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2일 목요일

관원의 꿈, 통행료 사업

사업 중에서 가장 돈벌기 좋은 사업은 사람들이 지나가야 하는 길목을 막고 통행료를 받는 것이다. 특별히 할 일도 없이 앉아서 돈만 챙기면 된다.
한국에는 이런 통행료 장사는 경제 곳곳에 숨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사찰들이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이사 할 때마다 도시가스 연결 비용을 받는다. 가스 레인지를 갖고 다니지도 않고 원래 그 집에 있던 것을 그냥 쓰는데도 그렇다. 이런 것은 내가 외국에서 살면서 이사할 때 한번도 내본 적이 없는 비용이다.
자동차 운전면허도 그렇다. 미국에서는 거의 돈도 안들이고 통과하는 간단한 운전면허 시험 절차를 한국에서는 필기시험, 기능시험, 주행시험 세단계로 나누어 보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십만원을 들여가면서 학원을 다닌다.
이런 운전학원과 경찰은 무척 사이가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왜 운전면허 시험 방식을 경찰이 결정해야 하는 것인지부터가 의문스럽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은 사소한 예에 불과하다. 도처에 더 큰 것들이 깔려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악질 통행료는 물론 사법부와 국세청의 전관예우다. 
심지어 검찰에 고발되면 왜 안 찾아오냐고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먼저 연락하기도 한다. 큰 그림에서 보면 자기들끼리 담합해서 감옥을 무기로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다. 정기 세무조사를 앞두면 여기 저기서 세무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어떻게들 알고 찾아온다. 법무법인, 회계 법인, 독립 세무 컨설팅 회사. 알고 보면 모두 국세청 출신들이다. 큰 그림에서 보면 자기들끼리 담합해서 세금 추징을 무기로 돈을 뜯어낸다.
이같이 모든 관원은 퇴직 후 통행료를 받고 살기를 꿈꾼다. 옛날에는 현직에 있을 때 받았지만 이제는 점차 교묘해져서 시간차 공격으로 바뀌었다. 그 통행료는 물론 우리가 낸 돈이다.

2016년 12월 16일 금요일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 나의 김기원 읽기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 나의 김기원 읽기>
오늘 새벽 일찍 잠에서 깬 김에 김기원 선생의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를 읽었다.
그 중 그가 한국사회에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 역시 근래에 들어 나와 비슷한 생각의 여정을 거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경제학자들은 모든 것을 경제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그것을 경제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사실 그는 그러한 경제결정론만으로는 한국사회를 설명하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가 독일에 가 있으면서 독일을 이해하는데는 경제와 정치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뒤에 독일 사회의 문화적인 결을 이해해야 한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사회 역시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거치지 않고는 변혁을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가장 크게 느낀 문화적 차이는 독일의 사회적 신뢰와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였다.
독일에 가서 책을 주문했더니 책을 우편으로 배송하고 청구서를 동봉했더란다. 의사에게 찾아가도 먼저 치료하고 나중에 청구서를 보낸다. 지하철에는 개찰구가 없다. 사회적 신뢰가 깊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 덕분에 사회가 거래 비용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가 이것을 중요하게 느낀 이유는 유럽에서 고부담 고혜택 복지제도가 가능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신뢰 때문에 감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를 뒷받침한다는 중견기업중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 (히든 챔피언)을 찾아갔을 때 그가 본 것은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였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밴드를 하던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오디오 기기를 만들고 싶어서 1977년 회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직원이 50명 밖에 안되는 기업이지만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오디오 회사란다. 직원들은 일년에 한달 휴가를 가지만 나이가 60대인 사장은 바빠서 휴가를 그 해에 한번도 못 갔단다. 김선생은 독일의 히든 챔피언이 바로 이런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는 독일에 머물며 한국을 돌아 보면서 새삼스레 한국사회의 낮은 신뢰 수준과 직업적 긍지의 부족을 통감했던 것 같다.
세월호 사건에서 배에 탄 선객을 버리고 자기들만 도망쳐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보면서 그는 직업 윤리의 실종을 보았다. 기복신앙에 빠진 한국 교회와 부패한 목사를 보면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문화'의 결여를 보았다. 김용준씨처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사람이 총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데서 직업적 긍지의 매장을 보았다.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주무르는 재벌총수, 그런 재벌로부터 돈을 넙죽넙죽 받아 챙기는 정계, 관계, 언론계, 학계, 검찰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공범자 유력집단'을 보았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직업윤리를 망각한 것은 유력층만이 아니다. 거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도 '특수이익 집단’이 되어 다른 노동자에 비해 부당하게 높은 처우를 누리면서도 부끄럼을 모르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내 입장에서 덧붙이자면 고객에게 뻔히 안 좋은 줄 알면서 보험을 팔아대는 보험 회사들이나 투기적 주식 매매를 부추키고 자기에게 이익이 더 떨어지는 상품을 권하는 증권회사들도 직업 윤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원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자만 갚는 대출을 남발하는 은행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그가 독일에 가기 전에 그와 이런 문제에 관해 여러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한국 사회를 단지 경제나 정치만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조선 사회 특유의 문화적 전통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순을 많이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개혁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약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20년 전까지 한국 사회는 노비가 대규모로 있던 사회였다. 노비는 일본에는 없고, 중국에는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노비는 빚을 못 갚은 사람이 노비가 된 것이어서 노비 신분은 당대에 끝났다. 한국의 노비는 부모 중 한사람만 노비여도 자식까지 노비인 악질적인 제도였다.
조선은 양반과 상놈, 그리고 노비로 이루어졌던 신분 사회였다. 양반은 자기들끼리는 많지 않은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패를 나누어 싸웠지만 그들 모두는 군역과 세금에서 자유로운 특권층이었다. 상놈은 그런 특혜를 누리는 양반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노비의 억울한 사정은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인 사회인 것은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공립 교육은 버려두고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린다. 비정규직의 고통은 놔두고 정규직 감원 한다고 희망버스를 동원한다. 집이 없어 고시방에 옥탑방을 전전하는데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동산 값을 올리는데 열중한다. 빈곤에 시달려 자살하는 노인들을 두고도 국민연금을 쌓아두자고 한다.
사회적 신뢰와 직업적 긍지?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2015. 12.15일 페이스 북에 쓴 글)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눈 깔 줄 아는 모범생

넥슨 김정주가 진경준에게 준 공짜 주식을 뇌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보도를 보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놀랐다. 판사 김진동에 의하면 구체적인 대가성이 없고 친한 친구 사이에선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에 검찰개혁 만이 아니라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도록 법원 개혁도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겨우 며칠만에 좋은 예가 드러난 셈이다. 한국의 법조인들이 얼마나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사는지를 잘 보여준다.
96년에 귀국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구들과 골프를 쳤는데 그 중 한명이 검사였다. 대학 시절 나름 사회에 대한 고민도 하던 친구이었다. 검사로서도 행동거지가 반듯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예약자 이름으로 가명을 쓰고 있었다. 골프 백에도 다른 사람 명표가 달려 있었다. 골프 끝나고 식사 하면서 슬쩍 최대한 부드럽게 한마디 했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걸고 할 수 없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냐고. 어색해지지 않도록 옆에 있던 친구가 거들었다. 진형아, 다들 그래. 검사들 중 자기 이름으로 골프 치는 사람 없어. 나중에 알고 보니 관료들 중에도 없었다. 
사실 많은 관료 특히 검사들은 스폰서를 갖고 있다. 내가 알기엔 거의 모든 관료와 검사가 그렇다. 꼭 불법적인 스폰서일 필요는 없다. 술 마시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술 사라고 불러낼 친구는 누구나 있다. 이건 굳이 스폰서라고 할 일도 아닐 수 있다. 이게 좀 커지면 자기 부하들 술 자리에 불러 술값을 내게 하기도 한다. 이런 정도는 정말 약과다. 진경준 처럼 차를 받고, 여비를 받고, 돈을 빌려가고 안 갚는다. 대신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대한 댓가는? 국가 정책을 미리 귀뜸해 준다. 사업 기회가 열린다. 사기업에 대해 국가기관으로서 알게 된 정보도 알려 준다. 회계가 불투명한 한국에선 이것이 사업상 판단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관료의 재량에 달린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담당 공무원에게 미리 연락해 준다. 사업이 원활히 진행된다. 
검찰을 시켜 뒷조사도 할 수 있다. 약점을 알 수 있다. 누가 자기를 고발하면 담당 검사에게 자기 측 주장을 전달한다. 기소 전에 막을 수 있다. 가장 악랄한 경우로 자기 라이벌을 검사 친구로 하여금 골탕 먹이게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은 사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지쳐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업을 조금이라도 크게 하는 사람은 관료와 검찰을 평소에 친구로 사귀어 두고 있어야 한다. 워낙 관료와 검찰이 법 해석과 집행을 자의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검찰은 특히 중요하다. 감옥 갈 수 있으니까. 그러고도 정 안되면 맨 마지막으로 판사에게 줄을 대어야 한다. 
검사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머리가 멍해질 때가 있었다. "유죄? 그건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야." 그들은 대놓고 자기들이 법의 궁극적인 판단자라고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그들에게 법은 필요하면 갖다 쓰고 필요 없으면 배제해도 되는 기구에 불과하다. 분명 불법이지만 자기들이 눈 감아주기로 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불법이 아니어도 자기들 판단에 고생 좀 시켜야겠다고 하면 기소한다. 저번에 변양호씨가 말한 것 그대로다.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분야는 검찰 제도이다. 민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거의 없다. 표적 주변 인물들을 계속 소환해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별건 수사로 구속한다.... 민간은 이걸 버텨내기가 어렵다. 권력의 눈 밖에 나면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검찰이 눈감아주면 죄가 있어도 무사할 수 있다."
검찰의 이런 실상을 한국 사회에서 사업 좀 크게 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자기는 잘못 한 것이 없어도 사업 라이벌이 권력자나 검찰 지인을 통해 한번 혼내주라고 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옛날에 김기춘이 검찰총장이었던 시절인 1989년 삼양라면이 쓰는 쇠기름이 공업용 우지라고 기소했다. 덕분에 당시 1위였던 삼양라면이 침몰하고 롯데의 농심라면이 시장 점유율 1위로 등극했다. 
김진동이 어제 태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다.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검사에게 구체적인 대가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는 김진동 판사는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 크게 될 사람이다. 
그는 눈 깔 줄 아는 모범생이다.

2016년 12월 11일 일요일

한국은행 금고 탈취 미수 사건, 주범과 종범은?

지난 3월 말 부터 7월 말까지 넉 달 간 한국 경제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일이 벌어졌었다. 행정부가 국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중앙은행 금고에서 10조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마련해 자기들 마음대로 쓰려고 했다. 결국 7월 말에 가서 거의 없던 일이 되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미수 사건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헛짓으로 끝나가고 있지만 이 일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기억할 만하다.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은 한국 정치와 경제의 오래된 병폐가 중층적으로 동시에 작용한 현상이었다. 지난 과정을 짧게나마 돌이켜본 후 이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7월 22일 정부는 ‘2016년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에서 11조원 규모의 추경예산 가운데 1조9000억원을 구조조정 지원에 배정했다. 여기엔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진행됨에 따라 자본확충이 필요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각각 4000억원과 1조원을 현금출자로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방안은 7월 18일 여야와 정부가 합의한 안에 의거한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마련해서 구조조정에 쓰자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4.13 총선을 3주 앞둔 3월 말이었다. 처음 바람을 잡은 것은 여당이었다. 선거 전에 이를 한국식 양적완화 운운하며 대단한 정책 공약이나 되는 듯이 내세웠다. 경제가 안 좋고 앞으로 있을 구조조정에 돈이 필요하니 한국은행에서 재원을 받아다가 경기회복을 위한 투자와 산업구조조정에 돈을 풀자고 했다.
당시 여당은 선거에 내놓을 정책 공약이 없어서 난감하던 차였다. 게다가 여당은 경제정책 전문가로 국민들 앞에 내세울 사람도 부족했다. 그래서 김대중 정권 아래에서 재경부 부총리를 지낸 후 야당에서 3선의원을 지내다가 공천을 못 받은 후 여러 차례 정치적 복귀를 시도했던 강봉균씨를 여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내세워 한국형 양적완화를 주장하게 했다.
처음에는 멋모르는 일부 언론인들이 이에 동조하기도 했지만 곧 이것이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구제금융을 자기들 입맛대로 하겠다는 뜻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론이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선거 후 대신 등장한 것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5월 4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증자를 위해 ‘국책은행 자본확충협의체’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정부안을 마련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법적인 문제였다.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이 제멋대로 발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가와 금융기관에게만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어 있고, 이 때 국채에 준하는 담보를 꼭 받게 되어 있고, 만기는 1년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워낙 위법적인 발상인 만큼 이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실행방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6월 8일, 정부는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서 10조원을 찍어 기업은행을 중간 통로로 활용해서 국책은행 증자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세부적인 사항을 마련하는 데에 진통을 겪었다. 한국은행의 손실최소화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어떤 도관을 통해 어떻게 돈을 국책은행에 전달할 것인가를 찾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은 7월 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조성을 위해 기업은행에 10조원 한도로 대출해주는 방안을 의결했다. 대출기간은 1년 이내, 대출실행 기한은 2017년 말까지를 원칙으로 하고 매년 말 지원을 계속할지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불법성 시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중앙은행의 대출을 받은 기업은행이 그 돈을 갖고 자본확충펀드에 다시 대출을 하면 위험자산이 늘기 때문에 자기자본비율이 내려간다. 따라서 이를 피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보증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신용보증기금은 10조원만큼 추가로 보증을 설 자기자본이 없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신용보증기금에 5천억원(10조원의 1/20)을 출연하기로 했다. 한 마디로 자기가 빌려준 곳에 대한 보증을 자기 돈으로 서주는 꼴이고, 누가 보기에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최대한 잘 봐주어봤자 편법이고 실상은 불법이다.
국회에서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한국은행이 아니라 국가 재정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처음부터 우세했다. 야당은 처음부터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재정자금으로 해야 하니 국회에 증자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여당 기재위 국회의원들 중에도 유승민과 이혜훈 등 정부안을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었다. 결국 지난 7월 18일 여·야·정은 추경안에 수출입은행 1조원 증자 방안을 포함시키고, 자본확충펀드 운용은 최소화한다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바보가 되었고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정부가 중앙은행 돈으로 구제금융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처음부터 허튼 소리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듯 하더니 곧 정부 눈치를 보느라 자본확충펀드 방안을 정부와 같이 모색했다. 금통위원회는 7월 1일 비상계획을 의결한 것이라는 궤변을 내세우면서 출연을 의결했다.
이것은 졸렬하고 비겁한 얘기다. 정부가 요청하면 중앙은행이 건별로 심사해서 국책은행에 출자하겠다는 것을 비상계획이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코메디다. 그게 무슨 비상계획인가? 정 급하면 그때 가서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미리 의결해 놓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세계 어느 나라에 중앙은행이 금융시스템 불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을 재무부에 맡기는가? 또 막상 한국은행에 손을 벌릴 정도로 문제가 터지면 이렇게 건별로 심사할 이유도 없고 여유가 없다.
이런 비판을 떠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일로 금통위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점이다. 자기들 딴에는 그나마 선방했다고 위안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중앙은행 총재와 금통위는 뻔한 거짓말을 대놓고 둘러대는 집단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줏대 없는(spineless) 행동이었다. 체제순응적인 한국 사회 주류 멤버들의 민낯을 다시 한 번 확인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임기를 4년 보장하면 무엇하나?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것 하나도 그냥 대놓고 반대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냐고 외국인들이 비웃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작년에 삼성물산 합병을 갖고 벌어진 현상과 진배없다. 
그러나 나는 이번 논란의 의미가 이것 외에 다른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번에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국책은행의 부실을 한국은행의 발권력으로 해결하자는 발상이 문제인 것은 무엇보다도 이것이 민주국가의 삼권분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국회가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핵심이다. 한국은행을 통해 국책은행 자본을 확충하겠다는 정부안은 국회의 감시를 벗어난 공적자금을 마련해 쓰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나라 같으면 감히 생각도 못할 얘기다. 금융위기가 터지면 해결책은 둘 중의 하나다. 공적자금을 쓸 것인가 아니면 중앙은행 발권력을 이용할 것 인가다. 이런 문제는 이미 선진국가에서는 이미 정리가 되어 있다. 은행의 유동성 위험은 중앙은행이 맡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은 중앙은행이 한다.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고 은행의 부실이 심각하면 중앙은행이 아니라 예보, 또는 공적 자금을 들여서 처리한다. 이 공적자금은 행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집행한다. 국회는 이 재정자금이 제대로 쓰여지는지를 감시한다. 이것이 삼권분립 하의 민주국가가 금융위기에 대응해서 공적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2008년 리만브라더스가 도산하면서 발생한 금융위기 시 미국 국회가 어떻게 했는가를 돌이켜보자. 2008년 9월 15일 리만 사태가 발생해서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폭풍이 닥쳤을 때 미국 행정부는 2주 후 9월 29일에 국회에 7천억불짜리 구제금융 펀드(TARP)를 요청했다. 당시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이 국회에 제출한 이 법안의 주 내용은 국가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은행들의 모기지 저당증권(MBS)를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9월 29일 하원에선 부결되었다. 공화당 정권이 낸 법안인데도 공화당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반대해서 부결되었다.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10월 3일 상원에서 통과된 수정 법안을 5일 하원 표결에 부쳐서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일부 마음을 바꾼 의원들 덕분이었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공화당 하원의원의 대다수는 공화당 정권이 낸 법안에 반대했다.
어마어마한 재원 조달 규모에 비해 재무부가 9월 20일에 의회에 법안 초안을 넘겼을 때 이 법안은 겨우 세 장짜리였다. 재무부 장관의 행위에 대한 국회와 법원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법안 문구를 일부러 모호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재무부장관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고 법원에 의한 무효 판결로부터 자유롭다는 문구를 포함했다.
10일 동안 의회에서 심사하면서 이 법안은 약 100여 페이지로 불어났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7천억 불을 한꺼번에 허용하지 않고 셋으로 나누었다. 둘째, 네 가지 국가기관 감시 장치를 만들었다. 셋째, 국민들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에 의한 결정을 법원을 통해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중 현재 맥락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감시 장치다.
첫째, 이 법은 새로 만드는 금융안정협의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Board)에서 이 TARP를 감시하도록 했다. 의장은 중앙은행장이다. 둘째, 의회 내에 국회 감시 패널(Congressional Oversight Panel)을 만들어 여야가 선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정부 프로그램을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이 패널은 매 30일마다 이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의회에 보고해야 했다. 하버드 법대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워렌이 바로 이 패널의 수장이었다. 셋째, 미국 의회 소속인 감사원(Government Accounting Office)에 TARP 운영에 관한 모든 자료를 요구하고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독자적인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넷째, TARP안에 특별 감사국(Office of Special Inspector General)을 두었다. 감사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상원의 비준을 통과해야 하며 임기가 보장되었다. 그는 매 분기마다 국회에 보고해야 했다. 나중에 오바마가 임명한 가이트너 재장관은 재직 도중 이 COP의 워렌과 TARP 감사인 바로프스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워렌 교수가 의회 청문회에서 가이트너를 꼬치꼬치 심문한 장면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다시 눈을 돌려 한국으로 돌아오자.
한국은 공적 자금인데도 국회에 의한 감시 장치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IMF 위기 시 만들어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다. 국회가 만들어 준 공적자금을 관리하라고 만들어 놓았는데 소속은 금융위원회 아래다. 외부 인사로 위원장을 임명한다지만 위원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중에서 호선하는 1인이 공동으로 맡는다. 사무국에서 일하는 사람도 대부분 공무원들이다. 사무처장은 보직이 없는 고위 공무원이 잠깐씩 거쳐 가는 자리다. 미국에서는 네 개 감시 장치 중 의회가 직접 통제하는 기구가 세 개인데 한국은 하나도 없다.
또 다른 예로 2009년 은행자본확충펀드의 경우를 보자. 당시 정부는 이 펀드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나라가 큰일 난다고 국회를 협박했다. 자세한 것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국회로부터 동의를 받은 자금 한도가 약 20조원이었다. 실제로는 4조원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그러나 각 은행에 얼마나 어떤 조건에 왜 주었는지를 밖에서 알아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정무위나 기재위 국회의원이 물어도 무성의한 숫자 몇 개 던져주는 것이 전부였다. 관심을 갖는 국회의원도 별로 없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허술하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선거에 직접 참여하는 것 외에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한탄을 많이들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시장경제도 그렇다. 정부가 할 일이 아닌데도 정부 관료가 틀어쥔 채 놓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책금융이다. 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은행권 대출 중 정책금융성 대출의 비중이 아직도 40%를 넘는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번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에서 문제가 생긴 것도 바로 잘못된 정책금융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자기들이 정책금융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금융 자금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자기들 마음대로 쓰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그 뒤치다꺼리도 자기들에게 맡기란다. 구경거리 난 것 아니고 볼 것 없으니 그냥 지나가란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번 문제는 삼권분립의 문제였다. 그리고 아직도 과대한 정책금융 또는 관치금융의 문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지난 8년 간 정부가 대놓고 국민을 상대로 하는 거짓말의 문제였다. 처음에는 한국적 양적완화라고 연막을 치더니, 그 다음에는 국책은행 증자는 추경으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시간도 걸리고 법적으로도 요건이 안 된다고 했다. 
국회 입장에서 보면 이는 삼권분립을 무시한 정부를 국회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정부가 양적완화라는 엉뚱한 구실을 들이대면서 중앙은행 금고에서 돈을 탈취하려고 해도 법으로 금고를 맡고 있는 중앙은행마저 정정당당하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때 국회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자기들의 직분을 잊고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 제 1당이 삼권분립에 의한 정부 감시와 견제 역할을 포기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가? 
다행히 이번에는 다르다. 20대 국회는 여소야대 국회다. 과거 여대야소 국회에서는 아무리 말로 해보았자 정부가 무시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통령이 정치 검찰을 이용해 검찰 정치를 하고, 여당 국회의원이 의원으로서의 자긍심이 없이 거수기 노릇만 하는 상황에서는 삼권분립이 무의미했다. 20대 국회가 행정부 감시와 견제를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볼 일이다.

사회경제학회 여름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어제 사회경제학회 여름 학술대회에 당일로 갔다 왔다. 
산업구조조정을 갖고 종합토론을 하는데 주제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을 몇주 전에 해왔다. 사회경제학회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는 학자들이 많은 그룹이다. 그런 모임에서 나에게 연락한 것은 의외였다. 
잠시 망서리다가 응하기로 했다. 사회경제학회는 돌아가신 아버님이 회장을 했던 학회다. 또 이 학회는 고 김기원 선배도 참여하던 그룹이었다. 두분을 기리는 마음에 가기로 했다. 이번에 가서 알았는데 초대와 2대 회장을 변형윤 선생이 하시고 아버님은 3대 회장을 하셨다고 한다. 87년에 결성되었으니 아버님이 회장을 하셨을 때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하다. 30년이 지나 이제 아버님과 김선배, 두분은 안 계시다. 그당시 아버님 나이가 된 내가 아버님 후학들 앞에 서니 지난 30년 세월과 앞으로 흐를 30년 세월이 떠올라 가슴이 조금 먹먹했다.
발표는 그 동안 여러 자리에서 했던 얘기에 김영욱과 김상조 선생의 자료를 보태어서 조금 더 큰 시각에서 프리젠테이션으로 제시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부문의 부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2011~2012년부터 기업부문 경영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상장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작년 2014년부터 이것이 아예 거의 감소세로 전환했다.
2010년 이후 이자보상비율이 1 미만인 한계기업이 증가하여 이제는 전 상장사의 30% 내외로 고착화 되었다. (vs. 2009년 25.8%)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상장회사를 속칭 좀비 기업이라고 하는데 2015년에 이들 숫자는 244개다. 그중 부채비율 200% 이상인 기업 수는 69개이고 총 차입금 51조 원이었다. 이런 기업들이 존속하는 한 경제의 활력은 죽어갈 수 밖에 없다. 산불을 막다가 생태계가 깨졌던 엘로스톤 숲과 같다.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을 상회하는 정상기업의 경영실적은 적어도 이자 지급능력 면에서는 현상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영업이익률이 하락했고 매출액 증가율은 0%에 가깝게 떨어졌다. 
기업부실은 일부 산업에 국한 된 것도 아니다. 전 산업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에너지산업과 미디어, 전자전기산업이 심각하다. 여기에 최근 조선산업이 추가 되었다. 수익성과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규모 확장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한중일 삼국이 전 세계 조선산업을 석권하게 된 현상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아시아의 동북아 삼국이 똑같이 그렇게 되었을까? 한국 3대 조선사가 무슨 자기들만의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2010년 이후 해양구조물 주문을 전세계적으로 독식 했을까? 
내 생각엔 이 모든 것은 위험을 무시하거나 위험을 대신 맡아주는 금융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지도하는대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 시스템이 3국 모두 똑같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이것은 일본이 시작한 방식으로 한국이 모방해 채택했고 지금은 중국도 동참했다.
조선산업은 공사 기간이 길고 경기 부침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주문을 받고 최종 대금 받을 때까지 몇년씩 시간이 걸리는데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들기 위해선 설계, 자재와 인건비가 먼저 계속적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대금을 받는데도 위험이 따른다. 비용이 초과될 때도 있고, 주문 해 놓고 시비를 걸 수도 있고, 기껏 만들어 놓았는데 아예 안 받아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주문은 받았지만 막상 이익이 날지는 몇년 뒤가 되어봐야 안다. 아찔한 위험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한 때 주문이 잘 들어온다고 해서 마음 놓고 사업 규모를 키워도 안 된다. 너무 키워 놓으면 나중에 경기가 하락했을 때 곤란해진다. 이미 만들어 놓은 독이며 직원들을 마냥 놀려야 한다. 직원들이 대부분 정규직 노조원인 서구 기업에선 이러나 저러나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경기가 좋아도 너무 공격적으로 수주하면 위험하다. 
금융산업 지원도 한계가 있다. 은행은 자기 자본 대비 한 기업에 대출해주는 액수에 한도를 둔다. 보통은 자기 자본의 10%를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너무 큰 주문에 보증을 서주면 금방 한도에 걸린다. 그래서 서구 금융 시스템에선 은행으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이행보증을 받기가 어렵다. 위험과 수익성을 감안해서 수주할 수 밖에 없다. 사실 한국 민간 은행도 이행보증을 서는 것에는 조심스러워 했다. 선수금 보증 (Refund Guarantee) 시장에서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거의 60%를 차지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조선산업은 그런 조심성이 훨씬 덜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과거에는 안 그랬지만 요즘은 조심스러워졌다. 중국은 지금 한국 보다 더 방만하다. 뒤에서 은행이 받쳐준다. 
노동시장 구조도 큰 역할을 한다. 경기 침체에 따라 일감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하면 유연성 부족으로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다. 정부가 노조를 탄압하거나, 노동시장을 이분화해서 비정규직이나 산업연수생을 이용할 수 있으면 그런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주문이 줄면 이들부터 쳐내면 된다. 원청업자들은 비교적 안전하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서 한국은 서구 기업들에 비해 더 공격적으로 수주 영업을 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자원 붐이 일어나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한 한국이 가장 많이 성장했지만 이제는 중국도 여기에 껴들었다. 그러나 공격적인 만큼 사고가 날 가능성도 높다. 이번에 그런 사고가 터진 것이다. (조선 산업 부분은 시간 관계 상 발표에서 생략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구조조정이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에서 어느 나라가 되었든 항상 있게 마련인 과정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경쟁과 효율적 자원배분에서 필요불가결한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이것을 마치 아주 특별한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진즉 수시로 상시적으로 해왔어야 한다. 지금은 계속 미루다가 여러 개가 한꺼번에 쌓였다. 
그리고 창업, 성장, 구조조정, 매각, 폐업에 이르는 기업부문의 인생주기 중 창업 못지 않은 고위험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행위를 누가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구조조정의 대리인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지배주주, 경영진, 채권단, 노동자, 법원 중 누가 주도하는 것이 좋은가? 아마도 의사결정에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원칙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자가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일 것이다. 그게 누군가? 경영자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해보는 말에 불과하다. 아무도 그런 사람들에게 평상시라도 돈 주고 기업 경영을 맡기지 않는다. 
둘째, 누구의 이해부터 고려해야 하는가? 재산권 청구에는 우선권 차례가 있다. 채권자가 먼저고 주주가 맨 마지막이다. 경영자나 피고용자의 재산청구권은 거의 없다. 사업 초기에 자본을 대고 잘되면 큰 돈을 벌지만, 사업이 잘못되면 한푼도 못 건질 수 있기로 한 것이 주주다. 채권자는 사업이 잘못되면 이자나 원금 손실 가능성은 있지만 담보 잡은 것만큼은 회수 할 수 있다. 이게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명이라고 하는 주식회사의 기본 구조다.
이것만 보더라도 왜 구조조정이 복잡하고 위험한지가 드러난다. 정보를 제일 많이 갖고 있는 경영자가 주도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그들은 재산 청구권이 없다.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재산 청구권들의 다양한 입장을 아우르면서 최선의 결정을 하도록 할 것인가? 이런 딜레마 아래에서 어떻게 의사 결정자가 최선의 결정을 할 유인을 가지도록 유인합치적(incentive compatible)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서구의 자본주의는 이 프로세스를 자기들 역사 안에서 경험을 통해 만들어 냈다. 그게 사적 협상에 의한 자발적 채무조정이고 파산 절차다.
한국은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유치 단계에 있는 불완전한 자본주의 국가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개발독재 시대 도입된 구조조정 방식의 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도 사실 그것 때문에 터진 것이다. 안정된 장기독재정권에서 금융의 모든 면을 틀어쥐고 있던 시절에 하던 습성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래서 5년 임기 김영삼 정부 시절 급속도로 커진 재벌기업에 쌓인 부실을 과거 정부가 나서서 교통정리하던 방식대로 하려고 했도 말이 안 먹혔다. 그러다가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외국인 채권자가 나가면서 나라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대리인 문제에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정부가 직접, 또는 뒤에서 채권단을 조종하면서 하려고 한다. 이것은 가장 적은 정보를 가진 자가 결정을 한다는 문제점 외에도 최선의 결정을 할 유인이 없는 자들이 결정을 한다는 문제도 갖고 있다. 세상 어느 나라도 기업구조조정을 관료와 채권단에게 맡기면서 그들이 최선의 결정을 할 유인합치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들과 하등 다를 이유가 없는 한국이 쩔쩔매는 것은 당연하다.
구조조정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이 기업을 지속 시킬 것인지 아니면 청산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과 기업 전망을 해야 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러나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최악 시나리오와 희망 시나리오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사람이 자기 책임으로 자기의 경험과 판단에 기대서 고심해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대개는 자칫하면 알거지로 쫓겨날 위험이 있는 주주의 이해를 생각해서 이사회가 경영자로 하여금 최악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한국은 거꾸로다. 가장 정보가 취약한 정부나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최악 시나리오가 아니라 희망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짜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작년 9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2016년 사업계획을 짤 때 그들이 가정한 유가는 $70달러였다. 그런데 그 당시 유가는 이미 $50였다. 올해 초에는 이것이 $30대까지 갔다가 지금은 $40대이다. 희망 시나리오 대로 안 굴러가고 있다. 서별관회의에 들어가는 관료들이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이 희망적 시나리오다. 그들도 이 문제를 알지만 무엇하러 최악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기획하겠는가?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의 정책 운영체제가 변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산업정책은 없어졌는데 산업정책을 위해 존재하던 정책금융은 그대로 남았다. 일종의 대규모 체제적 조정 실패(Systemic Coordination Failure) 다.
90년대 이후 경제 운영 방식이 전반적으로 정부 주도 방식에서 민간주도로 바뀌었다. 그래서 과거 상공부의 산업정책 역할은 축소되었다. 또 과거에는 경제기획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산업 구조조정 업무였는데 이것이 9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소멸되었다. 
그러나 신용정책에서 정책금융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존속되었다. 재무부가 갖고 있던 신용 통제 업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이 개입해서 대출을 해 준 대기업에 부실이 발생하면 구조조정 책임 문제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는 임기응변책 만한 것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와서 장하준처럼 과거 방식의 산업정책을 부활하자는 것은 먹히지도 않을 얘기다. 그렇다면 정부 관료의 개입을 당연시 하는 구태의연한 구조조정 방식을 타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역동적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불가능하다.
일이 이렇게 흘러온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취약한 지배구조, 수익성보다 규모를 우선하는 경영방식,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견제장치 미흡, 아직도 과도한 정책금융 비중, 관치금융 아래 은행 경영진의 보신주의와 단기실적주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숨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엔 우선 국가개입주의를 당연시 하는 사고방식 부터 고쳐야 한다. 지금처럼 일이 꼬이게 된 주범은 이것이다. 그 다음으로 할 것은 기촉법을 폐지해서 자기들끼리 사적 채무조정을 하든지 아니면 법정관리로 가도록 놔두어야 한다.
이 외 개선책으로는 정부의 구제금융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 지배구조 개선, 적대적 인수합병의 도입, 관치금융과 국책은행의 역할 축소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한숨에 할 수는 없다. 
요약하면 기촉법 폐지와 적대적 M&A촉진이 제도적으로 제일 빨리 할 수 있는 조치다.
이것도 쉽지는 않다. 기업이 자기 필요에 의해 구조조정을 하자고 해도 이념을 들이댄다. 평시에는 정경유착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도리어 관이 주도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가 돈 댈 것도 아니면서 함부로 회사 규모와 고용을 줄이면 안된다고 한다. 일시적인 경기 순환일 수도 있으니 너무 재무적인 것만 보면 안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발 먹힐 얘기만 하자. 기업 부실에 따른 부도 위험은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누군가 막대한 돈을 새롭게 대야 한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당신 돈으로 해라. 자기 돈 댈 것도 아니면 남에게 돈 쓰라고 참견하지 말라. 돈 댄 사람들끼리 해결하도록 놔 두어라. 남의 돈으로 호기 부리지 말아라.
(8월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획기적인, 그러나 알고보면 좀 무서운 정책

조선비즈의 김종일씨가 좋은 기사를 썼다. 요새 경제 기사는 조선비즈와 머니투데이가 제일 잘 쓰는 것 같다. 
가계부채 문제는 한국경제의 뇌관과 같아서 한때는 자세히 들여다보곤 했지만 이제는 개인적으로 좀 심드렁하다. 내 생각엔, 이미 돌이킬 수 있는 경계선을 지나갔다. 
최경환씨가 2014년 여름 경제부총리에 취임하면서 가계 부채 확대를 부추키는 정책을 추진하자 그 전까지는 사석에서라도 가계부채 증가에 우려를 표시하던 경제 관료들이 입을 닫았다. 한 배를 탔다, 같이 갈 수 밖에 없다, 공과를 같이 하겠다, 운명일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국내 경제 상황을 규정하는 것은 경기 불황과 저금리와 가계부채다. 이게 묘한 악순환에 걸렸다. 조금 설명이 필요하니 하나씩 풀어보자.
경기가 나쁘다. 금리를 낮추었다. 그래도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부동산 가격이 흔들거린다. 부동산 경기라도 부양하려고 대출 기준을 완화했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 하락을 저지시키려고 용을 쓴다는 신호를 보냈다. 금리가 너무 낮아서 임대료 수익률이 이자를 훨씬 상회하게 되었다. 여유 자금은 있으나 투자할 곳이 없는 기관이나 개인이 수익성 부동산에 돈을 투자한다. 정부가 신용은 충분히 대준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심지어 상승세로 전환했다. 경기는 역사상 최악인데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졌다. 
또, 그것 때문에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2014년까지 연간 5% 증가하던 가계부채가 2015년부터 지금까지도 연간 10% 씩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다. 늘어난 부채 부담 때문에 국내 소비 부진은 계속된다. 도리어 건설 경기 외에는 경기가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러니 부동산 경기를 꺾는 정책은 생각 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부동산 경기로 경제 성장률을 억지로 올리는 것은 옛날부터 늘 써먹던 비상대책인데 이제는 가계부채가 너무 커져서 그것도 안 먹힌다. 그렇다고 부동산 경기가 꺼지도록 놔두면 경제성장률은 더 내려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정권 말기이니 끝까지 갈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은 다음 정권에 맡기자. 이게 지금 경제관료들이 처한 상황이다.
그래도 지난 주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계 부채가 너무 급증하는 이유는 너무 많이 공급되는 아파트를 사기 위한 것이니 2년 후부터 택지 공급을 막겠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관료들이라고 해서 모를리 없다. 정권 차원에서 가이드 라인이 내려오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책안을 보면서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어서 한마디 할까 한다. 
정부가 2년 뒤 택지공급을 줄이겠다고 한 것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얘기다. 중앙 정부가 인위적으로 연간 택지 공급을 자기 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얼마나 관료에 의해서 우리 생활의 뿌리가 좌지우지 되는 국가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 이것이 가능한 것은 대형 택지 공급을 중앙정부가 주택토지공사를 통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시장기구에 의해 택지 공급과 주택 공급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다른 나라처럼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택지 개발이 활발해지고 주택 공급이 늘어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정부가 대규모 택지 개발 지역을 공시하고 일괄 수용해서 개발하여 건설업체에게 감정가격 보다 낮게 넘겨주는 체제다. 
택지 공급을 막아서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획기적인 발상"은 이렇게 관원대리체제에서 무능한 정권과 보신주의에 빠진 관료가 만나서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거 좀 무서운 얘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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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무서운 얘기라고 한 것은 2년 뒤 금융위기가 닥친다는 뜻이 아니라, 중요한 국가정책을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국가운영체제가 무섭다는 뜻이다.
(8월 29일 페이스북에 쓴 글)

대기업 신입사원 퇴사율을 낮추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지난 주말 SBS에서 대기업 신입사원 1년 내 퇴사율이 27.7%인 현상을 다루었다.
치열한 입사 경쟁율을 뚫고 들어온 젊은 직원들 중 상당수가 몇년만에 회사를 떠나는 현상은 나도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문제였다.
방송에서는 회식, 경직적인 조직문화, 이유 없는 야근, 끝없는 진로 고민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하나씩 생각해보자.
첫째, 내 생각엔 요새 회식 문화는 많이 바뀐 것 같다. 밤 늦게 까지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다. 지난 5년 사이에 음식점 풍경에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아홉시가 넘으면 사람들이 자리를 파하고 일어난다. 열시까지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실례가 될 지경이다. 임원들도 직원들이 회식을 싫어하는 것을 의식한다. 접대 자리를 이용해서 공돈으로 퍼마시는 분위기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둘째, 경직된 조직 문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흔히 지적할 수 있는 것부터 나열하면, 가정과 학교 부터가 권위주의적인 환경이다. 또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군대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한국 대기업 문화가 경직적인 데에는 대기업 그룹의 지배구조가 비뚤어진 것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 지분에 비해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고, 사익을 위해 회사 자원을 빼돌리고,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모 덕에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조직을 휘어잡기 위해선 무조건 복종을 강조하는 문화를 조장할 필요가 있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강요하기 위해선 평소 무조건적인 복종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합리적인 행동을 명령해도 군말 않고 따른다. 평시에 작은 일부터 까라면 까는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켜 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가장 비합리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곳이 군대다. 전쟁 발발 시 자기가 죽을 지도 모르는 공포를 무릅쓰고 나서서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조직이다. 명령 복종 문화를 미리부터 머리에 심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신병 훈련의 일차적 목표는 복종을 가르치는 것이다. 일사분란한 제식 훈련도 그래서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서 매스게임을 하는 것의 배후논리는 독재국가들이 그러한 것과 선호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또 비합리적이고 경직적인 문화는 세습 경영에 매우 요긴하다. 2세, 3세 후계자가 조직을 단시간에 휘어 잡는 방법으로 선호하는 것이 바로 자기들에게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는 경영진이나 직원을 단칼에 해고하는 것이다. 자의적인 인사와 해고만큼 직장인에게 공포스러운 것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북한의 김정은이다. 서른도 안된 젊은이가 독재자로서의 국가 권력을 물려받았다. 광포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권력 유지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재벌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북한을 연상시킬 때가 많다. 젊은 나이에 경영권을 물려 받은 재벌 후계자들이 일종의 본보기로 고위 임원을 해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한의 세습 체제나 남한의 세습 재벌이나 이면에서는 상당히 비슷하다. 
넷째, 이유 없는 야근. 여기에는 한국 기업의 위계적이고 착취적인 직장 문화가 큰 몫을 한다. 지난 2월, 한국의 <지식 노동자와 직장 민주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중간 간부만 되어도 직접 업무를 하지 않고 아래 사람에게 미룬다. 데이터도 직접 다루지 않고 글도 직접 쓰지 않는다. 지식의 심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멀어지니 원숙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뛰지 않고 부하로부터 보고만 받으니 아래 사람만 더 볶게 된다."
지난 번에 언급한 것처럼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것에 임원들 보다도 부장들이 더 저항하는데에는 이러한 착취적인 위계 질서가 뒤에 숨어있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는데에는 이분화된 노동시장과 낮은 실업보험 급여도 한 몫을 한다. 한국 기업 경영자들의 행동을 보다 보면 "내가 이렇게 한들 너희들이 어디에 갈껀데?" 라는 생각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대기업은 높은 임금을 주었으니 그만큼 더 부려먹겠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 역시 월급을 박하게 주면서 부려만 먹다가 직원이 떠나면 다른 사람으로 갈아 끼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끊임 없는 진로 걱정. 이것은 한국 기업의 낙후된 인사 정책의 탓이 크다.
우선 일괄적인 채용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많은 기업들이 사업부나 직무에 따라 자격 요건과 적성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일괄해서 뽑아서 일방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직무급제과 평가 시스템을 개선해서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 채용단계부터 각 사업부 또는 직무 별로 뽑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회사가 직무급제를 운영하고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전 직장에서 각 사업부 별로 자기가 쓸 사람을 뽑게 하고, 신입 사원에게 일년 동안 자기가 원하는 부서를 골라서 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도 신입 직원의 적응을 돕고 그들의 정착율을 높이기 위한 취지에서 한 것이었다.
평가와 육성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우선 뽑은 후에는 각 직무별로 무슨 능력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상사의 자의적이고 무성의한 평가에만 맡기지 말아야 한다. 직장 동료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평가도 상대 등급만 알려주고 마는 결과 위주 방식이 아니라 육성 차원에서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임원과 부장에게만 다면 평가를 적용하는데 그것을 사원 시절부터 해야 한다. 동료들이나 직속 상급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회사 내에서 빈 자리가 생기면 공모를 하고 직원들은 자기가 가고 싶은 부서에 자유롭게 지원하는 노동 시장 또는 잡 마켓을 운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국처럼 최고 경영자가 2~3년 마다 바뀌는 환경에서 이런 인사제도의 개혁을 경영진이 꾸준히 시도하고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노력을 계속하지 않는한 젊은 직장인들의 방황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3년도 채 안 다닐 재벌 계열회사에서 인사제도 개혁에 공을 들인 것도 이런 노력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9월 14일 페이스북 글)

2016년 12월 8일 목요일

정경유착,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지난 주 화요일 <뉴스타파>와 했던 인터뷰가 오늘 공개되었다. <뉴스타파>는 과거 나에 관해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했던 곳이다. 그러나 한상진 기자를 봐서 잊기로 했다. 금요일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경제민주화 포럼에서 김상조 선생이 발제를 하는데 초론자로 참여했다. 다음은 그 토론문이다.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한 얘기와 서로 연결이 된다. 먼저 인터뷰를 보고 나서 글을 읽을 것이 낫다. 
정경유착을 근절하기 위해 재벌개혁부터 하자는 김상조 교수의 주장에 일부분만 동의한다. 정경유착은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 사이의 구조적 유착이다. 우선 손바닥도 둘이 있어야 소리가 나듯이 정치 권력 쪽에서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경유착이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정치체제 개혁도 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어디를 가나 부패하게 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비슷한 권력형 부패 사건이 반복되고, 거의 모든 주요 기업집단 수장들이 형사적 처벌을 받고, 그리고 나서도 다시 복귀해 있는 상황은 단지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재벌개혁에 가장 오래 선봉에 섰던 김종인박사는 한국에서 경제민주화가 안되는 가장 큰 이유로 재벌의 영향력을 든다. 재벌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통령에게 줄을 대거나 그 주위를 포위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씨를 지원하는 이유로 박근혜씨가 주위에 봐주어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 의심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서 재벌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집요하게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그래서 재벌이 그 대통령과 주변만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 나머지는 얼마든지 손쉽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국 정치체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다. 한국 경제체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경제력이 초법적인 재벌에 집중된 체제다. 한국 국가운영체제를 한마디로 하면 중앙집권적 관원대리체제다. 
이런 체제 아래에서 재벌은 제왕적 대통령에게 필사적으로 줄을 대려고 한다.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그것을 파고 드는 독가스와 같다. 그것이 자식이든, 친척이든, 부하이든 간에 가리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단 거기에 줄을 대면 나머지는 쉽다. 왜냐하면 한국의 사법과 행정체계가 워낙 비민주적인 관원대리체제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관원대리체제> 
관원대리체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부문이 사법부문이다. 사법고시를 통해 선발한 관원에게 형사소추권을 독점적으로 주었다. 판사 역시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만 가능했다. 
행정부 역시 그 독점성은 사법부에 비해 약하지만 관원대리체제다. 행정고시를 통해 선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엄청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법으로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법안 자체도 대부분 행정부가 기안한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에게만 준 것도 관원대리체제의 일부다.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나왔고,4년제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새파랗게 젊은 대학 졸업생을 행정부 중간 간부로 뽑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독재자의 충실한 견복이던 공무원들은 5년에 한번씩 바뀌는 대통령제에서 어느덧 가장 강력한 권력기구가 되었다. 전제군주가 관원을 견제하면서도 결국은 그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역시 관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관원대리체제와 법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이렇게 관원에 의해 독점된 사법체계와 행정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과연 법치를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법치란 용어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이 권력자의 권한에 제약을 가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신민을 통제하기 위한 율법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다루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아시아권에서 법 앞에 평등이란 개념은 사회 지배층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였다면 횡령배임 처벌 강화나 사면 제한 같은 소리가 안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강고하게 남아 있고, 법치 보다는 율치가 익숙한 나라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공평한 법 적용이 가능하지 않다. 법치주의, 공화정, 민주주의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재벌문제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원대리체계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법체제가 재벌 총수나 정치권력에 약한 것은 필연적이다. 관원에게 기소권과 판결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피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퇴직 관원인 체계에서는 재벌 총수나 정치권 인사는 집행유예나 사면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정경유착을 끊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만이 아니라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검찰 뿐만이 아니라 법원도 개혁해야 한다. 중앙집권화 되어 있는 검찰을 개혁해야 하고, 있는 법이나마 제대로 실행할 법원도 필요하다.

어제 청문회를 끝내고


2주 전,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 의원인 손혜원씨가 자기는 금융 분야는 잘 모른다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흔쾌히 응락했다. 매일매일 상임위와 예산위 때문에 밤 늦도록 일하는 친구가 도와달라는데 안 도와줄 사람이 없다. 
응락과 동시에 재벌문제에 관해 최고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교수에게 같이 도와주자고 종용을 하니 그도 단박에 동의했다. 지식 만이 아니라 그는 나보다 국회 청문회 경험이 많다. 박용진 의원과 제윤경 의원의 동의를 받아 그들의 보좌관인 김성영씨와 여경훈 씨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김한정의원실의 보좌관들과도 조사하면서 획득한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준비하면서 몇가지 고려할 것들이 있었다. 
첫째, 금융 분야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가랍시고 자기 딴에는 중요해 보여도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을 해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상대는 그저 계속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할 것이고, 국민들은 의원이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도 모른 채 질의가 끝나고 만다. 국민들 시각에서 이해하기 쉽게 질문을 만들어야 했다. 
둘째, 국회의 국정조사 질의 방식이 매우 비효율적이다. 각 회합마다 각 의원에게 돌아가는 시간은 7분이다. 그 안에 제대로 심문하기가 어렵다. 외국의 경우에는 증인 한명 만을 앉혀 놓고 집중 심문하거나,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전문성이 있는 의원에게 시간을 양보해서 계속 한 사람이 심문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안 된다. 증인이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면서 시간을 끌면 몇 개 물어보지도 못하고 끝난다. 의원들이 무례하게 중간을 말을 끊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할 때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 안에 상대방이 길게 답변할 여유를 주지 않도록 하면서 한가지 주제로 7분 안에 질의 응답을 완결하는 것이 좋다. 
셋째, 질문을 담당할 손혜원 의원은 기업 금융에 대해선 잘 모른다. 대개의 경우 전문성도 떨어지고 열심히 공부할 시간도 많지 않은 의원들, 능력이 안되거나 게으른 의원들은 보좌관이 준비해 준 각본을 그냥 읽는다. 상대방이 회피성 답변을 하면 즉각적인 대응이나 추궁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연히 의원들은 제보에 의한 폭로에 매달리게 된다. 우리는 제보에 의존하지 않고, 질문할 사람을 코칭도 하면서, 그의 능력도 감안한 질문 전략을 짜기로 했다.
손혜원 의원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이면서도 꾸준히 우리들 얘기를 듣고 물어가면서 자기 나름대로 흐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일생을 대중을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짰던 사람인만큼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를 손의원은 잘 안다. 
넷째, 아무러나 상대방은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순순히 시인하면 뇌물죄로 감옥에 가야 한다. 그것을 감안하면서 그들이 꼼짝 못하고 실토하도록 추궁하는 대신 국민이 듣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 문안을 만들어야 했다. 그들과 질의응답을 하되 그들의 응답 태도에 질의응답의 성과가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우리는 질문자가 증인에게 묻고 난 후 그 답변을 기초로 참고인으로 출석한 우리들에게 질문을 해서 김상조 선생이나 내가 관전 시각을 제공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내 개인적인 신상 경험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예로서 보여주는데 쓸모가 있다고 봤다. 손의원의 질문지는 미리 준비하고, 우리는 그날 미리 오간 청문회 흐름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내, 청문회 흐름에 맞추어 발언을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중간 휴식 시간 중에도 계속 어디에 촛점을 새롭게 맞출지 논의했다. 
팀웍이 좋았다. 대의를 위해 자기 시간을 내는데 모두들 인색하지 않았다. 손의원은 자기 생색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더 무게를 두었다. 
결과는 아쉬운대로 조금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김상조 선생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뒤에서 도와준 다른 분들 덕도 크다. 
저녁 시간이 되면서 김선생과 나에게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우리는 모두 사양했다. 우리들 이름을 팔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청문회가 밤 늦게 끝난 후 우리끼리 맥주 한잔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그만이다.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하는 말을 남기고 싶다.
이번 청문회는 정경유착 청문회다. 여기 앉아있는 그룹 총수들은 두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기 능력 때문에 지금 위치에 다다른 것이 아니다. 아버지 덕분에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죄를 져서 감옥에 갔다왔거나 기소 중이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아버지 덕분에 돈과 권력을 얻은 전과자들이 한국경제를 이끈다는 이 사실이 한국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들은 이들을 최순실 게이트 공범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은 공범이 아니고 주범이다. 정경유착의 토대가 있기 때문에 최순실도 가능한 것이다. 초법적인 재벌은 항시적 몸통이고 최순실은 지나가다 걸리는 파리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경유착을 못 끊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산과 경영권을 세금 안내고 세습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 탐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아마 여기 온 분들의 자손은 2-30년 후에 또 감옥에 가거나 이런 자리에 나올 것이다.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면 그것은 그들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송민순 회고록 유감

송민순 회고록이 부정확하다고 김경수 의원이 반박했다. 그는 문재인 측근으로 그들 사이에서는 언론 상대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이다. 
이번 사건의 정치적 분석은 내 역량을 벗어난다. 다만 몇가지 조직 생활을 거치면서 알게 된 것들과 다른 나라의 관행에 기초한 내 의견을 얘기하고자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에서 각자가 어떤 얘기를 했고 그 얘기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정확히 기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인간은 모든 사물은 자기 입장에서 보고 들으며, 선별적으로 보고 들으므로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올해 초까지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중요한 경영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록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다녔던 서구 조직은 다 그렇게 했다. 
매주 한번 월요일에 열리는 주간 경영회의에는 팀장들 중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참석해 초록을 만들었다. 초록 담당자는 보통 그 다음날까지 회의록 초안을 참석한 임원들에게 돌려 혹시 발언을 오해했거나 잘못 요약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 회의록을 모든 팀장과 전국의 지점장들에게 배포했다. 꾸준히 그렇게 하면 회사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2년이 넘게 실시한 경험을 요약하면, 첫째, 본인으로서는 온 신경을 다해 듣고 정리한 회의록인데도 맥락을 잘못 집거나 중요한 얘기를 생략한 경우가 가끔 발생하곤 했다. 대개는 부장들이 회사 업무를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다.
둘째,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아예 정 반대로 요약한 경우도 아주 가끔 발생한다. 이를 지적하면 자기들도 깜짝 놀라곤 했다. 
셋째, 이것이 지금 맥락에서 중요한 것인데, 참석자들이 이해한 회의 진행과 회의록이 다르거나 다른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내용들이 회의록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임원들은 자기가 한 말은 정확히 기억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거나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듣고 자기에게 기억에 남도록 중요한 것은 자기 의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임원들이 자기가 참석한 회의였는데도 나중에 회의록을 보고 나서 "어, 그 사람이 그런 얘기도 했었구나" 라고 새롭게 아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기 기억과 다른 것이 이상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직접 확인을 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회의록을 만들어 가장 좋은 점이 바로 이렇게 자신들이 회의에서 타인의 얘기를 선별적으로 듣고 인간의 인식과 기억이 이렇게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회사 예는 바로 월요일에 있었던 회의를 수요일에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에 관한 얘기다. 만약 몇달, 몇년이 지난 후에 누가 그때 어떤 얘기를 했는지, 회의 도중에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참가자들의 의견이나 입장이 토론 도중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갖고 서로 모여 얘기하면 서로들 상당한 이견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송민순씨는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이 별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고 기술했지만 김장수씨는 자기는 유엔결의안에 찬성했다고 기억하면서 송민순씨 기억을 반박했다. 문재인씨도 이번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자기가 회의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출판 프로세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논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회의에 참석한 한 사람만의 기억에 의존해 서술하는 것은 위험하다.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출판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중요 부분에 관해 관련자들에게 사실 확인을 거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만약 당사자들 간에 기억이 서로 많이 상치된다면 추가 확인을 거치고, 그래도 명백히 확인하기 어려우면 자기 생각만 밝히고, 다른 사람들 얘기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는 남의 발언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는 점을 글 도중에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서구의 경우는 조금이라도 명성이 있는 언론이나 출판사라면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사실 확인 작업을 철저히 한다. 예를 들어 인터뷰를 하고 와서 초고에 "... 그는 노란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는 문장이 있으면 사실 확인 담당 직원(fact checker)이 전화를 해서 과연 인터뷰를 한 사람이 노란 소파에 앉아 있었는지까지 물어볼 정도다. 또 다른 예를 들면, 2000년에 제작된 Almost Famous란 영화에서도 록 밴드를 따라다니며 취재한 기사를 주인공이 송고했는데 그 중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록 전문지인 Rolling Stone 이 밴드 멤버에게 전화를 해서 그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알기에 한국에는 이런 프로세스가 없거나 매우 부족하다. 내 개인적인 예만 들어도 언론 기사 중에 사실이 전혀 아닌 보도가 부지기수였다. 주요 언론들도 사실 확인을 전담하는 직원마저 두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안다. 출판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송민순씨는 자기의 기억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기억을 굳게 믿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전에, 여러 사람이 관련된 회의에서 한 사람의 기억이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가 당시에 기록한 개인적인 비망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외교관이라면 회의가 끝나고 나서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민순씨는 이번 내용이 논란을 일으키자 수백 페이지 책 중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논란이 될 지 몰랐다고 말했다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외교관은 직업 상 낱말 하나하나, 토씨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도록 훈련을 받는다. 거의 제 2의 천성이 될 정도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될 지를 몰랐을 정도로 감각이 없는 사람이 직업외교관으로서 외무장관까지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아마도 그 당시 회의록은 비밀 문서로 분류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그의 글이 특정한 비밀 준수 규정을 어겼는지는 나로서 알 수 없으나 그가 현 시점에서 회의 참석자의 발언을 개인 별로 거론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그것이 어떤 동기에, 또는 어떤 부주의에 기인한 것이든 말이다.

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국정감사를 보면서 (3)


국정감사가 지난 금요일에 끝났다. 평소 생각하던 것 중 일부를 둘로 나누어 썼었는데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첫번째 글에서는 국정감사가 삼권분립이 취약한 한국에만 있는 기형적인 제도여서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로서는 매우 부족하다,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하고, 청문회를 통한 상시적 국회조사권을 늘리고,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꾸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두번째 글에서는 한국 사회가 감사라는 선진 제도를 수평적 관계에서 공공 기관의 책임성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방적 권력 관계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문화 습관 때문에 감사자와 피감사자 사이에 해마다 일종의 역할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 글에서는 피감사인이 쩔쩔매는 척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때만 그렇다. 막상 중요한 일을 갖고 들이대면 대놓고 거짓말을 하거나 도리어 공격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두 글을 모두 읽은 사람들 중 일부는 두 글이 무엇인가 서로 모순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즉 감사를 일방적 권력관계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국회가 상시적인 청문회를 통해 행정부를 감시하고 감사원이 국회 소속이 되면 행정부가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자연히 들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차치하고 지금도 각 정부기관은 국정감사 때문에 쓸데 없는 자료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느라 등이 휜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또 공무원들은 국최 상임위원회 때문에 여의도 출근해 대기하느라 일을 못한다고 한다. 만약 연중 내내 언제라도 하는 청문회를 열어 자료를 요구하고 출석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과연 정부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또 공무원은 물론 온갖 민간 부문 사람을 불러내는데 맛을 들이면 어떻게 될까? 
또, 지금은 감사원이 같은 행정부 소속이라고 해서 그래도 정권 눈치를 보기 때문에 자기들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감사원이 국회 소속이 되거나 그 어느 누구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이 되면 그들의 독주 또는 폭주를 누가 견제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면 무작정 국회의 상시 청문회를 대폭 확대하고 감사원을 국회로 가져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첫번째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현 제도 아래에서도 국회의원은 국정감사가 끝난 후에도 행정부를 감시할 수는 있는 여지가 상당히 있다. 만약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20일 동안의 활동으로 자기 할 일 다한 것처럼 물러서지 않고 몇가지 문제에 집중해서 집요하게 파고 들면 비록 청문회를 상시적으로 열 수 있게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국회에서 다시 한번 더 드러났듯이 한국 행정부는 참으로 일을 허술하기 짝이 없게 하거나 아예 대놓고 허위를 일삼는다. 그렇지 않고는 별로 전문적이지도 않은 국회의원들이 겨우 몇명의 직원을 데리고 짧은 시간에 조사해서 밝혀내거나 지적한 것에 대해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규모 조직의 수장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너무도 종종 발생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선 이 정도의 무능과 태만은 일반 민간 기업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한다. 국감에서 드러나는 사건들을 보면 상당수가 민간 기업이라면 관련자들은 물론 경영진도 당장 물러나야 할 정도로 낯 뜨거운 사안들이 많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 정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상시적인 청문회를 실시해서 훨씬 더 철저하게 공정 기관을 감시하는 다른 나라에서 이런 정도의 업무 태만이나 부적절한 업무 처리가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진즉 스캔들이 되었을 것이고, 파면이나 형사 기소 이전에 관련자는 당장 사임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국정감사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 행정부 감시가 허술하기도 하지만 내부적인 감사는 물론 감사원의 감시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만큼 현재 한국 사회의 공공 부문에서는 책임성이 무시되고 있고, 무능과 허위와 불법이 판을 치고 있으며, 이를 제어할 제 3자에 의한 독립적인 감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편에는 무책임하고 안하무인인 국회와 감사원이 있다. 이은재씨 같이 무턱대고 "사퇴하세요"라고 고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 갓 서른을 넘긴 초선 비례대표 신보라씨가 이재명씨에게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켜 돌려가면서 "청년 대책으로 국가 돈만 쓰지 말고 머리를 좀 더 써서 고민 좀 해보라"는 말을 하는 국회다. 
다른 한편에는 무능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행정부와 산하기관들이 있다. 문예위 회의록을 뭉터기로 삭제해 제출한 박명진씨가 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에게 답변하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KBS 사장 고대영씨가 있다. 신기하게도 국회는 겉으로만 온갖 허세를 부릴 뿐 그런 사람 하나를 어쩌지 못한다. 
상시적인 청문회를 하면서 국회의 무책임한 행동을 지금처럼 놔두면 국정이 마비된다. 그렇지만 행정부와 공적 기관이 이렇게 일을 엉터리로 하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을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불교의 연기론과 같아서 하나는 다른 하나가 있어서 존재하는 형국에 가깝다. 하나를 놓아두고 다른 하나만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니기도 하다. 
딜레마다. 세상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어떻게 그것을 달성할 것인지를 말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바로 감사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저급한 상태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도 그런 문제중의 하나다. 
내 생각엔 우선 감사원을 독립기구화하거나 국회 소속으로 바꾸는 것부터 해야 한다. 상시 청문회는 그 다음이다. 우선 의회 소속 감사원의 행동거지를 감시할 프로세스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행정부도 힘이 없는 기관이 아니다. 감사원이 국회 소속으로 바뀌면 행정부 수장은 그들이 자기의 권력 범위 밖에 있게 되므로 이를 예방하거나 견제할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부서 자체 내 감사 부서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이 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지금은 부서 내 감사부의 역할과 권한이 지나치게 제약되어 있어 유명무실하다. 
국회에서 수시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해도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하고 안하무인인 태도가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상시적인 감사는 국회 소속 감사원을 통해서 실시하고 그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필요하면 청문회를 여는 방법도 있다. 
지금과 같이 국회의원들이 아무나 불러놓고 자기들이 "헌법기관"이라고 으시대면서 남을 조롱하거나 눈을 부릅뜨는 것은 결국 그런 사람을 뽑은 선거구민들 탓이고 그 나라의 문화적 습관 탓이다. 어디까지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인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앞으로 언론과 선거구민들의 시각이 바뀌어 그런 행동에 불이익을 주거나 응징하고 그것을 정치인들이 인식해서 자기 정화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6년 10월 10일 월요일

국정 감사를 보면서 (2)

많은 사람들이 국정감사 시 고압적인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불편해 하고 비판한다. 그 누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에 못지 않게 이상한 것이 있다. 바로 피감사인의 비굴에 가까운 태도다. 
피감 기관의 기관장들은 마치 무엇을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쩔절맨다. 예를 들어 이은재씨의 경우에서도 그가 무작정 소리를 질러 대는데도 조희연씨는 반박은 커녕 항의 조차도 하지 않았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이은재씨의 행동에도 조희연씨는 하다 못해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국회의원을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피감사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작년 이 무렵 정무위의 국정감사에 나간 적이 있다. 마침 그날은 가족 내 경영권 쟁탈전 때문에 롯데그룹의 신동빈씨도 불려나온 자리였다. 나와 신동빈씨 모두, 민간 분쟁을 갖고 국회의원들이 행정부 감시를 위해 개최한 국정감사에 불려온 것이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부적절한 소환이지만 자기들끼리는 과거부터 늘 하던 짓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귀찮기는 했지만 구경거리 생긴 셈 치고 나갔다. 예상은 했지만 그 자리에서 본 국회의원들의 행동은 한심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오후 내내 신동빈씨를 갖고 마치 고양이가 쥐를 다루는 듯 쓸데 없는 소리를 해가면서 자기들끼리 노닥거렸다. 왜 가족내 분쟁을 갖고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내 차례가 돌아오자 세번째 줄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일어서라고 했다. 사람들을 너무 많이 불러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그런다고는 하지만 자기들은 앉아 있으면서 상대방은 세워놓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나를 부른 김을동씨는 장황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말미에 시정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조사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럴 것이면 국정조사를 통하지 않고 그냥 정부에 얘기했어도 될 일이었다. 참고로 그와 그의 보좌진은 우리 회사에 와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국정 감사는 2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차례를 돌아가면서 기관장과 증인으로 부른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묻고 싶은 사람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국 의회와 같이 특정 사안에 연관된 사람들만 불러서 집중적으로 물어보는 방식이 아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그 자리에 와 있던 많은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롯데 이야기를 할 때 자리를 뜰 권리도 없었다. 완전히 자기들 편의만을 생각한 진행이었다.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며 하는 질문을 세번째 할 차례가 되자 김기식씨가 나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나는 국정감사에 소환한 안건이 아닌 것에도 대답해야 하느냐고 위원장에게 물었다. 모두들 뜨악해 하는 분위기였다. 위원장은 물어보면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 역시 부적절하다. 나는 지금도 행정부의 업무를 감사하는 자리에 부른 김에 자기들이 묻고 싶다고 아무 것이나 물어보는 그들이 관행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언행은 국회의원의 국정감사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감사원 직원들이 행정부 감사에 나갔을 때 보이는 행동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압적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금융지주에 근무할 때 그들이 감사 나와서 거드럭 거리는 행동을 직접 보았다. 군사독재 시절 보안대의 안하무인인 태도를 떠올리면 될 정도였다. 내가 사회에 나온 후 접한 인간 행동 중 가장 무례했다. 
공무원들이 이런 감사원을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이 정책 감사를 하겠다고 나서서 설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 내 경우는 우리금융지주에 감사를 나온 감사원 직원들은 막상 금융지주회사 운영을 갖고 감사 보고서를 쓸 실력이 안되었다. 그들은 감사 종결을 앞두고 갑자기 우리를 불러 아예 감사 현안에 대한 자체 보고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보기엔 자기들이 써야 할 감사 보고서 초안을 대신 써달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써 줄 수 밖에. 이런 사람들이 정책 감사를 한다고 하니 공무원들이 비웃고 싫어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감사인의 일방적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민간에서도 일어난다. 재벌 기업에서 실시하는 감사도 이와 비슷하게 고압적인 경우가 많다. 대개 대기업의 경우 그룹 감사와 기업 내 감사가 있는데, 내가 겪어본 삼성의 그룹 감사팀의 태도는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 자리에서 멱살 잡고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는 삼성 그룹만의 나쁜 문화이고 다른 기업은 안 그럴 수도 있다. 삼성도 과거 같지는 않다고 들었다. 직원들의 권리 의식이 강해져서 외부로 문제가 불거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국정감사를 볼 때 마다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감사를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감사(audit)은 원래 어떤 조직이 외부에 공표한 재무적인 정보가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독립적인 곳에서 조사하는 것을 뜻한다. 감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제 삼자가 독립적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무적인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밖에 공표한 것과 같은지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앞의 것을 재무 감사라고 하고 뒤의 것을 업무 감사라고 한다. 
감사는 꼭 의심가는 행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조직의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감사인과 피감사인은 동등한 입장이다. 대부분의 감사는 피감사인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보고한 것과 같은지를 알아보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다. 특별히 어떤 문제가 생겨서 실시할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감사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례 감사라고 하면 실시하는 사람이 위에서 내려보면서 마음껏 갑질을 해도 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인 문화관습 탓이 제일 클 것이다. 또 일상적으로 워낙 가식이 많고 부정부패가 퍼져 있어서 모든 사람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전제를 모두들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인 점도 있다. 
우리 사회가 익숙한 감사는 상대방이 윤리적이고 정당하게 일을 처리했을 것이라는 전제가 없이 시작하는 감사다. 감사를 하는 사람이 감사를 받는 사람에게 감사의 과정과 결론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감사이기도 하다. 나는 너를 언제라도 해꼬지할 수 있지만 너는 나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일방적 권력관계 만이 설치는 감사다. 감사를 하는 사람은 누가 감사할 것인가, 감사인은 자기 행동에 관하여 누구에게 책임을 질 것인가(accountability)가 무시된 감사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감사를 일방적 권력관계로만 이해한다. 감사 하는 사람은 무례해도 되고 피감사자는 무조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문화 습관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한국에선 피감사인이 이 암묵적인 문화 규칙을 어기면 순식간에 거만하고 건방진 사람이 된다. 금방 조리 돌림감이 된다. 언론도 이 연극의 일부로 참가한다. 한편으로는 자기들 눈에도 지나친 감사인의 부적절한 태도를 비판할 때도 있지만 이에 항의하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비판 대상이 된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 연극이다. 국회의원들은 듣기 불편할 정도로 목소리에 날을 세워서 윽박지른다. 예, 아니오만 대답하라고 한다. 여기가 어느 자리인줄 아느냐고 눈을 부라린다. 그게 그들 역할이다. 그들 못지 않게 사회적 존경을 받는 고위 관료와 기관장들은 속으로는 화가 치밀지만 그들 앞에서는 쩔쩔매는 시늉을 한다. 어차피 하루 이틀만 지나면 그만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속으로는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공손하기 짝이 없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적당히 바보인 척 행동할 줄 아는 것을 한국 엘리트 사회에서는 일종의 출세 요령으로 받아들인다. 
매년 국감에서 벌어지는 이 한국적인 풍경은 그들이 이 연극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면 조희연씨의 소극적인 태도, 다른 기관장들의 쩔쩔매는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가끔씩 벌어지는 소동은 이 연극의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일어난다. 그 규칙에는 화장실에서 푸념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 최근에 추가되었다. 
한국 사회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감사(audit)란 개념을 도입한지 70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아직도 감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거나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성(accountability)는 아직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번역 어휘 마저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형식에 그치는지를 잘 드러내는 예라고 하겠다.
(페이스 북 10.11일 글)

국정 감사를 보면서 (1)

(페이스 북 10.10일 글)
이은재씨가 국정감사에서 조희연 교육감을 사퇴하라고 몰아대었던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이은재씨가 MS Office 를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서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거의 이틀 동안 페이스 북을 도배한 비데오를 보면 뭔가 처음부터 서로 어긋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문제는 물론 이은재씨의 태도다. 진보 진영 출신 교육감에게 트집을 잡는데 빠져 앞뒤를 안 가리고 "사퇴하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 나머지는 아예 찬찬히 따져 볼 마음이 안 생긴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전국민적으로 각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한가지만 거론하자. 
과연 언제까지 국정감사를 계속해야 하나? 
한국 국정감사는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일 뿐만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다. 1948년, 즉 근대국가 조직 운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던 시절에 헌법을 만들면서 우연히 생겼다. 그 결과 의회의 행정부 감시 역할이 턱없이 부족하다. 
감시에는 조사(investigation)와 감사(audit)가 있는데 한국의 의회는 조사권도 약하고 감사권도 약하다. 현재의 국정감사는 조사와 감사를 뒤섞어 1년에 20일 동안 하는 제도다. 정기 국회 전에 결산 위원회를 여니 그때 회계 감사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국회의원에게 맡긴다는 것도 이상하다. 
또 중첩이다. 국회의 상임 위원회나 청문회를 통해 처리해도 될 것을 하고 있다. 게다가 1년에 20일 동안만 한다. 겨우 20일 만에 뭘 할 수 있는가? 국정감사 때만 허용된 자료 제출 요구권이 있다지만 그것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권한을 늘려서 해결하는 것이 낫다.
하는 방식도 구태의연하다. 우선 실행 방식이 매우 비효율적이다. 각 국회의원이 각자 별도로 뛴다. 낭비다. 중첩되거나 빠트리기 쉽다. 감사를 한답시고 요구하는 자료도 과연 쓸모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빌미로 공무원들에게 만들어 오게 한 통계 자료를 보도자료로 뿌리는데 상당수는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지 효용성이 의심되는 것들이 많다. 
감사를 하는 태도도 후진적이다. 뭐 하나 꼬투리 잡을 것이 없나 해서 들여다보고 트집을 잡는다. 또, 감사를 왜 꼭 대면 회의로만 해야 하나? 서면으로 하고 감사 보고서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앞으로 국정감사를 폐지했으면 좋겠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윽박지르고, 밑도 끝도 없이 불법이라고 하고, 선거로 당선된 공직자에게 사퇴하라고 하는 등 보기 역겨운 짓을 해대서가 아니다. 제대로 된 국정 감시를 하려면 1년에 20일만 할 일이 아니라 연중 내내 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만약 헌법개정을 할 것이면 그 기회에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하고, 청문회를 통한 상시적 국회조사권을 늘리고,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꾸기를 희망한다.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우리 안의 조선: 세습신분,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


저번에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에서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이 된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현대 한국 사회에 조선 왕조 사회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임금격차를 예로 들면, 양반, 상놈, 노비로 신분을 가르고 차별하던 사회가 지금은 학벌,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으로 차별하고 이 소수에 속하기 위해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로 변했다.
그리고 이 체제는 사실 중국 체제다.
이중톈(易中天)은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서 진시황 이후 지난 2천년에 걸쳐 중국체제를 유지시켰던 3대 요소로 중앙집권체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를 들었다.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까지 남아있던 봉건제를 철폐하고 군현제를 실시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한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6세기 수문제부터 윤리치국을 담당할 관리를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해 국정을 맡겼다. 그는 이 3대 요소가 현대 중국에서도 그 모습만 달리 했을 뿐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엔 한국도 이와 아주 유사하다. 
한국에서 중앙집권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중국보다 1,200년이 지난 10세기, 고려 태조의 넷째 아들인 광종 시대다. 그는 호족을 견제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기 위해 956년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의 세력기반인 노비를 양민화시키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 과거제를 실시했다. 
한국이 중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이 한나라 시대부터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에 비해 한국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교가 국교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한국에 중국체제가 뒤늦게 도입되었기는 하나 14세기 이후 두 나라는 모두 중앙집권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에 기반을 둔 전제체제를 갖고 있었다. 이 체제가 무너진 연대도 매우 비슷해서 중국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한국은 한일합방이 일어난 1910년에 없어졌다. 이러한 전제정치체제는 중국은 2천년, 한국은 보기에 따라 천년, 또는 5백년간 유지되었다.
이 세가지 요소 중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윤리치국이다. 유교 이념에 의거한 윤리치국 대신 중국은 군벌시대를 거쳐 공산주의로, 한국은 식민시대를 거쳐 헌정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북한은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사실상 세습 전제체제다. 중국 역시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실제로는 세습 대신 선양을 하는 집단 전제체제다. 남한은 1948년 헌법을 만들고 민주공화정으로 출발했지만 곧 이승만 독재로 넘어갔다. 4.19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도 잠깐이었을 뿐 곧 군사독재체제로 넘어갔다. 박정희가 충, 효를 내세운 것도 한국의 윤리치국 전통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가 조금이나마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혁명을 거친 후부터다. 그래봤자 몇년에 선거 한두번 하는 것 말고는 별 게 없어서 싱겁다.
중앙집권제는 아직도 남아있다. 중앙집권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도, 군, 면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행정구역체제다. 예를 들어, 유럽권의 주소는 나라, 시, 거리 이름으로 끝나지만 한국은 도, 시(군), 면 리(동)을 모두 적어야 한다. 지방자치제도 유명무실하다. 
이를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예가 세금제도다. 한국에서는 국세가 대부분이다. 전체 세수 중에서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방소득세는 2010년 전까지는 주민세로 불리던 것인데, 국세인 법인세나 소득세에 10%를 할증해서 부과한다. 국세가 몸통이고 지방세는 쥐꼬리만하다. 이에 비해 서구 국가에서는 지방소득세가 국세와 동격이거나 스웨덴체럼 아예 소득세 수입이 우선 지방정부에 귀속되고 일정비율 이상인 액수만 중앙정부가 국세로 소득세를 추가로 받아간다. 
관원대리 체제 역시 역시 여전히 강고히 남아있다. 아시아권에서 과거제도를 시행했던 나라는 중국과 한국 외에도 베트남과 일본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일본과 한국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베트남은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19세기 프랑스에 점령되면서 폐지되었다. 일본도 헤이안 시대(794-1185)에 과거제도를 실시했지만 하급귀족이 중급귀족으로 신분상승을 하는데에만 쓰여졌고 그 위 상급귀족층에 의한 지배체제 자체를 흔들지는 못하였고, 가마쿠라 막부시대에 귀족체제가 무너지고 봉건체제와 무사계급이 들어오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일본에서 과거제도가 다시 등장한 것은 중앙집권을 추진하던 메이지 시대 고등문관제가 실시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1948년 고등문관제도를 폐지했지만 그 대신 1종 공무원시험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일본의 1종, 2종, 3종 공무원 시험은 한국의 5급, 7급, 9급 공무원 시험과 일치한다. 한국의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는 1940년대 외무고시를 추가한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제도를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관원대리체제>
그러나 관원대리체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부문은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이다. 사법고시를 통해 선발한 관원에게 형사소추권을 독점적으로 주었다. 판사 역시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만 가능했다. 이러한 독점체제가 바뀐 것은 2011년 처음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판검사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란 직업도 원래는 검사나 판사를 하다 퇴직한 사람이 하는 직업이었다. 1981년 사법시험 정원이 300명으로 확대되면서 사법연수원을 나온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고 1996년 500명으로 늘면서 변호사가 급증했다. 최근이 사법시험 존치 논란도 사법부를 관원으로 채우는 전통의 연장이다. 
전관예우는 한마디로 사법 관원의 부패다. 자리를 얻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사전적 매관매직이 아니라 자리에서 물러난 후 뇌물을 받는 사후적 매관매직인 것이 조선시대와 다르다. 암묵적 결탁이 유지 되기 위해선 회원 관리가 배타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사법고시를 폐지하면 이 체제의 내부 결속력이 무너진다.
행정부 역시 그 독점성은 사법부에 비해 약하지만 관원대리체제다. 행정고시를 통해 선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나왔고, 4년제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새파랗게 젊은 대학 졸업생을 행정부 중간 간부로 뽑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엄청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법으로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법안 자체도 대부분 행정부가 기안한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에게만 준 것도 관원대리체제의 일부다. 
독재자의 충실한 하인이던 공무원들은 5년에 한번씩 바뀌는 대통령제에서 어느덧 가장 강력한 독자적 권력기구가 되었다. 전제군주가 관원을 견제하면서도 결국은 그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역시 관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새와서는 정치 검찰을 넘어서 아예 검찰 정치를 한다. 
<관원대리체제와 법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이렇게 관원에 의해 독점된 사법체계와 행정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과연 법치를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법치란 용어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이 권력자의 권한에 제약을 가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신민을 통제하기 위한 율법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다루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아시아권에서 법 앞에 평등이란 개념은 사회 지배층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시만의 의사 표현을 법치라는 명목 아래 겁박하는 어이 없는 행동도 그것이 바로 율치의 전통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나름 '내재적 이해'가 된다. 
이렇게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강고하게 남아 있고, 법치 보다는 율치가 익숙한 나라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공평한 법 적용이 가능하지 않다. 법치주의, 공화정, 민주주의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원대리체계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법체제가 재벌 총수나 정치권력에 약한 것은 필연적이다. 관원에게 기소권과 판결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피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퇴직 관원인 체계에서는 재벌 총수나 정치권 인사는 집행유예나 사면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검찰 뿐만이 아니라 법원도 개혁해야 한다. 있는 법이나마 제대로 실행할 법원이 필요하다. 양형 기준을 바꿔서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 자체가 옹색한 얘기다. 
중국 전제정치에서 유래한 관원대리 체계가 가장 강고히 남아 있는 곳이 사법부인만큼 사법관원 대리체계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부패한 사법체제는 재벌총수가 실정법에 어긋나는 불법을 저질렀을 때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다.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는 도둑질에는 모두들 딴 청을 부리면서 먼산을 바라본다.
소득 양극화, 이것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소득은 양극화됐었다. 신분세습사회, 중앙집권제, 관원대리체제를 놔두고 서로 양반이나 아전이 되려고 아귀다툼만 하면 결국 대부분은 상놈이나 노비가 된다.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 나의 김기원 읽기

(2015. 12. 17 페이스북 글 옮김)

오늘 새벽 일찍 잠에서 깬 김에 김기원 선생의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를 읽었다. 
그 중 그가 한국사회에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 역시 근래에 들어 나와 비슷한 생각의 여정을 거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경제학자들은 모든 것을 경제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그것을 경제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사실 그는 그러한 경제결정론만으로는 한국사회를 설명하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가 독일에 가 있으면서 독일을 이해하는데는 경제와 정치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뒤에 독일 사회의 문화적인 결을 이해해야 한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사회 역시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거치지 않고는 변혁을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가장 크게 느낀 문화적 차이는 독일의 사회적 신뢰와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였다. 
독일에 가서 책을 주문했더니 책을 우편으로 배송하고 청구서를 동봉했더란다. 의사에게 찾아가도 먼저 치료하고 나중에 청구서를 보낸다. 지하철에는 개찰구가 없다. 사회적 신뢰가 깊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 덕분에 사회가 거래 비용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가 이것을 중요하게 느낀 이유는 유럽에서 고부담 고혜택 복지제도가 가능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신뢰 때문에 감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를 뒷받침한다는 중견기업중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 (히든 챔피언)을 찾아갔을 때 그가 본 것은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였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밴드를 하던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오디오 기기를 만들고 싶어서 1977년 회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직원이 50명 밖에 안되는 기업이지만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오디오 회사란다. 직원들은 일년에 한달 휴가를 가지만 나이가 60대인 사장은 바빠서 휴가를 그 해에 한번도 못 갔단다. 김선생은 독일의 히든 챔피언이 바로 이런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는 독일에 머물며 한국을 돌아 보면서 새삼스레 한국사회의 낮은 신뢰 수준과 직업적 긍지의 부족을 통감했던 것 같다. 
세월호 사건에서 배에 탄 선객을 버리고 자기들만 도망쳐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보면서 그는 직업 윤리의 실종을 보았다. 기복신앙에 빠진 한국 교회와 부패한 목사를 보면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문화'의 결여를 보았다. 김용준씨처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사람이 총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데서 직업적 긍지의 매장을 보았다.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주무르는 재벌총수, 그런 재벌로부터 돈을 넙죽넙죽 받아 챙기는 정계, 관계, 언론계, 학계, 검찰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공범자 유력집단'을 보았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직업윤리를 망각한 것은 유력층만이 아니다. 거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도 '특수이익 집단’이 되어 다른 노동자에 비해 부당하게 높은 처우를 누리면서도 부끄럼을 모르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내 입장에서 덧붙이자면 고객에게 뻔히 안 좋은 줄 알면서 보험을 팔아대는 보험 회사들이나 투기적 주식 매매를 부추키고 자기에게 이익이 더 떨어지는 상품을 권하는 증권회사들도 직업 윤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원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자만 갚는 대출을 남발하는 은행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그가 독일에 가기 전에 그와 이런 문제에 관해 여러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한국 사회를 단지 경제나 정치만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조선 사회 특유의 문화적 전통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순을 많이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개혁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약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20년 전까지 한국 사회는 노비가 대규모로 있던 사회였다. 노비는 일본에는 없고, 중국에는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노비는 빚을 못 갚은 사람이 노비가 된 것이어서 노비 신분은 당대에 끝났다. 한국의 노비는 부모 중 한사람만 노비여도 자식까지 노비인 악질적인 제도였다. 
조선은 양반과 상놈, 그리고 노비로 이루어졌던 신분 사회였다. 양반은 자기들끼리는 많지 않은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패를 나누어 싸웠지만 그들 모두는 군역과 세금에서 자유로운 특권층이었다. 상놈은 그런 특혜를 누리는 양반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노비의 억울한 사정은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인 사회인 것은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공립 교육은 버려두고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린다. 비정규직의 고통은 놔두고 정규직 감원 한다고 희망버스를 동원한다. 집이 없어 고시방에 옥탑방을 전전하는데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동산 값을 올리는데 열중한다. 빈곤에 시달려 자살하는 노인들을 두고도 국민연금을 쌓아두자고 한다.
사회적 신뢰와 직업적 긍지?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


2016년 9월 30일 금요일

지지부진한 구조조정과 사라진 중장기 정책 비전

뉴욕타임즈 같은 신문은 가끔 큰 주제로 길게 쓴 기사를 싣는다. 이번에는 무역자유화를 갖고 여러 나라를 현장 취재한 기사를 올렸는데 매우 잘 쓴 기사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기자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NYT 기사에 의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유무역에 대한 불만도 같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양 후보가 모두 태평양권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더불어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자유무역에 반대하거나 불만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늘고 있는 것이다.
기사는 무역자유화가 기대한만큼 경제적 혜택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증가하는 것 외에도, 무역자유화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가 초래하는 피해 보상을 위해 도입한 사회복지 체제가 그리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역자유화에 따른 선진국 경제의 구조조정에 대한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것이 연상되어 간단하게(?) 적어본다. 
미리 이 글의 주장을 요약하면, 나는 경직된 경제 체제와 지대 추구에 몰두하는 경쟁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체제 개혁을 위해서는 중장기 계획과 비전이 필요한데 한국 정부에서는 요즘 그런 작업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봉책 만을 남발하면서 지난 8년을 보냈다.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 유념할 것이있는데 그것은 자유무역이 경기 침체를 초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경기가 나쁘면 사람들은 뭔가 탓할 거리를 찾게 된다. 딱히 내부에서 탓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려우면 외부에서 찾게 된다. 세계화나 기술변화는 딱히 이거다 싶게 하나로 모아지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면 무역 자유화가 가장 쉽게 떠오른다. 무역자유화를 하면 모두들 좋아진다고 했는데 좋아지기는 커녕 살기가 빡빡해졌다. 이것이 다 마치 무역자유화 때문에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무역자유화가 경제 전체적으로는 더 좋을수 있지만 국내 경제부문간에는 이해 관계가 갈리게 된다. 부문간 확대와 수축에 따른 경제 부문간 조정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피해를 받게 되는 계층이 생긴다. 그에 대한 보상책을 적절히 설계하자는 주장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지만, 문제는 정작 효과있는 정책 설계 작업은 쉽지도 않고 실제 행정에선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기사에서도 이를 반성하는 경제정책가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유무역화에 따른 경제 구조 변화에 대응을 돕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실업보험과 직업 재훈련이다. 소득보전 등의 다른 정책도 있지만 지금까지 선진국들의 경험상 그래도 가장 폐해가 적은 정책이 이것 둘이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그 정책의 효과성은 제각각이다. 미국의 실업보험은 유럽에 비해 형편없이 부족하다. 6개월이면 끝날 정도로 기간이 짧고 소득 대체율도 훨씬 낮다. 유럽은 사정이 낫지만 그래도 경기 침체가 오래 가면 그것도 소용이 없다. 직업 재훈련 역시, 기사가 전하는 현실은 어둡기 짝이 없다.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형식적이거나 쓸모가 없다고 한다.
한국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아니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실업보험이 너무 미약하고 직업 재훈련 역시 거의 무의미할 정도다. 실업보험 대상자가 아닌 사람이 너무 많고, 받아 봤자 6개월간 평균 100만원을 겨우 넘는다. 직업 재훈련 역시 실효성도 없이 고용노동부의 복마전이 된지 오래 되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이 아쉽다. (한국 언론이 현장 취재를 통해 실업보험과 직업 재훈련의 부실성을 드러내는 기사를 내주면 좋겠다.) 
이런 무관심의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화에 따른 산업조정의 부담에 대해 한국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제 규모 대비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들 보다도 월등히 높아서 세계화의 영향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은 수출 주도로 성장했고 자국내 시장은 매우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신경을 쓸 부문이 있다면 농업 부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도 세계화에 따른 국내적 구조조정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첫째,개발도상국의 위치가 아니어서 국내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 둘째, 국내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나가고 있다. 대기업 부문의 임금은 선진국 못지 않거나 오히려 더 높은 경우도 있다.
한국은 미국, 중국, EU등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요즘은 농산물은 물론 중국과 다른 개발국가들의 공산품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있다. 종래에는 국내 규제로 막아 놓았던 산업들에도 외국 기업이 들어와 경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수입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자동차 시장이다.
이런 충격을 흡수하는데에는 경제의 유연성이 높은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유연한 구조가 아니다. 국내 시장은 독과점적이다. 게다가 관료의 권한이 지나치게 많아 규제에 의한 진입 장벽도 높다. 마지막으로,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강한 나라다. 관료와 독과점 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를 이용해 자기들만의 벽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 벽 안에 들어간 부문을 통칭해서 원청, 그 밖의 부문을 하청 부문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경쟁은 이 원청과 하청을 나누는 벽을 기정사실화 한 채 일어난다. 즉 한국 사회 내에서의 경쟁은 한마디로 원청 부문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되었다. 관료와 독과점 재벌에 의해 만들어진 체제를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모두들 그것은 기정 사실로 놓고 자기를 시장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와 기술 변화에 따른 경제의 구조조정이 한국 사회 안에서의 종래 방식의 경쟁을 무의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성장이 오래 가면 따듯한 아랫목에도 한기가 들게 마련이다. (물론 윗목은 더욱 추워진다.) 방 전체는 추워지고 있지만 모두들 서로 그나마 줄어드는 아랫목을 차지하려는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경직된 경제체제 안에서 원청과 하청으로 나뉘어서 무의미한 경쟁과 싸움질만 하는 사회가 저성장과 세계화와 기술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살을 앓고 있다. 
이와 같이 경직된 경제 체제와 지대 추구에 몰두하는 경쟁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 정부 안에서 중장기 계획과 비전이 사라졌다는 점을 걱정한다.
예를 들어 지난 8년간 재정적자가 계속 되고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없다. 그냥 작년 대비 올해 재정적자가 얼마인지만 따지고 있다. 이에 관한 기재부의 입장은 어정쩡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다. 겉으로는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면서도 지난 8년간 계속 적자예산을 짜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기 침체로 세수가 부족하므로 단기적으로는 재정적자를 감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통화정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자가들의 중장기 물가 정책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물가가 타겟 인플레이션률을 하회한지 수년이 지났다. 타겟이 2%인데 수년간 2%에 미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만 2%를 달성한다 한들 중장기적으로는 2%에 못미친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나마 물가상승률이 2%를 상회하도록 할 것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물가 상승률도 낮고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중장기적으로 금리 통화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한국은행은 하지 않고 있다.
외환정책도 마찬가지다. GDP 대비 경상수지흑자가 5%를 넘은지 오래되었고 요즘은 7%에 달한지 몇년이 되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환율이 절상되어도 한참 되어야 한다. 정부는 자본 유출을 장려해서 자본수지 적자를 통해 환율 절상을 막고 있은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적어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굳이 국내 시장에서 이자를 주고 원화를 조달해서 달라를 사는데 쓰는 외환평형기금의 규모는 중장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도 그 규모가 150여조원이고 매년 수조원씩 이자지급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그럴 움직임은 안보인다. 
실물부문도 마찬가지다. 무역장벽이 낮아지고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국내 부문간 불균형이 심화되고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 실물 부문 정책이 실종된지 오래되었다. 4대 부문 혁신이라지만 그저 정치적 편가르기에만 몰두하고 국회탓만 하며 세월을 보낸지가 벌써 만 3년이 지났다. 
현 정권은 자기들의 이념적인 고정 관념에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진정으로 노동부문 유연성 제고를 하고 싶으면 실업보험제도 개혁이 먼저다. 그러나 정부는 그럴 생각은 꿈에도 없는 듯하다. 이렇게 가면 내년 말에 가서 5년 동안 한 것이 뭐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런 것이 하나하나 쌓여서 "잃어버린 10년"이 생긴다. 
여기서 잠깐 과거를 회상해보자. 노무현 정권 시절 <국가비전 2030>을 2006년에 발표한 적이 있다. 5년 단임 정부가, 정권 초기에는 엉뚱한 데 힘을 다 쓰고 시간 낭비하다가, 정권 말기에,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노력도 부족한 채, 재정 조달책은 빠진 채, 2006년에 15년을 앞둔 2030 정책 비전을 만들었다는 것이 뜬금 없기는 했다. 
그래도 그 뜻은 가상했다. 
정권은 5년 단임이지만 국가는 남는다. 그래서 그 국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 비전이나 계획은 꼭 필요하다. 그런 계획이 있어야 목표 대비 현재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비교할 수가 있다. 그런데 5년 단임 정권이 계속되면서 점점 나라의 미래를 기획하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 사항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정권과 관료가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시대에 만들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중장기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심지어 급변하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도 중장기 비전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수한 기업은 그렇게 한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알아야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처럼 5년 단임 정권을 계속하면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안된다.

2016년 7월 7일 목요일

삼권분립과 정책금융


어제 국회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주요 논점은 이것이 불법인가와 어떻게 정부 행위를 투명하게 만들 것인가였다


논의를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이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 기능부전의 문제와 한국경제에서 과도한 정책금융의 문제가 겹쳐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성인씨는 먼저 자본확충펀드의 불법성을 조목조목 들어 지적한 후에 이에 덧붙여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폐지하고 공식적인 기구로서 금융안정협의회를 만들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모여서 협의하는 자체를 폐지하자는 뜻이 아니라 법적 권한이 없는 기구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별관회의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가장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내리는 결정에 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결정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직권 남용이나 업무상 배임으로 형사적 책임을 물을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검찰이 홍기택씨를 혐의 적용 가능성을 갖고 저울질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최근 언론에 서별관 회의에 대해 폭로한 것도 검찰의 끝이 자기를 향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성인씨 주장은 서별관 회의 대신 법적인 기구와 절차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기구에는 관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한다.



토론자로 나선 김상조씨는 현행법 위반의 소지가 있으며 원칙적으로 재정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하면서도 이미 한은의 금통위 의결까지 이루어진 상황애서 무효화하는 것이 효과적인 해결책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자본확충펀드에 투명성과 책임성의 통제장치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공적자금관리법에 조항을 신설해서 한국은행이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금융회사등의 자본확충을 지원할 목적으로 대출한 자금도 공자법에서 다룰 것을 제안했다. 금융안정협의회 설립에는 같은 의견이었다.


나는 문제에 있어서는 김상조씨 보다는 전성인씨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김상조씨는 "금통위 의결을 중앙은행의 권위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아니냐" 했는데 생각엔 중앙은행의 권위 보다 중요한 것이 국회의 권위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국회가 있다는 것은 민주정치에서 가장 핵심에 가깝다. 불법적인 일을 행정부가 저지르고 있는데 중앙은행이 이미 의결했으니 국회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는 본말이 전도된 얘기다. 그리고 정말 권위 있는 중앙은행이었다면 이런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자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정을 하는 기구에게 무슨 권위를 두겠는가?


현재 정부 방안은 앞으로 있을 모르는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금융위기가능성을 대비하여 미리 한국은행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놓겠다는 얘기다. 이는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방식이다.


정부는 선거 전에 이를 한국식 양적완화 운운하며 연막작전을 쳤다멋모르는 일부 언론인들이 처음에 이에 동조하기도 했지만 곧 이것이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구제금융을 자기들 입맛 대로 하겠다는 뜻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언론이 비판적으로 돌아섰고 그 용어는 곧 사라졌다. 대신 등장한 것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다.


그러나 이것도 한국적 양적완화와 마찬가지로 역시 양두구육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국회의 감시 없이 자기들 멋대로 구제금융 재원이 필요하니 돈을 한국은행으로 부터 끌어 오겠다는 발상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이번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에서 문제가 생긴 이유 가장 것이 바로 잘못된 정책금융 때문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자기들이 정책금융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금융 자금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자기들 마음대로 쓰겠다는 것이니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한국은행이라고 해서 이러한 문제를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체적인 의결은 했지만 나중에 요청이 들어오면 건별로 심사를 하겠다고 했다. 한국은행의 금통위원들은 6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지난달 30 자본확충펀드에 대해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은 재정의 역할이나,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있는 금융시스템 불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 차원의 틀에 동의했음이라고 적힌 문서에 서명해재정 우선 원칙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졸렬하고 비겁한 얘기다. 정부가 요청하면 중앙은행이 건별로 심사해서 국책은행에 출자하겠다는 것을 비상계획이라고 부른다는 자체가 코메디다. 그게 무슨 비상계획인가? 급하면 그때 가서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미리 의결해 놓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세계 어느 나라에 중앙은행이 금융시스템 불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을 재무부에 맡기는가? 막상 한국은행에 손을 벌릴 정도로 문제가 터지면 이렇게 건별로 심사할 이유도 없고 여유가 없다. 국회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자기 다했다고 한다면 국회도 마찬가지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안의 제일 중요한 이슈는 국책은행의 부실을 한국은행의 발권력으로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대개 금융위기가 터지면 해결책은 중의 하나다.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져서 금융불안이 생기면 공적자금을 것인가 아니면 중앙은행 발권력을 이용할 것인가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정리가 되어 있다. 은행의 유동성 위험은 중앙은행이 맡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은 중앙은행이 하는 것이다. 부실은 정부가 출자해서 해소한다.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고 은행의 부실이 심각하면 중앙은행이 아니라 예보, 또는 공적 자금을 들여서 처리하게 되어 있다. 부실한 은행의 증자를 위해 정부가 요청했을 중앙은행이 수동적으로 심사해서 집행할 일이 아니다.


김상조씨는 뉴노말 운운하면 요새 같은 세상에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도 국회를 통한 재정자금 마련이 좋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단지 정부가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니 국회가 못본 척하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정치력 발휘라고 부른다.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행정부가 마음대로 하도록 의회와 법원이 놔두는 것을 정치력이라고 부르자는 주장은 너무 억지스럽다. 자기는 우국충정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임꺽정 증상이 심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투명성과 책임성 문제다. 공자법에 한국은행의 국책은행 출연금을 포함시키자는 김상조씨의 제안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나와 회의에 같이 참석했던 금융권 인사는 회의가 끝나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말하기를 공자위는 공무원들이 공적자금 운영을 자기들 입맛대로 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해 만든 기구인데 그들에게 한국은행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운영에 대한 감시를 맏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없다고 했다. 역시 같은 의견이다.


여기서 잠깐 눈을 돌려 2008년으로 돌아가자.


2008 9 15 리만 사태가 발생해서 전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폭풍이 닥쳤을 미국 행정부는 9 29일에 국회에 7천억불 짜리 구제금융 펀드(TARP) 요청했다. 당시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이 국회에 제출한 법안의 내용은 국가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은행들의 모기지 저당증권(MBS)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법안은 9 29 하원에선 부결되었다. 공화당 정권이 법안인데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해서 부결되었다.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10 3 상원에서 통과된 수정 법안을 5 하원 표결에 부쳐서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일부 마음을 빠꾼 의원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공화당 하원의원은 공화당 정권이 법안에 반대했다.


어마어마한 재원 조달 규모에 비해 재무부가 9 20일에 의회에 법안초안을 넘겼을 법안은 겨우 세장짜리였다. 재무부 장관의 행위에 대한 국회와 법원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법안 문구를 일부러 모호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재무부장관의 결정은 되돌릴 없고 법원에 의한 무효 판결로부터 자유롭다는 문구를 포함했다.


10 동안 의회에서 심사하면서 법안은 100 페이지로 불어났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세가지였다. 첫째,7천억 불을 한꺼번에 허용하지 않고 셋으로 나누었다. 둘째, 네가지 국가기관 감시 장치를 만들었다. 셋째,국민들로 하여금 프로그램에 의한 결정을 법원을 통해 제소할 있도록 허용했다.


현재 맥락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감시 장치다.


첫째, 법은 새로 만드는 금융안정협의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Board)에서 TARP 감시하도록 했다. 의장은 중앙은행장이다.


둘째, 의회 내에 국회 감시 패널(Congressional Oversight Panel) 만들어 여야가 선출한 사람들로 하여금 정부 프로그램을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패널은 30일마다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의회에 보고해야 했다. 하바드 법대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워렌이 바로 패널의 수장이었고 그가 청문회에서 가이트너를 꼬치꼬치 심문한 장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셋째, 미국 의회 소속인 감사원(Government Accounting Office) TARP 운영에 관한 모든 자료를 요구하고 열람할 있는 권한을 주었다.


넷째, TARP안에 특별 감사국(Office of Special Inspector General) 두었다. 감사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상원의 비준을 통과해야 하며 임기가 보장되었다. 그는 분기마다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나중에 오바마가 임명한 가이트너 재장관은 재직 도중 COP 워렌과 TARP 감사인 바로프스키 때문에 곤욕을 치루었다.


다시 눈을 돌려 한국으로 돌아오자.


한국은 공적 자금인데도 국회에 의한 감시 장치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공자위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은 공무원들 투성이다. 사무처장은 보직이 없는 고위 공무원이 잠깐 거쳐가는 자리다. 미국에서는 감시 장치 의회가 직접 통제하는 기구가 세개인데 한국은 하나도 없다. 한국의 상황이 이러한데 김상조씨 제안처럼 공자위에서 감시하게 하자는 말은 무의미한 얘기에 불과하다.


다른 예로 2009 은행자본확충펀드의 경우를 보자. 당시 정부는 펀드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나라가 큰일 난다고 국회를 협박했다. 자세한 것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국회로부터 동의를 받은 자금 한도가 20조원이었다. 실제로는 3조원 정도 밖에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에 얼마나 어떤 조건에 주었는지를 밖에서 알아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일을 열심히 하는 정무위나 기재위 국회의원이 물어도 무성의한 숫자 몇개 던져주는 것이 전부였다. 관심을 갖는 국회의원도 별로 없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허술하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선거에 직접 참여하는 외에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한탄을 많이들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시장경제도 그렇다. 정부가 일이 아닌데도 정부 관료가 틀어쥔 놓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정책금융이 아직도 횡행한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뒤치다거리도 자기들에게 맡기란다. 구경거리 아니고 없으니 그냥 지나가란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번 문제는 삼권분립의 문제다. 삼권분립을 무시한 정책금융을 국회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과거 여대야소 국회에서는 아무리 말로 해보았자 정부가 무시하면 아무것도 있는 것이 없었다. 대통령이 검찰을 이용해 검찰 정치를 하고, 여당 국회의원이 의원으로서의 자긍심이 없이 거수기 노릇만 하는 상황에서는 삼권분립이 무의미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여소야대다. 20 국회가 행정부 감시와 견제를 얼마나 하는지 두고 일이다. 자기들도 말만 하고 생색만 것인지 아니면 폭주하는 행정부를 저지할 것인지

김상조씨가 말하는 정치력은 제발 발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