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8일 금요일

한국의 투자은행업, 어떻게 키워야 하나

로스차일드 서평

오늘 중앙일보에 쓴 서평 (가족경영, 로스차일드가엔 양날의 칼이었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에 대해 니얼 퍼거슨이 쓴 책에 관한 것이었다.

영어 원문만 해도 1,300 쪽이 넘고, 번역으로는 1,500 쪽이  넘어 두권으로 나뉘어 나온 이책은 금융사에서는 기념비적인 저작이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다.

로스차일드는 경제사나 금융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름이다. 제일 오래된 투자은행이어서 업계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름을 안다. 일반인들 중에는 유태인 금융가에 대한 음모론적인 시각에 의한 책들 때문에 이들 이름을 알게된 사람들도 꽤 된다. 

그러나 그 이름을 전혀 못들어본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로스차일드가문의 내력을 설명하다 보면 신문사에서 허용한 짦은 지면이 다 찬다. 서평 쓰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시각을 조금 비틀었다. 투자은행업의 본질에 대한 시각에서 글을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정부의 금융정책 목표 중 하나는 대형투자은행 육성이었다. 정부와 언론은 한국의 증권사와 서구의 투자은행을 규모를 비교하면서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0년에 걸친 서구 투자은행업의 역사를 무시하고, 투자은행업의 핵심경쟁력을 도외시한 주장에 불과하다.
자본시장법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재경부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을 들고 나왔다. 그 당시 정부는 대단한 것이나 하는 것처럼 선전을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별게 없어서 증권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정부가 대형 투자은행 육성이 필요하다고 하는 논리는 간단했다. 한국은 앞으로 기업가 정신에 의한 창의적 기업활동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돈을 대줄 자본시장이 필요하다. 자본시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금융중개를 맡은 투자은행이 커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증권사는 서구의 투자은행보다 자본금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다. 그러니 증권사 대형화가 필요하다. 이게 정부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규제법들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집안 정리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또, 정부의 규제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나열하는 방식(Positive 방식)에서 안되는 것을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게 하는 방식(Negative 방식)으로 바꾼다고 했지만 정부의 구태의연한 업무 방식을 아는 사람들로서는 별로 믿을 수가 없었다.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다고도 했지만 기존 법 안에서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규제당국이 법을 새로 바꾼다고 행동을 바꿀 것 같지도 않았다.

과잉 자본금

게다가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한국의 대형 증권사들은 이미 쌓아놓은 자기 자본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증권업계 전체의 자기자본수익률(ROE: Return on Equity)는 평균 약 4%에 불과하다. 이 정도라면 직원을 고용할 필요 없이 은행에 정기예금을 들어도 그보다는 더 벌었을 것이다. 이렇게 쌓아 놓은 자본도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증권사의 자본을 더 늘려서 무엇을 할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2011년에 다시 한번 더 자본시장통합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자본을 늘려봤자 무엇을 하라는 것이냐는 업계의 불평을 의식해서 대형증권사에게만 특정 업무를 허가하겠다고 했다. 헷지펀드를 허용하고 그 헷지펀드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자본금이 3조원을 넘기는 증권사에게만 허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네가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헷지펀드를 대상으로 영업을 할 것인지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하는데 이것을 자본액수 기준으로 선을 긋겠다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장사에서 대단히 돈을 벌 것이라는 자신을 하기도 어렵다.

정말 희극은 일부 대형사들이 법 통과를 믿고 자본을 먼저 증자한 것이다. 2011년 하반기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3조원을 넘긴 곳은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5곳이다. 이들이 당시 증자한 규모는 3조 4,000억원에 달한다. 증권업 전체 기존 자본금 대비 약 13%를 증자한 셈이었다. 대우증권은 1조 1,200억원을 증자했고, 우리투자증권은 6,300억원을, 현대증권은 5,600억원을, 한국투자증권은 7,300억원, 삼성증권은 약 4,000억원을 증자했다. 법 통과를 보고 난 후 증자를 해도 되었을텐데, 정부가 눈치를 주어서인지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증자를 한 것이다.

그 후 1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그 법은 통과가 되지 않았다. 정권 이양과 함께 사임을 한 김석동 위원장이 퇴임 전 열심히 법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실패했다.

규모 보다 투자자 보호와 인재 경영

그러나 법이 통과되었든 아니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투자은행업의 핵심은 규모에 있는 게 아니다. 고객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윤리적 기업 문화를 통한 평판 관리, 전문인력 양성, 적절한 보상체계 설계 등에 있다. 지금처럼 지배주주가 따로 있고, 직원을 언제라도 갈아댈 수 있는 머슴 다루듯이 해서는 제대로 된 투자은행을 키울 수가 없다.

정부가 선심 쓰듯이 육성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지금처럼 인위적인 자본 규모 규제로 선을 그으려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프랑스 정부가 1982년 로스차일드 은행을 국유화하고 나서 몇년이 지난 후 프랑스 로스차일드가는 다시금 자기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 그때 자본금이 겨우 1백만프랑이었다. 평판과 머리만 그대로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증거다.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안되는 나라에서 투자은행과 자본시장은 발달할 수가 없다. 자본시장은 참가자들의 신뢰를 먹고 큰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싶다면 투자자 보호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배주주의 전횡과 일감 몰아주기, 빼돌리기부터 막아야 한다. 소액주주 권한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주어야 한다. 기업 회계의 신뢰성을 올려야 한다. 이런 일을 하지 않은채 억지로 회사 자본금이나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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