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생태계적 시각에서 본 대기업과 중소기업
지난번에는 경쟁에서 도태되어야 할 중소기업들이 살아남아서
중소기업 부문 전체의 역동성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를 얘기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가 일종의 묵계에 의해 중소기업 분야의 구조조정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재임기간 중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고, 관료와 은행 역시 이에 편승해서 보신주의에 급급할
뿐이다. 관변 학자들은 관료가 불편해 할 이야기를 삼가고, 개혁
학자들은 자기 진영과 노조 눈치를 살핀다.
이런 불편한 문제를 덮으려다 보니 나오게 된 것이 온갖가지
중소기업 지원책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많고, 보조금 제도가 널려있는데도 한국의 중소기업 부문은 시들어만 간다. 이 정도 되면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해 볼만도 한데, 한국의 정책집단은 마냥 옛날 레코드를 음량만 늘려 틀어댄다. 그러니 성과가 날 리도 없다.
게다가 그런 정책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즉,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중소기업을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어 대기업만 살찌워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전체적으로 보아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하나의 생태계에서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두 부문은 하나의 생태계에서 같이 살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구조를 놔둔채 중소기업을 마냥 지원하면, 그 지원의 단물은 결국 대기업에게 간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에 편중된 혜택을 지적하지만, 중소기업에 제공한 혜택 중 상당 부분이 궁극적으로 대기업에게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은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즉,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중소기업을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어 대기업만 살찌워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전체적으로 보아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하나의 생태계에서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두 부문은 하나의 생태계에서 같이 살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구조를 놔둔채 중소기업을 마냥 지원하면, 그 지원의 단물은 결국 대기업에게 간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에 편중된 혜택을 지적하지만, 중소기업에 제공한 혜택 중 상당 부분이 궁극적으로 대기업에게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은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 대한
생태계적 시각이 부족한 탓도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생태계는 곧 상호의존성을 뜻한다. 생태계는 소속된 각 개체군이 생존을 위한 노력을 통해 모두 번성할 때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
중 한 집단만 살아남으려고 하다가는 그 집단마저도 멸망한다. 생태계로서의 경제에는 경쟁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협력도
있고, 착취도 있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의 다양한 양태를 무시하고 각 개체군의 번성 만을 개별적으로 추구하면 당장은
해당 부문의 진흥시킬 수 있지만 종국에는 전체적 균형을 훼손하게 되어 생태계의 유지 가능성을 위협하게 된다. 또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지 않고 특정 개체군의 시각에서 인위적인
개입을 할 경우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거나 전체적인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종래 중소기업정책이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한다.
단순화해서 예를 들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생태에 사자와 영양만 같이 살고 있다고 하자. 세렝게티에는 계절이 둘만
있다: 건기와 우기다. 건기에는 물과 풀을 찾아 대이동이
일어난다. 많은 영양떼는 건기 도중 굶어 죽는다. 만약 건기에
풀이 말라 영양이 굶어죽는 것이 불쌍하다고 해서 사료를 뿌린다면 어떻게 될까? 일시적으로는 영양의 개체
수가 늘어나겠지만 사자에게 먹히는 영양수도 늘어나니 사자 수도 늘어난다. 결국은 사자에게만 좋은 일을
한 꼴이 될 수 있다. 심지어는 늘어난 영양 때문에 풀이 남아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사료 덕분에 살아남은 영양은 아마도 과거 같으면 가뭄과 사자를 이겨내지 못했을 영양일 것이다. 이들이 살아남아 남은 풀을 먹어치우면, 풀밭이 사막화되서 발빠르고
건강한 영양도 먹이가 없어 같이 몰락할 수 있다. 사료 뿌리는 사람에게 잘 보인 영양이나 자리를 먼저
차지 하고 있던 영양이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바로 그렇다. 부동산을 먼저 차지한 기업이 살아남는다. 중소기업 정부에서
주는 각종 보조금 냄새를 잘 찾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과당경쟁도 일어난다. 벤처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2001년 2조 3천억원대의
프라이머리 CBO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 벤처 보조금은 여기에 끼지 못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엄청난 부실로 귀결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 시 일어난 일이라서 노무현 정부는 아무런 소리를 안했다. 나 개인적으로도 벤처를 시작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매출 실적이 없는 기업을 하는 사람을 안다. 작년에 운영자금이 다 떨어져는데, 다시 한번 더 신기술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정책자금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다. 그에 의하면 앞으로 3년은 걱정 없단다. 그 전에도 과기부 자금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이런 지원자금이 바로 세렝게티에 퍼다 뿌린 사료가 된다. 안철수가 말한 삼성 동물원, LG 동물원, SK 동물원에는 사자가 있다. 그 사자에게 먹히는 초식동물 사료를 정부가 주고 있다면 정부는 궁극적으로 그 사자를 키우는 꼴이 된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서 경쟁적 관계보다 착취적 관계가 더 우세하면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원한 보조금이 결국 대기업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II. 양에 의존하는 기존의 중소기업 정책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신성장 동력 또는 신성장 모델에 대한 논의는 주로 산업정책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즉 향후 신성장 산업이나 부문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을
통해서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벤처 산업 육성, 중소기업
지원, R&D 투자 지원, 2차 전지, 태양광, 바이오, 환경
산업 등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자금 지원 증가, 투자세액공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지금도 역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모두가 신성장동력을 얘기한다. 언론 역시 각 후보자의 비전이나
정책에 대해 논의할 때 신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묻는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든 결국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원을 얘기할 것이다. 모두들 양적인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던 박정희 시대의 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의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관련 정책이다. 대기업 및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에
비해 중소기업 지원이 소홀한 것을 보전하기 위해 과거 군사정부 시절부터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다양하게 구사하였다. 대기업 및 수출 기업에 대한 지도 금융에 따른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감안하여 중소기업 법인세 감면, 정책자금 제공, 은행대출 중소기업 비율 규제,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 중소기업 신용보증 등을 제공했다. 정부정책 상 중소기업 자격조건을 졸업할
때 사라지는 혜택이 100여가지가 넘는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그만큼 한국에서 중소기업 지원 대책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소기업부문의 고용 안정과 성장성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중 약 1/3의 경우 영업이익이 이자비용보다 낮다. 경상이익률도 대기업에
비해 낮을 뿐 아니라 계속 악화되고 있다. 대기업의 설비투자 증가 속도에 비해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임금 격차도 늘고 있다.
그런데, 정책 환경이 바뀐 만큼 중소기업 정책이나 산업정책도 새로운 시각에서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외환위기 이후 재벌을 위한 지도 금융과 정책자금이 대폭 줄고 은행의 대기업 대출 편중이 사라지면서 금융시장에서
기업 규모에 따른 자원배분의 편중에 따른 폐해는 크게 줄었다.
그러므로 과거
개발독재 시대 시작한 케케묵은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대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이 많았던 만큼 그에 대한 보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서 양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 간 협력적인 측면도 있었으므로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근래에 들어 강조되는 부분은 경쟁, 협력 보다 착취 관계이다. 상호 연관 관계에서 경쟁이나 협력 보다
착취 구조가 우선이라면 기존의 정책 초점도 바뀌어야 한다.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국제적으로도 현재 한국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하기 보다는 과중할 정도로 많다. 가장 크게는 중소기업에게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것이고, 투자세액공제도
대기업보다 더 후하다. 한국의 법인세는 2억까지는 10%, 2억에서 200억까지는
20%, 200억 이상은 22%다. 이것만으로는
과표소득이 200억 미만이 되도록 회사를 쪼갤 이유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중소기업 투자세액 공제 등의
다른 혜택까지 고려하면 사장 보다 회장이 되는 것이 훨씬 낫다. (추가: 2008년 전까지는 1억 이상이면 25%였으나 이명박정부가 낮추었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의 왕국이라는 독일에서는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같은 세율을 적용한다. (법인세 15% + 통일연대세 5.5%) 기업 쪼개기를 할 필요가 없다. 아마 독일은 한국과 같이 회장님이 많지 않을 것이다. 호주 역시 일률적으로 30%다. 미국은 한국처럼 법인세에 누진세율을
적용하지만 막상 과표소득이 $335,000만 넘으면 똑같이 35%다. 영국 역시 비슷해서 30만 파운드까지는 20%, 150만 파운드 이상이면 모두 22%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 대출도 급격하게 늘었다.
은행 대출에서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 비율을 따로 챙기는 나라도 보기 드문 경우이지만, 은행권
대출 중 중소기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에 달하여 서구 국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2012년 8월말 기준으로 국내예금은행의 원화대출 1,096조원 중 기업대출이 616조원인데, 그중 459조원이 중소기업 대출로 전체대출의 41.9%, 기업대출 중 74.5%에 달한다. 은행이 안전한 대기업과 주택담보대출에만 빠져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 데이터도 안보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자금은 어디에 갔다 썼을까? 명목 GDP는 2003년 767조원에서 67% 증가하여 2011년 1237조원이 되는 사이, 2003년 말 240조원이었던 중소기업 대출이 약 90% 늘어 지금은 459조원이 되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은 투자도 부진하고 이익도 낮고, 생산성 격차도 더 나빠졌단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외환위기 전에 대기업은 자신의 부실을 숨기기 위해 은행 대출을 더 받아서 덮었다.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중소기업 부문에서도 혹시 그런 일이 적어도 일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중소기업 성장이 부진한 이유로 은행이 대출해주지 않아서라든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출을 늘려야 한다는 말은 그만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 자금은 어디에 갔다 썼을까? 명목 GDP는 2003년 767조원에서 67% 증가하여 2011년 1237조원이 되는 사이, 2003년 말 240조원이었던 중소기업 대출이 약 90% 늘어 지금은 459조원이 되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은 투자도 부진하고 이익도 낮고, 생산성 격차도 더 나빠졌단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외환위기 전에 대기업은 자신의 부실을 숨기기 위해 은행 대출을 더 받아서 덮었다.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중소기업 부문에서도 혹시 그런 일이 적어도 일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중소기업 성장이 부진한 이유로 은행이 대출해주지 않아서라든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출을 늘려야 한다는 말은 그만 할 때가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지난 글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한국의 신용보증제도는 대표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다. 과거 지도금융 시절에서 유래한 정책으로
정책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고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작년 상반기 현재 한국의 중소기업 신용보증액은 약 60여 조 원에 달하며 금융권 중소기업 대출 중 약 14%에 해당하는
대출이 신용보증 하에 이루어 지고 있다. 이렇게 국가 신용보증액이
GDP의 6%에 달하는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신용보증을
늘린다고 중소기업이 잘된다는 증거도 없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 부문의 활력이 활발한 대만의 경우 중소기업 신용보증은 GDP의 2%에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1%도 안되고, 프랑스는 0.5%도
안 된다. 이는 중소기업부문의 건강과 국가의 신용 보증 제공 사이에 관련성이 낮다는 증거다. 또 90년대 비해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GDP대비 신용보증 비율이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은 지금의 신용보증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신용보증기금
운영방식은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점이 많다. 우선 보증 대상 기업이 잘못되어 있다. 작년 상반기 신용보증총액 45조 중 약 39조를 차지하는 일반보증의 경우 최고 보증한도가 70억에 달한다. 금융시장에서의 시장 실패를 보정하기 위해 운영하는 공적 기업보증제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는 보증한도가
너무 높아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최근 금융위기 시에는 이 한도가
100억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에 비해 미국의
SBA(Small Business Administration)가 운영하는 일반보증 한도는 2008년까지 2백만 달라였다. 2008년 말 금융위기시 잠시 5백만 달라로 증액되었지만 여전히 SBA가 타겟으로 삼고 있는 고객은 35만 달라 이하 대출고객이다. 영국에서 운영하는 EFG(Enterprise Finance Guarantee) 제도에서도 보증 한도는 1백만 파운드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일반보증 39조 중 3억 이하 비중이 17조 (43%)에 불과하고, 10억 초과 대출의 비중이 30%를 넘는다.
지금과 같은
신용보증제도는 주로 부동산이 많은 기존 기업에 집중되어 중소기업부문 육성 보다는 중소기업 구조조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신용보증 만기가 1년이지만 지속적인 연장으로 보통 5년씩 유지하여 신규 기업보다는 기존 기업 위주 지원에 쓰여지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창업 3년 내 기업 위주로 운영하는 대신 만기를
7~10년 사이로 운영하고 있다. 보증비율이 높아(평균 85%) 은행은 자체적으로 신용심사능력을 개선할 인센티브가 없어 부동산 위주 심사 후 신용보증을 받아오도록 주선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 때는 만기를 일괄적으로 1년 연장하고, 보증 비율을 100%로 올리는 등 경제 부양 조치의 일환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또,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부실율이 높아 계속적인 국가재정 투입과 금융기관 출연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대위변제율(대신 갚은 비율)이 약 4.7%, 순변제비율이 3.2%에 달했고 지금은 5%까지 올랐다. 만약 이 경험치가 지금의 보증액에 적용된다면 일반보증 40조원 중 앞으로 약2원의
대위변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신용보증에 의해 창출되거나 보존되는 고용 대비 비용이 지나치게
높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40조원대까지 내려온 신용보증액을 금융위기가 닥치자 급속도로 다시 증대시켰다. 보증 비율도 과거 85% 수준이던 것을 90%, 95%, 심지어는 100%까지 올리기도 했다. 이명박이 자기 덕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빨리 극복했다고 선전하지만 그 뒤에는 바로 이런 맹목적인
신용확대가 있었다. 대마불사가 아니라 전마불사(全馬不死)였다. 자기
정권 기간 중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버블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저축은행 부실을 눈감아주었고, 원리금
상환이 돌아온 주택담보대출 거의 전액을 재연장하도록 했다. 3년 임기의 은행 경영진은 자기들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정부가 먼저 명령을 내려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또 다른
예로 민주당을 들면, 민주당은 2011년 7월, 중소기업 10대 정책을
발표하면서 신용보증액을 대폭 증가시키겠다고 했다. 2020년까지
10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정책이었다. 다행인 것은 다른 민주당 정책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지금 역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럴 것을 모르고, 작년 민주당의 경제민주화특위에 가서 이 정책을 보고 화가 나서 공개석상에서 험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프로가 노는데 가서 아마추어짓을 한 것인데 지금도 창피하다.)
폐렴에 걸린
환자에게는 항생제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의 정책은 폐렴환자에게 해열제가 효과를 보지 못하자 해열제
투약 양을 늘리는 것과 같다. 약은 많이 쓰는데 효과는 없다. 그러다가
도리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현재의 정책은
중소기업 생태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기존의 정책을 재탕하는 것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중소기업 대출비율을 규제하고 다양한 정책자금이 있으며, GDP 대비 신용보증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중소기업 부문의 투자 감소, 생산성 향상 부진, 고용 증대
부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신용보증과 각종 지원 헤택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이 효과가 없거나 도리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III. 생태계 시각에 의한 바람직한 중소기업 정책
중소기업
부문의 부진에는 대외적으로는 중국경제 등의 부상에 따른 중소기업 경쟁 환경 악화와 대내적으로는 대기업 경제력 집중에 따른 독과점 폐해 및, 중소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 업의 생산성 향상 부진을 들 수 있다. 중국의
등장은 생태계에 새로운 경쟁자 및 협력자가 등장한 것을 뜻한다. 중국의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국내 저부가가치
기업들은 사양화되거나 또는 해외 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내적으로는 외환 위기 이후 대기업 부문의
경제력 집중이 도리어 더 강화되면서 하청구조가 심화되고, 불공정거래가 지속되고, 협상지위가 약화되었다. 양자간 관계는 협력 보다 착취적 관계의 성격이
더 강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김상조가 말하는 낙수효과 실종현상이다.
대기업 대비
생산성과 임금 격차가 심해지는 것은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 부문에서의 구조조정이 부진한 것도 작용하고 있다. 이는
생태계에서의 자연 도태(Natural Selection)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부문에서는 구조조정이 상당히 이루어 진 것에 반해 중소기업에서는 그러한 구조조정이 아직도
미완이다. 대기업 부문의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수익성이 개선된 것에 비해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을
커버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비중은 여전히 약 30%에 달한다. 이들
기업이 여전히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기존에 갖고 있던 부동산 담보에 의한 것이다.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이 정부지원의 단물을 받아먹으면서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
세계화와 불공정 경쟁 심화 및 구조조정 부진 등의
문제를 외면하면서 이미 효과가 없음이 드러난 정책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기존이 정책 구도에서 또아리를 튼 이익집단의 저항이 예상되지만 누군가는 바꾸어야 한다. 생태계에서
구성원들 간 관계의 성격이 달라짐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정책의 초점 역시 달라져야 한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적응과 혁신을 통한 진화다. 국내 독과점 대기업에 의한 폐해는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공정거래정책을 강화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구조조정 부진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업이 발전하여 도태되는 기업을 대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요약하면, 한국과 같이
경제력 집중이 전세계적으로 유례없게 진행된 나라에서 중소기업 부문에 대한 지원을 하면 그 궁극적인 혜택이 상당 부분 대기업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관계는 경쟁, 전문화, 협력, 착취가 동시에 존재한다. 지금까지의
지원책은 그 관계가 경쟁관계라고 가정한 것에 해당한다. 만약 착취 관계가 중요 문제라고 하면 지원 확대가
그 착취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정 부문을
지원하는 종래의 직접 지원정책보다는 생태계에서 경쟁과 진화가 적용되도록 하는 간접 지원책이 도리어 중소기업 부문의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적 자본 형성을 장려하고,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좀비 기업이 우수 기업의 성장을
막지 않도록 시장 규율을 강화하는 것이 도리어 궁극적으로 더 효과적인 정책일 수 있다. 중소기업에 특혜를 주는 법인세제나 세액공제 등의 혜택 대상도 줄이는 것이 원칙적으로 더 맞다. 중소기업 신용보증의 타겟을 신규기업, 소규모 기업 위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세금등 특혜도 이를 통해 은행이 자체적으로 중소기업 신용심사 능력을 늘릴 인센티브를 늘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소기업 부문에서의
신용 왜곡을 줄이는데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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