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한국의 관혼상제, 이대로 괜찮은가?



11월이다. 아버님 제사날이 가까워졌지만 며칠이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서 아내에게 물었다가 그날 내가 다른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을 미리미리 기억해놓지 않고 날이 임박해서야 떠올리는 내 습관 탓이다. 부리나케 약속을 조정했다.
그런데 사실 언제를 제사날로 잡아야 하는지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옛날에는 기일이 되면 돌아가신 분 제사부터 먼저 지내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그 전날 밤에 미리 준비했다가 자정이 지나면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친지들이 모여서 자정까지 있다가 제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점점 제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앞당겨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저녁 8~9시에 하고 헤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 제사는 원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점이다. 기일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기일 하루 전에 지내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니 말이다. 내 생각엔 그럴 바에야 기일날 저녁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번 기회에 형제들과 상의해서 제사날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확정할까 싶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우리나라는 가정 의례가 엉망이다.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원래 가정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꼽은 것이다. 이중 갓을 쓰는 성인식인 관례(冠禮)는 완전히 사라졌다. 결혼식을 올리는 혼례(婚禮)는 개신교 목사가 집전하는 기독교 혼례 방식이 교묘하게 섞이더니 이젠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심지어 같은 집안 안에서도 형제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게 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는 박정희가 만든 가정의례준칙 때문에 가장 해괴망칙하게 되어버렸다. 국가가 가정 의례를 획일적으로 정하고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강제성은 없어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안에 대통령령인 <건전가정의례준칙>으로 남아있다. 
장례에서 내가 가장 불만인 것은 망인이 돌아가시자 마자 사흘안에 후다닥 장례를 끝내는 3일장이다. 돌아가신 분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한 예식 치고는 너무 어수선하고 급박하다. 이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며칠 시간을 두고 준비한 후 장례식 날자를 따로 잡아 그 시간에 방문해서 애도를 같이 표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을 불러서 시체 안치실 옆에서 염을 하는 장면을 보도록 하는 것도 나는 약간 그로테스크 하기도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이 화장을 하는데 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대형병원 구석에 마련한 장소에서 사나흘 만에 장례를 치르는 한국의 장례 문화가 나에겐 거의 야만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부모님 장례식 방법을 형제간에 미리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 역시 막상 일이 닥쳐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엔 부모님 장례를 이렇게 치른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돌아가신 분에게 우리는 좀 다른 방법으로 예의를 표시할 수는 없을까? 
제례(祭禮) 때를 맞이해서 제사를 언제 지내는 것이 적절한지를 갖고 얘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가정의례가 국적불명, 취지불명인 채 살고 있다. 차례 하나를 지내면서도 어떻게 할지를 확실히 몰라 서로 눈치를 보면서 치룬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정해지지 않아 자기들도 확실하지 않은 방식을 굳이 흉내내는 시늉을 할 필요가 있을까? 
관혼상제를 겪을 때마다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얼마나 우리의 삶이 뿌리까지 흔들렸는지를 새삼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