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0일 금요일

지지부진한 구조조정과 사라진 중장기 정책 비전

뉴욕타임즈 같은 신문은 가끔 큰 주제로 길게 쓴 기사를 싣는다. 이번에는 무역자유화를 갖고 여러 나라를 현장 취재한 기사를 올렸는데 매우 잘 쓴 기사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기자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NYT 기사에 의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유무역에 대한 불만도 같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양 후보가 모두 태평양권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더불어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자유무역에 반대하거나 불만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늘고 있는 것이다.
기사는 무역자유화가 기대한만큼 경제적 혜택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증가하는 것 외에도, 무역자유화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가 초래하는 피해 보상을 위해 도입한 사회복지 체제가 그리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역자유화에 따른 선진국 경제의 구조조정에 대한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것이 연상되어 간단하게(?) 적어본다. 
미리 이 글의 주장을 요약하면, 나는 경직된 경제 체제와 지대 추구에 몰두하는 경쟁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체제 개혁을 위해서는 중장기 계획과 비전이 필요한데 한국 정부에서는 요즘 그런 작업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봉책 만을 남발하면서 지난 8년을 보냈다.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 유념할 것이있는데 그것은 자유무역이 경기 침체를 초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경기가 나쁘면 사람들은 뭔가 탓할 거리를 찾게 된다. 딱히 내부에서 탓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려우면 외부에서 찾게 된다. 세계화나 기술변화는 딱히 이거다 싶게 하나로 모아지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면 무역 자유화가 가장 쉽게 떠오른다. 무역자유화를 하면 모두들 좋아진다고 했는데 좋아지기는 커녕 살기가 빡빡해졌다. 이것이 다 마치 무역자유화 때문에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무역자유화가 경제 전체적으로는 더 좋을수 있지만 국내 경제부문간에는 이해 관계가 갈리게 된다. 부문간 확대와 수축에 따른 경제 부문간 조정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피해를 받게 되는 계층이 생긴다. 그에 대한 보상책을 적절히 설계하자는 주장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지만, 문제는 정작 효과있는 정책 설계 작업은 쉽지도 않고 실제 행정에선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기사에서도 이를 반성하는 경제정책가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유무역화에 따른 경제 구조 변화에 대응을 돕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실업보험과 직업 재훈련이다. 소득보전 등의 다른 정책도 있지만 지금까지 선진국들의 경험상 그래도 가장 폐해가 적은 정책이 이것 둘이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그 정책의 효과성은 제각각이다. 미국의 실업보험은 유럽에 비해 형편없이 부족하다. 6개월이면 끝날 정도로 기간이 짧고 소득 대체율도 훨씬 낮다. 유럽은 사정이 낫지만 그래도 경기 침체가 오래 가면 그것도 소용이 없다. 직업 재훈련 역시, 기사가 전하는 현실은 어둡기 짝이 없다.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형식적이거나 쓸모가 없다고 한다.
한국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아니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실업보험이 너무 미약하고 직업 재훈련 역시 거의 무의미할 정도다. 실업보험 대상자가 아닌 사람이 너무 많고, 받아 봤자 6개월간 평균 100만원을 겨우 넘는다. 직업 재훈련 역시 실효성도 없이 고용노동부의 복마전이 된지 오래 되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이 아쉽다. (한국 언론이 현장 취재를 통해 실업보험과 직업 재훈련의 부실성을 드러내는 기사를 내주면 좋겠다.) 
이런 무관심의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화에 따른 산업조정의 부담에 대해 한국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제 규모 대비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들 보다도 월등히 높아서 세계화의 영향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은 수출 주도로 성장했고 자국내 시장은 매우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신경을 쓸 부문이 있다면 농업 부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도 세계화에 따른 국내적 구조조정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첫째,개발도상국의 위치가 아니어서 국내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 둘째, 국내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나가고 있다. 대기업 부문의 임금은 선진국 못지 않거나 오히려 더 높은 경우도 있다.
한국은 미국, 중국, EU등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요즘은 농산물은 물론 중국과 다른 개발국가들의 공산품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있다. 종래에는 국내 규제로 막아 놓았던 산업들에도 외국 기업이 들어와 경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수입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자동차 시장이다.
이런 충격을 흡수하는데에는 경제의 유연성이 높은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유연한 구조가 아니다. 국내 시장은 독과점적이다. 게다가 관료의 권한이 지나치게 많아 규제에 의한 진입 장벽도 높다. 마지막으로,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강한 나라다. 관료와 독과점 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를 이용해 자기들만의 벽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 벽 안에 들어간 부문을 통칭해서 원청, 그 밖의 부문을 하청 부문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경쟁은 이 원청과 하청을 나누는 벽을 기정사실화 한 채 일어난다. 즉 한국 사회 내에서의 경쟁은 한마디로 원청 부문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되었다. 관료와 독과점 재벌에 의해 만들어진 체제를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모두들 그것은 기정 사실로 놓고 자기를 시장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와 기술 변화에 따른 경제의 구조조정이 한국 사회 안에서의 종래 방식의 경쟁을 무의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성장이 오래 가면 따듯한 아랫목에도 한기가 들게 마련이다. (물론 윗목은 더욱 추워진다.) 방 전체는 추워지고 있지만 모두들 서로 그나마 줄어드는 아랫목을 차지하려는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경직된 경제체제 안에서 원청과 하청으로 나뉘어서 무의미한 경쟁과 싸움질만 하는 사회가 저성장과 세계화와 기술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살을 앓고 있다. 
이와 같이 경직된 경제 체제와 지대 추구에 몰두하는 경쟁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 정부 안에서 중장기 계획과 비전이 사라졌다는 점을 걱정한다.
예를 들어 지난 8년간 재정적자가 계속 되고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없다. 그냥 작년 대비 올해 재정적자가 얼마인지만 따지고 있다. 이에 관한 기재부의 입장은 어정쩡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다. 겉으로는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면서도 지난 8년간 계속 적자예산을 짜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기 침체로 세수가 부족하므로 단기적으로는 재정적자를 감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통화정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자가들의 중장기 물가 정책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물가가 타겟 인플레이션률을 하회한지 수년이 지났다. 타겟이 2%인데 수년간 2%에 미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만 2%를 달성한다 한들 중장기적으로는 2%에 못미친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나마 물가상승률이 2%를 상회하도록 할 것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물가 상승률도 낮고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중장기적으로 금리 통화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한국은행은 하지 않고 있다.
외환정책도 마찬가지다. GDP 대비 경상수지흑자가 5%를 넘은지 오래되었고 요즘은 7%에 달한지 몇년이 되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환율이 절상되어도 한참 되어야 한다. 정부는 자본 유출을 장려해서 자본수지 적자를 통해 환율 절상을 막고 있은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적어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굳이 국내 시장에서 이자를 주고 원화를 조달해서 달라를 사는데 쓰는 외환평형기금의 규모는 중장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도 그 규모가 150여조원이고 매년 수조원씩 이자지급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그럴 움직임은 안보인다. 
실물부문도 마찬가지다. 무역장벽이 낮아지고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국내 부문간 불균형이 심화되고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 실물 부문 정책이 실종된지 오래되었다. 4대 부문 혁신이라지만 그저 정치적 편가르기에만 몰두하고 국회탓만 하며 세월을 보낸지가 벌써 만 3년이 지났다. 
현 정권은 자기들의 이념적인 고정 관념에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진정으로 노동부문 유연성 제고를 하고 싶으면 실업보험제도 개혁이 먼저다. 그러나 정부는 그럴 생각은 꿈에도 없는 듯하다. 이렇게 가면 내년 말에 가서 5년 동안 한 것이 뭐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런 것이 하나하나 쌓여서 "잃어버린 10년"이 생긴다. 
여기서 잠깐 과거를 회상해보자. 노무현 정권 시절 <국가비전 2030>을 2006년에 발표한 적이 있다. 5년 단임 정부가, 정권 초기에는 엉뚱한 데 힘을 다 쓰고 시간 낭비하다가, 정권 말기에,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노력도 부족한 채, 재정 조달책은 빠진 채, 2006년에 15년을 앞둔 2030 정책 비전을 만들었다는 것이 뜬금 없기는 했다. 
그래도 그 뜻은 가상했다. 
정권은 5년 단임이지만 국가는 남는다. 그래서 그 국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 비전이나 계획은 꼭 필요하다. 그런 계획이 있어야 목표 대비 현재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비교할 수가 있다. 그런데 5년 단임 정권이 계속되면서 점점 나라의 미래를 기획하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 사항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정권과 관료가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시대에 만들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중장기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심지어 급변하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도 중장기 비전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수한 기업은 그렇게 한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알아야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처럼 5년 단임 정권을 계속하면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