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표류하는 경제민주화 논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보아 세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첫째는 그것이 지나치게 재벌문제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것도 너무 이상론에 치우쳐 있다. 두번째 문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소득양극화 문제 개선인데 막상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은 방치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저부담 저복지 체제 및 기형적인 조세체계를 합치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그런데도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해 내놓은 정책방안은 어설프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번째 문제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소수 전문가 사이의 담론 경쟁이 되어 버렸다. 말로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라면서 막상 국민의 참여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출총제, 금산분리, 순환출자 등 전문용어는 날아다니는데 국민들은 이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인지 어리둥절하다. 
 
내가 보기에 상황이 이렇게 되버린 데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엘리트 지배구조 탓도 있지만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좁은 시각과 지적 편향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박근혜 측에서 대기업과 재벌문제를 공정거래 차원에서 개선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야당과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은 재벌개혁이 없는 경제민주화는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정거래 개혁과 재벌 지배구조 개혁만 해서도 안된다. 설사 지금 양 진영에서 나온 안들의 대부분이 법안으로 통과된다고 해도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별이 오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또, 설사 양극화 해소에 조금 기별이 와도 그것만으로는 국민들이 자기들의 삶에서 실제적인 혜택을 보기는 어렵다. 횡령을 저지르는 재벌총수를 감옥에 넣고, 단가를 부당하게 후려치거나 일거리를 몰아주지 못하게 해도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이런 점을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블로그에서 언급한 김기원, 김진방, 김상조 등도 모두 경제민주화를 크게 보아 재벌개혁과 양극화 해소로 인식하고 있다. 장하성, 이동걸, 유종일, 전성인 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내놓는 경제민주화 방안이 지나치게 재벌개혁 방안에만 경도되어 있고, 그것도 지나치게 이상론에 치우쳐져 있고, 무엇을 할 것인가만 얘기하고 어떻게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길 것인가는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지배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계약법과 자본시장이 발달한 영미권 국가에서만 보이는 형태이고, 대부분은 가족기업이 대부분이다. 한국이라고 다를 수 없다. 또, 국회에서 소수당인 민주당과 무소속인 안철수가 자기들의 주장을 입법화 할 수단은 없다. 결국은 여당이 동의하는 만큼만 가능하다. 또, 출자총액 제한이나 순환출자를 금지 또는 해소하도록 강제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것을 추진할 것인지, 또 그 다음은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순환출자의 고리 중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고리를 끊어서 다단계 출자 구조로 만들면 다됐다고 손 털 것인가? 과연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상속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할 경우 횡령과 배임으로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저절로 환골탈태할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막상 소득 양극화에 대해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양극화 문제의 복잡성과 한국 지식사회의 진영화가 겹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상조는 "기업·노동·복지 정책의 체계적 조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그가 자기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꺼리는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일게다. 김상조는 기업지배구조와 금융감독정책 전문가이지 거시경제정책이나 노동 복지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이는 김상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정우, 이동걸, 김진방 처럼 문재인 진영에 가있는 사람들이나, 장하성, 전성인 처럼 안철수 진영에 가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김기원처럼 독립적인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조세, 재정, 복지, 노동 정책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자기가 잘 아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들의 지적 편향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한국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연구 수준이 그야말로 조악하기 짝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학문적 연구를 해야만 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각자 자기의 전문 연구분야가 있지만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닌 경제정책에 대해 활발히 발언을 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정보비대칭 문제를 다룬 미시경제학으로, 크루그만은 국제무역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둘 다 세계화, 소득 불평등, 시장만능주의, 긴축재정를 비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각 분야에서 정리된 연구들이 쌓여있어서 그 지식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럴 여건이 아직 안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소득 양극화에 관련된 연구 자체가 거의 보기 힘들다. 가장 크게는 통계가 없다. 양극화 문제의 복잡성에 비해 소득 양극화에 대한 기초 통계 조차 제대로 없으니 말해 무엇하랴. 지니계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하다는 소리는 그것이 도시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거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맥이 빠지게 된다. 막상 돈 많은 사업가와 전문직은 빼고 계산했으니 말이다. 납세자 정보 보호라는 핑계로 공개를 거부하던 국세청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내는 납세자 기준으로 상위 1%의 평균소득을 밝힌 것도 지난 9월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 자료도 소득 공제를 뺀 숫자이니 총급여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 소득이 많을 수록 공제혜택도 많이 받는다. 또, 총 가구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국인의 자산배분 구조상 80%가 부동산이라는데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처럼 한국에서 불투명한 소득은 없다. 마지막으로 소득이 아니라 자산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긴, 이런 납세소득 기준 통계도 처음이니 그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아예 알길이 없다.

통계가 없으면 경제학자는 전문가로서 기여를 하기가 어렵다. 분명히 소득 양극화는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기제에 의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일반 식자층 수준의 얘기 밖에 할 수가 없게 된다. 단지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 아니다. 일반 시민의 의식과 여론을 형성하기도 어려워진다. 일반적이고 모호한 불만으로만 남는다. 문제의 우선 순위를 잡기도 어려워서 정책화 하기도 어렵다. 온갖가지 연막술과 어거지 반론을 상대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된다.

그렇다고 기업, 노동, 복지 관련 연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국책연구소들이 중소기업 분야에 대한 연구를 안한 것도 아니고,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대체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문제, 실업보험에 사각지대가 많고, 보험금이 쥐꼬리만하다는 문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정책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거의 모두 기존의 정책환경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계층이 있다. 따라서 개혁을 하려면 정치적 리더쉽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굳이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 자신의 정치자본을 쓰려는 대통령은 없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진영 양극화가 겹치면 문제는 더더욱 꼬이게 된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에 대한 꿈이 체현된 것이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40%의 박근혜 지지율이다. 이에 대한 반대세력은 호남세력과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운동권 출신 인사로 채워진 민주당과, 귀족노조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과거 운동권 시절 익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이 추진한 FTA에 대한 정신분열적 대응 태도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양당체제에 대한 불만과 환멸이 안철수 현상을 낳았지만 준비가 덜 된 채 뛰어들어서 출마하자마자 단일화 논의에 함몰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처럼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증세를 얘기하는 것 자체를 겁내는 나라가 되었다. 각종 세금 감면을 줄인다고 하지만 바로 그게 증세다. 그러나 증세란 표현은 극구 피한다. 마치 세율 조정만이 증세인 양 한다. 보편적 증세를 언급했던 안철수도 이제와서는 말을 흐린다. 비록 발언 후 하루만에 후퇴를 했지만 정치권에서 부가세 증세를 처음 거론한 것이 여당의 김종인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뒤틀린 정치구도를 반영한다. 문재인이나 안철수 진영에 참여한 학자들은 어느덧 학자가 아니라 정책기술자가 되어서 뭐 화끈한 것 없냐고 물어보러 다닌다.

도대체 GDP에서 조세부담율이 19%에 불과하고,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이 없다시피 하고, 사회보장에 쓰는 예산이 GDP의 9% 밖에 안되는 나라가 무슨 수로 소득 양극화를 막겠다는 것인가?  자기 나라 국민의 교육을 사교육과 입시지옥에 몰면서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주택 값이 지금처럼 높고 아이를 낳아보았자 제대로 기를 수 없는데 어떻게 출산률을 높일 수 있나? 한국의 정치인과 정책가들은 신이 내려준 비법이라도 갖고 있는가?

소위 시대 정신이라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이렇게 다시 한번 일부 전문 지식인들이 자기의 지적 능력을 뽐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각 캠프에 갈려서 내는 방안이니 서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재벌개혁에 몰두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복지는 마치 경제민주화와 상관 없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한 성장 동력 찾기, 선거용 사업 거리 찾기, 중소기업 퍼주기 공약하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재산세도 낮고, 재산소득세도 낮고 부가가치세도 OECD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조세체계 개혁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세계에서 소득 대비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는 공교육 체계을 개혁하자는 논의도 들을 수가 없다. 성장률이 2%로 내려가고, 부동산 시장은 붕괴하는데 재정정책에 대한 논의도 없다.

경제민주화 논의의 표류를 보면서 다시 한번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더 나빠져야 좋아질 것 같다. 부동산 붕괴 후에야 희망이 있을까?

댓글 2개:

  1. 약 4년 전 작성된 포스팅이지만 여전히 언급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지지부진.. 곪고있는 듯 보입니다.... 정말 블로그 주인장님께서 올리신 어느 포스팅의 제목처럼 잃어버릴 10년으로 가고있는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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