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눈 깔 줄 아는 모범생

넥슨 김정주가 진경준에게 준 공짜 주식을 뇌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보도를 보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놀랐다. 판사 김진동에 의하면 구체적인 대가성이 없고 친한 친구 사이에선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에 검찰개혁 만이 아니라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도록 법원 개혁도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겨우 며칠만에 좋은 예가 드러난 셈이다. 한국의 법조인들이 얼마나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사는지를 잘 보여준다.
96년에 귀국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구들과 골프를 쳤는데 그 중 한명이 검사였다. 대학 시절 나름 사회에 대한 고민도 하던 친구이었다. 검사로서도 행동거지가 반듯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예약자 이름으로 가명을 쓰고 있었다. 골프 백에도 다른 사람 명표가 달려 있었다. 골프 끝나고 식사 하면서 슬쩍 최대한 부드럽게 한마디 했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걸고 할 수 없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냐고. 어색해지지 않도록 옆에 있던 친구가 거들었다. 진형아, 다들 그래. 검사들 중 자기 이름으로 골프 치는 사람 없어. 나중에 알고 보니 관료들 중에도 없었다. 
사실 많은 관료 특히 검사들은 스폰서를 갖고 있다. 내가 알기엔 거의 모든 관료와 검사가 그렇다. 꼭 불법적인 스폰서일 필요는 없다. 술 마시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술 사라고 불러낼 친구는 누구나 있다. 이건 굳이 스폰서라고 할 일도 아닐 수 있다. 이게 좀 커지면 자기 부하들 술 자리에 불러 술값을 내게 하기도 한다. 이런 정도는 정말 약과다. 진경준 처럼 차를 받고, 여비를 받고, 돈을 빌려가고 안 갚는다. 대신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대한 댓가는? 국가 정책을 미리 귀뜸해 준다. 사업 기회가 열린다. 사기업에 대해 국가기관으로서 알게 된 정보도 알려 준다. 회계가 불투명한 한국에선 이것이 사업상 판단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관료의 재량에 달린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담당 공무원에게 미리 연락해 준다. 사업이 원활히 진행된다. 
검찰을 시켜 뒷조사도 할 수 있다. 약점을 알 수 있다. 누가 자기를 고발하면 담당 검사에게 자기 측 주장을 전달한다. 기소 전에 막을 수 있다. 가장 악랄한 경우로 자기 라이벌을 검사 친구로 하여금 골탕 먹이게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은 사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지쳐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업을 조금이라도 크게 하는 사람은 관료와 검찰을 평소에 친구로 사귀어 두고 있어야 한다. 워낙 관료와 검찰이 법 해석과 집행을 자의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검찰은 특히 중요하다. 감옥 갈 수 있으니까. 그러고도 정 안되면 맨 마지막으로 판사에게 줄을 대어야 한다. 
검사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머리가 멍해질 때가 있었다. "유죄? 그건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야." 그들은 대놓고 자기들이 법의 궁극적인 판단자라고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그들에게 법은 필요하면 갖다 쓰고 필요 없으면 배제해도 되는 기구에 불과하다. 분명 불법이지만 자기들이 눈 감아주기로 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불법이 아니어도 자기들 판단에 고생 좀 시켜야겠다고 하면 기소한다. 저번에 변양호씨가 말한 것 그대로다.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분야는 검찰 제도이다. 민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거의 없다. 표적 주변 인물들을 계속 소환해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별건 수사로 구속한다.... 민간은 이걸 버텨내기가 어렵다. 권력의 눈 밖에 나면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검찰이 눈감아주면 죄가 있어도 무사할 수 있다."
검찰의 이런 실상을 한국 사회에서 사업 좀 크게 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자기는 잘못 한 것이 없어도 사업 라이벌이 권력자나 검찰 지인을 통해 한번 혼내주라고 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옛날에 김기춘이 검찰총장이었던 시절인 1989년 삼양라면이 쓰는 쇠기름이 공업용 우지라고 기소했다. 덕분에 당시 1위였던 삼양라면이 침몰하고 롯데의 농심라면이 시장 점유율 1위로 등극했다. 
김진동이 어제 태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다.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검사에게 구체적인 대가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는 김진동 판사는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 크게 될 사람이다. 
그는 눈 깔 줄 아는 모범생이다.

댓글 5개:

  1. 공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나만 읽기는 아깝다는 것입니다
    책 내시면 제가 꼭 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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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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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뻔뻔한게 아니라 떳떳하게 자신의 의견을 담백하게 말할줄아는 지식인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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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좀 슬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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