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월요일

그 자율은 자율이 아니지 말입니다.

한국의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의 불투명성에 관한 경향신문 송윤경 기자의 기사다. 나름 좋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으나 핵심을 잘못 짚었다. 
원래 워크아웃은 영국에서 90년대 재무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을 여러 채권은행들이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의 지원 아래 자발적으로 발전되어 온 방식이다. 즉 워크아웃 자체가 자율협약이다. 
그런데 귤이 회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듯이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변형되었다. 
우선 자율협약인 워크아웃에 두가지 단계를 두었다는 점이다. 90년대 런던 방식의 워크아웃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채권단의 전원 합의를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전원합의가 없어도 가능하도록 관행이 바뀐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는 아예 "자율협약"은 채권단의 100% 찬성이 있어야 하고 "워크아웃"은 75%의 찬성만 있으면 강제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못을 박았다.
다음, 누가 수많은 채권자들 간에 중개자로 나설 것인가가 중요하다. 런던방식에서는 중앙은행이 정직한 중개자(Honest Broker)로서 나선다. 그러나 그 개입 정도는 되도록 최소한에 그친다. 이해상충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앙은행 내 워크아웃을 담당하는 부서는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부서와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금융감독원 또는 정부가 자신이 중개자 역할을 맡는다. 정치적 고려를 하기 마련인 정부 또는 그들 아래에 놓여 있는 금감원이 '중개'를 한다면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최소한의 중개가 아니라 최대한의 중개를 한다. 이런 것을 중개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부분 국책은행의 돈을 태워 넣는다. 자기 돈을 들이지 않는 브로커가 아니라 딜러(Dealer)인 셈이다. 정직한 중개자가가 아니라 부정직한 의도를 가진 딜러다(Dishonest Dealer).
다음, 영국식 워크아웃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하는 것은 재무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처음 몇달 간은 채권은행들이 서로 대출을 회수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보통은 6개월을 넘기지 않는데 그동안 기업 사정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선순위, 후순위를 고려는 하지만 어느 정도 공평하게 부담을 나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특히 이번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의 경우에는 이것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시중은행은 대부분 빠져나가고 국책은행이 깊숙히 빠져들어 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차차 설명하겠다.
다음, 워크아웃을 하기 위해 기업으로 부터 받는 정보는 관련된 채권단 은행이 동등하게 공유한다. 한국에선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 대우조선해양의 2차 자구계획안과 삼성중공업의 1차 자구계획안은 현재 산업은행만 갖고 있고 다른 은행은 안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의 주제인데, 자율협약이든 워크아웃이든간에 어려움에 빠진 기업이 채권은행에 제공하는 정보는 비밀이다. 기업 회계상 공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한 그렇다. 금융지원 조건도 영업상 비밀로 간주한다. 
한국에서 이번에 통과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정보공개 의무가 들어간 것은 사실 국제적으로 예외적인 경우다. 
신문 기사는 자율협약이 ‘깜깜이'라고 비판하지만 원래부터 런던식 자율협약, 또는 워크아웃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민간 은행들이 자율로 했기 때문이다. 깜깜이라고 비판했지만 원래 워크아웃은 깜깜한 것이다. 
김기식 의원은 75%만의 동의로 강제할 수 있는 워크아웃이 관치금융으로 흐를 것을 우려해서 한국식 워크아웃에 정보공개 조항을 들였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가 문제를 잘못 집었다.
또, 그것은 도리어 정부와 금감원으로 하여금 정보 공개 의무가 없는 한국형 '자율협약'을 선호할 빌미만 준 것일 수 있다. 즉, 커튼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기들 입맛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어지간 한 것은 모두 '자율협약' 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워크아웃은 보기 힘들고 자율협약만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 즉 정보공개 조항을 넣으려고 한 노력은 헛수고였을 가능성이 높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또 다른 것도 있다. '자율협약'의 범주 아래 남기 위해서는 100%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채권은행들에게 지나치게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또는 그 찬성을 얻는 댓가로 시중은행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고 대신 정부 손아귀에 있는 은행이 더 많은 부담을 지도록 강요할 위험만 가중시킬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의 구제금융 과정에서 눈에 가장 띄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시중은행은 대부분 빠져나가고 정부 입김 아래에 있는 은행들이 대부분 빚을 떠안았다.
기사에 의하면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선생이 대기업은 자율협약으로 빠져나간다고 하면서 “자율협약이 오히려 대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불투명한 관치금융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자율협약 방식에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헀다. 
내가 보기엔 자율협약 방식에 투명성과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그의 주장은 자율협약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그의 말대로 하면 자율이 될 수가 없다. 자율로 하는데 무슨 법적 근거를 운운한다는 말인가.
문제의 핵심은 정보 공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자율협약을 정치적 의도가 농후한 금융위와 금감원이 맡고 있다는 것과 국책은행을 시켜서 정책자금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 중개자가 아니라 주모자다. 브로커가 아니라딜러다. 이름만 그럴 듯한 것을 줏어 갖고 왔을 뿐 하는 짓은 IMF 위기 전으로돌아갔다.
한국의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은 말만 자율이지 사실은 자율이 아니다. 말만 자율협약이고 실제는 타율조약이다.그것이 진짜 문제다.
이쯤 해서 송중기씨가 한 마디 할 때다. "그 자율은 자율이 아니지 말입니다."

2016년 5월 29일 일요일

채권단이 주도하는 한국식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 구조조정을 기업과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해왔다. 이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침 이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기사가 중앙일보에 실렸다. STX와 성동조선에 부실이 발행했을 때 어떻게 시중은행들이 빠져나가고 국책은행들이 대신 덤터기를 뒤집어 쓰게 되었는지에 관한 기사다.
먼저 오늘 할 얘기에 관련한 부분을 인용하면, 
<국민은행은 2011년 9월 주채권은행인 수은이 성동조선에 자금 지원을 추진하자 채권단 탈퇴를 선언했다. 삼정KPMG의 실사보고서를 근거로 삼았다. 성동조선의 존속가치가 2200억원, 청산가치가 1조4700억원이란 내용이었다.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크면 회사 문을 닫는 게 이익이란 의미다. L 전 부행장은 “살릴 수 있으니 도와달라고 해야 할 판에 청산가치가 더 크게 나온 보고서를 가지고 지원하라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은은 딜로이트안진에 실사보고서를 다시 의뢰했다. 이번엔 존속가치(1조9200억원)가 청산가치(1조3200억원)보다 크게 나왔다. 연간 수주 물량에 대한 전망(삼정 31척, 안진 48척)이 달랐기 때문이다.">
회계 법인에 따라 이렇게 가치 추정이 달랐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의심부터 하고 볼 것이다. 물론 이 성동조선의 경우는 누군가의 입맛대로 조작한 냄새가 나기는 한다. 정치적 압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가 보여주듯이 가치 평가란 이렇게 주관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회계 법인이 실사를 거쳐 기업 가치를 평가했다고 하면 뭔가 객관적인 숫자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 가치 평가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시장 전망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기업과 시장이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전망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든 불확실하므로 그 판단에 따라 모험을 할 인센티브를 갖고 있는 측이 권한과 책임을 지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맞다. 구조조정을 해야 할 만큼 긴박한 상황에 빠진 기업은 시장전망과 경영을 잘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고, 잘못하면 큰 돈을 잃는다. 기회와 위험이 모두 극단적이다. 일종의 도박이다. 따라서 채권단에 비해 자산에 대한 권리 순위가 낮은 주주나 주주를 대표하는 경영진이 하는 것이 맞다.  아니면 모험 자본이 나서서 하는 게 맞다. 부실기업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벌쳐펀드가 그런 모험자본이다.
이에 비해 채권단은 구조조정을 잘해봤자 원리금의 일부를 건지면 다행이고, 잘못하면 큰 돈을 잃는다. 게다가 월급 생활자인 은행가는 개인적으로 그리 큰 손해를 볼 일이 없다. 정부 관료는 구조조정의 성패와 자기의 경제적 보상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구조조정을 대개 경영진이 주도한다. 자산을 매각하고, 규모를 줄이고, 유상증자를 하고, 기업을 시장에 내 놓는다. 경영진이 주도하지 않으면 시장이 나선다. 인수 제의를 하고 심지어는 적대적 인수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보자. Anglo American은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드비어를 소유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기업이다.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대형 광산업 회사로 연 매출이 20조원을 가볍게 넘는다. 그러나 광물 가격 하락으로 2015년 상반기에 약 3조원($3B)적자가 발생하자 그들은 12월에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자산과 사업을 팔아 규모를 축소하고 직원 수를 13만 5천명에서 5만명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직원의 63%, 8만 5천명을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발표 이전인 작년에 이미 이미 $2B 자산을 매각했고, 올해 안에도 $3B~$4B 의 자산을 매각하는 중이다.
구조조정의 속도와 규모가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빠르고 전격적이다. 그들이 이런 발표를 하기 전까지 신용등급이 크게 나빠지지도 않았고 구제금융은 커녕 은행들이 채권을 회수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없었다. 채권단 얘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냥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한 것이다. 
외국 언론은 그날 하루 정도만 크게 보도했을 뿐 그냥 넘어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남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는 얘기도 아직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할 뿐만이 아니라 이를 채권단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왜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고 채권단 주도로 할까?
구조조정은 감정적으로도 힘든 일이지만 경제적으로도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그 경제 분석도 결코 객관적일 수가 없다.누군가 신속하게 일을 하기도 싫거니와 나서서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면서 이를 믿고 모두 따르라고 할 수가 없다. 제일 급한 사람이 해야 하는데 경영진은 별로 급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첫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신속하게 하고 싶은 측이 경영진, 또는 주주다. 늦장 부리다가 일이 잘못되면 주주가 하나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지배주주가 구조조정에 소극적일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버틴다. IMF 위기 때 버틴 대우의 김우중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냥 돈만 더 대주면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대우 만이 아니다. 아직도 부실이 생기면 금융권이 대출을 더 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버티는 지배주주가 대부분이다. 60년대 영화에 나오던, 다음 달에 배만 들어오면 된다고 큰소리 치던 마도로스 김사장 같다.
그 다음, 신속하지 않게 하고 싶은 편향을 가진 측은 정부다. 정부의 편향은 항상 현상유지다. 그래야 당장은 편하다. 정치인이든 관료든 자기 임기 도중에는 그냥 넘어가기를 원한다. 대통령은 5년 단기이고, 관료는 끽해야 2년이다. 2년만 지나면 물러나거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다음, 은행도 현상유지를 원한다. 국책은행이면 더 하다. 한국에서는 행장 임기 3년이 지나고 나서 연임되는 경우가 아주 적다. 부행장들도 담당 업무를 1~2년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한다. 부행장 임기 3년이 지난 후 행장이 안될 경우 부행장으로 연임하는 경우도 드물다. 국책은행장은 내부 승진하는 경우가 없다. 모두 밖에서 3년 임기로 온다. 모두 자기 임기 도중 부실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충당금을 쌓느라 회계적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피하고 싶어한다. 자기가 그 은행에서 일생을 보네어 나름 애사심이 있는 시중은행장도 그러한데 낙하산으로 내려온 국책은행장은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부실이 발생했을 때 한국은 지배주주부터 경영진, 정부, 채권단, 직원까지 모두 현상유지 편향이 매우 강하다.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인센티브를 한국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이 사정을 기업이나 노조가 모를리 없다. 그래서 버티고 본다. 부실(insolvent) 해서가 아니라 단순 유동성 위기라고 주장한다. 그런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 경기가 회복되어 매출이 오르거나 지금 만들고 있는 물건 대금이 들어오기만 하면 해결 된다면 유동성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돈도 갚을 수 있고 모두 다 잘된다고 한다. 대개 이쯤 되면 모두들 갑자기 국가 차원에서의 산업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애국자가 된다.
이들은 비 오는데 우산을 뺏지 말라고 로비를 하고 다닌다. 은행업이 원래 비가 올 것 같기만 해도 비 오기 전에 우산을 뺏어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유지되는 산업이란 것은 알 바가 아니다. 실업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도리어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묻는다. 
올해만 해도 이미 1분기에 약 30만 7천명이 신규로 실업보험금을 신청했다. 한 기업이나 산업에서 설사 실업자가 3천명이 일시에 생겨도 전국적으로 한 분기에 직업을 잃어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람의 1%에 불과하고 연간으로 치면 0.3%에 불과하다. 그 30만명에 대한 실업대책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유독 자기들 실업은 정부나 금융권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모두들 속셈은 일단 현 상황을 정상이라고 하면서 유지하다가 혹시라도 외부 상황이 호전되면 좋고, 안되면 그때 가서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대개 지배주주의 지분은 거의 없고 대부분 계열사 지분이다. 지배주주로서는 기다리는 동안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빼돌릴 수가 있는 돈이 직접 소유한 지분가치보다 클 때가 많다. 정부와 채권단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몇년 후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채권단이 나선다. 체면은 있어서 1차 위기일 때 현상유지를 주장했던 지배주주와 경영진을 감자를 통해 교체한다. 후임이라고 자기들이 뽑는다 해도 그 경영진을 믿지는 못한다. 그 역시 몇년 하고 떠나면 그만이다. 구조조정은 일도 복잡하지만 심리적으로 힘든 작업이다. 회사가 잘 된다고 해서 구조조정을 잘 해서 그가 크게 득 볼 인센티브도 없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채권단이 팔을 걷고 나선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거의 항상 채권단 주도로 이루어지게 된 사연이다.
이젠 이것이 왜 안 좋은지를 설명하자. 한마디로 말하면 1차 단계에서 이미 시기를 놓친 채권단이 뒤는게나마 끌려나와 주도하는 2차 단계에서의 구조조정 역시 대응이 늦게 마련이어서 적기를 또 놓친다.
왜 적기를 또 놓치게 마련인가?
거의 대부분, 특히 대기업의 경우, 채권단 뒤에는 정부가 있다. 이들은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 일사불란해야 하니 정답이 필요해진다. 처음에는 누가 그 정답을 제공할 것인가를 갖고 서로 미룬다. 한 없이 미룰 수는 없으니 결국에는 누군가 나서서 한다. 그새 시간은 또 흘러간다. 그래서 채권단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항상 대응이 늦다. 1차 위기 후 본격적인 대응에 들어가는데 보통 2~3년이 지나가고 2차 위기에서 누가 주도할 것인가를 갖고 망서리느라 1~2년을 보낸다. 해운 사업과 조선산업이 좋은 예다. 산업 전체 차원에서의 정답을 지금부터 찾겠단다. 3~4년 전 1차 위기 때 헀어야 하고, 2차 위기인 지금 적어도 작년 말이나 올해 초에는 해놓았어야 한다. 실제로는 이제서야 움직이고 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꽤 참을성이 있는 독자다. 이 김에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
회사 사정이 나빠졌을 때 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경영진이 제일 잘 안다. 바깥의 채권단이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경영진들도 한계가 있다. 향후 시장 전망은 그들도 정확하게 할 수 없다. 누가 하든 어렵다. 정확하리란 보장이 없다. 누가 해야 하나? 이게 어렵다.
채권단은 부실 기업을 계속 도와줄지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존속가치와 청산가치를 중요시한다.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훨씬 더 크면 지원을 할 근거가 된다. 그러나 존속가치는 미래에 대한 전망에 크게 의존한다. 
기사에서 보듯이 연간 수주 물량에 대한 전망이 존속가치 추정을 결정한다. 그런데 그 전망은 누구도 모른다. 예상 시나리오와 최악 시나리오를 잡아 시뮬레이션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부실기업을 살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래 시장과 기업 전망시나리오다. 경영진은 속으로는 어떻든 간에 최대한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채권단을 설득하려고 한다. 회계법인에 실사를 의뢰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최종 가치 산정은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전망 시나리오에 달렸다. 불확실 할 수 밖에 없다. 모든 기업 가치 평가가 그렇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극도로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먼저 현재 현금흐름을 조사한다. 그 다음 그 현금흐름의 주요 결정 요인이 무엇인지를 조사한다. 그 다음 이 요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를 추정한다. 몇년은 몰라도 수십년 뒤 일은 알 수 없다.그래서 보통은 먼저 5년에서 7년 정도에 걸친 현금흐름 추정치를 할인해서 현재 가격으로 치환한다. 추정 기간 이후의 잔존수익가치(terminal value)는 어떻게 하나? 추정기간의 최종연도 순 현금흐름이 일정 비율로 계속 성장한다고 가정하여 현재가치로 치환한다. 이 두 숫자의 합이 현재의 기업가치다.
문제는 대개의 경우 이 잔존수익가치가 근거리 미래인 추정기간 중 가치보다 훨씬 크다는 데 있다. 보통은 가장 불확실한 이 터미널 밸류가 전체 가치 평가의 반 이상, 심지어는 2/3를 차지한다. 가정 한두개만 달라도 숫자가 크게 흔들린다. 
보통은 각 시나리오 별로 계산을 해서 최선 시나리오에 의한 가치, 최악 시나리오에 의한 가치, 예상시나리오에 의한 가치 등을 추정한 후, 비슷한 기업의 현재 시장가치와 비교해서 결정권자에게 제시한다. 결정권자는 그 중 어느 시나리오와 가치평가를 기준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할지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의 댓가는 누가 얻는가? 한국은 그게 모호하다. 책임을 져 봤자 댓가가 없으니 모두들 합의를 원한다. 시간이 또 흐른다. 돈은 나간다.
이렇게 기업가치 평가는 원래부터 매우 불확실한 작업일 수 밖에 없다. 아무러나 불확실한 전망에 의거한 것이므로 최종 판단도 결국은 그 사업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 좋지만 그것이 맞으리란 보장도 없다. 
결국은 각자의 몫이다. 각자도생을 한국에서는 나쁜 뜻으로 쓰지만 구조조정은 원래 각자도생 하도록 놔두는 것이 맞다. 모든 것이 가치평가에 달렸는데 그 가치평가란 것이 원래 주관적이다. 처음부터 각자가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은행과 채권 투자자는 자기 판단으로 돈을 더 빌려줄 지, 금리는 얼마로 할지, 출자전환을 할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투자자는 기업가치에 대한 자기 판단에 의거해서 기업을 살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린 기업가치 평가보다 자기가 평가한 가치가 높으면 기업을 사겠다고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기업은 시나리오에 따라 자구책을 준비해야 한다. 예상 시나리오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핵심사업이 아니거나 수익성이 낮거나 빨리 매각하기 쉬운 자산을 처분하여 현금을 준비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도산 위험이 낮아지므로 채권단도 대출 연장이나 신규 자금 지원을 조금 더 안심하고 고려할 수 있다. 그래서도 부족하면 핵심사업이라도 사업 규모를 줄여서 비용을 줄여야 한다.
요약하면, 한국은 경제 관련 가버넌스가 마비되어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고 문제만 더 키운다. 구조조정 처럼 힘들고 이해가 부딪치는 일이 벌어지면 모두들 덮기를 원한다. 그래서 항상 적기를 놓친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뒤늦게나마 정부나 채권단이 주도하면 모두가 동의하는 정답을 전제로 일해야 한다. 그 정답을 찾는 데 시간이 또 걸린다. 종국에는 해결 능력이 제일 없는 측이 주도해서 답을 내고 처리한다.
구조조정을 정부나 채권단이 주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정부나 채권단이 주도하면 정답을 전제로 일해야 한다. 그 정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적기를 놓치고 일은 더 커진다. 적자가 나는데도 금융지원을 해주었으니 부실만 더 키운 셈이 된다. 또 채권단은 그 산업과 기업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하는 구조조정이 잘 될리가 없다.
이렇게 한국에서 벌어지는 구조조정은 관련자들이 모두 현상유지 편향을 강하게 갖고 있어서 대개 시간만 더 들고 부실만 키우고 만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첫째, 국가 전체적으로 정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 아닌 한 정부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사회적 약속과 신뢰가 필요하다. 구조조정 경험이 있는 고위 관료가 임종용 금융위원장 밖에 없다고 하는데 한국은 앞으로 그런 경험이 있는 관료가 애초에 필요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경제 가버넌스를 고쳐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적대적 인수 합병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배주주가 서둘러서 구조조정을 한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을 것이므로 자기가 구조조정을 먼저 안하면 주가가 더 떨어진다. 
제대로 된 가버넌스를 갖추어 놓고 있으면 다른 주주들이 연합해서 지분을 2~30%만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던 지배주주 그룹을 쫒아낼 수 있다. 또는 자기보다 대비를 잘 해서 형편이 더 좋은 경쟁기업이 헐값에 부실기업의 주식을 매수해서 합병을 해버릴 수 있다. 이렇게 경영권을 시장을 통해서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다. 한국은 그게 지금 마비된 상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는 물론 은행과 기업의 전문 경영진이 장기에 걸쳐 같은 직책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현상유지 편향에 끌려갔다간 자기 임기 중 더 큰 손실을 보아야 한다. 또 은행이나 기업의 장기 성과가 좋아지면 경영진이 경제적으로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부담스러운 구조조정을 먼저 열심히 할 인센티브가 생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또는 처음 것이라도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 채권단이 주도하는 지지부진하고 낭비 투성이인 현재의 한국식 구조조정에서 벗어 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들을 개혁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구조조정은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일본의 구조조정이 20년째 지지부진한 이유도 바로 이것들 때문이다. 지금 같아서는 일본의 전철을 보고도 그대로 따라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