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주요 논점은 이것이 불법인가와 어떻게 정부 행위를 투명하게 만들 것인가였다.
논의를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이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 기능부전의 문제와 한국경제에서 과도한 정책금융의 문제가 겹쳐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의를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이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 기능부전의 문제와 한국경제에서 과도한 정책금융의 문제가 겹쳐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성인씨는 먼저 자본확충펀드의 불법성을 조목조목 들어 지적한 후에 이에 덧붙여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폐지하고 공식적인 기구로서 금융안정협의회를 만들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모여서 협의하는 것 자체를 폐지하자는 뜻이 아니라 법적 권한이 없는 기구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별관회의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내리는 결정에 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 결정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직권 남용이나 업무상 배임으로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검찰이 홍기택씨를 이 혐의 적용 가능성을 갖고 저울질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최근 언론에 서별관 회의에 대해 폭로한 것도 검찰의 칼 끝이 자기를 향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성인씨 주장은 서별관 회의 대신 법적인 기구와 절차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이 기구에는 관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한다.
토론자로 나선 김상조씨는 현행법 위반의 소지가 있으며 원칙적으로 재정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하면서도 이미 한은의 금통위 의결까지 이루어진 상황애서 무효화하는 것이 효과적인 해결책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자본확충펀드에 투명성과 책임성의 통제장치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공적자금관리법에 조항을 신설해서 한국은행이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금융회사등의 자본확충을 지원할 목적으로 대출한 자금도 공자법에서 다룰 것을 제안했다. 금융안정협의회 설립에는 같은 의견이었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김상조씨 보다는 전성인씨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김상조씨는 "금통위 의결을 한 중앙은행의 권위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내 생각엔 중앙은행의 권위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회의 권위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국회가 있다는 것은 민주정치에서 가장 핵심에 가깝다. 불법적인 일을 행정부가 저지르고 있는데 중앙은행이 이미 의결했으니 국회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는 본말이 전도된 얘기다. 그리고 정말 권위 있는 중앙은행이었다면 이런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자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정을 하는 기구에게 무슨 권위를 두겠는가?
현재 정부 방안은 앞으로 있을 지 모르는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금융위기가능성을 대비하여 미리 한국은행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놓겠다는 얘기다. 이는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방식이다.
정부는 선거 전에 이를 한국식 양적완화 운운하며 연막작전을 쳤다. 멋모르는 일부 언론인들이 처음에 이에 동조하기도 했지만 곧 이것이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구제금융을 자기들 입맛 대로 하겠다는 뜻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언론이 비판적으로 돌아섰고 그 용어는 곧 사라졌다. 대신 등장한 것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다.
그러나 이것도 한국적 양적완화와 마찬가지로 역시 양두구육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국회의 감시 없이 자기들 멋대로 쓸 구제금융 재원이 필요하니 그 돈을 한국은행으로 부터 끌어 오겠다는 발상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이번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에서 문제가 생긴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잘못된 정책금융 때문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자기들이 정책금융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금융 자금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자기들 마음대로 쓰겠다는 것이니 참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한국은행이라고 해서 이러한 문제를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체적인 의결은 했지만 나중에 요청이 들어오면 건별로 심사를 하겠다고 했다. 또 한국은행의 금통위원들은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지난달 30일 자본확충펀드에 대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은 재정의 역할이나,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 불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 차원의 틀에 동의했음’이라고 적힌 문서에 서명해 ‘재정 우선 원칙’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졸렬하고 비겁한 얘기다. 정부가 요청하면 중앙은행이 건별로 심사해서 국책은행에 출자하겠다는 것을 비상계획이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코메디다. 그게 무슨 비상계획인가?정 급하면 그때 가서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미리 의결해 놓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세계 어느 나라에 중앙은행이 금융시스템 불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을 재무부에 맡기는가? 또 막상 한국은행에 손을 벌릴 정도로 문제가 터지면 이렇게 건별로 심사할 이유도 없고 여유가 없다. 국회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자기 할 일 다했다고 한다면 국회도 마찬가지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안의 제일 중요한 이슈는 국책은행의 부실을 한국은행의 발권력으로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대개 금융위기가 터지면 해결책은 둘 중의 하나다.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져서 금융불안이 생기면 공적자금을 쓸 것인가 아니면 중앙은행 발권력을 이용할 것인가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정리가 되어 있다. 은행의 유동성 위험은 중앙은행이 맡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은 중앙은행이 하는 것이다. 부실은 정부가 출자해서 해소한다.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고 은행의 부실이 심각하면 중앙은행이 아니라 예보, 또는 공적 자금을 들여서 처리하게 되어 있다. 부실한 은행의 증자를 위해 정부가 요청했을 때 중앙은행이 수동적으로 심사해서 집행할 일이 아니다.
김상조씨는 뉴노말 운운하면 요새 같은 세상에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국회를 통한 재정자금 마련이 더 좋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단지 정부가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니 국회가 못본 척하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정치력 발휘라고 부른다.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행정부가 마음대로 하도록 의회와 법원이 놔두는 것을 정치력이라고 부르자는 주장은 너무 억지스럽다. 자기는 우국충정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임꺽정 증상이 심하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투명성과 책임성 문제다. 공자법에 한국은행의 국책은행 출연금을 포함시키자는 김상조씨의 제안도 그 실효성이 의심된다. 나와 회의에 같이 참석했던 금융권 인사는 회의가 끝나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말하기를 공자위는 공무원들이 공적자금 운영을 자기들 입맛대로 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해 만든 기구인데 그들에게 한국은행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운영에 대한 감시를 맏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 역시 같은 의견이다.
여기서 잠깐 눈을 돌려 2008년으로 돌아가자.
2008년 9월 15일 리만 사태가 발생해서 전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폭풍이 닥쳤을 때 미국 행정부는 9월 29일에 국회에 7천억불 짜리 구제금융 펀드(TARP)를 요청했다.
당시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이 국회에 제출한 이 법안의 주 내용은 국가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은행들의 모기지 저당증권(MBS)를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9월 29일 하원에선 부결되었다. 공화당 정권이 낸 법안인데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해서 부결되었다.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10월 3일 상원에서 통과된 수정 법안을 5일 하원 표결에 부쳐서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일부 마음을 빠꾼 의원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공화당 하원의원은 공화당 정권이 낸 법안에 반대했다.
어마어마한 재원 조달 규모에 비해 재무부가 9월 20일에 의회에 법안초안을 넘겼을 때 이 법안은 겨우 세장짜리였다. 재무부 장관의 행위에 대한 국회와 법원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법안 문구를 일부러 모호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재무부장관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고 법원에 의한 무효 판결로부터 자유롭다는 문구를 포함했다.
10일 동안 의회에서 심사하면서 이 법안은 약 100여 페이지로 불어났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세가지였다. 첫째,7천억 불을 한꺼번에 허용하지 않고 셋으로 나누었다. 둘째, 네가지 국가기관 감시 장치를 만들었다. 셋째,국민들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에 의한 결정을 법원을 통해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중 현재 맥락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감시 장치다.
첫째,이 법은 새로 만드는 금융안정협의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Board)에서 이 TARP를 감시하도록 했다. 의장은 중앙은행장이다.
둘째, 의회 내에 국회 감시 패널(Congressional Oversight Panel)을 만들어 여야가 선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정부 프로그램을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이 패널은 매 30일마다 이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의회에 보고해야 했다. 하바드 법대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워렌이 바로 이 패널의 수장이었고 그가 청문회에서 가이트너를 꼬치꼬치 심문한 장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셋째, 미국 의회 소속인 감사원(Government Accounting Office)에
TARP 운영에 관한 모든 자료를 요구하고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넷째, TARP안에 특별 감사국(Office of Special Inspector General)을 두었다. 감사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상원의 비준을 통과해야 하며 임기가 보장되었다. 그는 매 분기마다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나중에 오바마가 임명한 가이트너 재장관은 재직 도중 이 COP의 워렌과
TARP 감사인 바로프스키 때문에 곤욕을 치루었다.
다시 눈을 돌려 한국으로 돌아오자.
한국은 공적 자금인데도 국회에 의한 감시 장치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공자위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은 공무원들 투성이다. 사무처장은 보직이 없는 고위 공무원이 잠깐 씩 거쳐가는 자리다. 미국에서는 네 감시 장치 중 의회가 직접 통제하는 기구가 세개인데 한국은 하나도 없다. 한국의 상황이 이러한데 김상조씨 제안처럼 공자위에서 감시하게 하자는 말은 무의미한 얘기에 불과하다.
또 다른 예로 2009년 은행자본확충펀드의 경우를 보자. 당시 정부는 이 펀드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나라가 큰일 난다고 국회를 협박했다. 자세한 것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국회로부터 동의를 받은 자금 한도가 약 20조원이었다. 실제로는 3조원 정도 밖에 쓰지 않았다. 그러나 각 은행에 얼마나 어떤 조건에 왜 주었는지를 밖에서 알아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일을 열심히 하는 정무위나 기재위 국회의원이 물어도 무성의한 숫자 몇개 던져주는 것이 전부였다. 관심을 갖는 국회의원도 별로 없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허술하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선거에 직접 참여하는 것 외에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한탄을 많이들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시장경제도 그렇다. 정부가 할 일이 아닌데도 정부 관료가 틀어쥔 채 놓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정책금융이 아직도 횡행한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그 뒤치다거리도 자기들에게 맡기란다. 구경거리 난 것 아니고 볼 것 없으니 그냥 지나가란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번 문제는 삼권분립의 문제다. 삼권분립을 무시한 정책금융을 국회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과거 여대야소 국회에서는 아무리 말로 해보았자 정부가 무시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통령이 검찰을 이용해 검찰 정치를 하고, 여당 국회의원이 의원으로서의 자긍심이 없이 거수기 노릇만 하는 상황에서는 삼권분립이 무의미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여소야대다. 20대 국회가 행정부 감시와 견제를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볼 일이다. 자기들도 말만 하고 생색만 낼 것인지 아니면 폭주하는 행정부를 저지할 것인지.
김상조씨가 말하는 정치력은 제발 발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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