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으로 결정된 박근혜가 어떤 정치와 정책을 구사할 지 모두들 지켜보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는 선거가 끝나자 마자 선거 공약일랑 잊어버리라고 주문했다. 아무리 보아도 공공 언론으로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은 선거 유세 도중 후보자가 내놓은 정책 공약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다. 국민을 대신해서 이를 찬찬히 따져보고 비판하고 정치인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적인 의무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그 일은 소홀히 한 채, 여론조사 지지율 경주 보도와 정치권 인사가 쏟아내는 언사를 여과없이 전하는 데에 몰두하더니, 이제 와서는 공약은 잊어버리라고 충고를 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 참 복잡한 사람들이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박근혜의 공약집을 사놓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어디 한번 얼마나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는 지 두고 보자는 것이다. 약간은 귀여운 분풀이 처럼 들린다. 하지만 박근혜가 그동안 자신을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고 자리매김해온 만큼 그가 자기 공약을 얼마나 실천에 옮길 것인지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은 관심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박근혜의 지지자만이 아니라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박근혜의 공약은 설마 이명박이 그 실눈 웃음을 날리면서 내걸었다가 당선 후 사라져간 공약들 같이 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가 내세운 경제공약은 크게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 등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던 경제민주화 정책의 처음 물꼬와 큰 틀은 제시한 것은 김종인이다. 상당수의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가 선거 후 용도폐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 지지자들 중에도 박근혜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새누리당 안에는 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박근혜가 자기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방안에서 물러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 재정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어서 어려운 재정을 핑계대기도 어렵다. 경기가 나쁘니 나중에 하겠다고 하기에는 이미 경기침체가 1년간 지속된 것을 봐서도 말이 안된다. 그냥 입법만 하면 당장 실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에 비해 일자리나 복지는 재정적으로도 고려할 사항이 많고 실시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내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실행에 옮길 것으로는 경제민주화 정책만한 것이 없다.
국민 여론을 생각하면 새누리당 국회의원중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보수 언론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기도 쉽지 않다. 그들 입장에서 제일 좋기는 박근혜가 흉내만 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것인데 지난 박근혜로서는 1년간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수많은 언론 보도와 국민적 관심을 생각하면 그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김종인이 위원장이었던 행복추진위원회에서 내놓은 방안 중 박근혜가 받아들인 것만 그대로 실시해도 그것은 대단한 변화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은 개혁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횡령과 배임죄를 저질렀을 때 집행유예가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이것만 제대로 실행되어도 대단한 개혁이다. 금산분리를 강화해서 5년에 걸쳐 금융, 보험 계열사가 보유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5%로 낮추겠다는 것은 과거에 제대로 추진해본 적도 없는 얘기다. 공정거래 위반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한다는 것도 나름 대단한 변화다.
나는 처음에는 대통령 선거 전에 경제민주화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희망이 적다고 봤다. 그러나 행추위가 제시한 정책안을 박근혜가 일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일어난 논란을 보면서 오히려 생각이 바뀌었다. 행추위안은 사실 새누리당으로서는 1년 전에만 해도 거의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전향적인 것이었다.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제시했던 방안보다 더 개혁적인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박근혜가 그냥 모두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내부 조정을 통해 아예 이 방안이 공표되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대대적인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켜가면서 일부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기 공약으로 받아들였다.
일단 이렇게 되면 이 경제민주화 방안은 박근혜 안이 되었다. 박근혜로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은 논란을 거쳐 자기가 직접 삭감 조정한 경제민주화 방안을 당선후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만약 행추위안을 박근혜가 그냥 받아들였다면 도리어 나는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와서 다시 돌이키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경제민주화 방안에 관한 한, 박근혜는 김종인의 등에 업혀 원래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왔을 수는 있다. 김종인은 그런 사람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정책을 만드는 관료나 일반 관변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자기의 방안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현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난 여러 정부에서 그를 기용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그의 성향을 알고도 박근혜는 그에게 자기 캠페인의 경제민주화 방안을 맡겼다.
나는 지난 몇 달간 야당이나 안철수의 경제민주화 방안 보다 김종인과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방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현실 정책에는 이론적인 완결성이나 논리적 정합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2012년 한국이라는, 지금 여기서 실현 가능한가가 가장 중요하다.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이고, 박근혜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만약 문재인이 당선된다 해도 그가 내세운 기존의 순환출자 해소 같은 것은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그만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김종인이 팽을 당할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팽을 당해도 그가 남긴 경제민주화 가죽은 남아있다. 김종인은 지난 25년간 일관되게 주장해온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박근혜를 선택했고, 그 결과물로서 남긴 그의 가죽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가 입고 있던 가죽에 비해 훨씬 두껍고 튼튼하다.
이제 우리는 과연 박근혜가 그 가죽을 걸칠 지 기다리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김종인이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 허망한 꿈이 아니고, 박근혜가 김종인을 선택한 것이 정치적인 계산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답글삭제박근혜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의 일부조항에 대해 반대한 것이 오히려 박근혜의 진정성을 보여준것이라는 해석은 탁견이십니다. 선생님의 지적대로 출자총액제한의 소급처리는 약속공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지만 나머지는 자신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1%의 부자, taker들로 부터 어느나라도 자유롭지 못한 세계 정치체제에 박근혜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제2의 '한강의 기적'을 기대해봅시다. 그것이 바로 김종인의 꿈이요, 한국사회의 희망일 것입니다.
답글삭제이 블로그의 글들을 도용해서 다음뷰에서 베스트에도 올라있는 만수르라는 블로거가 있네요. (http://v.daum.net/my/ash1129)
답글삭제재정정책 실종 국가: 경제 불황기에 왠 균형재정? http://tnfm.tistory.com/651
넌 누구냐?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비율 http://tnfm.tistory.com/650
김종인이 남긴 가죽, 박근혜가 입을까? http://tnfm.tistory.com/649
일단 대충 보이는 글은 위의 3개인데 워낙 많은 글을 도용해놔서..
주로 다른 블로그의 글을 자신이 쓴것 처럼 도용 구독자를 모으고 그걸로 광고수입을 노리는것 같습니다.
다음 고객센터에 신고하면 해당글은 삭제조치가 가능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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