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의 정치적 분석은 내 역량을 벗어난다. 다만 몇가지 조직 생활을 거치면서 알게 된 것들과 다른 나라의 관행에 기초한 내 의견을 얘기하고자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에서 각자가 어떤 얘기를 했고 그 얘기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정확히 기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인간은 모든 사물은 자기 입장에서 보고 들으며, 선별적으로 보고 들으므로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올해 초까지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중요한 경영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록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다녔던 서구 조직은 다 그렇게 했다.
매주 한번 월요일에 열리는 주간 경영회의에는 팀장들 중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참석해 초록을 만들었다. 초록 담당자는 보통 그 다음날까지 회의록 초안을 참석한 임원들에게 돌려 혹시 발언을 오해했거나 잘못 요약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 회의록을 모든 팀장과 전국의 지점장들에게 배포했다. 꾸준히 그렇게 하면 회사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2년이 넘게 실시한 경험을 요약하면, 첫째, 본인으로서는 온 신경을 다해 듣고 정리한 회의록인데도 맥락을 잘못 집거나 중요한 얘기를 생략한 경우가 가끔 발생하곤 했다. 대개는 부장들이 회사 업무를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다.
둘째,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아예 정 반대로 요약한 경우도 아주 가끔 발생한다. 이를 지적하면 자기들도 깜짝 놀라곤 했다.
셋째, 이것이 지금 맥락에서 중요한 것인데, 참석자들이 이해한 회의 진행과 회의록이 다르거나 다른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내용들이 회의록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임원들은 자기가 한 말은 정확히 기억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거나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듣고 자기에게 기억에 남도록 중요한 것은 자기 의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임원들이 자기가 참석한 회의였는데도 나중에 회의록을 보고 나서 "어, 그 사람이 그런 얘기도 했었구나" 라고 새롭게 아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기 기억과 다른 것이 이상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직접 확인을 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회의록을 만들어 가장 좋은 점이 바로 이렇게 자신들이 회의에서 타인의 얘기를 선별적으로 듣고 인간의 인식과 기억이 이렇게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회사 예는 바로 월요일에 있었던 회의를 수요일에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에 관한 얘기다. 만약 몇달, 몇년이 지난 후에 누가 그때 어떤 얘기를 했는지, 회의 도중에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참가자들의 의견이나 입장이 토론 도중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갖고 서로 모여 얘기하면 서로들 상당한 이견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송민순씨는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이 별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고 기술했지만 김장수씨는 자기는 유엔결의안에 찬성했다고 기억하면서 송민순씨 기억을 반박했다. 문재인씨도 이번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자기가 회의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출판 프로세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논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회의에 참석한 한 사람만의 기억에 의존해 서술하는 것은 위험하다.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출판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중요 부분에 관해 관련자들에게 사실 확인을 거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만약 당사자들 간에 기억이 서로 많이 상치된다면 추가 확인을 거치고, 그래도 명백히 확인하기 어려우면 자기 생각만 밝히고, 다른 사람들 얘기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는 남의 발언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는 점을 글 도중에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서구의 경우는 조금이라도 명성이 있는 언론이나 출판사라면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사실 확인 작업을 철저히 한다. 예를 들어 인터뷰를 하고 와서 초고에 "... 그는 노란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는 문장이 있으면 사실 확인 담당 직원(fact checker)이 전화를 해서 과연 인터뷰를 한 사람이 노란 소파에 앉아 있었는지까지 물어볼 정도다. 또 다른 예를 들면, 2000년에 제작된 Almost Famous란 영화에서도 록 밴드를 따라다니며 취재한 기사를 주인공이 송고했는데 그 중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록 전문지인 Rolling Stone 이 밴드 멤버에게 전화를 해서 그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알기에 한국에는 이런 프로세스가 없거나 매우 부족하다. 내 개인적인 예만 들어도 언론 기사 중에 사실이 전혀 아닌 보도가 부지기수였다. 주요 언론들도 사실 확인을 전담하는 직원마저 두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안다. 출판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송민순씨는 자기의 기억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기억을 굳게 믿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전에, 여러 사람이 관련된 회의에서 한 사람의 기억이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가 당시에 기록한 개인적인 비망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외교관이라면 회의가 끝나고 나서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민순씨는 이번 내용이 논란을 일으키자 수백 페이지 책 중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논란이 될 지 몰랐다고 말했다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외교관은 직업 상 낱말 하나하나, 토씨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도록 훈련을 받는다. 거의 제 2의 천성이 될 정도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될 지를 몰랐을 정도로 감각이 없는 사람이 직업외교관으로서 외무장관까지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아마도 그 당시 회의록은 비밀 문서로 분류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그의 글이 특정한 비밀 준수 규정을 어겼는지는 나로서 알 수 없으나 그가 현 시점에서 회의 참석자의 발언을 개인 별로 거론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그것이 어떤 동기에, 또는 어떤 부주의에 기인한 것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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