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1일 일요일

획기적인, 그러나 알고보면 좀 무서운 정책

조선비즈의 김종일씨가 좋은 기사를 썼다. 요새 경제 기사는 조선비즈와 머니투데이가 제일 잘 쓰는 것 같다. 
가계부채 문제는 한국경제의 뇌관과 같아서 한때는 자세히 들여다보곤 했지만 이제는 개인적으로 좀 심드렁하다. 내 생각엔, 이미 돌이킬 수 있는 경계선을 지나갔다. 
최경환씨가 2014년 여름 경제부총리에 취임하면서 가계 부채 확대를 부추키는 정책을 추진하자 그 전까지는 사석에서라도 가계부채 증가에 우려를 표시하던 경제 관료들이 입을 닫았다. 한 배를 탔다, 같이 갈 수 밖에 없다, 공과를 같이 하겠다, 운명일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국내 경제 상황을 규정하는 것은 경기 불황과 저금리와 가계부채다. 이게 묘한 악순환에 걸렸다. 조금 설명이 필요하니 하나씩 풀어보자.
경기가 나쁘다. 금리를 낮추었다. 그래도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부동산 가격이 흔들거린다. 부동산 경기라도 부양하려고 대출 기준을 완화했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 하락을 저지시키려고 용을 쓴다는 신호를 보냈다. 금리가 너무 낮아서 임대료 수익률이 이자를 훨씬 상회하게 되었다. 여유 자금은 있으나 투자할 곳이 없는 기관이나 개인이 수익성 부동산에 돈을 투자한다. 정부가 신용은 충분히 대준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심지어 상승세로 전환했다. 경기는 역사상 최악인데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졌다. 
또, 그것 때문에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2014년까지 연간 5% 증가하던 가계부채가 2015년부터 지금까지도 연간 10% 씩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다. 늘어난 부채 부담 때문에 국내 소비 부진은 계속된다. 도리어 건설 경기 외에는 경기가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러니 부동산 경기를 꺾는 정책은 생각 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부동산 경기로 경제 성장률을 억지로 올리는 것은 옛날부터 늘 써먹던 비상대책인데 이제는 가계부채가 너무 커져서 그것도 안 먹힌다. 그렇다고 부동산 경기가 꺼지도록 놔두면 경제성장률은 더 내려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정권 말기이니 끝까지 갈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은 다음 정권에 맡기자. 이게 지금 경제관료들이 처한 상황이다.
그래도 지난 주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계 부채가 너무 급증하는 이유는 너무 많이 공급되는 아파트를 사기 위한 것이니 2년 후부터 택지 공급을 막겠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관료들이라고 해서 모를리 없다. 정권 차원에서 가이드 라인이 내려오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책안을 보면서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어서 한마디 할까 한다. 
정부가 2년 뒤 택지공급을 줄이겠다고 한 것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얘기다. 중앙 정부가 인위적으로 연간 택지 공급을 자기 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얼마나 관료에 의해서 우리 생활의 뿌리가 좌지우지 되는 국가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 이것이 가능한 것은 대형 택지 공급을 중앙정부가 주택토지공사를 통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시장기구에 의해 택지 공급과 주택 공급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다른 나라처럼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택지 개발이 활발해지고 주택 공급이 늘어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정부가 대규모 택지 개발 지역을 공시하고 일괄 수용해서 개발하여 건설업체에게 감정가격 보다 낮게 넘겨주는 체제다. 
택지 공급을 막아서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획기적인 발상"은 이렇게 관원대리체제에서 무능한 정권과 보신주의에 빠진 관료가 만나서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거 좀 무서운 얘기가 아닌가?
--------
추가: 무서운 얘기라고 한 것은 2년 뒤 금융위기가 닥친다는 뜻이 아니라, 중요한 국가정책을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국가운영체제가 무섭다는 뜻이다.
(8월 29일 페이스북에 쓴 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