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번째 문제, 노인기초연금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얘기해보자. 사실 이 문제는 정치권과 언론 모두 처음부터 엉뚱한 방향에서 문제를 보는 바람에 얘기가 꼬였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기존의 국민연금 기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모든 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여기에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오해와 정치적 계산이 얽혀 있다. (제대로 쓴 글을 보고 싶으면 김연명과 이정환 글을 보라.)
일반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는 지금 제도 아래에서 자기들이 받을 연금이 각자가 적립한 돈에 이자가 붙은 만큼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민간연금보험에 들었을 경우보다 약 두 배의 돈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 돈 건들이지 말라"라는 식의 뜬금없는 얘기다. 아무러나 반은 남의 돈이다.
그럼 누가 그 부담을 지나? 후세들이 진다. 즉, 반 정도는 자기가 적립한 돈에 비례해서 받고 나머지 반은 후세 사람들이 그때 가서 내는 돈으로 받는다. 그 동안 왜 2050년대가 되면 기금이 고갈된다고 했을까? 각자가 부은 돈에 비해 받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가 부은 돈만큼 받는다면 고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를 알고 나면 지금처럼 기존의 국민연금 기금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의 모순이 드러난다. 자기들은 나중에 가서 후세에게서 돈을 받아 생활할 것이면서, 지금 당장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은 도와주지 말라는 말이 된다. 만약 이런 사정을 알고도 노인연금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라면 이는 그야말로 뻔뻔한 얘기다. 후세의 부담을 줄이자고? 지금 현세의 노인은 어쩌자는 말인가?
물론 지금까지 쌓인 기금에서 노인연금을 지불하기 시작하면 기금이 더 빨리 고갈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의 공적연금 설계가 이상해진 것은 1988년 출발하면서 그 당시 노인을 위한 연금으로 시작하지 않은데 있다. 돈을 미리 일부나마 쌓기 시작하고 난 후 10년 이상 불입한 후에야 받을 자격이 생기도록 했다. 평시에는 임기응변에 그토록 능한 한국 행정부가, 문득 그 때에만 제 정신이 들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그렇게 설계했겠는가? 아니다. 국내저축을 동원하기 위해 그렇게 설계했다. 그러면서도 강제저축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서 적립하는 돈에 비해서는 받는 돈이 훨씬 많게 설계했다. 그래 놓고 나서 21세기에 들어자 허구헌날 기금 고갈이 된다고 지청구를 놓았다. 여기에 넘어가 노무현 정부는 받는 돈을 줄이고 받기 시작하는 연령을 늦추는 쪽으로 설계를 수정했다. 김연명이 "진보의 원죄"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는 계수 조정에 불과한 미봉책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층에 대한 생각은 온데간데가 없고, 임의가입제 때문에 가입대상자의 1/3이 사각지대에 있는 문제는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연금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많은 시간이 드는 작업이다. 연금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설계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것 저것 조금씩 바꾸기 시작하면 공적연금제도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지고, 문제만 더 복잡하게 된다. 이번 경우에서도 금방 표면화되었듯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조그마한 변화에도 불만이 생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나중에는 여러 계층간의 이해 충돌과 사회분열로 개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재구축을 기다리느라 지금의 노인 빈곤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다. 이명박 5년 전 모든 노인에게 30만원 씩 준다고 공약을 했지만 당선 후에는 꿀꺽 삼켰다. 5년만큼 낭비한 셈이다. 그 동안 자살로 죽어간 노인들을 생각해보라.
그러면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하나? 결국은 세가지 방법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적자재정을 감수하거나 예산체계에서 다른 사업의 예산을 줄여 충당하는 방법, 연금보험료를 올리는 방법, 아니면 이미 쌓인 기금을 동원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방법을 택할 것인지를 한국 정치는 올해 정해야 한다. 가장 좋기는 지금 있는 기금을 동원해 쓰는 것이 가장 좋다. 국민연금에 가입했지만 20만원 미만인 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20만원에 더해서 지금 받는 돈만큼 그대로 지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모두들 이 방법을 반대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는 것 같다. 진보진영은 한편으로는 박근혜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기금은 안 건드리고 기초연금을 주려면 증세가 필요하니 박근혜로 하여금 증세안을 내놓으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한다. 자기들도 주장하지 못하던 즉시 노인연금 확대를 위한 증세를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속셈이다. 비겁하다. 보수 진영 언론은 자기가 받을 돈이 모두 국민연금 기금으로 충분한 줄 아는 국민들의 무식을 겁내서 반대한다. 그러다 보니 타협으로 하위 70% 등등 온갖 가지 얘기가 나온 것이다.
어쩌겠는가? 국민연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이 그런 것을.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의식하게 된 것만 해도 진전이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이 어떤 방법을 채택하든 모순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잊지는 말자. 국민연금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나중에 받을 세대만큼 지금의 노인들도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많은 공이 있으면서도 가장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세대가 지금의 노인계층이다.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 48% (일본은 24%, 다른 서구 국가들은 12%대)를 부끄러워할 염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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