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1일 일요일

사회경제학회 여름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어제 사회경제학회 여름 학술대회에 당일로 갔다 왔다. 
산업구조조정을 갖고 종합토론을 하는데 주제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을 몇주 전에 해왔다. 사회경제학회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는 학자들이 많은 그룹이다. 그런 모임에서 나에게 연락한 것은 의외였다. 
잠시 망서리다가 응하기로 했다. 사회경제학회는 돌아가신 아버님이 회장을 했던 학회다. 또 이 학회는 고 김기원 선배도 참여하던 그룹이었다. 두분을 기리는 마음에 가기로 했다. 이번에 가서 알았는데 초대와 2대 회장을 변형윤 선생이 하시고 아버님은 3대 회장을 하셨다고 한다. 87년에 결성되었으니 아버님이 회장을 하셨을 때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하다. 30년이 지나 이제 아버님과 김선배, 두분은 안 계시다. 그당시 아버님 나이가 된 내가 아버님 후학들 앞에 서니 지난 30년 세월과 앞으로 흐를 30년 세월이 떠올라 가슴이 조금 먹먹했다.
발표는 그 동안 여러 자리에서 했던 얘기에 김영욱과 김상조 선생의 자료를 보태어서 조금 더 큰 시각에서 프리젠테이션으로 제시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부문의 부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2011~2012년부터 기업부문 경영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상장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작년 2014년부터 이것이 아예 거의 감소세로 전환했다.
2010년 이후 이자보상비율이 1 미만인 한계기업이 증가하여 이제는 전 상장사의 30% 내외로 고착화 되었다. (vs. 2009년 25.8%)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상장회사를 속칭 좀비 기업이라고 하는데 2015년에 이들 숫자는 244개다. 그중 부채비율 200% 이상인 기업 수는 69개이고 총 차입금 51조 원이었다. 이런 기업들이 존속하는 한 경제의 활력은 죽어갈 수 밖에 없다. 산불을 막다가 생태계가 깨졌던 엘로스톤 숲과 같다.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을 상회하는 정상기업의 경영실적은 적어도 이자 지급능력 면에서는 현상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영업이익률이 하락했고 매출액 증가율은 0%에 가깝게 떨어졌다. 
기업부실은 일부 산업에 국한 된 것도 아니다. 전 산업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에너지산업과 미디어, 전자전기산업이 심각하다. 여기에 최근 조선산업이 추가 되었다. 수익성과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규모 확장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한중일 삼국이 전 세계 조선산업을 석권하게 된 현상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아시아의 동북아 삼국이 똑같이 그렇게 되었을까? 한국 3대 조선사가 무슨 자기들만의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2010년 이후 해양구조물 주문을 전세계적으로 독식 했을까? 
내 생각엔 이 모든 것은 위험을 무시하거나 위험을 대신 맡아주는 금융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지도하는대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 시스템이 3국 모두 똑같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이것은 일본이 시작한 방식으로 한국이 모방해 채택했고 지금은 중국도 동참했다.
조선산업은 공사 기간이 길고 경기 부침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주문을 받고 최종 대금 받을 때까지 몇년씩 시간이 걸리는데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들기 위해선 설계, 자재와 인건비가 먼저 계속적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대금을 받는데도 위험이 따른다. 비용이 초과될 때도 있고, 주문 해 놓고 시비를 걸 수도 있고, 기껏 만들어 놓았는데 아예 안 받아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주문은 받았지만 막상 이익이 날지는 몇년 뒤가 되어봐야 안다. 아찔한 위험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한 때 주문이 잘 들어온다고 해서 마음 놓고 사업 규모를 키워도 안 된다. 너무 키워 놓으면 나중에 경기가 하락했을 때 곤란해진다. 이미 만들어 놓은 독이며 직원들을 마냥 놀려야 한다. 직원들이 대부분 정규직 노조원인 서구 기업에선 이러나 저러나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경기가 좋아도 너무 공격적으로 수주하면 위험하다. 
금융산업 지원도 한계가 있다. 은행은 자기 자본 대비 한 기업에 대출해주는 액수에 한도를 둔다. 보통은 자기 자본의 10%를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너무 큰 주문에 보증을 서주면 금방 한도에 걸린다. 그래서 서구 금융 시스템에선 은행으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이행보증을 받기가 어렵다. 위험과 수익성을 감안해서 수주할 수 밖에 없다. 사실 한국 민간 은행도 이행보증을 서는 것에는 조심스러워 했다. 선수금 보증 (Refund Guarantee) 시장에서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거의 60%를 차지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조선산업은 그런 조심성이 훨씬 덜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과거에는 안 그랬지만 요즘은 조심스러워졌다. 중국은 지금 한국 보다 더 방만하다. 뒤에서 은행이 받쳐준다. 
노동시장 구조도 큰 역할을 한다. 경기 침체에 따라 일감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하면 유연성 부족으로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다. 정부가 노조를 탄압하거나, 노동시장을 이분화해서 비정규직이나 산업연수생을 이용할 수 있으면 그런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주문이 줄면 이들부터 쳐내면 된다. 원청업자들은 비교적 안전하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서 한국은 서구 기업들에 비해 더 공격적으로 수주 영업을 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자원 붐이 일어나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한 한국이 가장 많이 성장했지만 이제는 중국도 여기에 껴들었다. 그러나 공격적인 만큼 사고가 날 가능성도 높다. 이번에 그런 사고가 터진 것이다. (조선 산업 부분은 시간 관계 상 발표에서 생략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구조조정이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에서 어느 나라가 되었든 항상 있게 마련인 과정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경쟁과 효율적 자원배분에서 필요불가결한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이것을 마치 아주 특별한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진즉 수시로 상시적으로 해왔어야 한다. 지금은 계속 미루다가 여러 개가 한꺼번에 쌓였다. 
그리고 창업, 성장, 구조조정, 매각, 폐업에 이르는 기업부문의 인생주기 중 창업 못지 않은 고위험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행위를 누가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구조조정의 대리인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지배주주, 경영진, 채권단, 노동자, 법원 중 누가 주도하는 것이 좋은가? 아마도 의사결정에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원칙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자가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일 것이다. 그게 누군가? 경영자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해보는 말에 불과하다. 아무도 그런 사람들에게 평상시라도 돈 주고 기업 경영을 맡기지 않는다. 
둘째, 누구의 이해부터 고려해야 하는가? 재산권 청구에는 우선권 차례가 있다. 채권자가 먼저고 주주가 맨 마지막이다. 경영자나 피고용자의 재산청구권은 거의 없다. 사업 초기에 자본을 대고 잘되면 큰 돈을 벌지만, 사업이 잘못되면 한푼도 못 건질 수 있기로 한 것이 주주다. 채권자는 사업이 잘못되면 이자나 원금 손실 가능성은 있지만 담보 잡은 것만큼은 회수 할 수 있다. 이게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명이라고 하는 주식회사의 기본 구조다.
이것만 보더라도 왜 구조조정이 복잡하고 위험한지가 드러난다. 정보를 제일 많이 갖고 있는 경영자가 주도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그들은 재산 청구권이 없다.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재산 청구권들의 다양한 입장을 아우르면서 최선의 결정을 하도록 할 것인가? 이런 딜레마 아래에서 어떻게 의사 결정자가 최선의 결정을 할 유인을 가지도록 유인합치적(incentive compatible)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서구의 자본주의는 이 프로세스를 자기들 역사 안에서 경험을 통해 만들어 냈다. 그게 사적 협상에 의한 자발적 채무조정이고 파산 절차다.
한국은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유치 단계에 있는 불완전한 자본주의 국가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개발독재 시대 도입된 구조조정 방식의 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도 사실 그것 때문에 터진 것이다. 안정된 장기독재정권에서 금융의 모든 면을 틀어쥐고 있던 시절에 하던 습성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래서 5년 임기 김영삼 정부 시절 급속도로 커진 재벌기업에 쌓인 부실을 과거 정부가 나서서 교통정리하던 방식대로 하려고 했도 말이 안 먹혔다. 그러다가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외국인 채권자가 나가면서 나라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대리인 문제에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정부가 직접, 또는 뒤에서 채권단을 조종하면서 하려고 한다. 이것은 가장 적은 정보를 가진 자가 결정을 한다는 문제점 외에도 최선의 결정을 할 유인이 없는 자들이 결정을 한다는 문제도 갖고 있다. 세상 어느 나라도 기업구조조정을 관료와 채권단에게 맡기면서 그들이 최선의 결정을 할 유인합치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들과 하등 다를 이유가 없는 한국이 쩔쩔매는 것은 당연하다.
구조조정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이 기업을 지속 시킬 것인지 아니면 청산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과 기업 전망을 해야 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러나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최악 시나리오와 희망 시나리오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사람이 자기 책임으로 자기의 경험과 판단에 기대서 고심해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대개는 자칫하면 알거지로 쫓겨날 위험이 있는 주주의 이해를 생각해서 이사회가 경영자로 하여금 최악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한국은 거꾸로다. 가장 정보가 취약한 정부나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최악 시나리오가 아니라 희망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짜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작년 9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2016년 사업계획을 짤 때 그들이 가정한 유가는 $70달러였다. 그런데 그 당시 유가는 이미 $50였다. 올해 초에는 이것이 $30대까지 갔다가 지금은 $40대이다. 희망 시나리오 대로 안 굴러가고 있다. 서별관회의에 들어가는 관료들이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이 희망적 시나리오다. 그들도 이 문제를 알지만 무엇하러 최악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기획하겠는가?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의 정책 운영체제가 변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산업정책은 없어졌는데 산업정책을 위해 존재하던 정책금융은 그대로 남았다. 일종의 대규모 체제적 조정 실패(Systemic Coordination Failure) 다.
90년대 이후 경제 운영 방식이 전반적으로 정부 주도 방식에서 민간주도로 바뀌었다. 그래서 과거 상공부의 산업정책 역할은 축소되었다. 또 과거에는 경제기획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산업 구조조정 업무였는데 이것이 9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소멸되었다. 
그러나 신용정책에서 정책금융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존속되었다. 재무부가 갖고 있던 신용 통제 업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이 개입해서 대출을 해 준 대기업에 부실이 발생하면 구조조정 책임 문제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는 임기응변책 만한 것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와서 장하준처럼 과거 방식의 산업정책을 부활하자는 것은 먹히지도 않을 얘기다. 그렇다면 정부 관료의 개입을 당연시 하는 구태의연한 구조조정 방식을 타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역동적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불가능하다.
일이 이렇게 흘러온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취약한 지배구조, 수익성보다 규모를 우선하는 경영방식,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견제장치 미흡, 아직도 과도한 정책금융 비중, 관치금융 아래 은행 경영진의 보신주의와 단기실적주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숨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엔 우선 국가개입주의를 당연시 하는 사고방식 부터 고쳐야 한다. 지금처럼 일이 꼬이게 된 주범은 이것이다. 그 다음으로 할 것은 기촉법을 폐지해서 자기들끼리 사적 채무조정을 하든지 아니면 법정관리로 가도록 놔두어야 한다.
이 외 개선책으로는 정부의 구제금융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 지배구조 개선, 적대적 인수합병의 도입, 관치금융과 국책은행의 역할 축소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한숨에 할 수는 없다. 
요약하면 기촉법 폐지와 적대적 M&A촉진이 제도적으로 제일 빨리 할 수 있는 조치다.
이것도 쉽지는 않다. 기업이 자기 필요에 의해 구조조정을 하자고 해도 이념을 들이댄다. 평시에는 정경유착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도리어 관이 주도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가 돈 댈 것도 아니면서 함부로 회사 규모와 고용을 줄이면 안된다고 한다. 일시적인 경기 순환일 수도 있으니 너무 재무적인 것만 보면 안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발 먹힐 얘기만 하자. 기업 부실에 따른 부도 위험은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누군가 막대한 돈을 새롭게 대야 한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당신 돈으로 해라. 자기 돈 댈 것도 아니면 남에게 돈 쓰라고 참견하지 말라. 돈 댄 사람들끼리 해결하도록 놔 두어라. 남의 돈으로 호기 부리지 말아라.
(8월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댓글 2개:

  1. 힘들게 읽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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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롭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미국 회사에 다니고 있는 50 대 초반입니다.
    선생님 글을 접하면서 생각이라는것을 하게 되어 하루 하루가 좋습니다. 참 생각없이 살았다는 반성과 함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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