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1일 목요일

노인 빈곤에 대한 국민 토론 이제야 시작 : 박근혜 인수위 노인연금 방안 발표

인수위 안

노인기초연금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이나마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박근혜 행정부 인수위가 오늘 발표한 방안은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되,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소득에 따라 최소 4만원에서 최대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기로 최종 확정됐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소득하위 70% 노인들에게는 원안대로 20만원을 지급하고,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소득하위 70% 노인들은 14만원~20만원의 연금을 차등 지급한다.

소득상위 30%노인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4만원을 받고, 국민연금을 받고 있으면 4만원~10만원을 받는다.

단, 부부가 모두 연금을 받는 경우는 기초연금액에서 각각 20%를 감액한다. 이같은 내용의 기초연금제는 내년부터가 아니라 오는 2014년 하반기부터 지급된다.

인수위는 사회적 우려가 일었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도 밀어부쳤다. 공적 부조 성격의 기초연금과 적립 방식의 국민연금을 '국민행복연금'이라는 이름으로 합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인 모두를 대상으로, 단 국민연금 가입기준과 소득 기준으로, 차등 지급하되, 그 재원은 기존의 기금을 건드리지 않고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수위 안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가 될 지는 불확실하다. 지급액이 조정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이미 조성된 기금을 건드리지 않고 재원을 따로 마련하겠다는 방안일 것이다. 앞으로 입법과정을 통해 더 많은 토론이 예상된다.

노인 빈곤에 대한 인식 확산

시민들의 이해 구체적인 계수 방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언론도 처음에는 내 돈 건드리지 말라는 시각에서 점차 노인 빈곤 해결이라는 시각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지난 주에는 심야시간이기는 했지만 SBS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심층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고, 이번 주부터 오마이뉴스가 중앙대의 연명 교수 글을 앞으로 10차례에 걸쳐 싣기로 했고, 오늘 동아일보는 순천향대의 김용하 교수 인터뷰를 실었고, 매경은 노인빈곤 문제를 1면 기사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납세자연맹이라는 시민단체(?)의 역할도 약간은 있었던 것 같다. "국민연금의 불편한 진실 10가지"란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이미 참여자가 7만명에 육박하고 있단다. 지금 노인에게는 해주는 것이 없고, 마치 수익률 좋은 재테크를 하는 것처럼 홍보했던 과거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현재의 제도가 갖고 있는 설계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 폐지 운동으로 갔다. 어느 정도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막연한 불안이 구체화되었고, 덕분에 이에 대한 토론도 더 명징하게 된 감이 있다.
  
전문가 의견

이런 사정을 보고 드디어 국민연금 전문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쓰여진 글 중 가장 잘 쓴 것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김연명의 글이다. 비전문가인 내가 굳이 나서서 써보았자 이보다 더 잘 쓸 수가 없다. 특히 그가 글 끝에 첨부해서 실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포함하고 있어 매우 유익하다. 이 문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글과 프리젠테이션을 적극 추천한다.

순천향대의 김용하의 인터뷰 역시 일독할 가치가 있다. 특히 그가 지적하듯이 공약 실천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나, 이를 위해 국민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제언, 민간 복지 서비스 시설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 등은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얘기다.

김연명과 김용하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것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갖고 있다. 김용하는 양자를 통합하는 것을 반대하고 김연명은 찬성한다. 또 이들은 상위 30% 노인들에게도 돈을 주는 것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김연명은 모두 주는 것에 찬동하고, 김용하는 반대한다. 김연명은 아예 모두에게 20만원씩 주자고 한다.

나는 전체적으로 김연명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다. 만약 김용하 말대로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면 그의 주장대로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 부분을 분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어디 그런 나리이던가. 근본적인 개혁을 못한다고 가정하면 큰 폐단이 없는한 지금 당장 노인들의 빈곤 해결에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는 방안이 더 낫지 않나 싶다.

김용하가 주장하듯이 고소득층에게 주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없는 게 아니다. 만약 모든 국민의 소득에 대한 파악이 잘 되어 있는 나라라면 나도 그의 의견에 동조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소득 자료가 매우 불완전한 나라다. 부동산 등 재산은 많은데 소득이 적은 노인들이 많다. 아마도 임대 소득 중 상당비율이 아예 신고도 안되고 있을 것이다. 금융실명제도 엉터리여서 자기가 갖고 있는 금융재산을 가족 명의로 옮겨 놓은 사람도 많다. 이번 제도 도입을 염두에 두고 재산과 소득을 숨기려고 나설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번에 금융소득 종합소득세 적용 한도를 2천만원으로 내리면서 북새통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소동은 늘어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같이 인상되는 의료보험료를 피하기 위한 것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 들어갈 행정적 수고와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냥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당장은 모두 지급하고 향후 소득 투명성이 개선되면서 그때 가서 소득 별 차등지급을 하는 것이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지급을 하겠다고 한다. 차후 국민적 논의를 두고 볼 일이다.

미룰 수 없는 노인 빈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존 제도가 워낙 부실하게 설계된 제도여서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명확하지가 않다. 지난 번에 얘기했듯이 소득 파악이 잘 안 되는 나라에서 임의 가입제인 국민연금제도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 만이 아니다. 의료보험도 그렇다. 거의 모든 소득 보조 제도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현금 지급을 통한 복지체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실물 서비스를 공공부분이 직접 제공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는 시각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더 유효하다. 예를 들어 공립 병원, 공립 유치원, 공립 학교를 더 지어야 한다.

어쨋든 한국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연금에 대해 국민적 토론을 시작했다. 1889년 비스마르크가 근로자를 위한 공적연금을 시작했을 때 이름이 노동자 노년 보장(Alterssicherung für Arbeiter)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국민연금은 시작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의 노인에게 주는 혜택이 거의 없는 이상한 제도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사회가 세대간 이악스러운 주판알 튀기기에서 깨어나 주위의 노인 빈곤을 직시하고 부끄워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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