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김종인의 꿈, 헛수고만은 아니었다

지난 주 금요일 박근혜가 자신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했다. 언론은 지난 주 내내 주로 박근혜와 김종인이 이끄는 행복추진위가 제안한 방안 사이의 차이에 집중해서 보도했다. 대규모기업집단법,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주요 경영진의 급여보상내역 공시, 재벌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등이 빠졌단다. 금요일 이후 보수진영 신문들은 대체로 박근혜가 행추위안 중 일부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제시한 것을 보도하는 데에만 머무르고 논평은 삼가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외부필진인 윤평중이 비판한 게 고작이다. (언론들은 김종인 안이라고 하고 있으나 김종인 개인이 낸 의견이 아니라는 점에서 행추위안이라고 하겠다.)

예외가 있다면 조선일보에 비해 약간 더 친재벌 성향인 중앙일보가 실은 컬럼과 어제 사설 정도다. 컬럼 필자인 서경호 기자는 김상조와 이헌재를 끌어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하자는 의견을 내면서 박근혜 안을 은근히 밀었고, 어제 사설은 제목, "경제민주화 공약, 현실성으로 판단해야,"에서 보듯이 문재인과 안철수 진영의 개벌개혁안보다 박근혜안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이에 반해 한겨레나 경향신문등 진보진영 신문은 알맹이가 빠졌다고 비판을 했다. (한겨레는 여기여기, 경향은 여기) 이들은 행추위안에서 핵심이 기업집단법 제정, 순환출자 기업의 의결권 제한, 중요 경제범죄 국민참여재판 도입, 경영진 급여보상내역 공시라고 하면서 이것들이 빠졌기 때문에 핵심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한겨레가 정리한 양자간 차이는 다음과 같다.





이런 진보 진영 언론의 주장은 편파적이다.  박근혜가 받아들인 것만 해도 기존의 재벌규제 방식에 비해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또 박근혜가 행추위안 중에서 수용을 거부한 것들 중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들이 있었다. 또 행추위안에는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제시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집단법 제정이나 국민참여재판은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제안한 것보다 훨씬 더 나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박근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하니 편파적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식이라면 문제인과 안철수는 애초부터 알맹이가 없는 것을 내놓았으니까.

행추위안이 처음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나는 사실 많이 놀랐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상당히 전향적이고 파격적인 내용도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가장 놀란 것은 대기업집단법 제정이었다. 기업집단이 실체적으로 있는데도 이를 간과하고 개별 법인 회사만을 인정하는 한국의 회사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기업어음을 발행하고 나서 부도를 낸 LIG건설이다. 기업어음을 발행할 때는 마치 그룹에서 지원할 것처럼 하면서 빚 보증을 위해 담보로 제공했던 총수 가족들 지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끝내자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대주주라고 하지만 회사법상 주식회사의 주주는 유한책임만을 지고 최악의 경우 자기가 갖고 있는 주식 지분만 손해 보면 그만이라는 계산이었다. 비록 1년 반이 지나서야 검찰이 기소를 하긴 했지만 법정에서 회사법을 들고나오면 무슨 판결이 날지 두고 봐야 한다. 과거 2003년 LG카드 부도사태 때에도 LG 그룹은 자기 지분 이상 책임 질 수 없다고 버텼다. 회사법 상 강제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법적으로 매우 복잡하다. 회사법은 물론 상법, 도산법, 경쟁법, 세법, 금융관련법, 노동관련법 등 관련된 법이 한두개가 아니다. 또 어떤 방식으로 고쳐야 할 것인지, 어떤 부작용과 헛점을 챙겨야 할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독일은 자신의 역사상 재벌의 원조에 해당하는 콘체른이 발달했던 나라여서 콘체른법이 있다. 그러나 기업집단이 횡행하는 유럽에서도 독일의 콘체른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나라는 없고, 각 나라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통해 지배회사가 종속회사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재벌규제를 기업집단법을 통해 하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 김상조가 이 아이디어를 제기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의 회사법이 개별 기업 위주의 영미법에 기초하고 있고 재벌 관련 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효과적인 재벌규제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업집단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안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잘못하면 재벌 총수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폐단만 불거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재벌 개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기업집단법 제정은 장기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작년 민주당의 경제민주화특위도 마찬가지였다. 김상조가 안식년 기간을 빌어 준비한 유럽의 기업집단법에 대한 보고서를 낸 것이 이번 여름이었는데 그 전까지 유럽의 기업집단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김종인과 박근혜 간의 이견 대립을 보도하는데만 열중했고 막상 행추위 안을 자세히 분석한 기사는 안보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서 행추위안을 얻어 읽어 보았다. 행추위안은 대규모기업집단법(가칭)은 재벌집단에 대한 규제를 현재와 같이 공정거래법의 일부로(제3장,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집중의 억제) 해놓은 것을 따로 분리하고, 재벌 총수가 계열회사의 이사로 등재하지 않은 채 통제를 하는 것을 막고 대기업집단을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규정하고 그 구조와 행태를 규율하자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익편취행위,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 다중대표소송 등이 모두 그 안에 들어간다.

이는 공정거래법의 일부를 떼어서 일종의 재벌 관련 특별법을 하나 만들자는 안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다른 법과 충돌 없이 성립할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 공정거래법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 있어서 이러한 안을 냈을 수는 있지만, 관련된 여러 법들과의 조율 문제는 대선캠프의 학자 몇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기업집단법 제정에 반대하고 대신 이 중 상당수를 기존의 법 체계 안에서 추진하겠다고 한 박근혜의 결정은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지기만 한다면 나름 합리적인 면이 있다.

또, 대기업집단법 안에서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소유는 인정하되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는 것도 그 말만으로는 뜻이 불명확했다. 순환출자 고리에 들어가 있는 모든 의결권을 금지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배회사와 피지배회사를 구분해서 피지배회사가 갖고 있는 지배회사 지분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만약 전자라면 이건 대단한 얘기지만 후자라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물어본 김상조는 아마 후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또, "제한"이라는 표현도 모호했다. 의결권 전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만 인정하겠다는 것인지? 그런데도 언론 중에서 이 의결권 제한이 갖는 다양한 의미와 잠재적 위력에 주목한 보도는 없었다. 아마 자기들도 잘 몰랐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순환출자가 재벌 유지의 핵심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순환출자는 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별로 심하지 않았다. 순환출자 없이도 한국의 재벌은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었다. 순환출자 구조가 두드러지게 된 것은 외환위기 후 정부가 일률적으로 재벌들에게 부채비율을 200% 아래로 만들라고 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한편으로는 주식시장을 개방해서 외국자본 지분율에 대한 제약을 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채비율을 단기간에 줄이려면 대규모 증자를 하거나 계열사를 매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를 틈타 미국이 IMF를 앞세워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했다는 비난에 정당성을 부여할 만한 것으로 꼽을만한 정책이 바로 이것이었다. 최근 미국정부가 GM에 출자한 것 처럼 그 당시 한국정부가 정부자금으로 출자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아마도 IMF의 제약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대신 정부는 재벌들 사이의 순환출자를 통한 증자를 허용했다. 즉 지금의 순환출자는 상당부분이 외환위기 시 김대중 정부가 장려한 방책의 결과다.

사실 재벌 유지의 핵심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 편취다. 또 이 사익편취 중 상당부분은 경영권 상속을 위한 것이다. 일가족이 여기 저기 조금씩 뜯어먹는 재미에 빠져있는 재벌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 경제구조가 근본적으로 왜곡되지는 않는다. 또 투명성이 높아지고 법치만 제대로 작동되어도 상당부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일감 몰아주기만 잘 막아도 큰 문제는 해결된다.

또 순환출자를 불식하려면 대안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순환출자 고리 중 가장 부담이 적은 고리를 끊어서 다단계 출자구조로 가는 것이다. 또는 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는 실익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현재의 지주회사제도는 사실 재벌총수 입장에서 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분 정리하는 중에 양도세 세금 문제만 있을 뿐이다. 물론 순환출자을 금지하면 한국의 기업들이 외국의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 노출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가깝다.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모호한 풍문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에 가깝다. 순환출자 고리 중 한 기업이 갖고 있는 지분을 다른 계열사에게 팔면서 순환출자구조를 피하는 것은 해당 재벌들의 전체 규모에 비해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면 순환출자 금지나 의결권 제한으로 얻는 국민경제적 실익은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는다. 민주당은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고 했는데, 만약 이를 시행하겠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또, 중요 경제범죄에 대해 피고인의 의사에 관계 없이 배심원 재판을 할 수 있도록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판사를 믿지 못해서 양형기준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넘어 아예 판사의 재량권을 없애겠다는 것이어서 약간 우악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인민재판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은 분명 과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배심원 판결이 대부분인 영미권 재판도 인민재판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모든 분야에서 국민참여재판이 확대되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나 아직 시험단계인 제도를 특정 분야에만 전면 도입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확신하기 어렵다.   

주요 경영진의 급여보상내역을 개인별로 공시하겠다는 것을 뺀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것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행에 옮긴지 꽤 된 제도로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비용은 적고 효과는 확실한 훌륭한 제도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운운 하는 것은 그야말로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부당행위 반복시 내부거래 금지, 해당회사 지분조정명령을 도입하는 것이 빠진 것도 불만스럽다. 불법행위를 반복해도 공정위가 솜방망이 벌금만 때리는 것이 그동안 한국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뺀 것만으로도 박근혜의 재벌개혁 의지를 의심하만 하다.

하나 더 불만을 얘기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는 했지만 그 실속은 의심스럽다. 공정거래위원장이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등으로부터 불공정행위에 대한 고발 요청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고발조치를 하도록 해 다른 기관들에 사실상 고발권을 부여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결국 로비 대상만 늘렸을 뿐 공정거래 고발권을 관원이 독식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핵심은 다른 정부기관의 고발 요청 없이도 검찰이 인지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빠졌다.

정작 알맹이가 빠진 것은 노동부분 공약이다. 행추위안과 박근혜 안 공약 모두 실제적인 내용이 없다.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말은 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 권익 보호 역시 모호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행추위안 자체에 복수 노동조합에 대한 개별 협상권을 주겠다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복수노조를 만들어보았자 독자적인 단협을 할 수 없다면 그 효과는 아무것도 없다. 사실 이것은 대기업노조 눈치를 보는 민주당에서는 하지 못하는 얘기인만큼 만약 여당 후보가 이를 제시했다면 획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전혀 거론도 안된 채 지나갔고 이를 지적하는 언론도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가 받아들인 경제민주화 방안이 전혀 알맹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행추위안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다중대표소송제의 단계적 도입 등을 채택했다. 또, 금산분리 강화와 관련해선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 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의결권 한도를 10%로 설정한 뒤 5년간 1% 포인트씩 내려 5%로 인하) 또,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 축소하고, 금융계열사가 일정 요건 이상일 때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도 하겠다고 했다. 대기업이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준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공약으로 약속했다. 어쨋든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 범죄가 있을 경우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횡령 등에 대해선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 정도면 여당 입장에서는 대단한 발전이다. 만약 박근혜가 당선되고 자기가 공약으로 제시한 방안들을 집권기간 중 실행에 옮긴다면 그것만으로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보다 더 많은 개혁을 실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솔직히 대선 공약을 선거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한국의 정치 풍토 상 그가 이것들을 실행에 옮길 지 믿기 어렵기는 하다. 다른 분야에서 그가 내놓는 공약 중에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헛공약성 발언이 많은 것을 보면 경제민주화 공약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여당 후보가 이런 안을 약속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중 일부라도 대선 전에 법안으로 통과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는 말자. 일단 말을 꺼냈으니 만약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새누리당으로서는 야당 안 중 일부나마 따라가지 않기가 부담스럽다. 적어도 3년 후 국회선거에서 여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박근혜가 당선 된다면 적어도 일부나마 시행에 옮길 것이다.

사대부는 황제의 스승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황제는 사대부를 그저 신민 중 하나로 본다. 중국문명권에서 학자들이 갖는 숙명적인 갈등이고 모순이다. 중국 역사가 그랬고, 조선 역사가 그랬다. 김종인의 꿈은 비록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은 아니다.

2012년 11월 9일 금요일

졸속은 나의 것: 대선 캠프 학자들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지난 화요일 한국금융연구센터 주최로 열린 <금융 소비자 보호 시각에서 본 금융감독체계 개편> 심포지움에 토론자로 참석했었다. 사회자는 김상조, 발표자는 명지대 원승연과 동국대 강경훈이었는데, 원승연은 며칠 전 안철수 캠프에서 발표한 금융개혁안 중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준비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원승연의 발표에 쏠렸다. 원승연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같이 담당하고 있는 지금의 금융위원회를 분리해서 금융정책은 기재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정책은 건전성 감독기구와 금융 소비자보호 기구로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금융감독을 둘로 나누는 것을 낙타의 혹에 비유해서 쌍봉체계라고 부른다.

이 정도 얘기했는데도 아직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읽고 있나? 훌륭하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더 지루해진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금융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것도, 미국이 저렇게 된 것과 전 세계가 아직도 불황에서 못벗어나고 있는 것도 이 문제를 소홀히 해서 생긴 문제니까.

쌍봉체계에서는 금융체제 안정과 소비자 보호라는 별개의 정책 목적을 각각 다른 조직에게 맡겨서 달성하려는 체제다. 금융체제 안정은 건전성 감독기구가 담당하고, 소비자 보호는 행위규제 전담기구가 담당하게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쌍봉체계가 나름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대선 정국에 공약으로 나온 것은 걱정스럽다. 이렇게 공약으로 등장하면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경우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기자고 할 공산이 높다. 나는 이렇게 정부조직을 급격히 바꾸는 것, 그것도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급히 바꾸는 것에 대해서 저항을 느낀다. 그래서 심정적으로는 공감하는데, 대신 좀더 시간을 두고 더 많은 논의를 거쳐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나는 이런 식의 어정쩡한 얘기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밍밍한 의견을 개진한 이유는 기업 부문에서 많은 개혁을 시도해 본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어서다. 간단히 말해, 작전은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짜야 한다. 또 기초 동작을 배우는 것 (프로세스 설계를 하는 것)이 셋트 플레이를 그리는 것(조직도 그리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이건 너무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같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기업에서도 이 간단한 원리를 놓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어설픈 컨설턴트들은 조직원들의 실력은 무시하고 논리적으로 멋있는 전략 짜는데 몰두한다. 업무 프로세스를 어떻게 수정할 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조직 개편을 제안한다. 쌍봉체계 도입도 그 아이디어는 좋지만, 이를 내년부터 실시하자는 것은 조직원들의 실력은 무시하고 프로세스 설계도 생략한 채 우선 조직도 박스 부터 그리자는 것으로 들린다.

쌍봉체계는 호주에서 가장 먼저 실시한 방식인데 1997년 왈리스 보고서(Wallis Report)에서 쌍봉체계를 제안했고, 이것이 시행에 옮겨진 것은 2년 후인 1998년이었다. 영국 역시 90년대 당시 이미 쌍봉체계의 필요성은 인식했지만 구조를 쌍봉으로는 하지 않았다. 노동당은 1997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하자 그해 10월 8개로 흩어져 있던 감독기구를 통합한 조직(FSA: Financial Services Authority)을 출범시켰지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사이의 시너지를 감안해 FSA 안에서 통합 운영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FSA가 개별 금융기관의 미시 건전성에만 치우치고 거시 건전성에는 소홀히 했다는 반성이 늘었다. 그래서 2010년 봄, 쌍봉체계 계획이 발표되었고, 2년 후 2012년 5월부터 쌍봉체계를 운영 중이다. 거시 건전성 감독 소홀이 문제였지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의 전문성이 다르다는 것을 들어 개편하는 김에 분리한 것이다. 미국은 쌍봉체계까지는 아니지만 최근 금융소비자 보호원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쌍봉체계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이들 나라와 약간  다르다. 한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금융을 국가에 의한 자원 배분 기능과 경기 부양 수단으로서의 기능에만 관심을 보였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건전성 감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지만, 정작 경기부양과 건전성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경기부양이 우선시되었다. 게다가 금융소비자 보호는 아예 건전성 감독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아서, 양자간 충돌이 생기면 항상 건전성 감독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원승연은 금융정책 기능을 떼어서 기재부로 넘기고, 금융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도 분리하자는 것이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분리하자는 것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 캠프의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한걸음 더나가서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도 분리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엇갈린다.

가장 큰 우려는 과연 이렇게 감독기관을 분리했을 때 서로간에 원활히 조정이 가능하겠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명박정권 인수위원회에서 금융감독위원회와 재경부의 금융정책실을 합쳤던 것도 재경부와 금감위원회 사이의 정책 조정 실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통합시키면 무슨 문제가 있을지, 그리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과의 업무 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졸속이었다.

그러면 김대중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 역시 졸속이었다. 아니, 졸속의 극치였다. IMF의 압력으로 1998년 영국의 FSA를 베껴 급하게 만들었다. 1998년 금감위가 출범할 때 금감위는 형식적으로는 회사의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위원회 안건을 의결하는 기구였다. 일반적인 행정조직과 달리 합의제 행정위원회 조직으로 만들어 위원장 외에 여러 위원을 두어 독립성과 전문성을 도모했다. 또 금감위 사무국이라는 소규모 조직을 만들어 금감위원회 회의체 운영을 보조하도록 했다. 실질적인 금융감독 집행은 금융감독원이 하고 양자간 조정은 금감위원회 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해서 조정하도록 했다.

이 체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출발하자마자 드러났다. 말만 위원회였을 뿐 위원회의 상임위원 자리는 모두 재경부 관료들이 차지했다. 각 정권 초기 1년간만 부위원장으로 외부인사 출신인 윤원배, 이동걸, 이창용이 각각 재직했을 뿐이다. 조그맣게 출발한 사무국은 곧 비대화하기 시작했다. 시장과 산업 관련 법규는 재경부에서 만들고 금융감독정책 의결은 금감위원회에서 실시하고, 집행은 금감원이 한다는 것은 혼란만 일으킬 뿐이었다. 기껏 정부 부서를 분리했지만 재경부 공무원과 금감위 공무원은 인사 철마다 양 부서를 오갔다. 몇달 전까지 금융정책을 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감독정책을 맡고, 감독정책을 맡던 사람이 금융정책을 맡을 것이면 무엇하러 부서를 분리했단 말인가? 일을 하던 공무원들도 불평이 많았다. 같은 부서에 있을 때는 협조가 잘 되었는데 부처가 다르다보니 서로 협조가 안되어서 비효율성이 막심하다고 했다. 5년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 부서가 통합된 이유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로세스를 개선하지 못하니까 조직 박스를 합친 것이다.

만약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다시 분리하자면 과거에 있었던 정책 조정 실패를 이번에는 어떻게 극복할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준비 안 한채, 거기에 덧붙여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도 분리하자고 하면 장차 그것이 초래할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분리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선거 공약으로 내놓다니? 아니 이게 왜 선거 공약이어야 하나? 국민들 중 누가 이것에 관심이 있고, 누가 이해한다는 말인가?

하나 언급하고 넘어갈 것은 월요일 토론회에 1998년 당시 이런 졸속안을 주도한 서강대 명예교수 김병주가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청중 토론 기회를 빌려, 개혁은 천천히 깔끔하게 하는 방식(Slow and Clean)과 빠르지만 엉성하게 하는 방식(Quick and Dirty)이 있으며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후자 방식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감안한 얘기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다. 저항이 있다는 것이 꼭 급격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생각에 그는 자신의 과오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금융감독체계 설계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다. 금융 건전성 감독과 금융 소비자 보호 업무를 해보지도 않았고, 대규모 조직 혁신을 이끌어 본 적도 없는 학자들이 하는 말에 의거해 몇달 만에 금융감독체계 조직도를 다시 그린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몇천명 밖에 안되는 회사에서도 변혁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초기에는 윗사람 말대로 바뀌는 것 같지만, 얼마 안가 다시 보면 제자리로 돌아가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물며 회사도 그런데, 공공기관 변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날까?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의 혼선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나라인데?

지금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을 분리하는 대신 다시 원래대로 분리할 때 과거에 겪었던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의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법으로 금감원은 금융위원장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금감원장 권혁세가 김석동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로 지난 주 일요일 김석동이 금융위와 금감원 부원장들을 소집해서 하우스푸어 정책 관련 혼선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한다.

나는 학자들이 정부 조직안 갖고 얘기할 때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중국 나라 시대 왕안석이 신법이라고 들고 나왔었다. 이중톈의 <제국의 슬픔>에 의하면 왕안석의 정책안은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기대한 효과를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관원대리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놔둔 채였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기존 체계의 얽힌 문제점을 놔둔채 한두가지 묘수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가뜩이나 선거 공약에 묘수를 끼워넣는 것은 더욱 삼가야 한다.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무조건 시행해야 하는 불필요한 압력을 후보가 만들 뿐이다. 정책을 담당할 사람은 책임을 지지 못할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15년에 걸친 졸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정녕 아무것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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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담당할 부서를 분리하는 안을 반대하는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었으나 이는 내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어서 수정했다. 왕안석은 당나라 시대 사람이 아니라 송나라 시대 사람이다.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세금 논의가 실종된 정치권과 언론을 보면서

항상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정치에는 세금에 관한 논쟁이 없다. 세금이 선거에서 관심사였던 유일한 경우는 5년전 대통령 선거 때였다. 한국 정치에서 세금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을 보고 나는 이것이 한국 민주정치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보니 그것은 나만의 착각인 것 같다.

사실 그때 선거도 조금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명박이 뜬금 없이 감세를 들고 나왔지만 그것 때문에 이명박을 뽑은 사람은 별로 없다. 이에 비해 징수 금액으로는 훨씬 규모가 적은 종부세 폐지는 도리어 더 관심을 받았다. 종부세 때문에 부동산 값이 내려갈까봐 속으로 걱정하는 계층의 이해를 반영한 현상이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에 반기를 들고 추가적 감세를 막은 것 역시 한나라당이었다. 이제는 새누리당에서 개인소득세율 최고 구간을 3억원 이상에서 2억원 이상으로 낮추자고 한단다. 이렇게 정당이 3년 만에 세금정책 방향을 바꾸는 것은 한국 특유의 현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세금 관련 정책이 정치 진영을 가르는데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국민이 그만큼 자기 삶과 세금 사이의 관계에 대해 둔감하다는 말도 된다.

이번 선거 역시 과거 전철을 밟고 있다. 선거일이 50일 후로 다가왔는데도 세금 정책에 관한 논의는 실종상태다. 대신 모두들 복지 증대를 외친다. 국민이 국가와 갖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세금이다. 정치나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자기를 상대방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도 세금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선거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금에 관해서는 모두들 딴 청을 피우고 있는 것은 거의 미스터리 수준이다. 솔직히 국민들이 세 후보 사이에 복지 정책 공약이 어떻게 다른지 관심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복지 증대를 주장하는 것이 대통령 후보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진보계열 신문은 물론이고, 보수적 신문들도 이제는 한국 사회에 복지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어제 조선일보 사설을 보자.

올해 한국의 복지 예산은 GDP의 9.5%로 OECD 평균(19.5%)의 절반 수준이다.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가 된 복지 욕구를 충족하려면 복지 예산을 계속 늘려야 한다. 그러나 전 국민에게 소득과 관계없이 일정 한도의 복지 혜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급한 건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다.
사실 이 사설의 의도는 그냥 복지 증대를 주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 이전에 급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 부터 내놓으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박근혜의 복지정책을 지지한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보편 복지 공약을 완성하기까지 이행 기간 동안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어떻게 그 고통에서 구해줄 것인지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 국민도 복지 상품들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화려한 복지 진열장 차리는 데만 정신이 팔린 후보와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치밀한 복지 청사진을 내놓는 후보가 누군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계산에도 불구하고 복지 증대 자체에 대해서 딴지를 거는 목소리는 요새 와서 듣기 힘들다.

정작 더 흥미로운 것은 세금에 대해 말이 없는 것이 정치인만이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보수 언론이 증세에 대해 떨떠름한 것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증세 자체에 대해 반대한다기 보다는 이명박의 감세 정책에 대해 찬동했던 과거 전력이 있어서 이제 와서 말을 바꾸기가 거북할 것이다. 그저 정치인들이 복지만 외치고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는 비판 정도다.

한겨레신문도 증세가 필요하다는 외부 필자의 컬럼은 실으면서도 막상 자기들 사설을 통해 증세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증세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어벙벙한 사설 정도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허구헌날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진보 진영 언론이 막상 증세방안에 대해서 딴청을 피우는 것은 약간 희극적이다.

평소 한국의 언론은 의견 과잉이다. 객관적인 보도 보다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일방적 기사를 쓰는 데 익숙하다. 그런 한국의 언론이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의견이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진영 논리 상 자기들이 증세안을 구체적으로 들고 나와서 자기 진영 후보를 압박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아니면 자기들도 잘 모르기 때문인가? 정치인과 유명 지식인의 말을 나르는 것으로 지면을 채우다 보니 막상 자신들도 생각을 안해보았나? 하긴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부동산 값 오른다고 노무현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정책안을 내놓은 언론은 없었다.

이렇게 정치권이나 언론 모두 정작 제일 중요한 세금 문제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 시늉을 하는 것을 보면 온갖가지 서구의 개념을 수입해서 정치와 경제를 개혁하자는 지식인들의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실감하게 된다. 서양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우리가 서양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입해와서 겉을 싸발랐지만 한국 사회의 내면은 여전히 전통사회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 전통사회에서 세금이란 나랏님이 일방적으로 정해서 징수하는 것이었다. 그 나랏님을 선거로 뽑는 정도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다.

정책 선거? 아직 한국에서는 먼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