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한지 3주가 지났다. 그런데 글을 본 친구들이 하나 같이 걱정을 한다. 그렇게 남이 쓴 글을 갖고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라 남들이 다 보는 블로그에서 비평을 하면 그들과 사이가 나빠지지 않겠느냐고. 오늘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글에서 이름을 언급한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김기원은 내가 학생 시절부터 존경해왔던 학자다. 논어에서 자공이 공자를 溫良恭儉讓(따뜻하고, 솔직하고, 위엄있고, 검소하고, 사양함)하다고 했는데 김기원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김진방 역시 그의 인격과 지성을 대학 시절부터 눈여겨 보고 기대를 많이 해온 친구다. 김영욱는 언론인으로서 존경스러울 정도로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를 가진 친구다. 김상조 역시 개혁적 경제학자로서 독보적으로 탁월한 학자다.
내가 그들의 글에 대해 비평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글이 그만큼 꼼꼼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더 좋은 글을 쓰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온갖 설익은 주장이 난무하고, 그에 대한 검증이나 토론은 건성인 한국에서 그나마 읽을 만한 글을 쓰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본다. 어느 이슈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에는 그 분야의 좋은 글을 깊게 읽고 논의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들이 이러한 비평을 보고 자기 주장의 날을 벼를 수 있으면 그만큼 한국 사회의 논의가 진전되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
잠깐 숨을 돌려 보면, 귀국한 후 세미나나 심포지움에서 본 한국 학계의 토론 문화는 참으로 이상했다. 토론자로 나온 사람이 주제 발표자의 얘기와 동떨어진 얘기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분명히 문제가 많은 발표인데도 이를 그 자리에서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끝나고 나서라도 뒤풀이 자리에서 토론이 이어지먄 좋으련만 그것도 잘 안된다. 이에 반해 미국 대학원 시절 내가 본 세미나는 그야말로 살벌할 정도다. 거의 매주 타 대학 교수를 초청해서 교수진과 대학원생이 모두 모여 세미나를 하는데, 어떤 때는 발표 초입부터 논쟁이 붙는다. 논문의 전제 가정부터 결론까지 논리의 매 단계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런데 세미나가 끝나면 재미있게 읽었다느니, 많이 배웠다느니 화기애애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미국의 학자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의 초고 논문의 약점을 알게 된다. 학회지에 실리는 논문은 이런 과정과 학술지가 지명한 익명의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들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도대체 비평이 없다. 발표하기 전 동료 학자들에게 의견을 부탁해도 읽고 의견을 주는 사람은 극소수다.
왜 그러느냐고 친구들에게 물으니, 대놓고 비평을 하면, 기분 나빠하고 싸움이 되고 주위 사람들도 불편해지기 때문이란다. 예를 들면, 지금 이명박 정권에서 금융계의 사대천왕이라고 불리는 네명의 금융지주회사 중 하나를 맡고 있는 전직 교수 얘기다. 기업이 초청한 자리에서 일장설을 늘어놨는데 다른 교수가 그의 얘기 중 잘못된 것을 지적하자, 안색이 변하더니 급기야는 " 너 나이가 몇이야?" 라고 반말로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난히 심한 경우지만, 한국에서의 토론 문화, 그것도 지식인 사이에서의 토론 문화는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다.
고대 그리스어에 Parrhesia란 말이 있다고 한다. 영어로 번역하면 fearless speaking이라고 하는데
솔직하게(candor) 자기의 의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는 것을 말한다. 말 하는 사람에게도 상당한 각오를 요구하고,
불이익을 감수할 자세가 필요한 일이다.
대단한 불이익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굳이 실명 비평을 하는 이유는 그 비평을 통해 논의의 골격이 더 잘 드러나기를 바라고, 그들이 이를 보고 더 분발해주어 논의가 더 진전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언급한 김진방입니다. 가입하는 게 귀잖아 '익명'으로 씁니다.
답글삭제내가 가장 혐오하는 비평은 허수아비 만들어 놓고 두들기며 제 잘난 척하는 것들이고, 그 다음으로 경멸하는 비평은 빈정대면서 말재주 부리고 건방 떠는 것들이고, 그 다음으로 무시하는 비평은 생각 없이 건성으로 떠드는 것들입니다. 필자의 '실명 비평'은 내가 혐오/경멸/무시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서 좋고, 실명이어서 더욱 좋습니다.
김선생, 고마와. 나도 그대와 같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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