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8일 목요일

부동산 정책: 언제까지 결핵에 해열제를 쓸 것인가?

그저께 참여연대 강연을 시작했다. 주제는 부동산. 두시간만에 다루기엔 벅찬 주제여서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이 되었다.
두 가지 결정을 했다.
하나는 일방적 강연이 아니라 청중이 더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시도해보는 것. 그래서 뉴스타파의 짧은 방송을 보면서 각자 머리 속에 떠오른 질문을 같이 칠판에 적어보고, 내게 떠오른 질문도 같이 적어서 이 질문을 갖고 같이 얘기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자기들은 정의의 편에 섰다고 생각하고 만든 방송이 얼마나 잘못된 인식에 기초한 것인지를 얘기하다보면 일반 대중이 얼마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의 뼈대가 드러날 것 같았다.
둘째, 원인 분석과 진단에 그치지 말고 처방도 요약해서 제시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한국 사회가 대안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가 왜 어떻게 하다가 생겼는지도 잘 모르거나 합의를 만들어 낼 정치적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해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안이 도출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알아야 바꾸지, 알지도 못하면 바꿀 동력도 안 생긴다.
하지만 부동산은 조금이나마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기존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엔 한국의 부동산 문제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이 감옥에서 벗어날 열쇠는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로 했다.
먼저 진단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가격 규제와 중산층의 내집 마련 지원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6~70년대 경제성장과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1970년대엔 도시 중산층과 도시 빈민층이 동시에 확대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주택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1977년, 박정희 정부는 분양가 규제와 청약 자격제를 실시했다. 그리고 나선 군사독재정권의 위력을 이용해 토지를 강제수용해서 아파트 부지로 공급했다. 이렇게 빼앗은 땅 위에 지은 아파트의 공급 가격은 인위적으로 억누르고 중산층에게 분양권 추첨으로 나누어 주었다. 분양권을 따기만 하면 당장 몇년치 소득에 해당하는 차익을 얻게 되니 전 국민이 부동산 투기 시장에 골몰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주간 단위로 아파트 값 향방을 갖고 뉴스 보도가 쏟아지는 기현상은 일부에서 얘기하듯 한국 사람이 원래 투기 성향이 강하거나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유인에 다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때 마련된 부동산 정책 틀은 박정희 정권 후에도 이어졌다. 모든 정권은 자신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내집 마련을 통한 중산층 확대에 매달렸다. 공공의 목적이 아니면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하는 강제 수용권을 남발하여 땅을 빼앗아 신도시를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지어 개인에게 불하했다. 일종의 집단적 약탈 구조에 전 국민이 참여한 것이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은 주택을 짓기 위한 택지 개발권을 정부가 독점하고 민간의 토지 개발권을 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체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부동산 정책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토지 수용권 남용과 가격규제 방식을 유독 한국만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이것 하나에 지탱해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산층 대부분은 노동시장 이분화 과정에서 원청부문에 소속되는데 성공하거나 아파트 분양을 받은데 기초하고 있다. 원청 부문에 떨어져 나오거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대부분의 한국 중산층은 아주 빠른 속도로 중산층에서 탈락할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원청 부문의 고용 비중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계층 유지를 위해선 부동산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부동산 가격마저 떨어지면 경제에 미치는 타격도 크고 엄청난 사회불안이 일어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제도가 40년이 넘도록 유지되면서 자연히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 촛점은 부동산 가격 안정에 가게 되었다. 만약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면 청약 당첨으로 떼돈을 번 중산층이 다음 선거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번 8.2 대책 역시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을 다주택자들이 집을 매집하는 탓으로 돌렸고, 들고 나온 정책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수요 규제를 통한 집값 잡기에 불과하다.
이번에 시행된 재건축 규제 역시 집값 상승의 주범 중 하나가 무분별한 재건축 때문이라는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재건축은 주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장 반응이다. 장기적으론 재건축이 활성화되어야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고 가격도 안정화 된다.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허무는 것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우려해서 정부가 재건축을 규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다. 민간이 자기 부담으로 자기 집을 새로 짓겠다는데 중앙 정부가 허가를 해주느니 마느니 간섭하겠다는 생각이 잘못이다. 게다가 그 명분은 핑계에 불과하다. 본심은 국토부 관원들이 인위적으로 시장 공급량을 직접 조종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번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가격 억제라는 점에서 더욱 잘못되었다. 도대체 정부는 언제까지 인위적 가격통제에 연연할 것인가?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부동산과 주택은 주거 서비스의 사용가치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자산(Asset)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주거 서비스 개선보다 자산 가격 개입에 골몰했다. 그래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뒷전에 두고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을 우선시 했다. 무주택자라곤 하지만 사실은 중산층인 사람들의 내집 마련을 쉽게 하기 위해 가격을 억누르는 대신 막상 빈곤층을 위한 주택 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 사회 정책은 알고 보면 중산층의 이익 위주다. 정치적인 목소리가 낮은 하청 부문과 빈곤층을 위한 정책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처방이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자기 능력에 지나치지 않은 부담으로 주거 서비스를 누리는데 촛점을 두고 대신 자산 가격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을 빼놓으면 주택 값이 높다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나라는 없다. 정책의 목적이 주거 복지 향상에 있다면 정부는 가격을 자율화하는 대신 공공임대주택을 통한 주거복지 강화와 부동산 관련 조세를 보다 공정하게 바꾸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맞다.
공급 측면에선 인위적 가격 개입을 포기하고 대신 민간주택 공급이 더 활성화 되도록 용적률, 건폐율, 재건축, 용도 변경 등 토지 사용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분권화해서 시장 공급 기능이 더 활발히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주거 복지는 직접 공급이나 조세 혜택을 통해 공공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서 민간 임대시장에서 취약계층 안전장치를 갖추는데 진력하면 된다.
수요 측면에선 조세와 금융을 개혁해야 한다. 지금은 재산세가 낮고 취득세가 높아 도시 중심지 재개발이 부진하다. 재산세는 점진적으로 인상하면 도심 재개발이 촉진된다. 취득세를 인하하면 도심은 놔두고 땅값 싼 외곽에 신도시 개발을 하려는 유인이 작아진다. 따라서 재산세는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취득세는 점차 인하해야 한다.
일가구 일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면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2~3년 살고 팔 경우 일주택자라고 해서 양도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는 전국민이 투기꾼이 되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함께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양도세는 폐지해야 한다. 누군가가는 다주택자여야 임대주택도 가능해진다. 대신 임대소득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처럼 비용 제하고도 남은 임대소득을 2천만원 까지 세금 면제를 해주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대출의 건전성 역시 강화시켜야 한다. 한국은 원금은 안 갚고 이자만 내는 대출에 의존해서 가계부채를 키워왔다. 정부가 약 5년전부터 개입하기 시작해서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이자만 내는 대출은 현재는 잔고 기준으로 60%, 신규 기준으로 30%로 축소되었다. 앞으로 이 비중을 더욱 줄여야 한다. 한편 이자만 내는 대출 비중을 줄이는데 진력하는 동안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DSR)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DSR)은 올해 가을 처음 도입한다고 하지만 그 적정 비율을 얼마로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모두들 부동산 경기가 연착륙하길 원한다. 부동산은 워낙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 정책에만 의존하기 보단 경제 환경을 봐가면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기적인 가격 조종을 위해 과거에 쓰던 비합리적인 무기를 다시 들고 나와 쓰면 나중에 바로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왜 과거에 실패한 부동산 정책 수단에 그토록 연연하는지 안타깝다.
결핵 환자에게 해열제를 쓰면 당장은 열이 내릴지 모르지만 병은 더욱 깊어 갈 수 밖에 없다. 가격 개입 정책이 비로 그 해열제다. 결핵도 병이 깊어지면 해열제도 소용 없다. 그때까지 정부는 계속 해열제에 집착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