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통행세 장사: 대기업에서 시골 마을까지 퍼진 독버섯

30여년 전 이맘때 여동생 및 친구와 함께 설악산에 갔었다. 서울을 떠나 인제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백담사 입구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그 당시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가난한 강원도 벽촌이었다. 유일하게 있던 마을 가게는 침침한 전구가 천장에서 늘어뜨려져 있었고 바닥은 다져진 흙이었다. 가게이자 우체국이기도 해서 바깥 벽에는 주황색 공중전화가 하나 덩그러니 걸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민박 집에서 하루를 지내고 쌀쌀한 공기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걸어올라간 백담계곡의 가을 경치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그 백담계곡을 한참 올라가다보면 옆으로 백담사가 보인다. 그때는 단지 한용운이 머물던 곳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한적한 절이었다.

오늘 한겨레에 백담사 앞에 있는 그 마을에서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백담마을 주민출자 버스사업…급여 월 2백 넘어) 용대2리 마을부터 백담사까지 가는 7.2km 구간을 왕복 운영하는 마을버스기업에 관한 기사다. 1996년 출자금 7,500만원으로 시작한 기업이 작년 버스 10대, 매출 16억원, 직원 수 16명, 작년 마을발전기금 출연액이 4억원인 "알짜 공동체 기업"이 되었단다.

조금 이상했다. 뭐 대단한 사업이라고 그렇게 이익이 많이 날까? 읽다 보니 곧 의문이 풀렸다.  

용대향토기업의 버스사업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백담마을의 살림살이는 인근 마을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담사에서는 어려운 마을 돕자고 버스사업권을 넘겨주었고, 마을에서는 그 사업의 이익금을 잘 활용했습니다.
그 전에는 백담사에서 버스사업권을 갖고 있었다고? 그 말은 곧 독점권을 갖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알아보니 백담마을부터 백담사까지는 차로 들어갈 수 없다. 용대2리에 있는 백담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 마을버스의 버스료는 얼마일까?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편도만 2천원이다. 7km, 10분 거리에 2,000원을 받는다. 너무 비싸다. 이에 비해 그곳에서 속초까지 가는 버스료가 3,100원이란다.

비싸면 대신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좁은 길에 버스가 빠르게 다녀서 위험하니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단다. 버스는 사람이 차기만 하면 떠나는 방식인데 성수기에는 하루에 150회를 넘는단다. 이 교통위험 문제는 이미 여러차례 이슈가 되었지만 국립관리공단과 인제군이 서로 미루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단다.  인제 경찰서에서도 나름 노력 중이다.
인제경찰서는 4월 13일, 인제군 북면 용대리 향토기업 사무실을 방문 백담사 셔틀버스 운전기사 등 15명을 상대로 차량 출발전 승차자 안전벨트 착용, 교통법규 준수 등 교통사고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백담사는 매년 8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명소지만 도로폭이 좁아 항상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주위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렇게 위험한 길을 걸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백담사만을 가려는 사람이든 설악산을 등산하려는 사람이든 마을버스를 타지 않을 수 없다.

종합하면, 이건 말이 좋아 사회적기업이지 실상은 독점기업이다. 겉으로는 버스 사업이지만 실제로는 통행세 장사다. 연 매출 16억이니 적어도 40만명을 상대로 10분 거리 왕복에 4,000원씩 받아 마을과 백담사가 나누고 먹고 있다.  이게 사회적 기업인가? 사회적기업이니 마을 공동체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을 내걸었지만 결국 마을과 백담사가 국민 세금으로 만든 길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 한겨레는 늘 그렇듯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 

이런 식의 통행세 장사을 최근 다른 곳에서도 겪었다. 인제 점봉산에 있는 곰배령에 1막2일로 가는 여행사 프로그램에 따라갔었다. 큰길에서 곰배령 앞까지는 비포장도로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비포장도로 쳐놓고는 길 가에 잘 차려놓은 대형 민박 집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 있었다. 아니, 생태계 보호를 위해 하루에 200명만 입산이 허용한다면서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 대답이 기가 찬다. 입구 민박집에서 숙박한 사람은 그 200명 한도와 상관 없이 모두 들어갈 수 있단다. 헐!

올라가보니 이런 억지 꼼수로 민박집이 많은 이유가 더욱 알겠다. 등하산에 3시간 정도 밖에 안걸리는 평탄한 길이다. 아침에 자동차를 몰고 가면 등산하고 나서 그 길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거리다. 이런 꼼수나마 쓰지 않으면 사람들이 근처에 묵지 않고 그냥 갈 것이다.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탐방객 수를 제한했다고 하지만 결국은 민박집 장사만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머문 민박집도 말이 민박이지 주인은 따로 있고, 낮에 보이던 분은 밤이 되니 차를 몰고 퇴근했다. 주인은 서울 산단다.

사업 중에 가장 좋은 사업은 길을 막아 놓고 통행세 받는 사업이다. 재벌 총수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물류, 광고, 전산등에서 통행세 장사, 즉 거래 단계 추가를 통한 사업 기회 제공으로 돈을 빼돌리는 장사가 그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외에도 한국 사회 곳곳에는 이런 통행세 장사가 창궐하고 있다. 교육의 질은 형편 없는데도 대학 졸업장을 주는 부실 대학도 통행세 장사다. 교감 승진에 요긴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형편없는 교육대학원도 통행세 장사다. 시간강사의 저임 노동 덕에 높은 월급 받고 있는 대학교수도 알고 보면 통행세 장사 영업직원이다. 온갖가지 자격증 제도도 통행세 장사다. 도로공사 퇴직 직원들이 차지한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도 통행세 장사다. 최근까지도 한 건물 안에 공증사무소 수를 하나 밖에 둘 수 없게 해서 지금도 삼성동 무역센터 건물에는 공증인 사무소가 하나 밖에 없는 것도 통행세 장사다.

아담 스미스는 업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담합할 생각만 한다고 했다. 한국에는 독점의 독버섯이 대기업에서부터 시골 마을버스와 민박집까지 퍼져있다.

댓글 3개:

  1. 통쾌한 글이다.마침 어제 수렴동 계곡을 내려와서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가려고 이글에서 말하고 있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길어서 7KM를 걸어서 왔다. 더큰 문제는 단순히 그들이 통행세로 받는 2,000원뿐만아니라 아니라 걷는사람들을 위한 길이 없는 것이다. 좁은길을 버스가 위협적으로 질주하고 통행인들은 길가에 서서 과속하는 버스들을 피해야했다. 단순히 통행세만 걷는 것이 아니라 선택 자체를 없애버린 이사회의 통행세 제도에 공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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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뚫어진 통행세 문제 통감합니다.
    대한민국에만 있는 현상일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겠죠?
    이런 문제를 풀어낼 해답은 어떤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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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올 여름 백담사를 들렀었는데, 백담사에 들어가려면 기사에 나오듯이 버스를 타고 가야합니다. 7km 거리라 걸어서 가기에는 시간적 제약이 상당하죠. 이것이 일종의 독점이고 통행세라는 건 생각치 못했었는데 포스트를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중 의아한 게 있어서 몇 가지 질문 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통행세 문제를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말했듯이 마을이 운영하는 버스가 없으면 백담사로 들어가기란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상당히 어렵습니다. 결국, 버스를 운영할 수 밖에 없는데, 독점적 지위로부터 나오는 통행세를 없애려면

    1. 인제군이 자체적으로 통행버스를 운용하는 방안. 이때, 요금은 무료 또는 상당히 낮은 가격

    2. 현재 형태의 버스운용을 유지한채, 버스탑승가격을 낮추는 방안 혹은 발생하는 수익에 인제군이 높은 세금을 물리는 방안

    만 생각나네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비판하시는 지점도 이해가 가지만, 가 강조하는 "마을주민과의 상생"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백담사 통행에 관한 통행세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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