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진주 기자의 글이다.
공영방송의 침몰 원인을 공영방송의 취약한 지배구조에서 찾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듯이 ‘... 경영진을 전문성이나 도덕성은 무시하고 정권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한국에서 어디 공영방송 뿐이겠는가?
내 생각엔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기업이 그렇고, 학교가 그렇고, 심지어 종교 단체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그 의사 결정을 이끌 리더가 필요하다. 좋은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리더가 필요하다. 어떻게 좋은 리더를 찾고 그가 동료들과 함께 좋은 결정을 오랫동안 잘 하도록 해 줄 것인가에 관한 규칙이 지배구조다.
각자가 생각해보자. 지금 자기가 속한 조직과 분야에서 좋은 사람이 리더로 뽑히고 있는가?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전문성이나 도덕성에서 훌륭한 사람이 리더로 뽑혀 일하고 있는가? 각자가 속한 분야가 좋은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고 믿는가? 만약 리더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면 왜 그들은 그렇게 자주 바뀌는 것일까?
나는 한국이 좋은 리더 선발이라는 사회 기능에서 심각한 기능부전 현상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구조의 실패를 겪고 있다. 리더를 뽑을 때 지금까지 사용하던 방식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도 못하고, 새로운 방식을 익혀야 하는데 익히지도 못했다.
무엇이 버려야 할 방식이고, 무엇이 익혀야 할 방식인가? 뻔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우리가 전제적 중앙집권 운영방식을 버려야 하고, 공화적 민주적 분권화된 운영체제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선거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공영방송국이든, 기업이든, 학교든, 종교단체든, 가족이든, 모든 공동체가 공화적 민주체제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회사에서 사장 혼자서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경영방식, 분권화에 의한 자율경영을 추구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였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이다. 영어로는 Republic of Korea다. 여기서 민국은 Republic을 번역한 것이다. 공화제에서는 공공이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참여해서 같이 논의하고 의사 결정을 한다. 이에 비해 민주정(Democracy)은 엄밀히 말하면 다수결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것을 뜻할 뿐이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았어도 민주적인 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공화제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일까? 공중(Public)은 있는 것일까? 우리 고향이니까 무조건 뽑는 사람들은 공중이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1987년에 얻은 것은 Democracy 였을 뿐, Republic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전제적 민주정을 갖고 있다. 분명 시민들의 투표로 뽑았는데 그 리더는 전제적이다. 전제적 리더가 모든 하위 조직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이를 위해 자기의 전제에 충실한 자들을 자질과 무관하게 지도자로 뽑고 있다. 그런 자들이 어디 아리랑 TV 방석호 하나 뿐이겠는가? (재벌기업에서 세습에 의해 자리에 오른 총수가 자기에게 충실한 사람 위주로 지도자를 뽑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
그리고 혹시 전제적 민주정에서는 정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지금 여당과 야댱은 모두 당원의 토론과 참여를 거쳐 운영되는 민주적, 공화적 조직이 아니다.양측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내부 운영은 전제적 민주정과 유사하다. 제 3당이라고 나선 사람들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 눈에는 지금 한국의 정당의 행태는 조선시대 당쟁을 연상시킨다.
나는 한국 사회가 기능 부전에 빠진 근본적 원인이 바로 우리가 전제적 중앙집권과 관원대리 체제에 아직도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정치의 중앙집권적 전제적 요소를 어떻게 불식할 것인지를 자기 당의 정강과 정책으로 내세우는 정당이 없다는 것은 나로서 미스테리다. 그들은 시민들이 그런 것 보다는 당장 빵을 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의 장기 침체는 그저 경제 정책이나 조직 경영의 실패가 아니다. 그 나라 민주체제의 실패를 뜻한다. 우리 역시 지난 십년 동안 한국민주주의 실패를 겪고 있다. 일본에서 그러하듯이 우리의 민주주주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빵 부스러기는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빵을 주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운영체제의 실패가 도래했음을 공감했으면 합니다. 이 글이 쓰여지고 1년동안 정치권에 대 충격들이 있었지만 결국 눈앞에 드러난 일들에 분노할 뿐 운영체제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요.
답글삭제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저는 교육으로 이러한 인식과 생각의 부족을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부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운영체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라다면, 문제의 내면과 원리를 읽어나가는 힘이 자연스럽게 커지겠지요. 물론 이 조차도 입시와 교육과정이 전제적 중앙집권에 의해 결정된다면 불가능하겠지만요.
너무나 어려운 문제지만 글을 읽으며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가면 언제간 참된 민주주의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믿고 있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