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9일 금요일

졸속은 나의 것: 대선 캠프 학자들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지난 화요일 한국금융연구센터 주최로 열린 <금융 소비자 보호 시각에서 본 금융감독체계 개편> 심포지움에 토론자로 참석했었다. 사회자는 김상조, 발표자는 명지대 원승연과 동국대 강경훈이었는데, 원승연은 며칠 전 안철수 캠프에서 발표한 금융개혁안 중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준비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원승연의 발표에 쏠렸다. 원승연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같이 담당하고 있는 지금의 금융위원회를 분리해서 금융정책은 기재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정책은 건전성 감독기구와 금융 소비자보호 기구로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금융감독을 둘로 나누는 것을 낙타의 혹에 비유해서 쌍봉체계라고 부른다.

이 정도 얘기했는데도 아직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읽고 있나? 훌륭하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더 지루해진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금융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것도, 미국이 저렇게 된 것과 전 세계가 아직도 불황에서 못벗어나고 있는 것도 이 문제를 소홀히 해서 생긴 문제니까.

쌍봉체계에서는 금융체제 안정과 소비자 보호라는 별개의 정책 목적을 각각 다른 조직에게 맡겨서 달성하려는 체제다. 금융체제 안정은 건전성 감독기구가 담당하고, 소비자 보호는 행위규제 전담기구가 담당하게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쌍봉체계가 나름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대선 정국에 공약으로 나온 것은 걱정스럽다. 이렇게 공약으로 등장하면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경우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기자고 할 공산이 높다. 나는 이렇게 정부조직을 급격히 바꾸는 것, 그것도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급히 바꾸는 것에 대해서 저항을 느낀다. 그래서 심정적으로는 공감하는데, 대신 좀더 시간을 두고 더 많은 논의를 거쳐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나는 이런 식의 어정쩡한 얘기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밍밍한 의견을 개진한 이유는 기업 부문에서 많은 개혁을 시도해 본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어서다. 간단히 말해, 작전은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짜야 한다. 또 기초 동작을 배우는 것 (프로세스 설계를 하는 것)이 셋트 플레이를 그리는 것(조직도 그리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이건 너무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같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기업에서도 이 간단한 원리를 놓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어설픈 컨설턴트들은 조직원들의 실력은 무시하고 논리적으로 멋있는 전략 짜는데 몰두한다. 업무 프로세스를 어떻게 수정할 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조직 개편을 제안한다. 쌍봉체계 도입도 그 아이디어는 좋지만, 이를 내년부터 실시하자는 것은 조직원들의 실력은 무시하고 프로세스 설계도 생략한 채 우선 조직도 박스 부터 그리자는 것으로 들린다.

쌍봉체계는 호주에서 가장 먼저 실시한 방식인데 1997년 왈리스 보고서(Wallis Report)에서 쌍봉체계를 제안했고, 이것이 시행에 옮겨진 것은 2년 후인 1998년이었다. 영국 역시 90년대 당시 이미 쌍봉체계의 필요성은 인식했지만 구조를 쌍봉으로는 하지 않았다. 노동당은 1997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하자 그해 10월 8개로 흩어져 있던 감독기구를 통합한 조직(FSA: Financial Services Authority)을 출범시켰지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사이의 시너지를 감안해 FSA 안에서 통합 운영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FSA가 개별 금융기관의 미시 건전성에만 치우치고 거시 건전성에는 소홀히 했다는 반성이 늘었다. 그래서 2010년 봄, 쌍봉체계 계획이 발표되었고, 2년 후 2012년 5월부터 쌍봉체계를 운영 중이다. 거시 건전성 감독 소홀이 문제였지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의 전문성이 다르다는 것을 들어 개편하는 김에 분리한 것이다. 미국은 쌍봉체계까지는 아니지만 최근 금융소비자 보호원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쌍봉체계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이들 나라와 약간  다르다. 한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금융을 국가에 의한 자원 배분 기능과 경기 부양 수단으로서의 기능에만 관심을 보였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건전성 감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지만, 정작 경기부양과 건전성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경기부양이 우선시되었다. 게다가 금융소비자 보호는 아예 건전성 감독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아서, 양자간 충돌이 생기면 항상 건전성 감독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원승연은 금융정책 기능을 떼어서 기재부로 넘기고, 금융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도 분리하자는 것이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분리하자는 것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 캠프의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한걸음 더나가서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도 분리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엇갈린다.

가장 큰 우려는 과연 이렇게 감독기관을 분리했을 때 서로간에 원활히 조정이 가능하겠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명박정권 인수위원회에서 금융감독위원회와 재경부의 금융정책실을 합쳤던 것도 재경부와 금감위원회 사이의 정책 조정 실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통합시키면 무슨 문제가 있을지, 그리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과의 업무 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졸속이었다.

그러면 김대중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 역시 졸속이었다. 아니, 졸속의 극치였다. IMF의 압력으로 1998년 영국의 FSA를 베껴 급하게 만들었다. 1998년 금감위가 출범할 때 금감위는 형식적으로는 회사의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위원회 안건을 의결하는 기구였다. 일반적인 행정조직과 달리 합의제 행정위원회 조직으로 만들어 위원장 외에 여러 위원을 두어 독립성과 전문성을 도모했다. 또 금감위 사무국이라는 소규모 조직을 만들어 금감위원회 회의체 운영을 보조하도록 했다. 실질적인 금융감독 집행은 금융감독원이 하고 양자간 조정은 금감위원회 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해서 조정하도록 했다.

이 체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출발하자마자 드러났다. 말만 위원회였을 뿐 위원회의 상임위원 자리는 모두 재경부 관료들이 차지했다. 각 정권 초기 1년간만 부위원장으로 외부인사 출신인 윤원배, 이동걸, 이창용이 각각 재직했을 뿐이다. 조그맣게 출발한 사무국은 곧 비대화하기 시작했다. 시장과 산업 관련 법규는 재경부에서 만들고 금융감독정책 의결은 금감위원회에서 실시하고, 집행은 금감원이 한다는 것은 혼란만 일으킬 뿐이었다. 기껏 정부 부서를 분리했지만 재경부 공무원과 금감위 공무원은 인사 철마다 양 부서를 오갔다. 몇달 전까지 금융정책을 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감독정책을 맡고, 감독정책을 맡던 사람이 금융정책을 맡을 것이면 무엇하러 부서를 분리했단 말인가? 일을 하던 공무원들도 불평이 많았다. 같은 부서에 있을 때는 협조가 잘 되었는데 부처가 다르다보니 서로 협조가 안되어서 비효율성이 막심하다고 했다. 5년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 부서가 통합된 이유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로세스를 개선하지 못하니까 조직 박스를 합친 것이다.

만약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다시 분리하자면 과거에 있었던 정책 조정 실패를 이번에는 어떻게 극복할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준비 안 한채, 거기에 덧붙여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도 분리하자고 하면 장차 그것이 초래할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분리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선거 공약으로 내놓다니? 아니 이게 왜 선거 공약이어야 하나? 국민들 중 누가 이것에 관심이 있고, 누가 이해한다는 말인가?

하나 언급하고 넘어갈 것은 월요일 토론회에 1998년 당시 이런 졸속안을 주도한 서강대 명예교수 김병주가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청중 토론 기회를 빌려, 개혁은 천천히 깔끔하게 하는 방식(Slow and Clean)과 빠르지만 엉성하게 하는 방식(Quick and Dirty)이 있으며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후자 방식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감안한 얘기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다. 저항이 있다는 것이 꼭 급격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생각에 그는 자신의 과오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금융감독체계 설계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다. 금융 건전성 감독과 금융 소비자 보호 업무를 해보지도 않았고, 대규모 조직 혁신을 이끌어 본 적도 없는 학자들이 하는 말에 의거해 몇달 만에 금융감독체계 조직도를 다시 그린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몇천명 밖에 안되는 회사에서도 변혁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초기에는 윗사람 말대로 바뀌는 것 같지만, 얼마 안가 다시 보면 제자리로 돌아가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물며 회사도 그런데, 공공기관 변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날까?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의 혼선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나라인데?

지금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을 분리하는 대신 다시 원래대로 분리할 때 과거에 겪었던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의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법으로 금감원은 금융위원장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금감원장 권혁세가 김석동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로 지난 주 일요일 김석동이 금융위와 금감원 부원장들을 소집해서 하우스푸어 정책 관련 혼선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한다.

나는 학자들이 정부 조직안 갖고 얘기할 때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중국 나라 시대 왕안석이 신법이라고 들고 나왔었다. 이중톈의 <제국의 슬픔>에 의하면 왕안석의 정책안은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기대한 효과를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관원대리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놔둔 채였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기존 체계의 얽힌 문제점을 놔둔채 한두가지 묘수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가뜩이나 선거 공약에 묘수를 끼워넣는 것은 더욱 삼가야 한다.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무조건 시행해야 하는 불필요한 압력을 후보가 만들 뿐이다. 정책을 담당할 사람은 책임을 지지 못할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15년에 걸친 졸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정녕 아무것도 없는가?
------------------------------------
(수정)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담당할 부서를 분리하는 안을 반대하는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었으나 이는 내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어서 수정했다. 왕안석은 당나라 시대 사람이 아니라 송나라 시대 사람이다. 

댓글 1개:

  1.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항상 실행단계의 현실성 까지 고려하시는 부분에서 감탄하고 갑니다 한국은 정말 하나 하나 천천히 바꿔갈게 너무 많네요 큰 방향에서 잘 가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