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1일 일요일

대기업 신입사원 퇴사율을 낮추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지난 주말 SBS에서 대기업 신입사원 1년 내 퇴사율이 27.7%인 현상을 다루었다.
치열한 입사 경쟁율을 뚫고 들어온 젊은 직원들 중 상당수가 몇년만에 회사를 떠나는 현상은 나도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문제였다.
방송에서는 회식, 경직적인 조직문화, 이유 없는 야근, 끝없는 진로 고민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하나씩 생각해보자.
첫째, 내 생각엔 요새 회식 문화는 많이 바뀐 것 같다. 밤 늦게 까지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다. 지난 5년 사이에 음식점 풍경에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아홉시가 넘으면 사람들이 자리를 파하고 일어난다. 열시까지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실례가 될 지경이다. 임원들도 직원들이 회식을 싫어하는 것을 의식한다. 접대 자리를 이용해서 공돈으로 퍼마시는 분위기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둘째, 경직된 조직 문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흔히 지적할 수 있는 것부터 나열하면, 가정과 학교 부터가 권위주의적인 환경이다. 또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군대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한국 대기업 문화가 경직적인 데에는 대기업 그룹의 지배구조가 비뚤어진 것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 지분에 비해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고, 사익을 위해 회사 자원을 빼돌리고,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모 덕에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조직을 휘어잡기 위해선 무조건 복종을 강조하는 문화를 조장할 필요가 있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강요하기 위해선 평소 무조건적인 복종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합리적인 행동을 명령해도 군말 않고 따른다. 평시에 작은 일부터 까라면 까는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켜 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가장 비합리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곳이 군대다. 전쟁 발발 시 자기가 죽을 지도 모르는 공포를 무릅쓰고 나서서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조직이다. 명령 복종 문화를 미리부터 머리에 심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신병 훈련의 일차적 목표는 복종을 가르치는 것이다. 일사분란한 제식 훈련도 그래서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서 매스게임을 하는 것의 배후논리는 독재국가들이 그러한 것과 선호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또 비합리적이고 경직적인 문화는 세습 경영에 매우 요긴하다. 2세, 3세 후계자가 조직을 단시간에 휘어 잡는 방법으로 선호하는 것이 바로 자기들에게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는 경영진이나 직원을 단칼에 해고하는 것이다. 자의적인 인사와 해고만큼 직장인에게 공포스러운 것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북한의 김정은이다. 서른도 안된 젊은이가 독재자로서의 국가 권력을 물려받았다. 광포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권력 유지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재벌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북한을 연상시킬 때가 많다. 젊은 나이에 경영권을 물려 받은 재벌 후계자들이 일종의 본보기로 고위 임원을 해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한의 세습 체제나 남한의 세습 재벌이나 이면에서는 상당히 비슷하다. 
넷째, 이유 없는 야근. 여기에는 한국 기업의 위계적이고 착취적인 직장 문화가 큰 몫을 한다. 지난 2월, 한국의 <지식 노동자와 직장 민주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중간 간부만 되어도 직접 업무를 하지 않고 아래 사람에게 미룬다. 데이터도 직접 다루지 않고 글도 직접 쓰지 않는다. 지식의 심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멀어지니 원숙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뛰지 않고 부하로부터 보고만 받으니 아래 사람만 더 볶게 된다."
지난 번에 언급한 것처럼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것에 임원들 보다도 부장들이 더 저항하는데에는 이러한 착취적인 위계 질서가 뒤에 숨어있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는데에는 이분화된 노동시장과 낮은 실업보험 급여도 한 몫을 한다. 한국 기업 경영자들의 행동을 보다 보면 "내가 이렇게 한들 너희들이 어디에 갈껀데?" 라는 생각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대기업은 높은 임금을 주었으니 그만큼 더 부려먹겠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 역시 월급을 박하게 주면서 부려만 먹다가 직원이 떠나면 다른 사람으로 갈아 끼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끊임 없는 진로 걱정. 이것은 한국 기업의 낙후된 인사 정책의 탓이 크다.
우선 일괄적인 채용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많은 기업들이 사업부나 직무에 따라 자격 요건과 적성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일괄해서 뽑아서 일방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직무급제과 평가 시스템을 개선해서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 채용단계부터 각 사업부 또는 직무 별로 뽑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회사가 직무급제를 운영하고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전 직장에서 각 사업부 별로 자기가 쓸 사람을 뽑게 하고, 신입 사원에게 일년 동안 자기가 원하는 부서를 골라서 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도 신입 직원의 적응을 돕고 그들의 정착율을 높이기 위한 취지에서 한 것이었다.
평가와 육성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우선 뽑은 후에는 각 직무별로 무슨 능력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상사의 자의적이고 무성의한 평가에만 맡기지 말아야 한다. 직장 동료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평가도 상대 등급만 알려주고 마는 결과 위주 방식이 아니라 육성 차원에서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임원과 부장에게만 다면 평가를 적용하는데 그것을 사원 시절부터 해야 한다. 동료들이나 직속 상급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회사 내에서 빈 자리가 생기면 공모를 하고 직원들은 자기가 가고 싶은 부서에 자유롭게 지원하는 노동 시장 또는 잡 마켓을 운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국처럼 최고 경영자가 2~3년 마다 바뀌는 환경에서 이런 인사제도의 개혁을 경영진이 꾸준히 시도하고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노력을 계속하지 않는한 젊은 직장인들의 방황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3년도 채 안 다닐 재벌 계열회사에서 인사제도 개혁에 공을 들인 것도 이런 노력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9월 14일 페이스북 글)

댓글 2개:

  1. 최근, 교육계에서 '성장배려학년제'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초1, 중1, 고1 학생들이 새로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하자는 취지의 정책입니다. 기업에도 이런 정책이 있다니...어른이나 아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교육계에서든 경제계에서든 정책이 성공해서 잘 적응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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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청문회를 통해서 뵙고 감동 받아서 동영상 글 모조리 읽고 보고 있는 직장인 입니다. 어끄제 입사한거 같은데 벌써 7년차 과장입니다.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으나 현실이 바른말하고 옳은말하면 눈에 가시로 보는 조직문화 제 힘으론 바꾸기가 힘드네요. 부디 정권 바뀌면 힘있는 자리에서 좋은 정책으로 힘없는 사람들 많이 도와주세요. 건승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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