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7일 월요일

재정정책 실종 국가: 경제 불황기에 왠 균형재정?


작년 한국의 GDP 성장률은 2%에 그쳤다. 그런데도 재정 적자가 겨우 GDP 대비 1.6%였다. 201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인데도 이명박 정부은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았다. 여당 역시 재정지출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언론의 비판도 없다. 지금처럼 재정정책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현 상황은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다.

지난번 글 <넌 누구냐?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비율>에서는 주로 대차대조표 상 자산을 고려하지 않고 부채만 부각시키는 것의 오류에 대해 얘기했지만, 오늘은 한국의 재정적자에 관한 실제 데이터를 보자. 그러면 한국에서 재정정책이 정치적 이슈로 제기되지 않는 것이 왜 이상한지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아래 표를 보기 전에 말해둘 것이 있는데, 낯선 용어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는 재정적자를 얘기할 때 통합재정 수지와 관리재정 수지로 나누어 본다. 대다수 사람들은 통합재정과 관리재정이 무슨 뜻인지 모를텐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관심을 둘 것은 관리재정 수지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여전히 더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해 부언하면, 통합재정은 정부기관의 모든 세입과 세출의 차이다. 지방재정, 공공성 공기업이 모두 포함되었다는 뜻에서 통합재정이라고 부른다. 관리재정은 여기에서 사회보장성기금 흑자와 공적자금 상환액을 제외한 수지이다. 정부차원에서 관리 대상인 수지란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사회보장성기금은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기금 등을 뜻하는데 이것은 연간 재정예산계획 대상이 아니어서 관리대상도 아니다. 최근 들어 고용보험기금에서 약 2조 정도 적자를 보지만 국민연금 등의 흑자가 워낙 커서 이를 빼고나면 항상 관리대상수지가 통합재정수지보다 적자 규모가 더 크다.)


정부지표를 설명하는 사이트에서 통합재정수지에 관한 페이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2002년 이전 데이터는 내가 추가한 것이다.)   




통합재정수지 통합재정수지/ 관리대상수지 관리대상수지/
  (조원)  GDP(%) (조원)  GDP(%)
1997 -7.0 -1.4 -12.8 -2.5
1998 -18.8 -3.8 -24.9 -5.0
1999 -13.1 -2.4 -20.4 -3.7
2000 6.5 1.1 -6.0 -1.0
2001 7.3 1.1 -8.2 -1.3
2002 22.7 3.2 5.1 0.7
2003 7.6 1.0 1.0 0.1
2004 5.2 0.6 -4.0 -0.5
2005 3.5 0.4 -8.1 -0.9
2006 3.6 0.4 -10.8 -1.2
2007 33.8 3.5 3.6 0.4
2008 11.9 1.2 -15.6 -1.5
2009 -17.6 -1.7 -43.2 -4.1
2010 16.7 1.4 -13.0 -1.1
2011 18.6 1.5 -13.5 -1.1
201218.51.3-17.4-1.3

































           2013                    14.2                      1.0                  -21.1                     -1.5           2014                      8.5                      0.6                  -29.5                     -2.0
           2015                     -0.2                      0.0                  -38.0                     -2.4


한가지 특징적인 사실은 2003년에서 2007년, 즉 노무현 정권 도중 국가 재정 기조가 줄곳 흑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 기간 중, 정부가 제시한 예산은 항상 나중에 결산을 해보면 예상보다 수지가 호전되었다. 예상 세수보다 항상 더 많이 걷혔고 예상 지출보다 덜 썼다. 한두해도 아니고 매년 그런 것을 보면 복지지출을 늘이고 싶어하는 정권에 대항해서 일부러 세입을 비관적으로 짠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할 만하다. 이러한 보수적 재정 추정치는 이명박 정권에서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2010년과 2011년 정부 예산에 의한 관리수지 적자는 GDP대비 각각 -2.7%와 -2.0%였는데 실제로는 두해 모두 -1.1%에 그쳤다. 이렇게 관료들은 항상 예상 수입을 과소 추정하고 지출은 과대 추정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 재정 적자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일면 기사로 자주 등장한다. 당연히 그 규모에 대한 언급이나 GDP 대비 비율도 자주 회자된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재정적자가 중요한 정치 이슈로 취급받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전번 글에서 말했듯이 정부관료는 물론 여야 정당 및 언론 마저 모두 균형재정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장기에 걸친 균형재정이 아니라 매 해마다 균형재정을 달성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경제가 불황에 빠져도 재정 지출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약하다. 재정 적자 규모가 항상 미미하고, 따라서 재정 적자 자체가 이슈로 등장하기 어렵다.

한국의 재정 적자가 얼마나 국가 경제에 비해 미미한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위 정부지표 사이트에서 가져온 표를 보자. 



<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재정수지 개선 폭  >
(단위: GDP 대비, %)        

한국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선진국평균
통합재정
관리대상
’10년
1.4
△1.1
△10.5
△9.4
△4.3
△7.1
△9.9
△7.7
’11년
1.5
△1.1
△9.6
△10.1
△1.0
△5.3
△8.7
△6.6
개선폭
0.1
-
0.9
△0.7
△3.3
△1.8
1.2
1.1
 * IMF Fiscal Monitor('12.4월),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 결산치('11년은 결산 잠정치)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모두들 균형재정 도착증에 빠져 있어서 재정정책의 역할이 거의 없다. 심지어 세계적 금융위기가 가장 심각할 때 추가로 재정지출을 늘린 2009년, 한국의 재정적자가 겨우 -4.1%였다. 한국이 균형재정 도착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경제가 불황에 빠져도 재정 적자가 미미한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기가 하락하면 세수가 감소하고 세출이 증가한다. 세수가 감소하는 이유는 소득이 떨어지면 개인소득세와 법인 소득세 수입이 줄기 때문인데, 개인 소득세에 누진성향이 강할 수록 세입 감소가 더 두드러진다. 세출이 느는 이유는 경기가 나빠질수록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지출이 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가 한국보다 잘 구비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평시에 재정이 균형재정에 가깝던 나라도 경기가 나빠지면 재정적자가 급속도로 증가한다. 또 그런 덕분에 경기 회복이 그만큼 빨라지기도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GDP에서 개인소득세와 법인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서 경기가 나빠진다고 해도 세수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지출의 증가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추가 경정으로 회계기간 중 지출을 추가로 늘리지 않는 한 경기가 하락해도 재정적자가 별로 늘지 않는다.

작년 한국의 재정적자가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1.6%에 그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도면 국제 기준으로 보아 균형재정이 가깝다.

그래도 어쨋거나 GDP 대비 -1.6%이니 균형재정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재정적자는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감세정책을 반영한 숫자다. 약간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흑자재정이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전에는 세수가 GDP의 21%였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이것이 19%로 떨어졌다. 세수를 GDP대비 2% 감소시키고 난 결과가 1.6%의 재정적자로 나타났으니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재정흑자가 나왔을 것이다. 감세를 하지 않는 대신 그만큼 재정지출을 늘렸어도 재정지출확대에 의한 승수효과로 재정적자가 -1.6%보다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재정부 장관 박재완은 지난 9월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적정 채무비율이 30%라고 주장했다. 2016년까지 채무비율을 30%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란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소리다. 지금 한국이 국가채무비율 감축 목표를 운운할 나라인가? 실제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17%이고, 잠재 성장률 대비 실제 성장률의 격차가 GDP 대비 약 3%에 이르도록 인력과 설비가 놀고 있는 나라에서 국가채무비율을 왜 2016년까지 30%로 줄여야 하나? 정 줄이고 싶으면 금융성 채무를 줄이면 된다. 외환시장 개입을 줄이고 택지 조조성, 아파트 건설, 주택자금대출을 줄이면 된다.

균형재정 도그마, 하루라도 빨리 깨어나야 한다.

댓글 1개:

  1. 이명박근혜 때 적자재정을 크게 했다면 엄한 곳에 많이 썼을듯 해서 차라리 안쓰는게 나았다는 생각도 드는데.. 너무 부정적인 생각일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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