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7일 일요일

내가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

(정치권에 들어간 2월 17일 쓴 글이다. 메모 용으로 옮겨놓았다.)

오늘 <더불어 민주당>의 총선정책공약단 회의에 처음 참석하러 국회에 갔다. 회의 전에 영입식 대신 언론과 간단히 간담회를 했다. 회의 일정 때문에 간단히 했기 때문에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들도 그랬겠지만 나도 그렇다. 조금 더 설명하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다. 자기 앞가림만 하면서 살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정당에 와서 인재라고 자처한다면 염치가 없는 짓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인재가 아니다. 50대 후반에 무슨 인재 타령이겠는가? 내 생각엔 <더불어 민주당>의 인재는 평당원, 청년당원으로서, 또는 시의회, 구의회, 그리고 지방자치 단체에서 당을 대표해 땀 흘려 온 사람들이다. 또는 아직 직업 커리어를 많이 남겨 두고도 이를 포기하고 정치에 참여한 젊은 영입 인사들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기업부문에서는 경력 상 끝자락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더불어 민주당>에 참여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를 겪지 않기를 원한다. 우리 나라는 이미 장기 침체의 초기에 들어 갔다. 일본에 대해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못하다. 쌓인 것이 적다. 이렇게 가면 잃어버릴 30년을 앞두고 있다. 
현 정권은 지난 8년간 자기들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주었다. 이념과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권이 계속 집권하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주류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실패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있다. 인구 재생산도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내부자가 담을 쌓아 외부자가 못 들어오게 하고 있다. 우리는 신분세습 사회로 돌아가려는 봉건적 잔재도 남아 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답이 잘 안보인다. 일본의 전철과 봉건잔재의 부활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바로잡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화로 사회의 이중화를 해소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기득권 유지에 골몰해 있다. 적대적 공생 관계에 안주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당 혁신과 통합을 위해 김종인 박사를 모셔갔다. 김박사가 <더불어 민주당>을 돕기로 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컸다.
김박사께서 지난 주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김종인박사를 도와 <더불어 민주당>이 국민에게 수권정당으로 인정을 받아 정권 교체를 하기를 원한다. 한국 정치가 사회 이중화를 해소하는데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 양당 독점체제도 문제지만 지금은 정권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아내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마치 연예계에 나가는 십대 딸을 보는 것처럼 불안하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이 정치를 보는 시각은 연예계를 보는 시각과 비슷하다. 구경꾼으로 전락해서 소비만을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매우 불만스러워 한다. 막상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이 나서면 허황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비판한다.
몇주 전 스웨덴 정치에 관한 TV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었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장관이었던 70대 여인이 여전히 지역 공동체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기자가 다시 정치에 복귀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정치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정치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모든 노력이 정치라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 선거에 나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 만이 정치가 아니다. 
나처럼 평소에는 선거 정치를 멀리했던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민주주의에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한국 사회가 나에게 베풀어 준 것이 많다. 조금이나마 젊은 세대에게 더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다. 조금이나마 한국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로 변화하는 것을 돕고 싶다.

2016년 3월 26일 토요일

가계소득비율은 왜 낮아졌나?

한국의 가계소득비율이 내려가고 있다. OECD 국가 중 하락율이 제일 높다고 한다. 1995년 69.6%에서 2014년 64.3%로 5.3%포인트 떨어졌다고 한다. OECD 국가들 중 두번째로 하락폭이 크다.

그러나 이것이 왜 내려가는 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주장은 가계소득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내려간 것이 신자유주의 탓이라는 주장이다. 오해다.

외환위기 이전의 한국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외환위기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어쩌다 공무원들이 위기 대응을 잘못해서 생긴 사고가 아니었다.

왜 지속가능하지 않았나? 기업부채가 지나치게 많았다. 경기를 부양하고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부실한 기업에 대출을 계속 늘리도록 했다.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상황과 똑같다.

그 덕분에 경영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견 기업들이 재벌기업 행세를 했고 그래서 30대 재벌 운운했다. 그들이 무모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고용도 팽창했고 그래서 가계소득의 주수입원인 노동소득이 늘었다. 90년대 가계소득비율이 가장 높았던 원인이 여기에 있다.

부실채권이 쌓이고 있는데 경제를 개방했으니 사고가 크게 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버티기에는 외환보유고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외환위기가 터졌다.

부실기업에 대출을 늘려 경제성장을 할 수 없게 되자 대기업 또는 재벌기업들이 고용을 줄였다. 자체 내에서 하던 일을 하청을 통해 하기 시작했다. 전체 임금이 줄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계소득의 중요부분인 노동소득 비율이 줄어들은 것이다. 52.7%에서 50.7%로 2% 내려왔다.

나머지는 자본소득과 정부이전소득이다. 자본소득비율은 왜 안 늘었나? 자본소득은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이다. 지금 숫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이자소득이 줄고 배당소득은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이자소득은 과잉차입수요가 줄면서 실질 이자율이 내려오면서 줄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배당 소득은 원래 늘기가 어렵다.

한국의 상장기업에서 외국인 투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다. 그러나 대기업 비중은 거의 50%에 육박한다. 이익율이 가장 높은 부문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그룹기업 내 상호출자지분이다. 약 20~30%다. 나머지가 개인 지분인데 20%를 조금 넘는다.

정부나 야당이나 모두, 기업이 배당을 안하고 내부유보로 쌓고 있으니 가계의 자본소득이 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배당을 늘려봤자 지금 같아서는 가계소득이 그리 많이 늘지 않는다. 외국인이 가져 가거나 대주주만 살 찌운다. 대주주도 가계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가계소득을 늘려봤자 일반국민의 가계소득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또 대주주는 자기 지분율이 낮기 때문에 자기 배당을 받기 위해 다른 주주들에게도 가는 돈을 아까와한다. 일감을 몰아서 빼먹는 게 낫다.

한국은 90년대 자본시장 개방을 하면서 순서를 그르쳤다. 이를 깨닫고 고치기 전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강제에 의해 자본시장을 개방했다. 순식간에 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70%에 달했고 삼성전자들 알짜배기 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버렸다.

지금 가계소득비율이 감소한 연원은 90년대 초 정부정책의 실패에 있다. 대기업 위주 경제정책, 대출과 부동산에 의존한 경기 부양, 구조조정 태만 등이었다.

이 기조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이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대기업 위주 경제성장, 대출과 부동산 의존 경기부양, 구조조정 태만 모두 그대로였다. 기업대출 대신 가계대출로 치환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다시 부실기업에 대출을 늘려주었다. 요즘 터지는 기업부실은 그때 잉태된 것들이다.

알고나 있자. 이 기조가 안 바뀌는 한 가계소득비율은 올라갈 수가 없다. 대기업 법인소득세를 올리고, 분리과세를 폐지하고 소득세 포괄주의로 바꾸어서 세수 기반을 늘리고, 연금을 통한 정부이전소득을 늘리지 않는 한 가계소득비율은 올라가지 않는다.

가계소득비율이 낮다고, 그것을 올려야 한다고 모두 주장한다. 여당도 그렇고 야당도 그렇다. 그러나 잠시 흥청거릴 때를 기준으로 좋았던 옛날을 그리워 할 일은 아니다.

뻔히 할 일이 앞에 있는데도 다들 먼산만 쳐다보고 있다. 정치권은 엉뚱한 핑계거리와 해법을 찾고 다닌다.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처방이 엉터리인 것은 당연하다. 자기들도 이게 아닌 것 같아도 지금까지의 관성을 못 이긴다.

병이 깊다.

2016년 3월 24일 목요일

정치 참여 직전 감상

(정치권에 들어가기 전 1월 28일에 쓴 글이다. 메모 용으로 옮겨놓았다.)

요새 정치권과 언론에서 내 이름을 들먹인다. 그 덕분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마치 무슨 연예인이나 되는 것처럼 내 얘기를 입에 올린다. 솔직히 응원한다는 사람들도, 비판하는 사람들도 뭔가 과잉이다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나는 그냥 남의 것 뺏지 않고 내 앞가림하면서 직업 활동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페이스 북에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 흥이 나면 주제가 새지만 그것은 내 유일하게 남은 취미가 경제정책이어서다. 작년에 밖에서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언론도 만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솔직히 야권이 벌이는 인재 영입 쇼를 보면서 기분이 착잡하다. 정치에는 분명 쇼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말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는 각오도 없이 벌이는 쇼는 의미가 없다. 이런 쇼로 대중의 표를 얻으려는 것은 대중을 우습게 보는 태도다.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불가피한 쇼라도 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역효과를 볼 것이다. 
야권이 새로 태어나기 위한 생산적 논의는 없이 인재 영입 쇼를 계속 하는 것을 보면 4년전에 여당에서 한 것을 모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여당은 경제 민주화도 쇼를 하는데 써먹었다. 혹시 야당도 경제민주화를 그렇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야권은 철저하게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국민들이 한국 야당에 갖는 지겨움은 주류와 비주류가 허구헌날 비생산적 권력투쟁만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정당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당권 유무에 따른 일종의 분파(faction)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생산적 경쟁을 하는 한. 그리고 그것은 전당대회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 민주당을 보면 가히 목불인견이다. 2012년에도 이명박 정권의 실패 덕분에 큰 장이 설 것 같으니까 비생산적인 계파싸움이나 신나게 마음껏 하고 나중에는 결국 계파 나눠먹기로 끝냈다. 결국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했다. 대선에서 예상보다 표 차가 많이 나지 않아서 잊어 버렸는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세상에! 억지로 끌려나온 후보로 이길 생각을 했다니! 그래, 인품 하나는 좋아보였다. 
그렇게 야당은 무능했다.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고, 자기도 모르는 것이 뻔한 안철수에게 사람들이 기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었는가! 단일화 이후 안철수가 조금만 더 열심히 뛰었어도, 그리고 굳이 선거 당일 미국으로 가는 짓만 안했어도, 선거결과를 점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숨길 수 없는 것은 야당의 무능이었다. 
사람들 뇌리에서는 사라졌겠지만 내 기억에는 2011년 여름에 발족한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가 기억에 생생하다. 유종일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당외 인사들을 거의 1년 동안 하청업자 처럼 부려 먹었다. 국회의원들도 위원회에 이름을 걸었지만 그게 다였다. 논의 자리에 국회의원들은 콧빼기도 안 보였다. 나도 처음에 유종일 교수 부탁으로 갔다가 엉겁결에 사진을 찍혔다. 몇번 미팅을 했지만, 논의는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 두달 만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 야당의 맨살을 보았다. 
경제민주화? 완전히 구색 맞추기였다. 아무 것도 안 남았다. 어찌어찌 해서 최종안을 만들었지만 이를 당 정책으로 발표할 때 쯤 가서는 김진표 원내대표가 뒤에서 뒤틀었다. 너무 급진적이라고 했다. 중도층에서 표 얻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그것 없이도 다수당이 되는 줄 알았으니까. 
총선을 앞두고는 아예 유종일 마저 공천에서 배제했다. 거기에 덧붙여 이용섭씨를 광주시장 공천에서 물을 먹이는 바람에 19대 국회 내내 야당에는 변변한 경제정책 전문가 하나가 없었다. 자기들이 증세를 하자고 해놓고 박근혜 정부가 증세를 하니까 세금 폭탄이라고 했다. 
4년이 지난 2015년에도 똑같은 노래를 틀었다. 친노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들 했다. 뭔가 구체적인 과오를 근거로 비판하면서 물러나라는 것도 아니었다. 문재인은 전당대회에서 뽑힌 인물이었다. 자기들이 민주적으로 뽑은 과정은 그냥 무시하고 이해 타산이 안 맞자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물러나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호남표를 노리고 탈당을 했다. 상대방을 물 먹여서 다음 대통령 선거를 노리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에겐 이 모든 것이 그냥 지겹다. 평시에는 자기들만 도덕적인 척 하면서 막상 하는 짓은 자리 싸움이다. 모든 관심은 국회의원 자리 싸움에 가 있으니, 선거 철이 다가오면 공천권 분양을 둘러싸고 떳다방이 벌어진다. 자기들이 모두 모여 뽑아놓고선 자기편이 아니니까 물러나라고 하고, 안 물러나니까 밖으로 나가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그나마 혹시 거기에라도 희망을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다. 
국민이 돌아섰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에서는 완전히 초토화된다는 조사 결과가 돌아다녔다. 그제서야 자기들도 겁이 났다.
문재인씨가 김종인씨를 모셔온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자력으로는 탈출구가 안보이니, 그 누구의 편도 아닌 뭔가 독자적인 공신력을 가진 것 같은 외부 인사를 불러 자기들을 구해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4년전 상대방 편에 있던 사람을. 그가 오니까 그제서야 여론이 조금이나마 돌아 섰지만 사실 이것도 알고 보면 무참하고 한심한 얘기다. 얼마나 자기들이 못났고 무능한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 지병이 다시 도지는 것 같다. 조금 등이 따스워졌다고 또다시 자기들끼리 편가르기에 들어갔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것이 당의 정체성이다. 누구는 무엇을 했고, 누구는 뭐이기 때문에 당에 안 맞는단다. 지금까지 그렇게 자기들 기득권을 위해 사람을 편가르고 배제해서 당이 요모양 요꼴이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를 영입했든, 김종인박사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를 모셔왔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어떻게 당을 거듭나게 할 것인가다. 인재 영입? 그것은 그냥 쇼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경제 정책 이전에 정치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특히 자기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무능한 주제에 진영논리로 편가르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포용적이고 담대한 전략으로 당이 자리매김을 새롭게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 당의 재탄생을 위해 검토해야 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과 대중의 연계 관계다. 도대체 더민주당은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인가? 말로는 중산층과 서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연계관계가 부실하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선 진보개혁 정당과 노동조합의 연계가 모호하다. 민노총은 거북하게 거리를 두고 있고, 한노총은 여기저기 넘나든다. 양대 노조는 자기들만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한다. 그런데 노조조직률이 10%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양대 노총이 대변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그 나머지 노동자는 누가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 또, 전체 취업자의 1/3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도 아니다. 사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의식화 되지 않은 계층에 가까와서, 정당 이념보다는 지역감정에 더 많이 좌우된다. 야당이 내세운 이념도 변변찮았으니 할 말은 없다.
이처럼 사회계층과 유기적 관계를 구축하지 않는 정당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는 쉬운 얘기가 아니다. 조직되지 않은 다수 노동자와 야당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것은 선거를 석달 앞두고 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책이 중요한 이슈가 되어 본 적도 없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또 다시 선거에서 단일화 협상을 되풀이할 것이다. 
국민들은 짜증지수가 다시 올라갈 것이다. 여야 의석 비율만 다를 뿐 적대적 공생관계는 다시 한번 더 재현될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2016년 3월 18일 금요일

금융상품 세금 체제,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2015년 4월 9일 금융 세금제도에 관한 국회 정책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했었다. 흔히 토론회 참석자를 위해 토론회를 열기 전에 의견서를 미리 제출하라고 한다. 5~6분 주어지는 시간에 맞추어 짧게 쓴 글이다.

<패널 의견>

우선 오늘 발표하신 것들에 대한 제 소감을 말씀 드리고 나서, 제가 생각하는 금융투자에 대한 세금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관해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박훈 교수님은 자본시장 경쟁력 회복과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 대상으로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에 관해 논의하셨습니다. 요약하면 파생상품 거래량 순위가 2011년 5위에서 2012년 8위로 하락하는 마당에 자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그 시행시기를 연기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파생상품 양도소득세 부과 여부를 파생상품 거래량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우선, 한국의 파생상품 거래량 세계 순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무엇이 좋아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순위가 높았던 시절이라고 해서 한국 자본시장이 지금보다 더 발달했다고 할 수도 없거니와, 앞으로 더 순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이 자본시장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둘째,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수백억 원의 세수를 예상한다고 하는데 겨우 그만한 돈을 거두지 않는다고 해서 자본시장이 더 발달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이 문제를 자본시장에 관한 전체적인 세금제도의 틀에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본 시장의 주요 상품으로는 주식, 채권, 외환, 파생상품, 그리고 펀드 상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형태는 달라도 근본적으로는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 잉여자와 자금 필요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세금 제도는 각 상품에 따라 각각 상이합니다.

현재 상장 주식은 배당 소득세와 거래세는 있지만, (일반 투자가의 경우) 양도 소득세는 없습니다. 채권은 이자 소득세는 있지만 거래세도 없고 양도 소득세도 없습니다. 주로 주식과 채권을 엮어 만들어지는 파생상품에는 거래세도 없고 양도 소득세도 없습니다. 이렇게 각 상품별 세금제도가 다르고 다른 유가증권의 경우 양도소득세가 없는데 유독 파생상품에 대해서만 지금부터 양도소득세를 매기자고 하는 정책적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초 자산에는 양도소득세를 매기지 않으면서 이를 조합한 파생상품에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자는 것은 파생
상품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됩니다.

또, 박교수님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증권거래세 인하에 관해서는 시도할 만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동의 합니다. 그러나 동의하는 이유는 박교수님과 다릅니다.

박교수님은 거래세 인하에 관한 논의를 주로 주식 시장의 거래량과 연결시켜 논의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시각이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거래세가 이렇게 높아도 한국 투자가들의 거래 회전율은 그리 낮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한국의 주식 시장의 거래 회전율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게다가 거래소 시장의 경우 개인의 거래비중이 50%를 차지하고 코스닥은 80%를 차지합니다. 이 비중이 더 높아진다고 해서 좋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객의 거래세를 낮추어서 주식 거래가 더 많아진다면 증권회사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국가적으로 어떻게 좋은 것인지가 불확실하다면 굳이 자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이것을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얘기하지만 자본시장 활성화가 꼭 거래량 증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래세가 자본시장에 보이지 않는 폐단을 낳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래세가 주식시장 거래량에 미치는 영향보다 거래세가 파생시장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영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자본 시장에서 파생상품은 이미 확고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식 거래세가 있으면 파생상품의 적절한 가격을 산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개별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한 3년 기한으로 ELS를 발행하면 증권사는 이 부채를 헷지하기 위해 수시로 기초자산인 주식을 거래해야 합니다. 3년간 얼마나 자주 거래해야 할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식 거래세가 30bp 나 있으면 헷지 거래의 비용을 미리 추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과거에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서 이런 비용을 감안하고도 상품 설계가 가능했지만 요즘처럼 변동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내려온 상황에서는 개별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ELS를 만들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개별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 시장이 발달하지 않고 인덱스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만 지나치게 발달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래세의 목적이 무엇인가 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과거에는 어쨌든 간에, 지금의 증권거래세는 세수 확보를 위한 것 말고는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세수 차원에서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자본시장에 관한 정부의 조세 정책의 틀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주식에만 거래세를 부과하고 다른 상품에는 거래세를 부과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상품별 소득세를 별도 분리 과세하고, 주식과 채권에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으면서 파생상품에는 부과하겠다는 생각이 무슨 정책 틀에서 나온 것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본시장 관련 조세 정책을 파편화 해서 얻는 장점이 무엇입니까?

오윤 교수님은 국민재산 증대 및 재정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으로 우선 모든 금융소득을 하나로 묶어 이익과 손실을 상계한 순소득을 계산해서 과세하는 방식을 제안하시면서 한국형 ISA를 도입할 때 연금저축에 대해 다른 세금을 적용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교수님은 현행 세제의 특징으로 금융상품간 과세상 중립성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들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투자의 중립성을 가장 중요시 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또 수익금액에서 자본이득은 과세하면서 자본손실은 소득 계산시 감안하지 않는 비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순소득 기준으로 과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역시 찬성합니다.

지금부터 제 개인적인 소감을 얘기하겠습니다. 사실 한국의 자본시장과 금융자산에 관한 세금 제도는 하도 복잡하고 수시로 바뀌다 보니 이제는 거의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헷갈릴 지경입니다. 요즘 해외투자에 대한 차별적인 과세제도에 관해 모 일간지에서 다룬 기사를 인용하겠습니다.

"예컨대 1억원을 해외주식인 애플에 투자해 3000만원(수익률 30%)의 수익을 냈다고 하자. 펀드를 통해 투자했다면 세금으로 462만~1254만원을 떼인다. 해외주식형 펀드 투자로 얻는 소득은 배당소득으로 분류돼 최고 41.8% 세율이 적용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애플 주식에 직접 투자했다면 세금은 605만원만 내면 된다. 해외주식 직접 투자로 얻는 양도차익은 다른 소득과 분리해 과세(지방소득세 포함 22%)해서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변액보험에 가입했다면 10년 유지했을 때 아예 세금을 한 푼도 안 문다. 심지어 채권도 개인이 직접 투자하면 매매차익에 과세하지 않지만 펀드를 통하면 세금을 물린다." (중앙일보 2015. 3. 31)

누가 보기에도 너무 복잡할 것입니다. 고객을 응대하는 저희 직원들도 헷갈려 하는데 고객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정책 당국자들이 무슨 의도에서 해외투자에 관한 제도를 이렇게 설계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발표에서도 보셨겠지만 선진국 금융저축 과세제도에서 세금 혜택에 관한 정책의 틀은 금융저축의 목적에 의거해서 운영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중산층의 자산 형성 목적, 자녀 학자금 형성 목적, 은퇴 후 노후자금 목적 등에 따라 목적 별 세금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만들고 그 안에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지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정책은 아무리 들여봐도 무슨 정책의 틀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제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잊으셔도 좋습니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십시오.

한국 정부 정책을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면 특정 권역과 특정 상품에 대한 특수 대우라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목적 별 과세 특례 제도가 조금씩 도입되는 중이지만 아직도 한참 부족합니다. 여전히 특정 업체들이 파는 예금에 세금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별첨에서 보여드리겠지만 그 종류만 나열해도 세 페이지가 됩니다. 단순 예금은 물론 보험 상품에 왜 아직도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과거 경제개발 초기에는 자본 축적이 부족해서 장기 저축을 장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은 더 이상 저축이 부족한 나라가 아닙니다.

연금 제도도 너무 왜곡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퇴직 연금도 선진국의 기업 연금과 많이 다릅니다. 말이 연금이지 연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돈이 DB 형에 들어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그냥 퇴직할 때 줄 퇴직금을 기업 바깥에 적립해놓았다는 것일 뿐 선진국처럼 은퇴 후 생활을 할 때 받을 혜택이 미리 정의 되어 있다는 뜻에서의 원래 의미, Defined Benefit, 과는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이렇게 제도 준비를 안 하고 있는 사이 우리 나라는 어느덧 고령사회가 되었습니다. 부동산에 지나친 세제 혜택을 주어 국민들의 돈이 너무 많이 부동산에 잠겨 있어서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은퇴할 사람들은 많아지고 젊은 층은 줄어드는데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을 동시에 많은 사람이 처분하려면 가격이 폭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과 금융저축 상품에 관한 세금제도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자본시장에 대한 세제의 틀을 확립해야 합니다. 금융저축 상품에 세금 혜택을 줄 것이면 특정 권역과 특정 상품에 주지 말고 목적 기준으로 과세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그 혜택을 예금을 하는데 쓸 것인지, 보험을 할 때 쓸 것인지, 아니면 투자를 하는데 쓸 것인지는 소비자에게 맡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