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전환시대: 잃어버릴 10년

진중권이 몇년 전 말하기를 노무현 정부가 좌측 깜박이를 키고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자기들이 힘든 이유가 좌측 깜박이 때문인 줄로 착각한다고 했었다. 그 식으로 말하면, 이명박은 확실하게 우측 깜박이와 우회전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자기가 힘든 이유가 실제로는 우회전 때문인 줄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여당의 일부도 깨달은 것 같다. 이명박 정권 덕분에 그것을 깨닫는 시기가 앞당겨졌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한국에 남기고 가는 유일한 선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고속성장이 남기고 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워낙 강하다. 그 추억에 매달리는 지금의 한국 정치와 경제체제는 우리가 고속성장을 하면서 짊어진 업보다. 한국은 1962년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25년간 독재정권에 의한 경제개발 기간을 거쳤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개발 독재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그 전의 경제개발 모델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노력하는데 또 다른 25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지난 50년의 경제발전 과정을 거쳐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출산율 저하와 사회 양극화다. 성장률이 지금보다 1~2% 더 올라본들 아이를 못 낳고 일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근래에 들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대두된 것도 그 25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게 된 이 깨달음 덕분이다. 이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면 한국은 그 동안 쌓인 부동산 버블과 세계적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인한 불황을 맞아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힘든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 전환의 시대가 왔다. 50년 간에 걸쳐 누적된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 다시 만들고 다시 세워야 한다. 당분간 우리는 고통과 눈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환이 이루어지는 데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전환시대를 거쳐야 산다. 

일본 역시 방황하고 있다. 1991년 후 겪었던 장기 불황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지만 실지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일본은 자기들의 경제성장모델이 더 이상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일본 모델을 모방하여 고속성장을 해온 한국 역시 90년대 이후 마찬가지 이유로 방황하고 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과 장기불황을 간략히 들여다 본 후 한국이 직면한 과제와 전망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한다. 그러다보면 이 블로그의 이름을 전환시대라고 한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20 시차를 한국과 일본

1876
년 한국이 일본의 강요에 의해 쇄국정책을 풀고 근대사회로 첫 발자국을 내디딘 후 근대 한국에서 일본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구문명과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자본주의로의 편입 역시 일본에 의해 이루어졌다. 심지어 한국인의 근대적 국가로서의 민족적 자의식 역시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을 통해 견고해졌다.  

그 후 일본 식민지로서 통치를 받으면서 한국은 일본이 자신을 근대화하기 위해 개발한 근대국가체제를 익혔으며 그러한 체제는 해방 후에도 그대로 남한에서 유지되었다. 해방 후 남한에서 권력을 차지한 계층 역시 일본 식민지 시대 교육을 받은 엘리트 층이었다. 해방 이후 태어난 젊은 층에서는 전세대와 같은 일본 콤플렉스가 없어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별로 의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 한국인의 사고와 생활방식 안에는 현대 일본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 많으며 특히 국가적 제도에서 양국은 아주 세세한 면에서조차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근대국가로서의 한국의 모델이 일본인 것을 진즉 부터 알았던 사람도 막상 처음 일본에 가보면 양국간의 유사함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러한 유사점은 단지 눈에 드러나는 도시 풍경이나 사무실 환경에 그치지 않아서,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각종 제도들도 대부분 일본 것을 한국 정부가 통째로 모방해 도입한 것이 많다. .

금융 부문을 예로 들면, 한국의 관치금융 방식은 일본의 대장성이 금융산업을 좌지우지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각종 상품이나 제도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베껴 썼다. 예를 들어 80년대에 한국 정부가 직장근로자의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시행하던 재형저축제도는 상품 구조는 물론 이름까지 일본에서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소비자 보호는 뒷전인 금융회사 영업방식과 금융감독도 일본에서 배워 온 것이다. 중년 여성에 의한 방문판매에 의존하는 생명보험 영업방식, 과당매매에 의존해 먹고 사는 증권 영업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정부가 도입한
퇴직연금제도는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비효율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것 역시 일본이 2001년에 도입한 제도를 베끼다 보니 발생한 일이었다. 2009년 2월 부터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 역시 몇년전 일본에서 시행한 법률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금융 부문 밖으로 가도 일본제도를 그대로 베껴온 것 투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의료와 교육제도다. 공공 부담을 최대한 낮추고 혜택도 낮춘 시스템으로 설계했다. 두 나라 모두 의료 서비스 제공자인 의사는 개인 사업자로 놔둔 채 의료 서비스 가격은 국가가 정하는 의료보험제도를 갖고 있다. 실제 비용에 못미치는 의료 수가 때문에 의사가 환자들을 줄세워 놓고 번개불에 콩 구어 먹듯 진료하는 풍경은 근본적으로 이 모순 때문에 생긴다. 대학교육을 공립(25%)이 아니라 사립(75%)에 대부분 의존하여, 등록금은 비싸면서도 공공 보조금은 낮은 것도  OECD 국가들 주에서 오직 한국과 일본만 갖고 있다. 질은 낮으면서도 값은 비싼 한국의 대학 교육의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는 이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생겼다. 이러한 복지체제의 문제가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일본은 격차사회, 한국은 양극화로 드러났다.

조세 및 정부지출 제도도 비슷하다. 두 나라 모두 금융실명제가 아직도 허술하고,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도 약하다. 토지와 건물에 대한 재산세도 낮다. 지방세 대비 국세의 비중도 과다하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되기 전에 만든 조세제도였는데 이제껏 고치지 않고 있다. 세수의 대부분을 중앙 정부가 거두어 들인 후 지방정부에 나누어 주는 체제도 똑 같다그 결과, 한국의 경우 지방정부가 쓰는 돈 중에서 자기 지역에서 거두는 돈이 30%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중앙정부에서 받아와야 한다. 각종 복잡한 산식에 의해서 관리한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주인 없는 돈이니 로비를 통해 우선 따내면 된다. 지방정부 입장에서 보면 공돈에 가깝다. 그래서 지방 공무원들이 아예 서울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해당 부처와 재정기획부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풍경이 벌어진다

인구 분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구 제도도 비슷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선거구가 대도시에 비해 농촌지역에 유리하게 되어 있어 지방지역의 선거구 당 인구는 대도시 지역 보다 훨씬 작다. 평균해서 대도시의 선거구당 인구가  약 1.3배에서 1.5배 더 많고 최대와 최소 선거구간 차이는 거의 두배에 달한다. 이들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전국적으로 일괄해서 시행되는 사회지출 보다는 자기 지역의 토목공사 따내기에 혈안이 된다. 선거구민들에게 생색내는데 훨씬 유용하기 때문이다모든 국회의원이 예산위원회에 가기를 원하니 서로 돌아가면서 하기 위해 임기도 1년, 위원 수도 50명이다. 모두들 정책 보다는 사업을 원한다.

일본의 장기 불황

그러나 경제와 사회발전 단계로 보면 양국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본의 GDP는 약 3 8천억 달러에 달하는데 한국은 9천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고, 일인당 소득 수준 역시 일본이 한국의 두 배를 넘는다. 이런 차이를 시간으로 치환해 보면 흔히들 양국간에는 약 20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도쿄 올림픽이 1968년에 개최된 것에 비해 서울 올림픽이 1988년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양국간 경제사회 단계의 시차는 다른 부문에서도 드러나서, 도시화 진행 단계라든가 노령화 현상 역시 거의 20년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를 점치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는 것은 유용할 때가 많다. 

이런 양국간 20년 시차라는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91년부터 시작한 일본의 장기 경제불황이다. 1991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이 장기 불황에 들어간 것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0년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자 기업과 가계의 자산 가치는 내려가는데 이미 짊어진 부채의 액수는 그대로여서 민간 부문의 투자나 소비 여력이 죽어버린 것이었다.이미 발생한 부실은 인정하고 은행에 공적 자본을 투입하고 기업과 가계의 부채를 재조정 했어야 하지만 일본 사회는 그럴 만한 투명성과 정직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 경제가 그런대로 활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은행부실을 인정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한 2003년이니 그것만으로도 버블 붕괴 후 십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일본의 성장률은 다시 침몰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주가에도 반영되어 1990 12 39,000에 육박했던 니케이 지수는 21년이 지난 지금 8,700대 선에까지 내려와 있다. 30년전인 1982년 수준까지 내려온 것이다.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한 후 다우존스 지수가 1929년 수준을 회복하는 데에는 약 20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일본의 장기 침체의 심각성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대공황 때 겪은 고생에 비하면 일본의 경기침체는 공황이라 부를 정도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일본정부가 시행한 재정정책에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 자민당 정부는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재정적자를 통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1991년부터 2008 3/4분기 까지 일본정부가 공공투자 관련 토목건설에 투자한 돈이 물경 6.3조 달러라고 하니 엄청난 돈을 퍼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공투자가 정점에 달했던 것은 1995년으로, 1991년부터 1995년 까지 5년간 2.1조 달러를 썼다고 한다. 일본의 경제규모가 미국의 삼분의 일 정도이니 이만한 돈은 일본으로서는 엄청난 규모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이런 재정지출 확대정책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이다. 첫째, 토목공사에 의존하는 경기부양이 단기에 그쳤으면 모를까 그것이 마냥 계속되면서 일본경제의 장기 성장 잠재력을 깎아 먹었다. 둘째, 은행 부실을 과감히 도려내지 못하고 질질 끄는 바람에 신용위축이 장기화되었다. 일본 대장성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회복으로 은행이 부실에서 헤어나기를 기다렸다. 기대와는 달리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었지만 일본정부는 국민들에게 솔직히 은행부실을 알리고 공적자금을 투여하는 것을 망서렸다. 외부에서 모두들 은행 부실을 정리하고 자본을 확충할 것을 권했지만 외환 보유고가 튼튼했던 일본에게 이를 강제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일본정부는 2003년에 가서야 공적자금을 투여해 부실은행을 정리했다.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해 미국의 대공황 때와 같은 급격한 충격은 피했지만 그 사이 일본경제는 지금으로서는 다시 돌이키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를 입었다. 1991 GDP 대비 약 50%이던 정부부채가 2011년에는 GDP 대비 약 200%에 이르게 되었고, 이렇게 막대한 정부 부채 때문에 요새는 일본정부 세입의 약 50%가 이자를 갚는데 나간다고 한다. 한국의 정부 부채 비율이 30%대이고,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과 최근 불황으로 재정적자가 늘어난 미국의 비율이 기껏 72%이니 일본의 정부부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이 국채를 대부분 국내 저축으로 조달하고 있지만 은퇴한 베이베부머 연령층이 노후 생활을 위해 그 저축을 허물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이 많은 정부부채를 해결할 수 있을 지 우려할 만하다.


일본의 경제발전 모델

일본의 경제발전모델을 맹목적으로 답습하던 우리로서는 일본의 이러한 장기 침체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라면 한국이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의 경제발전 모델이 갖고 있는 내재적인 문제점 때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 생각에 부동산 버블과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사회의 지난 20년간 모습은 한국이 그대로 재현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이 일본의 경제성장모델을 모방하여 빠른 시일에 커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모델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성공적으로 모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나라들이 일본과 비슷한 문화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 문화권의 이들 나라들은 모두 경제수준에 비해 산업화에 동원하기 좋은 노동력을 갖고 있었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권위에 순응적이고, 교육수준이 높았으며,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인구 구성을 갖고 있었다. 또 노동 집약적인 쌀농사를 통해 집단적 근면성에 익숙했다. 일본은 이렇게 풍부한 노동력 대비 부족한 자본을 관료가 개입해서 동원, 배분하는 체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어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발전 모델의 성공 배경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개인의 존엄성 무시, 창의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주의적 성향,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 실종, 관료와 소수의 엘리트층에게 집중되는 권력과 재력, 시민의 의견과 바람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경제 체제 등이 그것이다

일본은 바뀐 경제 환경에 맞추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다. 1970년 대 중반 이후 일본은 그 경제성장 모델의 성공 덕분에 더 이상 노동력 대비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었다. 양적인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 대신 교육과 창의성을 통해 투자의 효율성을 올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로 전환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때까지 달려왔던 자전거의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제조업의 생산성은 구미 국가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지만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은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장을 계속해서 지었고, 수출은 늘어가고, 소득도 올라갔지만 막상 국민들의 생활은 달러로 환산한 소득 수준에 비해 형편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일본인들은 턱 없이 올라가기만 하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할 수 없이 시내에서 먼 곳에 집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닭장 같이 작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출근을 했고, 저녁 늦게까지 직장에서 일하다가 퇴근했다. 아이들은 모두들 입시를 위해 밤 늦도록 학원에 다녔고, 교육마마란 말이 생겨났다. 남아 돌아가는 쌀을 효과적으로 저장할 곳이 없어 바다 밑에 저장하게까지 되었지만 쌀 수입을 막고 높은 가격에 국내산 쌀을 사주어 일본의 토지 값은 올라가기만 했다. 그리하여 높은 임금, 턱없이 비싼 부동산 값, 농업 보호정책, 서비스업에 대한 수많은 정부규제가 합작해 일본의 물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이 되었다. 높은 집값, 비싼 양육비,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힘들어졌고, 그 결과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져 그 어느 나라 보다도 빠른 속도로 노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금융이 자유화되면서 제조업체들은 국제시장에서 싼 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비싼 집과 양육비, 불안한 노후에 대한 걱정이 컸던 일본의 소비자들은 저축을 계속 해대었고, 생산적인 활로를 찾지 못하던 일본의 은행은 부동산 투자에 대출을 늘리기 시작했고 결국 이는 과도한 부동산 투자와 버블로 이어졌다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그리고 지금의 노령사회와 격차사회는 이러한 진통과정에서 생긴 일로서 우연이라기 보다는 필연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충분히 있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의 장기적인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방식을 버리지 못해 지금까지 고전하는 것을 보면 과거 방식의 견고한 무게와 관성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필연이 아니더라도 관성이 그만큼 강하다면 일본의 경제체제 운영방식은 전체적으로 그만큼 치밀하게 서로 맞물려 있다는 뜻이어서 일본이 다른 선택을 할 여유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과 유사한 한국의 경제현상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들이다. 구조가 같으니 나타나는 현상이 같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성장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한국도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닮았다. 도리어 일본에 비해 구조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더 안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재벌이다. 일본의 버블과 부실채권 뒤에 금융자유화에 따라 통제를 덜 받게 된 은행의 방만한 경영이 있었다면 한국의 부동산 버블과 부실채권 뒤에는 금융자유화에 따라 통제를 덜 받게 된 은행과 재벌이 있었다. 김영삼 정권 이후 관료의 통제권이 느슨해진 틈을 타 재벌들이 방만하게 외자를 통해 투자를 늘렸지만 한국의 금융체제는 이를 억제하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자금 수요가 떨어지자 수익처를 찾아 나선 은행이 부동산 담보대출 확장에 무분별하게 다투어 나선 것도 비슷하다. , 쌓여가는 금융권 부실을 정리하고 은행 자본을 확충하기 보다는 모두들 덮어두기를 원하는 것도 양국이 닮았다.

부동산 부문에서 벌어지는 현상도 닮았다. 약간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경제 생산능력에 비해 한국의 부동산 값이 일본에서 부동산 버블이 한참일 때 보다 더 높다는 것인데 이는 아마도 그만큼 다가올 조정의 폭도 클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비싼 땅값과 부동산  버블의 근본 원인 중 토지 공급에 대한 과잉 규제가 있다는 것도 닮았다. 한국의 정도가 더 심하지만 재산세가 낮은 것도 비슷하다. 다른 점을 들자면 일본에서는 비교적 일찌감치 건전한 장기 모기지 제도가 도입된 반면 한국에서는 분양가 제한 제도로 온 국민이 부동산 로또 투기에 나섰고, 장기 모기지 대신 3년 만기 담보 대출만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부동산 버블이 본격적으로 꺼질 경우 자산 디플레에 의한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일본과 또 다른 점은 토지의 과점이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심하다는 것인데 이는 그 버블 붕괴에 따른 충격이 일본보다 더 좁은 계층에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경기 침체가 있을 때마다 토목공사로 경기를 회복시키려고 나서는 것도 양국이 비슷하다. 노무현은 국토균형발전과 혁신도시를 내세워 토지보상금으로 재임기간 중 100조를 썼다. 이명박은 4대강 유역 개발에 3년간 22조를 썼고 토지공사의 부채는 재임기간 중 약 40조가 늘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이러한 토목공사는 사업지역의 토지 수용을 통해 벼락 부자가 되고  비용 집행이 불투명한 특성을 이용해 부패와 뇌물의 온상이 된다. 부패한 정치인과 결탁한 지방 토호들에게 토목 공사는 정부지출 사업 중 가장 환영할 사업이다. 이 과정에 개입되는 관료들은 재직 도중에는 내부정보를 빼내어 토지투기나 특혜 분양을 받을 수 있고, 은퇴 후에는 토건업자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 쥐꼬리 만한 공무원 월급을 받는다고 한탄하던 공무원들 중에 알고 보면 강남에 아파트 한두채 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있는 사연이 여기에 있다.  
 
잃어버릴 10

이렇게 한국은 그 사회의 구조와 현상에서 일본과 흡사한 점이 매우 많다. 특히 경제운영방식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일본과 비교해서 한국 경제의 앞날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만약 일본 경제가 19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을 겪고, 그 버블이 붕괴된 후에 거의 20년이 되도록 공공부분의 토목공사에 의존해 경기를 근근히 유지하면서도  구조개혁을 하지 못해 탈출구를 못 찾는 것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내재적 논리와 구조 때문에 그렇다면, 그리고 일본의 체제를 모방하여 지금까지 발전한 한국의 경제체제 역시 그들의 내재적 논리와 구조를 20년 후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면,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 세계적 경기 불황이 상당기간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전세계 경기가 이렇게 모두 동시에 빠른 속도로 침체에 빠진 적이 없다. 하바드 경제학자 로고프에 의하면 금융위기에 따른 불황의 양상은 지난 200여년간 비슷해서 금융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경기가 완전히 회복하는데 4년 정도가 걸렸다. 개별 국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의 결과가 그러했다. 지금은 동시에 여러 나라가 불황에 빠졌다. 따라서 각자 금융위기를 헤쳐나가기도 버겁거니와,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의 출구마저 서로 막혀있다. 부도 위기에 빠진 은행들도 전세계적으로 규모가 커져 있고, 서로 간에 복잡하게 얽혀있으니 은행부문의 부실정리를 아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도 혼수상태이고, 유럽은 국가부채 까지 불안하고, 이제는 억지로 버티던 중국에도 경기 불황이 닥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불황이 오래 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외부환경을 차치하더라도 내부적으로 한국은 부동산 버블 문제를 안고 있었다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경기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은행부문에서의 부실을 솔직히 공개할 만한 투명성은 20년전 일본사회에 없었듯이 한국사회 역시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와 은행이 2009년 1년간 중소기업의 대출을 모두 연장해주기로 했었다. 저축은행의 부실을 덮었었다. 너무도 한국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버티고 있다. 한국은행이 단기 금리를 3%pt 가량 낮춘 덕분에 돈을 빌린 일반가계에서는 연간 20조원이 넘게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기는 했다. 이렇게 낮아진 이자 덕분에 만기가 돌아온 대출을 만기 연장을 통해 버텨볼 여지도 좀더 생겼었다. 정부가 내던지는 부양정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일단 버텨보기로 작정을 했지만 부동산 값이 계속 내려가면서 만기 연장도 힘들어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경기가 하락하면서 전체소득이 줄고, 도산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직장을 잃는 사람도 증가하게 되어 있다. 부동산 가격은 하락을 지속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유지하기 위해 이제는 그 수를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오만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그저 자기 임기 중에는 넘어가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런 악다구니에 가까운 유인책이 통할 때가 따로 있다. 미국은 부도덕한 금융회사가 자기 소득으로는 결코 돈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문제가 벌어졌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자기 소득으로는 돈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비싼 값으로 주택을 사라고 권하고 있다. 부동산 부실에 국민들의 거국적 참여를 호소하는 꼴이었다. 

기업부문을 보자. 지난 10년간 한국의 중소기업의 수익성은 계속 나빠져가기만 했지만 자산경쟁에 빠진 은행들은 부동산 담보 대출에 이어 중소기업 대출을 계속 확장해왔다. 만약 한국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자본시장이 폐쇄된 경제이고,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면 이렇게 할 수도 있다. 모두들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못 본 척 하면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런 일이 안 일어난 것 같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시작한 본격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더라도 아무러나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장래는 어둡다. 한국 역시 20년 전 일본이 겪었던 문제에 대해 일본이 취했던 것과 유사한 대응책을 펼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 일본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다.

20
년 전 일본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한국은 자본이 부족한 경제가 더 이상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양적인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에 연연해왔다.
수출 외에는 국내에서 경기활성화의 출구를 찾지 못하던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금융자유화를 거치면서 부동산 대출이 급격히 늘었고, 이에 의해 부동산 버블이 생겼다.  자본 대비 부족한 것은 인적 자원이지만 아직도 이를 육성할 자세가 안되어 있다. 주거, 교육, 의료, 사회 안전망 등의 사회부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지식경제로 성장할 준비가 해야 하지만 단순노동을 쓰는 토목 공사에 손이 간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경제는 장기적으로 일본과 마찬가지로 인구 증가율이 빠르게 떨어져 사회가 활력을 잃을 것이다.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 만을 고집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지금에 와서도 여전해서, 20년 전 일본이나 외환위기 전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 외환위기로 일시적인 탈선사고가 있었지만 그 후 한국이 원했던 것은 그저 어떻게 하면 한시라도 빨리 과거의 궤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래서 과거 고속성장 궤도에 오르기 위해 지금까지 벤처 투자붐, 신용카드 소비붐, 국토균형개발 부동산붐, 4대강 붐 등을 도모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로 경제가 가라앉고 있는 와중에도 현정부가 내놓는 정책이 구시대적인 임시방편에만 머무는 이유도 정권세력이나 관료들 모두 과거의 성장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모두가 갈구하는 신성장 동력 찾기도 그 연장선 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사실 현정권의 경제정책 기조는 뜬금도 없거니와 국제 흐름을 거슬러가는 것이었다. 미국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여기는 듯한 그들은 미국 공화당이 금과옥조 처럼 내세우던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을 내걸고 나섰다. 조세부담율이 이렇게 낮은 나라에서 감세로 경제성장을 하자니 뭔가 처음부터 번지수를 잘못 찾은 얘기였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우파 정책의 파산이 명백해졌다. 그래도 이명박 정권은 내친 김에 정권 기간 끝까지 밀고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기조의 해악이 명백해지면서 이제는 여당도 목소리를 바꾸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 후보 모두 경제성장율을 공약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이 공약으로 경제성장률을 팔았다가 혼나는 것을 보고 학습이 된 듯하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도 몇년 전에 비해서 적극적이다. 그러나 여당은 최근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불협화음에서 드러나듯이 말에 비해 몸이 안 따라 간다. 민주당도 내세우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이란 정책을 정말이라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민주당은 원래 자기도 안 믿는 소리를 잘 내세운다. 안철수는 아직 잘 모르겠단다. 헐! 거룩하기만 하면 다인 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누가 정권을 잡아도 재벌의 독과점, 전투적인 대기업노조, 정경유착양극화를 조장하는 조세체제, 불투명한 국가재정관리, 부실을 감추는 은행 등 일본과 비슷한 경제운영체제의 틀을 임기 중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기 불황으로 대규모 재정지출 확장이 요구되는 지금 사회안전망을 위한 재정지출이나 교육이나 의료를 위한 투자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투자는 그 속성상 효과가 드러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 위기를 한국 사회가 제대로 대처해 나갈지 낙관하기 어렵다. 서로가 다 연결이 되어 있으니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종을 잡기가 어렵다. 사회 곳곳에 자리를 잡은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도 극심할 것이다.

고통과 눈물의 전환시대

한가지 희망을 가져보게 하는 것은 이런 식의 결정론적 구조 분석이 꼭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부족한 지식에만 의존해서 눈에 보이는 구조적인 것만 분석하다 보면 자발적 변화의 물길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역사의 발전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7,80년대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되고 심지어는 어처구니 없게도 일부가 주체사상에 빠졌던 것도 그런 연유다.

그러나 분명코 역사는 발전해 왔다. 20세기 초 각국의 빈곤과 열악한 인권수준과 소득분배에 비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사정은 분명 나아졌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기의 이익과 정의를 위해 일어나 싸울 수 있는 힘 역시 100년 전보다는 강해졌다.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역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한다. 물론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버릴 수 없다. 가진 게 그것 뿐이니.
 
한국인은 일본과 달리 두 차례에 걸쳐 민주투쟁을 통해 정치체제 변화를 이끌어낸 저력을 갖고 있다. 소득 양극화나 토지 분배의 불평등이 일본보다 심각해서 사회적 갈등도 더 심각하다. 그것 자체가 변화의 가능성을 그만큼 더 품고 있기도 하다. 또, 일본이 20년 전 놓여 있던 국제환경과 지금 한국이 처한 국제환경도 매우 다르다. 가장 크게 들 수는 있는 것은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한국경제의 약점이 도리어 변화의 촉매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래서 한국이 일본이 갔던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이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댓글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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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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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박 잘 봤슴. 거창한 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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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좋아요 계속 좋은 읽을 거리 부탁함.
    그런데 이번글엔 전에 안보이던 오자가 한두개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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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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