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송민순 회고록 유감

송민순 회고록이 부정확하다고 김경수 의원이 반박했다. 그는 문재인 측근으로 그들 사이에서는 언론 상대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이다. 
이번 사건의 정치적 분석은 내 역량을 벗어난다. 다만 몇가지 조직 생활을 거치면서 알게 된 것들과 다른 나라의 관행에 기초한 내 의견을 얘기하고자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에서 각자가 어떤 얘기를 했고 그 얘기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정확히 기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인간은 모든 사물은 자기 입장에서 보고 들으며, 선별적으로 보고 들으므로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올해 초까지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중요한 경영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록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다녔던 서구 조직은 다 그렇게 했다. 
매주 한번 월요일에 열리는 주간 경영회의에는 팀장들 중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참석해 초록을 만들었다. 초록 담당자는 보통 그 다음날까지 회의록 초안을 참석한 임원들에게 돌려 혹시 발언을 오해했거나 잘못 요약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 회의록을 모든 팀장과 전국의 지점장들에게 배포했다. 꾸준히 그렇게 하면 회사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2년이 넘게 실시한 경험을 요약하면, 첫째, 본인으로서는 온 신경을 다해 듣고 정리한 회의록인데도 맥락을 잘못 집거나 중요한 얘기를 생략한 경우가 가끔 발생하곤 했다. 대개는 부장들이 회사 업무를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다.
둘째,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아예 정 반대로 요약한 경우도 아주 가끔 발생한다. 이를 지적하면 자기들도 깜짝 놀라곤 했다. 
셋째, 이것이 지금 맥락에서 중요한 것인데, 참석자들이 이해한 회의 진행과 회의록이 다르거나 다른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내용들이 회의록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임원들은 자기가 한 말은 정확히 기억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거나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듣고 자기에게 기억에 남도록 중요한 것은 자기 의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임원들이 자기가 참석한 회의였는데도 나중에 회의록을 보고 나서 "어, 그 사람이 그런 얘기도 했었구나" 라고 새롭게 아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기 기억과 다른 것이 이상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직접 확인을 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회의록을 만들어 가장 좋은 점이 바로 이렇게 자신들이 회의에서 타인의 얘기를 선별적으로 듣고 인간의 인식과 기억이 이렇게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회사 예는 바로 월요일에 있었던 회의를 수요일에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에 관한 얘기다. 만약 몇달, 몇년이 지난 후에 누가 그때 어떤 얘기를 했는지, 회의 도중에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참가자들의 의견이나 입장이 토론 도중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갖고 서로 모여 얘기하면 서로들 상당한 이견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송민순씨는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이 별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고 기술했지만 김장수씨는 자기는 유엔결의안에 찬성했다고 기억하면서 송민순씨 기억을 반박했다. 문재인씨도 이번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자기가 회의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출판 프로세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논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회의에 참석한 한 사람만의 기억에 의존해 서술하는 것은 위험하다.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출판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중요 부분에 관해 관련자들에게 사실 확인을 거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만약 당사자들 간에 기억이 서로 많이 상치된다면 추가 확인을 거치고, 그래도 명백히 확인하기 어려우면 자기 생각만 밝히고, 다른 사람들 얘기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는 남의 발언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는 점을 글 도중에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서구의 경우는 조금이라도 명성이 있는 언론이나 출판사라면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사실 확인 작업을 철저히 한다. 예를 들어 인터뷰를 하고 와서 초고에 "... 그는 노란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는 문장이 있으면 사실 확인 담당 직원(fact checker)이 전화를 해서 과연 인터뷰를 한 사람이 노란 소파에 앉아 있었는지까지 물어볼 정도다. 또 다른 예를 들면, 2000년에 제작된 Almost Famous란 영화에서도 록 밴드를 따라다니며 취재한 기사를 주인공이 송고했는데 그 중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록 전문지인 Rolling Stone 이 밴드 멤버에게 전화를 해서 그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알기에 한국에는 이런 프로세스가 없거나 매우 부족하다. 내 개인적인 예만 들어도 언론 기사 중에 사실이 전혀 아닌 보도가 부지기수였다. 주요 언론들도 사실 확인을 전담하는 직원마저 두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안다. 출판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송민순씨는 자기의 기억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기억을 굳게 믿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전에, 여러 사람이 관련된 회의에서 한 사람의 기억이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가 당시에 기록한 개인적인 비망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외교관이라면 회의가 끝나고 나서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민순씨는 이번 내용이 논란을 일으키자 수백 페이지 책 중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논란이 될 지 몰랐다고 말했다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외교관은 직업 상 낱말 하나하나, 토씨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도록 훈련을 받는다. 거의 제 2의 천성이 될 정도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될 지를 몰랐을 정도로 감각이 없는 사람이 직업외교관으로서 외무장관까지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아마도 그 당시 회의록은 비밀 문서로 분류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그의 글이 특정한 비밀 준수 규정을 어겼는지는 나로서 알 수 없으나 그가 현 시점에서 회의 참석자의 발언을 개인 별로 거론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그것이 어떤 동기에, 또는 어떤 부주의에 기인한 것이든 말이다.

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국정감사를 보면서 (3)


국정감사가 지난 금요일에 끝났다. 평소 생각하던 것 중 일부를 둘로 나누어 썼었는데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첫번째 글에서는 국정감사가 삼권분립이 취약한 한국에만 있는 기형적인 제도여서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로서는 매우 부족하다,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하고, 청문회를 통한 상시적 국회조사권을 늘리고,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꾸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두번째 글에서는 한국 사회가 감사라는 선진 제도를 수평적 관계에서 공공 기관의 책임성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방적 권력 관계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문화 습관 때문에 감사자와 피감사자 사이에 해마다 일종의 역할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 글에서는 피감사인이 쩔쩔매는 척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때만 그렇다. 막상 중요한 일을 갖고 들이대면 대놓고 거짓말을 하거나 도리어 공격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두 글을 모두 읽은 사람들 중 일부는 두 글이 무엇인가 서로 모순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즉 감사를 일방적 권력관계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국회가 상시적인 청문회를 통해 행정부를 감시하고 감사원이 국회 소속이 되면 행정부가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자연히 들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차치하고 지금도 각 정부기관은 국정감사 때문에 쓸데 없는 자료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느라 등이 휜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또 공무원들은 국최 상임위원회 때문에 여의도 출근해 대기하느라 일을 못한다고 한다. 만약 연중 내내 언제라도 하는 청문회를 열어 자료를 요구하고 출석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과연 정부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또 공무원은 물론 온갖 민간 부문 사람을 불러내는데 맛을 들이면 어떻게 될까? 
또, 지금은 감사원이 같은 행정부 소속이라고 해서 그래도 정권 눈치를 보기 때문에 자기들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감사원이 국회 소속이 되거나 그 어느 누구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이 되면 그들의 독주 또는 폭주를 누가 견제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면 무작정 국회의 상시 청문회를 대폭 확대하고 감사원을 국회로 가져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첫번째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현 제도 아래에서도 국회의원은 국정감사가 끝난 후에도 행정부를 감시할 수는 있는 여지가 상당히 있다. 만약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20일 동안의 활동으로 자기 할 일 다한 것처럼 물러서지 않고 몇가지 문제에 집중해서 집요하게 파고 들면 비록 청문회를 상시적으로 열 수 있게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국회에서 다시 한번 더 드러났듯이 한국 행정부는 참으로 일을 허술하기 짝이 없게 하거나 아예 대놓고 허위를 일삼는다. 그렇지 않고는 별로 전문적이지도 않은 국회의원들이 겨우 몇명의 직원을 데리고 짧은 시간에 조사해서 밝혀내거나 지적한 것에 대해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규모 조직의 수장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너무도 종종 발생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선 이 정도의 무능과 태만은 일반 민간 기업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한다. 국감에서 드러나는 사건들을 보면 상당수가 민간 기업이라면 관련자들은 물론 경영진도 당장 물러나야 할 정도로 낯 뜨거운 사안들이 많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 정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상시적인 청문회를 실시해서 훨씬 더 철저하게 공정 기관을 감시하는 다른 나라에서 이런 정도의 업무 태만이나 부적절한 업무 처리가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진즉 스캔들이 되었을 것이고, 파면이나 형사 기소 이전에 관련자는 당장 사임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국정감사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 행정부 감시가 허술하기도 하지만 내부적인 감사는 물론 감사원의 감시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만큼 현재 한국 사회의 공공 부문에서는 책임성이 무시되고 있고, 무능과 허위와 불법이 판을 치고 있으며, 이를 제어할 제 3자에 의한 독립적인 감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편에는 무책임하고 안하무인인 국회와 감사원이 있다. 이은재씨 같이 무턱대고 "사퇴하세요"라고 고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 갓 서른을 넘긴 초선 비례대표 신보라씨가 이재명씨에게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켜 돌려가면서 "청년 대책으로 국가 돈만 쓰지 말고 머리를 좀 더 써서 고민 좀 해보라"는 말을 하는 국회다. 
다른 한편에는 무능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행정부와 산하기관들이 있다. 문예위 회의록을 뭉터기로 삭제해 제출한 박명진씨가 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에게 답변하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KBS 사장 고대영씨가 있다. 신기하게도 국회는 겉으로만 온갖 허세를 부릴 뿐 그런 사람 하나를 어쩌지 못한다. 
상시적인 청문회를 하면서 국회의 무책임한 행동을 지금처럼 놔두면 국정이 마비된다. 그렇지만 행정부와 공적 기관이 이렇게 일을 엉터리로 하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을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불교의 연기론과 같아서 하나는 다른 하나가 있어서 존재하는 형국에 가깝다. 하나를 놓아두고 다른 하나만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니기도 하다. 
딜레마다. 세상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어떻게 그것을 달성할 것인지를 말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바로 감사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저급한 상태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도 그런 문제중의 하나다. 
내 생각엔 우선 감사원을 독립기구화하거나 국회 소속으로 바꾸는 것부터 해야 한다. 상시 청문회는 그 다음이다. 우선 의회 소속 감사원의 행동거지를 감시할 프로세스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행정부도 힘이 없는 기관이 아니다. 감사원이 국회 소속으로 바뀌면 행정부 수장은 그들이 자기의 권력 범위 밖에 있게 되므로 이를 예방하거나 견제할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부서 자체 내 감사 부서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이 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지금은 부서 내 감사부의 역할과 권한이 지나치게 제약되어 있어 유명무실하다. 
국회에서 수시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해도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하고 안하무인인 태도가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상시적인 감사는 국회 소속 감사원을 통해서 실시하고 그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필요하면 청문회를 여는 방법도 있다. 
지금과 같이 국회의원들이 아무나 불러놓고 자기들이 "헌법기관"이라고 으시대면서 남을 조롱하거나 눈을 부릅뜨는 것은 결국 그런 사람을 뽑은 선거구민들 탓이고 그 나라의 문화적 습관 탓이다. 어디까지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인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앞으로 언론과 선거구민들의 시각이 바뀌어 그런 행동에 불이익을 주거나 응징하고 그것을 정치인들이 인식해서 자기 정화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6년 10월 10일 월요일

국정 감사를 보면서 (2)

많은 사람들이 국정감사 시 고압적인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불편해 하고 비판한다. 그 누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에 못지 않게 이상한 것이 있다. 바로 피감사인의 비굴에 가까운 태도다. 
피감 기관의 기관장들은 마치 무엇을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쩔절맨다. 예를 들어 이은재씨의 경우에서도 그가 무작정 소리를 질러 대는데도 조희연씨는 반박은 커녕 항의 조차도 하지 않았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이은재씨의 행동에도 조희연씨는 하다 못해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국회의원을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피감사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작년 이 무렵 정무위의 국정감사에 나간 적이 있다. 마침 그날은 가족 내 경영권 쟁탈전 때문에 롯데그룹의 신동빈씨도 불려나온 자리였다. 나와 신동빈씨 모두, 민간 분쟁을 갖고 국회의원들이 행정부 감시를 위해 개최한 국정감사에 불려온 것이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부적절한 소환이지만 자기들끼리는 과거부터 늘 하던 짓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귀찮기는 했지만 구경거리 생긴 셈 치고 나갔다. 예상은 했지만 그 자리에서 본 국회의원들의 행동은 한심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오후 내내 신동빈씨를 갖고 마치 고양이가 쥐를 다루는 듯 쓸데 없는 소리를 해가면서 자기들끼리 노닥거렸다. 왜 가족내 분쟁을 갖고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내 차례가 돌아오자 세번째 줄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일어서라고 했다. 사람들을 너무 많이 불러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그런다고는 하지만 자기들은 앉아 있으면서 상대방은 세워놓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나를 부른 김을동씨는 장황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말미에 시정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조사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럴 것이면 국정조사를 통하지 않고 그냥 정부에 얘기했어도 될 일이었다. 참고로 그와 그의 보좌진은 우리 회사에 와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국정 감사는 2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차례를 돌아가면서 기관장과 증인으로 부른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묻고 싶은 사람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국 의회와 같이 특정 사안에 연관된 사람들만 불러서 집중적으로 물어보는 방식이 아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그 자리에 와 있던 많은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롯데 이야기를 할 때 자리를 뜰 권리도 없었다. 완전히 자기들 편의만을 생각한 진행이었다.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며 하는 질문을 세번째 할 차례가 되자 김기식씨가 나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나는 국정감사에 소환한 안건이 아닌 것에도 대답해야 하느냐고 위원장에게 물었다. 모두들 뜨악해 하는 분위기였다. 위원장은 물어보면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 역시 부적절하다. 나는 지금도 행정부의 업무를 감사하는 자리에 부른 김에 자기들이 묻고 싶다고 아무 것이나 물어보는 그들이 관행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언행은 국회의원의 국정감사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감사원 직원들이 행정부 감사에 나갔을 때 보이는 행동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압적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금융지주에 근무할 때 그들이 감사 나와서 거드럭 거리는 행동을 직접 보았다. 군사독재 시절 보안대의 안하무인인 태도를 떠올리면 될 정도였다. 내가 사회에 나온 후 접한 인간 행동 중 가장 무례했다. 
공무원들이 이런 감사원을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이 정책 감사를 하겠다고 나서서 설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 내 경우는 우리금융지주에 감사를 나온 감사원 직원들은 막상 금융지주회사 운영을 갖고 감사 보고서를 쓸 실력이 안되었다. 그들은 감사 종결을 앞두고 갑자기 우리를 불러 아예 감사 현안에 대한 자체 보고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보기엔 자기들이 써야 할 감사 보고서 초안을 대신 써달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써 줄 수 밖에. 이런 사람들이 정책 감사를 한다고 하니 공무원들이 비웃고 싫어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감사인의 일방적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민간에서도 일어난다. 재벌 기업에서 실시하는 감사도 이와 비슷하게 고압적인 경우가 많다. 대개 대기업의 경우 그룹 감사와 기업 내 감사가 있는데, 내가 겪어본 삼성의 그룹 감사팀의 태도는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 자리에서 멱살 잡고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는 삼성 그룹만의 나쁜 문화이고 다른 기업은 안 그럴 수도 있다. 삼성도 과거 같지는 않다고 들었다. 직원들의 권리 의식이 강해져서 외부로 문제가 불거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국정감사를 볼 때 마다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감사를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감사(audit)은 원래 어떤 조직이 외부에 공표한 재무적인 정보가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독립적인 곳에서 조사하는 것을 뜻한다. 감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제 삼자가 독립적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무적인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밖에 공표한 것과 같은지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앞의 것을 재무 감사라고 하고 뒤의 것을 업무 감사라고 한다. 
감사는 꼭 의심가는 행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조직의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감사인과 피감사인은 동등한 입장이다. 대부분의 감사는 피감사인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보고한 것과 같은지를 알아보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다. 특별히 어떤 문제가 생겨서 실시할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감사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례 감사라고 하면 실시하는 사람이 위에서 내려보면서 마음껏 갑질을 해도 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인 문화관습 탓이 제일 클 것이다. 또 일상적으로 워낙 가식이 많고 부정부패가 퍼져 있어서 모든 사람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전제를 모두들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인 점도 있다. 
우리 사회가 익숙한 감사는 상대방이 윤리적이고 정당하게 일을 처리했을 것이라는 전제가 없이 시작하는 감사다. 감사를 하는 사람이 감사를 받는 사람에게 감사의 과정과 결론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감사이기도 하다. 나는 너를 언제라도 해꼬지할 수 있지만 너는 나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일방적 권력관계 만이 설치는 감사다. 감사를 하는 사람은 누가 감사할 것인가, 감사인은 자기 행동에 관하여 누구에게 책임을 질 것인가(accountability)가 무시된 감사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감사를 일방적 권력관계로만 이해한다. 감사 하는 사람은 무례해도 되고 피감사자는 무조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문화 습관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한국에선 피감사인이 이 암묵적인 문화 규칙을 어기면 순식간에 거만하고 건방진 사람이 된다. 금방 조리 돌림감이 된다. 언론도 이 연극의 일부로 참가한다. 한편으로는 자기들 눈에도 지나친 감사인의 부적절한 태도를 비판할 때도 있지만 이에 항의하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비판 대상이 된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 연극이다. 국회의원들은 듣기 불편할 정도로 목소리에 날을 세워서 윽박지른다. 예, 아니오만 대답하라고 한다. 여기가 어느 자리인줄 아느냐고 눈을 부라린다. 그게 그들 역할이다. 그들 못지 않게 사회적 존경을 받는 고위 관료와 기관장들은 속으로는 화가 치밀지만 그들 앞에서는 쩔쩔매는 시늉을 한다. 어차피 하루 이틀만 지나면 그만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속으로는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공손하기 짝이 없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적당히 바보인 척 행동할 줄 아는 것을 한국 엘리트 사회에서는 일종의 출세 요령으로 받아들인다. 
매년 국감에서 벌어지는 이 한국적인 풍경은 그들이 이 연극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면 조희연씨의 소극적인 태도, 다른 기관장들의 쩔쩔매는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가끔씩 벌어지는 소동은 이 연극의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일어난다. 그 규칙에는 화장실에서 푸념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 최근에 추가되었다. 
한국 사회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감사(audit)란 개념을 도입한지 70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아직도 감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거나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성(accountability)는 아직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번역 어휘 마저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형식에 그치는지를 잘 드러내는 예라고 하겠다.
(페이스 북 10.11일 글)

국정 감사를 보면서 (1)

(페이스 북 10.10일 글)
이은재씨가 국정감사에서 조희연 교육감을 사퇴하라고 몰아대었던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이은재씨가 MS Office 를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서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거의 이틀 동안 페이스 북을 도배한 비데오를 보면 뭔가 처음부터 서로 어긋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문제는 물론 이은재씨의 태도다. 진보 진영 출신 교육감에게 트집을 잡는데 빠져 앞뒤를 안 가리고 "사퇴하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 나머지는 아예 찬찬히 따져 볼 마음이 안 생긴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전국민적으로 각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한가지만 거론하자. 
과연 언제까지 국정감사를 계속해야 하나? 
한국 국정감사는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일 뿐만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다. 1948년, 즉 근대국가 조직 운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던 시절에 헌법을 만들면서 우연히 생겼다. 그 결과 의회의 행정부 감시 역할이 턱없이 부족하다. 
감시에는 조사(investigation)와 감사(audit)가 있는데 한국의 의회는 조사권도 약하고 감사권도 약하다. 현재의 국정감사는 조사와 감사를 뒤섞어 1년에 20일 동안 하는 제도다. 정기 국회 전에 결산 위원회를 여니 그때 회계 감사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국회의원에게 맡긴다는 것도 이상하다. 
또 중첩이다. 국회의 상임 위원회나 청문회를 통해 처리해도 될 것을 하고 있다. 게다가 1년에 20일 동안만 한다. 겨우 20일 만에 뭘 할 수 있는가? 국정감사 때만 허용된 자료 제출 요구권이 있다지만 그것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권한을 늘려서 해결하는 것이 낫다.
하는 방식도 구태의연하다. 우선 실행 방식이 매우 비효율적이다. 각 국회의원이 각자 별도로 뛴다. 낭비다. 중첩되거나 빠트리기 쉽다. 감사를 한답시고 요구하는 자료도 과연 쓸모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빌미로 공무원들에게 만들어 오게 한 통계 자료를 보도자료로 뿌리는데 상당수는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지 효용성이 의심되는 것들이 많다. 
감사를 하는 태도도 후진적이다. 뭐 하나 꼬투리 잡을 것이 없나 해서 들여다보고 트집을 잡는다. 또, 감사를 왜 꼭 대면 회의로만 해야 하나? 서면으로 하고 감사 보고서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앞으로 국정감사를 폐지했으면 좋겠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윽박지르고, 밑도 끝도 없이 불법이라고 하고, 선거로 당선된 공직자에게 사퇴하라고 하는 등 보기 역겨운 짓을 해대서가 아니다. 제대로 된 국정 감시를 하려면 1년에 20일만 할 일이 아니라 연중 내내 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만약 헌법개정을 할 것이면 그 기회에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하고, 청문회를 통한 상시적 국회조사권을 늘리고,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꾸기를 희망한다.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우리 안의 조선: 세습신분,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


저번에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에서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이 된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현대 한국 사회에 조선 왕조 사회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임금격차를 예로 들면, 양반, 상놈, 노비로 신분을 가르고 차별하던 사회가 지금은 학벌,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으로 차별하고 이 소수에 속하기 위해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로 변했다.
그리고 이 체제는 사실 중국 체제다.
이중톈(易中天)은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서 진시황 이후 지난 2천년에 걸쳐 중국체제를 유지시켰던 3대 요소로 중앙집권체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를 들었다.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까지 남아있던 봉건제를 철폐하고 군현제를 실시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한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6세기 수문제부터 윤리치국을 담당할 관리를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해 국정을 맡겼다. 그는 이 3대 요소가 현대 중국에서도 그 모습만 달리 했을 뿐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엔 한국도 이와 아주 유사하다. 
한국에서 중앙집권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중국보다 1,200년이 지난 10세기, 고려 태조의 넷째 아들인 광종 시대다. 그는 호족을 견제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기 위해 956년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의 세력기반인 노비를 양민화시키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 과거제를 실시했다. 
한국이 중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이 한나라 시대부터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에 비해 한국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교가 국교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한국에 중국체제가 뒤늦게 도입되었기는 하나 14세기 이후 두 나라는 모두 중앙집권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에 기반을 둔 전제체제를 갖고 있었다. 이 체제가 무너진 연대도 매우 비슷해서 중국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한국은 한일합방이 일어난 1910년에 없어졌다. 이러한 전제정치체제는 중국은 2천년, 한국은 보기에 따라 천년, 또는 5백년간 유지되었다.
이 세가지 요소 중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윤리치국이다. 유교 이념에 의거한 윤리치국 대신 중국은 군벌시대를 거쳐 공산주의로, 한국은 식민시대를 거쳐 헌정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북한은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사실상 세습 전제체제다. 중국 역시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실제로는 세습 대신 선양을 하는 집단 전제체제다. 남한은 1948년 헌법을 만들고 민주공화정으로 출발했지만 곧 이승만 독재로 넘어갔다. 4.19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도 잠깐이었을 뿐 곧 군사독재체제로 넘어갔다. 박정희가 충, 효를 내세운 것도 한국의 윤리치국 전통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가 조금이나마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혁명을 거친 후부터다. 그래봤자 몇년에 선거 한두번 하는 것 말고는 별 게 없어서 싱겁다.
중앙집권제는 아직도 남아있다. 중앙집권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도, 군, 면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행정구역체제다. 예를 들어, 유럽권의 주소는 나라, 시, 거리 이름으로 끝나지만 한국은 도, 시(군), 면 리(동)을 모두 적어야 한다. 지방자치제도 유명무실하다. 
이를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예가 세금제도다. 한국에서는 국세가 대부분이다. 전체 세수 중에서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방소득세는 2010년 전까지는 주민세로 불리던 것인데, 국세인 법인세나 소득세에 10%를 할증해서 부과한다. 국세가 몸통이고 지방세는 쥐꼬리만하다. 이에 비해 서구 국가에서는 지방소득세가 국세와 동격이거나 스웨덴체럼 아예 소득세 수입이 우선 지방정부에 귀속되고 일정비율 이상인 액수만 중앙정부가 국세로 소득세를 추가로 받아간다. 
관원대리 체제 역시 역시 여전히 강고히 남아있다. 아시아권에서 과거제도를 시행했던 나라는 중국과 한국 외에도 베트남과 일본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일본과 한국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베트남은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19세기 프랑스에 점령되면서 폐지되었다. 일본도 헤이안 시대(794-1185)에 과거제도를 실시했지만 하급귀족이 중급귀족으로 신분상승을 하는데에만 쓰여졌고 그 위 상급귀족층에 의한 지배체제 자체를 흔들지는 못하였고, 가마쿠라 막부시대에 귀족체제가 무너지고 봉건체제와 무사계급이 들어오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일본에서 과거제도가 다시 등장한 것은 중앙집권을 추진하던 메이지 시대 고등문관제가 실시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1948년 고등문관제도를 폐지했지만 그 대신 1종 공무원시험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일본의 1종, 2종, 3종 공무원 시험은 한국의 5급, 7급, 9급 공무원 시험과 일치한다. 한국의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는 1940년대 외무고시를 추가한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제도를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관원대리체제>
그러나 관원대리체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부문은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이다. 사법고시를 통해 선발한 관원에게 형사소추권을 독점적으로 주었다. 판사 역시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만 가능했다. 이러한 독점체제가 바뀐 것은 2011년 처음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판검사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란 직업도 원래는 검사나 판사를 하다 퇴직한 사람이 하는 직업이었다. 1981년 사법시험 정원이 300명으로 확대되면서 사법연수원을 나온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고 1996년 500명으로 늘면서 변호사가 급증했다. 최근이 사법시험 존치 논란도 사법부를 관원으로 채우는 전통의 연장이다. 
전관예우는 한마디로 사법 관원의 부패다. 자리를 얻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사전적 매관매직이 아니라 자리에서 물러난 후 뇌물을 받는 사후적 매관매직인 것이 조선시대와 다르다. 암묵적 결탁이 유지 되기 위해선 회원 관리가 배타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사법고시를 폐지하면 이 체제의 내부 결속력이 무너진다.
행정부 역시 그 독점성은 사법부에 비해 약하지만 관원대리체제다. 행정고시를 통해 선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나왔고, 4년제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새파랗게 젊은 대학 졸업생을 행정부 중간 간부로 뽑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엄청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법으로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법안 자체도 대부분 행정부가 기안한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에게만 준 것도 관원대리체제의 일부다. 
독재자의 충실한 하인이던 공무원들은 5년에 한번씩 바뀌는 대통령제에서 어느덧 가장 강력한 독자적 권력기구가 되었다. 전제군주가 관원을 견제하면서도 결국은 그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역시 관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새와서는 정치 검찰을 넘어서 아예 검찰 정치를 한다. 
<관원대리체제와 법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이렇게 관원에 의해 독점된 사법체계와 행정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과연 법치를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법치란 용어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이 권력자의 권한에 제약을 가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신민을 통제하기 위한 율법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다루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아시아권에서 법 앞에 평등이란 개념은 사회 지배층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시만의 의사 표현을 법치라는 명목 아래 겁박하는 어이 없는 행동도 그것이 바로 율치의 전통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나름 '내재적 이해'가 된다. 
이렇게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강고하게 남아 있고, 법치 보다는 율치가 익숙한 나라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공평한 법 적용이 가능하지 않다. 법치주의, 공화정, 민주주의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원대리체계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법체제가 재벌 총수나 정치권력에 약한 것은 필연적이다. 관원에게 기소권과 판결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피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퇴직 관원인 체계에서는 재벌 총수나 정치권 인사는 집행유예나 사면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검찰 뿐만이 아니라 법원도 개혁해야 한다. 있는 법이나마 제대로 실행할 법원이 필요하다. 양형 기준을 바꿔서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 자체가 옹색한 얘기다. 
중국 전제정치에서 유래한 관원대리 체계가 가장 강고히 남아 있는 곳이 사법부인만큼 사법관원 대리체계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부패한 사법체제는 재벌총수가 실정법에 어긋나는 불법을 저질렀을 때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다.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는 도둑질에는 모두들 딴 청을 부리면서 먼산을 바라본다.
소득 양극화, 이것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소득은 양극화됐었다. 신분세습사회, 중앙집권제, 관원대리체제를 놔두고 서로 양반이나 아전이 되려고 아귀다툼만 하면 결국 대부분은 상놈이나 노비가 된다.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 나의 김기원 읽기

(2015. 12. 17 페이스북 글 옮김)

오늘 새벽 일찍 잠에서 깬 김에 김기원 선생의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를 읽었다. 
그 중 그가 한국사회에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 역시 근래에 들어 나와 비슷한 생각의 여정을 거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경제학자들은 모든 것을 경제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그것을 경제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사실 그는 그러한 경제결정론만으로는 한국사회를 설명하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가 독일에 가 있으면서 독일을 이해하는데는 경제와 정치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뒤에 독일 사회의 문화적인 결을 이해해야 한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사회 역시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거치지 않고는 변혁을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가장 크게 느낀 문화적 차이는 독일의 사회적 신뢰와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였다. 
독일에 가서 책을 주문했더니 책을 우편으로 배송하고 청구서를 동봉했더란다. 의사에게 찾아가도 먼저 치료하고 나중에 청구서를 보낸다. 지하철에는 개찰구가 없다. 사회적 신뢰가 깊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 덕분에 사회가 거래 비용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가 이것을 중요하게 느낀 이유는 유럽에서 고부담 고혜택 복지제도가 가능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신뢰 때문에 감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를 뒷받침한다는 중견기업중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 (히든 챔피언)을 찾아갔을 때 그가 본 것은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였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밴드를 하던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오디오 기기를 만들고 싶어서 1977년 회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직원이 50명 밖에 안되는 기업이지만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오디오 회사란다. 직원들은 일년에 한달 휴가를 가지만 나이가 60대인 사장은 바빠서 휴가를 그 해에 한번도 못 갔단다. 김선생은 독일의 히든 챔피언이 바로 이런 독일인들의 직업적 긍지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는 독일에 머물며 한국을 돌아 보면서 새삼스레 한국사회의 낮은 신뢰 수준과 직업적 긍지의 부족을 통감했던 것 같다. 
세월호 사건에서 배에 탄 선객을 버리고 자기들만 도망쳐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보면서 그는 직업 윤리의 실종을 보았다. 기복신앙에 빠진 한국 교회와 부패한 목사를 보면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문화'의 결여를 보았다. 김용준씨처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사람이 총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데서 직업적 긍지의 매장을 보았다.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주무르는 재벌총수, 그런 재벌로부터 돈을 넙죽넙죽 받아 챙기는 정계, 관계, 언론계, 학계, 검찰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공범자 유력집단'을 보았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직업윤리를 망각한 것은 유력층만이 아니다. 거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도 '특수이익 집단’이 되어 다른 노동자에 비해 부당하게 높은 처우를 누리면서도 부끄럼을 모르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내 입장에서 덧붙이자면 고객에게 뻔히 안 좋은 줄 알면서 보험을 팔아대는 보험 회사들이나 투기적 주식 매매를 부추키고 자기에게 이익이 더 떨어지는 상품을 권하는 증권회사들도 직업 윤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원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자만 갚는 대출을 남발하는 은행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그가 독일에 가기 전에 그와 이런 문제에 관해 여러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한국 사회를 단지 경제나 정치만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조선 사회 특유의 문화적 전통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순을 많이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개혁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약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20년 전까지 한국 사회는 노비가 대규모로 있던 사회였다. 노비는 일본에는 없고, 중국에는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노비는 빚을 못 갚은 사람이 노비가 된 것이어서 노비 신분은 당대에 끝났다. 한국의 노비는 부모 중 한사람만 노비여도 자식까지 노비인 악질적인 제도였다. 
조선은 양반과 상놈, 그리고 노비로 이루어졌던 신분 사회였다. 양반은 자기들끼리는 많지 않은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패를 나누어 싸웠지만 그들 모두는 군역과 세금에서 자유로운 특권층이었다. 상놈은 그런 특혜를 누리는 양반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노비의 억울한 사정은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인 사회인 것은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공립 교육은 버려두고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린다. 비정규직의 고통은 놔두고 정규직 감원 한다고 희망버스를 동원한다. 집이 없어 고시방에 옥탑방을 전전하는데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동산 값을 올리는데 열중한다. 빈곤에 시달려 자살하는 노인들을 두고도 국민연금을 쌓아두자고 한다.
사회적 신뢰와 직업적 긍지?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