안은 안보인다. 그렇다면 재벌개혁은 양극화 해소 또는 양극화 해소를 주내용으로 하는 경제민주화에 별 소용이 없다는 말이 된다. 소용이 있어도 그것이 장기적인 얘기라면, 당장 국민이 원하는 양극화 해소에는 별 소용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양 정당과 언론은 재벌개혁 이슈만 얘기하고 있다. 

재벌개혁과 양극화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재벌과 양극화 문제를 각각 살펴본 후 각 이수의 측면에서 다른 이슈를 분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늘은 재벌개혁의 문제에서 양극화를 들여다보자.  
 
1. 재벌 지배구조 개혁

재벌은 기업의 집단이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주주, 직원, 공급자, 소비자가 있다. 주주는 지배구조, 직원은 노사관계, 공급자는 공정거래, 소비자는 소비자 보호가 이슈가 된다. 따라서 재벌개혁 역시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 노동개혁, 공정거래 개혁 또는 동반성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자 보호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사실 지배구조, 노사관계, 공정경쟁, 소비자 보호 등은 재벌이 아닌 대기업이나 일반기업에도 해당되는 문제이다. 그런데도 굳이 한국에서 재벌개혁이 주요 문제가 되는 것은 재벌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개념적으로 재벌개혁은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갖는 여러 갈등의 일부라는 것은 유념해야 한다.  

현재 경제민주화라는 틀에서 거론되는 재벌개혁은 주로 공정거래와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은 공정거래 쪽에 방점이 가있고, 민주통합당은 지배구조에 비중이 가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배구조는 일차적으로는 주주간의 문제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재벌문제는 재벌총수들이 적은 주식을 갖고 절대적 지배를 하면서 생기는 대리인 문제다. 적은 주식 지분을 가진 총수일가는 회사 가치를 높이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하게 된다. 그런 이익 챙기기는 크게 봐서 빼돌리기와 변칙 상속로 나뉜다. 이 둘을 합쳐놓은 것이 일감몰아주기인데, 일감몰아주기는 주로 상속을 위해 빼돌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 대리인 문제 - 빼돌리기와 변칙 상속 - 일감 몰아주기)

그러나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는 주주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총수들의 경영권 상속과 그 총수체제 아래의 전문경영진 문제가 있다. 경영은 기업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자원을 배분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만약 총수가족들이 하나같이 경영에 뛰어난 인재들이라면 모르지만 대부분은 아버지 덕분에 지금의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문경영진 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이 계속 한국의 주요 대기업을 이끄는 것은 한국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또 지금같은 총수체제에서는 재벌 대기업의 전문경영진의 선발과 승진 역시 능력만이 아니라 충성심, 다른 말로 하면 횡령과 배임에 대한 적극 참여의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한 나라의 대다수 기업 부문 주요 경영진이 그러한 기준에 의해 기용되고 보상받는 시스템이 경제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숫자로 측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장기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 해악이 되리라는 것을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경제의 효율성 및 역동성과 지배구조 사이의 문제가 양극화와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다. 재벌총수 가족이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이용해 빼돌리는 돈이 개인으로는 큰 돈이지만 나라 경제의 양극화를 일으키는 주범이 될 만한 규모는 아니다. 

2. 공정거래, 동반성장

다음, 공정거래, 동반성장은 분명 양극화와 관련이 깊다. 공정거래는 크게 보아 일감몰아주기 방지와 불공정 하도급 문제로 나뉜다. 이중 일감몰아주기는 양극화와 큰 관련이 없다. 그것으로 연간 버는 돈이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해당 분야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것은 주로 경제 역동성에 관한 문제이다.

독과점과 불공정거래의 피해가 재벌개혁에 끼어든 이유는 그것이 주로 대기업과 공급업체 및 하청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도급 거래 문제는 옛날에도 지금 못지 않게 심각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에 하도급도 못 얻는 중소기업들의 상태는 더 나쁘다.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수익성, 임금 격차가 지난 십년간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이 과거보다 더 극악무도해진 것이 아닌데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격차 원인도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편에는 대기업의 생산성과 임금 상승이 있고, 다른 편에는 중소기업의 생산성 정체와 임금 정체가 있다. 현재로서는 이를 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가져갈 몫을 뺏어서 그렇다는 인식이 대부분인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그게 모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소기업 부문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이를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안보인다는 것이다. 공정거래 관련 여러 제안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대형 유통업체 영업제한 등이다. 정치적으로 표를 모으는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개혁 경제학자들도 다 안다. 심지어 효과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경제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경제에서 언제까지 지금같은 전통시장이 지탱할 수 있을까. 업종지정은 폐해가 더 많은 방법이다. 업종 지정해서 성장한 기업이 별로 없다. 중소기업들의 집단 협상권 허용 역시 고려해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볼 지 불확실하다.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태평양에 주전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모두가 고육지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단 산업의 독과점 상태가 성립되고 나면 특히, 공급독점이 아니라 수요독점인 경우 기업 분할 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 정운찬 전 총리가 동반성장를 주장하지만 구체적 방안을 보면 별 신통한 것이 없다.
 
이처럼 문제는 알겠는데 해결 방안이 잘 안보일 때는 진단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거나 좀더 근본적인 치료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아직 진단이 정확한지에 대해서 전공 학자들도 자신없어 한다. 현재로는 노동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해결 방안을 어디에서 찾을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 또, 생각이 정리되어도 과연 한국 사회가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 블로그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3. 결론

재벌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재벌개혁과 양극화 사이 관계는 간단하지 않거나 먼 얘기가 대부분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비대해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줄일 방법이 뾰족히 없고, 재벌을 규제한다고 해서 해결되기에는 양극화가 너무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종일이 <진보경제학>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기회의 평등과 법치주의 확립 차원에서 접근하여 재벌개혁을 주장할 수도 있다. 자신이 만든 개념적 구조의 완결성 측면에서는 맞는 얘기다. 그러나 막상 경제민주화가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즉 양극화와는 일정 거리가 있다. 법치주의 확립이 당연한 과제이지만 재벌총수를 법정에서 평등하게 처우한다고 해서 한국의 양극화 문제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공정거래나 하도급 문제는 개선 방안도 뚜렷하지 않거니와, 된다고 해도 양극화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주가 자기 제품에 대해 제 값을 받는다해도 그들이 꼭 자기 기업 노동자에게 월급을 늘려준다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나머지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저생산성 문제가 공정거래를 포함한 재벌개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양극화와 비교적 가장 거리가 가까운 중소기업 생산성 낙후와 노동문제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거기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대책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선거용 구호에 가깝거나 비현실적인 주장들 투성이다. 양극화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교육, 의료 분야에서의 시장 축소와 복지확대 문제 역시 거론은 되지만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지도 않고 있다. 지금 같은 경제민주화 논의로는 양극화 해소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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