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월요일

그 자율은 자율이 아니지 말입니다.

한국의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의 불투명성에 관한 경향신문 송윤경 기자의 기사다. 나름 좋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으나 핵심을 잘못 짚었다. 
원래 워크아웃은 영국에서 90년대 재무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을 여러 채권은행들이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의 지원 아래 자발적으로 발전되어 온 방식이다. 즉 워크아웃 자체가 자율협약이다. 
그런데 귤이 회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듯이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변형되었다. 
우선 자율협약인 워크아웃에 두가지 단계를 두었다는 점이다. 90년대 런던 방식의 워크아웃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채권단의 전원 합의를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전원합의가 없어도 가능하도록 관행이 바뀐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는 아예 "자율협약"은 채권단의 100% 찬성이 있어야 하고 "워크아웃"은 75%의 찬성만 있으면 강제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못을 박았다.
다음, 누가 수많은 채권자들 간에 중개자로 나설 것인가가 중요하다. 런던방식에서는 중앙은행이 정직한 중개자(Honest Broker)로서 나선다. 그러나 그 개입 정도는 되도록 최소한에 그친다. 이해상충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앙은행 내 워크아웃을 담당하는 부서는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부서와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금융감독원 또는 정부가 자신이 중개자 역할을 맡는다. 정치적 고려를 하기 마련인 정부 또는 그들 아래에 놓여 있는 금감원이 '중개'를 한다면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최소한의 중개가 아니라 최대한의 중개를 한다. 이런 것을 중개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부분 국책은행의 돈을 태워 넣는다. 자기 돈을 들이지 않는 브로커가 아니라 딜러(Dealer)인 셈이다. 정직한 중개자가가 아니라 부정직한 의도를 가진 딜러다(Dishonest Dealer).
다음, 영국식 워크아웃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하는 것은 재무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처음 몇달 간은 채권은행들이 서로 대출을 회수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보통은 6개월을 넘기지 않는데 그동안 기업 사정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선순위, 후순위를 고려는 하지만 어느 정도 공평하게 부담을 나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특히 이번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의 경우에는 이것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시중은행은 대부분 빠져나가고 국책은행이 깊숙히 빠져들어 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차차 설명하겠다.
다음, 워크아웃을 하기 위해 기업으로 부터 받는 정보는 관련된 채권단 은행이 동등하게 공유한다. 한국에선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 대우조선해양의 2차 자구계획안과 삼성중공업의 1차 자구계획안은 현재 산업은행만 갖고 있고 다른 은행은 안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의 주제인데, 자율협약이든 워크아웃이든간에 어려움에 빠진 기업이 채권은행에 제공하는 정보는 비밀이다. 기업 회계상 공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한 그렇다. 금융지원 조건도 영업상 비밀로 간주한다. 
한국에서 이번에 통과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정보공개 의무가 들어간 것은 사실 국제적으로 예외적인 경우다. 
신문 기사는 자율협약이 ‘깜깜이'라고 비판하지만 원래부터 런던식 자율협약, 또는 워크아웃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민간 은행들이 자율로 했기 때문이다. 깜깜이라고 비판했지만 원래 워크아웃은 깜깜한 것이다. 
김기식 의원은 75%만의 동의로 강제할 수 있는 워크아웃이 관치금융으로 흐를 것을 우려해서 한국식 워크아웃에 정보공개 조항을 들였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가 문제를 잘못 집었다.
또, 그것은 도리어 정부와 금감원으로 하여금 정보 공개 의무가 없는 한국형 '자율협약'을 선호할 빌미만 준 것일 수 있다. 즉, 커튼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기들 입맛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어지간 한 것은 모두 '자율협약' 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워크아웃은 보기 힘들고 자율협약만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 즉 정보공개 조항을 넣으려고 한 노력은 헛수고였을 가능성이 높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또 다른 것도 있다. '자율협약'의 범주 아래 남기 위해서는 100%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채권은행들에게 지나치게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또는 그 찬성을 얻는 댓가로 시중은행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고 대신 정부 손아귀에 있는 은행이 더 많은 부담을 지도록 강요할 위험만 가중시킬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의 구제금융 과정에서 눈에 가장 띄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시중은행은 대부분 빠져나가고 정부 입김 아래에 있는 은행들이 대부분 빚을 떠안았다.
기사에 의하면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선생이 대기업은 자율협약으로 빠져나간다고 하면서 “자율협약이 오히려 대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불투명한 관치금융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자율협약 방식에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헀다. 
내가 보기엔 자율협약 방식에 투명성과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그의 주장은 자율협약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그의 말대로 하면 자율이 될 수가 없다. 자율로 하는데 무슨 법적 근거를 운운한다는 말인가.
문제의 핵심은 정보 공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자율협약을 정치적 의도가 농후한 금융위와 금감원이 맡고 있다는 것과 국책은행을 시켜서 정책자금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 중개자가 아니라 주모자다. 브로커가 아니라딜러다. 이름만 그럴 듯한 것을 줏어 갖고 왔을 뿐 하는 짓은 IMF 위기 전으로돌아갔다.
한국의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은 말만 자율이지 사실은 자율이 아니다. 말만 자율협약이고 실제는 타율조약이다.그것이 진짜 문제다.
이쯤 해서 송중기씨가 한 마디 할 때다. "그 자율은 자율이 아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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