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개인 투자자를 상대로 하는 주식 중개업은 근본이 잘못되었다.
리테일 주식 영업은 고객이 주로 쓰는 채널에 따라 크게 오프라인 사업과 온라인 사업으로 나뉜다. 그런데 오프라인 영업은 말로만 중개업이지 실제로는 소규모 자산운용업처럼 굴러간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부 투자자들을 상대로 높은 투자수익률을 약속하고, 단타성 투자를 부추키는 것을 주 서비스로 삼는다. 말하자면 지점 직원마다 소규모 사모 고비용 펀드를 운영하는 셈.
수익률은? 당연히 나쁘다. 전문 펀드 매니저도 잘 하기 어려운데 지점에 있는 수만명의 지점 직원이 얼마나 잘 하겠는가? 상식적인 투자자라면 이 것이 무망한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남는 것은 중독성 고객이다. 그래서 대다수 증권사에서 오프라인 주식영업 수익의 80퍼센트가 연간 회전률이 600퍼센트 이상인 고객에서 나온다. 자기가 투자한 돈으로 모두 주식을 사고 또 이것을 모두 팔아야 100퍼센트 회전률이니, 연 600퍼센트면 두달마다 투자포트폴리오가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있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투자 방법이 아니다. 수익률은? 당연히 나쁘다.
이런 투자방식은 투자자에게도 안 좋고 직원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안좋다. 이것을 알면서도 증권사 경영진은 모른 척을 한다. 고객과 직원의 미래를 위해 나쁜 이익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금융감독기구의 투자자 보호가 약하기 때문. 한국의 과당매매에 대한 규칙은 매우 느슨하다. 투자자의 탐욕과 무지를 이용해 증권회사가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할 유혹을 억제할 장치가 없다. 당연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수밖에. 교통경찰이 단속을 하지 않으면 규칙을 안지키는 사람이 이익을 보고, 규칙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이치와 같다.
자본시장 통합법을 도입할 때 과당매매를 막을 법규가 도입되었어야 했었다. 그러나 적합성 원칙등 말만 요란했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개별주식보다 훨씬 위험이 적은 펀드와 채권에 대한 투자자 설명의무만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아직도 과당매매에 대한 구제는 거의 법원소송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법조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계약자 보호의무라는 일반적 조항에 의거한 판례만이 있다. 그 판례 역시 투자자에게 매우 불리하게 되어있다. 돈을 거의 반 이상 날리고 그 손해액 중 과반액이 수수료일 때만 인정하고 그 경우 손해배상도 일부만 인정한다.
주식중개업으로 영업허가를 받고 실제로는 사설펀드처럼 운영하는 사업모델은 윤리적으로도 잘못되었지만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도 잘못된 사업방식이다. 고객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수익의 대부분이 충성고객으로부터 나오는 좋은 수익이 아니라 불만고객으로부터 나오는 나쁜 수익일 수밖에 없다. 새 고객보다 불만을 품고 떠나는 고객이 더 많으므로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은 소멸될 수 밖에 없다. 요즘처럼 오프라인 주식"중개업"이 수익성도 없고 성장성도 없는 사업이 된 것은 필연이었다. 고용된 경영진은 자신 임기 동안의 실적만 신경쓰면서 지금까지 왔다. 대주주 경영자들도 가는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이다. 분발이 필요하다.
투자자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는데도 이상하게 과당매매에 대해서만는 관대한 감독당국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증권사들이 나쁜 경쟁이 아니라 좋은 경쟁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좋은 경쟁을 하려는 기업이 뿌리를 내릴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2014년 8월 6일 수요일
회사는 누구를 위해 있나?
작년 이맘 때 임직원들과 처음 만나는 날 물었다. 한화투자증권이 존재하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이냐고, 왜 있어야 하냐고, 없어진다고 해서 아쉬워 할 고객이 얼마나 있냐고. 고객을 위해서 회사가 있는 것이지, 회사와 직원을 위해서 고객이 있는게 아니라고 했다. (세월호란 배도 승객을 위해 있었지 선원을 위해 있는게 아니었다.)
우리 회사에 오기 전부터 어떻게 주식 중개업을 지금과 같은 퇴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왔다. 현재 한국에서 주식 중개업은 거의 중독성 고객을 상대로 한 스크린 경마와 다를 바가 없다. 사행성 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규제를 받는 다른 사행성 산업과 달리 주식 중개업은 버젓이 주택가에도 들어서 있고, 시내 한복판에도 있고, 집안에서도 접속이 가능하고, 직장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번 봄부터 과당매매가 일어나면 직원과 지점 실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개인별 성과급제도 없앴다. 회사는 술렁대었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당연히 수익이 줄었다. 예상한 일이고, 각오하고 한 일이다.
이번에 분석해보니 지점 고객의 회전율이 대폭 떨어졌다. 고객 수익률도 좋아졌다. 누군가는 도움을 받았다.
지난 7월에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주식 매매시 지점 주문에는 19,500원, 콜센터에는 9,500원 정액 수수료를 도입했다. 대신 수수료율은 반으로 내렸다. 지금까지 한국 증권업계에서는 그 누구도 지점 수수료율에 손을 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디를 가나 주문 액수와 상관 없이 0.5%로 대동소이하다.
이것은 여러모로 불합리한 가격체계다. 하다못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도 한 그릇에 6천원이고 면발 당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할까?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다. 개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한번 맛보면 그 짜릿함에 손을 끊기가 어렵다.
정액수수료를 받는 것은 지금껏 아무도 안해본 일을 하는 것이어서 회사 직원들 모두가 대단히 긴장했고 걱정도 많았다. 아직 이르지만 지금까지 결과만을 보면 적어도 고객의 거래 패턴은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점 주문 건은 대폭 줄었고, 건당 주문액은 대폭 증가했다. 지점에서 이관되어 콜센터를 처음 써보는 고객들도 서비스 수준에 만족하는 것 같다. 직원들이 준비를 잘한 덕이다. 이 일에 참여한 직원들은 보람을 느끼고 신도 나는 것 같다.
앞으로 발표할 조치를 준비 중이다. 업계의 치부이자 우리의 치부이기도 한 사실도 모두 드러낼 생각이다.
우리 회사에 오기 전부터 어떻게 주식 중개업을 지금과 같은 퇴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왔다. 현재 한국에서 주식 중개업은 거의 중독성 고객을 상대로 한 스크린 경마와 다를 바가 없다. 사행성 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규제를 받는 다른 사행성 산업과 달리 주식 중개업은 버젓이 주택가에도 들어서 있고, 시내 한복판에도 있고, 집안에서도 접속이 가능하고, 직장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번 봄부터 과당매매가 일어나면 직원과 지점 실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개인별 성과급제도 없앴다. 회사는 술렁대었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당연히 수익이 줄었다. 예상한 일이고, 각오하고 한 일이다.
이번에 분석해보니 지점 고객의 회전율이 대폭 떨어졌다. 고객 수익률도 좋아졌다. 누군가는 도움을 받았다.
지난 7월에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주식 매매시 지점 주문에는 19,500원, 콜센터에는 9,500원 정액 수수료를 도입했다. 대신 수수료율은 반으로 내렸다. 지금까지 한국 증권업계에서는 그 누구도 지점 수수료율에 손을 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디를 가나 주문 액수와 상관 없이 0.5%로 대동소이하다.
이것은 여러모로 불합리한 가격체계다. 하다못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도 한 그릇에 6천원이고 면발 당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할까?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다. 개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한번 맛보면 그 짜릿함에 손을 끊기가 어렵다.
정액수수료를 받는 것은 지금껏 아무도 안해본 일을 하는 것이어서 회사 직원들 모두가 대단히 긴장했고 걱정도 많았다. 아직 이르지만 지금까지 결과만을 보면 적어도 고객의 거래 패턴은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점 주문 건은 대폭 줄었고, 건당 주문액은 대폭 증가했다. 지점에서 이관되어 콜센터를 처음 써보는 고객들도 서비스 수준에 만족하는 것 같다. 직원들이 준비를 잘한 덕이다. 이 일에 참여한 직원들은 보람을 느끼고 신도 나는 것 같다.
앞으로 발표할 조치를 준비 중이다. 업계의 치부이자 우리의 치부이기도 한 사실도 모두 드러낼 생각이다.
2014년 7월 25일 금요일
"지도에도 없는 길"과 "알고도 가지 못한 길"
오늘 중앙일보 컬럼에서 조윤제 교수는 최경환의 "지도에도 없는 길" 대신 "알고도 가지 못한 길"을 가자고 제안한다.
"기업과 가계, 그리고 가계 부문 내의 분배구조를 개선하고 취약기업들의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며 가계부채비율의 점진적 축소를 유도해 구조적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 구조적 대책들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경기위축 효과를 상쇄키 위해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확장적 재정금융정책만을 동원해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를 더 키우게 된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 그러나 그 길은 조윤제 교수가 경제수석을 했던 노무현 정부도 못간 길이다. 조교수는 이제와서 자기는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는 알까? 알게 되면 가기는 할까? 내 생각엔, 북한 말로 "일없다."
어느 유명 변호사 한 분이 최근에 내게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사람들과 만나 나라 걱정을 하다보면 너무도 타당하고 조리에 맞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감대도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정치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더라. 왜 그런건지 참 이상하다. 우리나라 정치 체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결국은 정치가 중요하다. 모두들 안다. 그렇다고 정치에 기대를 할 것은 없는 나라다. 그렇게 된지 꽤 된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 이후 한국정치는 부자 감세와 사대강 사업 한게 전부다.
"기업과 가계, 그리고 가계 부문 내의 분배구조를 개선하고 취약기업들의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며 가계부채비율의 점진적 축소를 유도해 구조적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 구조적 대책들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경기위축 효과를 상쇄키 위해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확장적 재정금융정책만을 동원해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를 더 키우게 된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 그러나 그 길은 조윤제 교수가 경제수석을 했던 노무현 정부도 못간 길이다. 조교수는 이제와서 자기는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는 알까? 알게 되면 가기는 할까? 내 생각엔, 북한 말로 "일없다."
어느 유명 변호사 한 분이 최근에 내게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사람들과 만나 나라 걱정을 하다보면 너무도 타당하고 조리에 맞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감대도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정치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더라. 왜 그런건지 참 이상하다. 우리나라 정치 체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결국은 정치가 중요하다. 모두들 안다. 그렇다고 정치에 기대를 할 것은 없는 나라다. 그렇게 된지 꽤 된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 이후 한국정치는 부자 감세와 사대강 사업 한게 전부다.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부동산 버블 금단증세
어제 박대통령이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역시 국민들이 경제가 좀 살아난다고 체감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문제가 가장 직접 와닿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이게 활기를 띠어야 경제가 살아나는구나, 국민들이 느끼실 것"이라고 했단다.
모두들 경기가 안 좋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올해 GDP 성장율로 약 4%를 예상한다. 썩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경기가 안좋다고 느끼는 이유는 부동산 문제일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고 GDP가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부동산 문제가 가장 직접 와닿는 문제라고 생각들 한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는 경제 주체들의 행동 뒤에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가정이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렇게 예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이 어긋났다. 계획이 뒤틀어졌다. 투자, 저축, 소비, 교육, 주거, 이사 등 모든게. 그래서 힘들어한다. 이걸 전문 용어로 balance sheet depression이라고 하지만 이를 쉽게 풀어서 말하면 결국 부동산이 계속 오를 줄 알고 계획을 짜놓았는데 그게 틀려버린거다. 많은 사람들이 덫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많은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어떻게 헤어나올지 길이 안보인다.
그런데 이 balance sheet depression의 원인이 부동산 가격 정체이므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는, 음, 말하자면 마약을 끊어서 금단증에 걸린 사람이 힘들어하니 마약을 더 주자는 것과 같다. 제대로 된 의사라면 그렇게 안한다. 아니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안한다.
금단 증세는 계속 버티는 수밖에 없다. 금단 증세 자체에 몰두하면 안된다. 다른 활동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마약을 더 줄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가 더 좋아질 가망은 없다.
조직은 자정능력이 없다. 끝까지 가서 사고가 터져야 안다. 알고도 자기 손으로는 못 고친다.
모두들 경기가 안 좋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올해 GDP 성장율로 약 4%를 예상한다. 썩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경기가 안좋다고 느끼는 이유는 부동산 문제일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고 GDP가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부동산 문제가 가장 직접 와닿는 문제라고 생각들 한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는 경제 주체들의 행동 뒤에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가정이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렇게 예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이 어긋났다. 계획이 뒤틀어졌다. 투자, 저축, 소비, 교육, 주거, 이사 등 모든게. 그래서 힘들어한다. 이걸 전문 용어로 balance sheet depression이라고 하지만 이를 쉽게 풀어서 말하면 결국 부동산이 계속 오를 줄 알고 계획을 짜놓았는데 그게 틀려버린거다. 많은 사람들이 덫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많은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어떻게 헤어나올지 길이 안보인다.
그런데 이 balance sheet depression의 원인이 부동산 가격 정체이므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는, 음, 말하자면 마약을 끊어서 금단증에 걸린 사람이 힘들어하니 마약을 더 주자는 것과 같다. 제대로 된 의사라면 그렇게 안한다. 아니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안한다.
금단 증세는 계속 버티는 수밖에 없다. 금단 증세 자체에 몰두하면 안된다. 다른 활동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마약을 더 줄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가 더 좋아질 가망은 없다.
조직은 자정능력이 없다. 끝까지 가서 사고가 터져야 안다. 알고도 자기 손으로는 못 고친다.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정책금융과 재정
지난 8월 27일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첫째,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철회하면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통합하고, 둘째,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현 체제를 유지하며, 셋째,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보증기금은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경제정책 수립 시 얼마나 현상 유지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2007년 9월 당시 재정경제부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일반은행의 업무 영역이 혼재되어 국책은행이 시장 마찰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수용하여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제시했었다. 그 주요 내용은 산업은행의 상업성 IB기능을 점차로 금융투자회사로 이관하겠다는 것이었다. 2009년 4월 이명박 정부는 구 산업은행을 분리해서, 중소기업 지원 등의 정책금융 업무는 신설된 정책금융공사로 하여금 전담케 하고, 나머지 기업금융·투자은행 업무는 현재의 산업은행이 맡아 운영하면서 장차 민영화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처음부터 그 실현성이 의심스러웠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산업은행의 기존 역할, 특히 부실기업을 카펫 아래에 쓸어 담는 역할을 폐지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 기능은 존속시켰다.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 국내적으로는 건설업·조선업·해운업이 부실화되었고, 그 중 금호그룹·STX그룹 등 대형 부실기업의 처리 과정에 정부는 산업은행을 사용했다. 산업은행은 여전히 ‘관치의 늘어진 팔’이었던 것이다. 애초부터 산업은행이 과연 정부보증에 의존하지 않는 민영기관으로서 경쟁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고, 그 은행을 사갈 주체가 나타날 전망도 안 보였는데, 게다가 여기에 계속 부실기업을 쓸어 담고 있으니 그런 은행을 누가 사가겠는가? 또 법에 규정된 정책금융 업무를 맡아야 할 정책금융공사는 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해 처음부터 그 정체성이 모호했고, 끝내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발표된 방안은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국회와 언론에서는 5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추진한 산업은행 민영화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그동안 산은지주사 설립과 산은 예수기반 확대 과정에서 벌어진 헛발질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경제개발 초기에 산업정책의 수단으로 시작된 한국의 정책금융 체계가 더 이상 그러할 필요가 사라진 지금에 와서도 그대로 온존되고 있고, 정부 당국이 이를 경기조절을 위한 거시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으로 중앙은행이 맡기로 되어 있는 통화신용정책의 역할을 행정부가 대신하여 경기조절을 하던 습관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정책금융 범주 확대
한편, 이번 정부 발표에서 많은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정부가 정책금융의 목적으로 시장실패 보완이나 시장 선도 기능에 덧붙여 시장 안정을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정부에 의하면, 시장실패 보완은 중소기업 지원 및 SOC 투자에 관한 것이고, 시장 안정은 긴급 유동성 지원 및 구조조정 등이 해당되며, 시장 선도 기능은 해외프로젝트와 신성장 산업 지원 등이 해당된다. 시장실패와 시장 선도를 보정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해도, 유동성 지원과 기업구조조정을 하는 시장 안정까지 정책금융의 범주에 슬며시 끼워 넣은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의 금융시장과 산업에 대한 개입이 이미 과도한 한국이지만 지금까지는 정책금융의 범주에 시장 안정을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2004년 카드 사태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긴박성을 이유로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에서 긴급대책으로 나온 것이지 정책적으로 아예 그 일을 자기의 주 업무로 하고 이를 위해 국가재정 주머니를 따로 차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번 정부 발표를 보면서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부담스러워하던 정부가 이번 기회에 이를 정책금융의 하나로 포함시켜 비판의 예봉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정책금융(Directed Finance)이란 정부가 특정한 부문에 자금 지원을 결정해서 금융자원의 배분에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시장경제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는 나라에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자원 배분에 나서는 것인데, 시장기구에 의한 자원배분에 비해 과연 효율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러한 정책금융의 비효율성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 정책금융의 폐해가 IMF 위기를 가져왔고, 그 후 지금까지도 중소기업을 포함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저해하고 있으며, 한국 금융산업이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IMF 위기 전까지 한국 경제에서 정책금융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가를 상기해보자. 여러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금융자율화에도 불구하고 1992년 말 예금은행 대출에서 정책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56~58%였다고 한다. 이러한 대규모 정책금융은 결국 상업은행의 대규모 부실화를 가져왔고, 결국은 IMF 위기를 초래했다. IMF 위기 후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포함하지 않은 정책금융 지원액은 2012년 말 현재 117.4조원으로서 예금은행 및 정책금융기관 원화대출액의 10.1%에 달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포함하면 각각 306.2조원, 26.2%).1)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난 대출보증 및 보험액을 포함하면 예금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의 원화대출금 중 33.1%가 정책금융의 지원을 받았고, 게다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대출금까지 합하면 49.2%에 달해, 아직까지도 정책금융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책금융 폐해 직시해야
금융시장에서 정책금융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금융산업과 시장에 끼치는 영향 측면에서만 보자. 정부가 내세우는 금융정책의 두 가지 목적이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발전인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다는 정책금융은 바로 금융산업 발전을 막는 모순을 초래한다. 첫째, 정책금융이 비대해지면 상업금융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정책금융기관은 정부 보증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을 저해한다.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하고 있으므로 당장 재정에 주는 부담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금 조달은 정부 보증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결국 정부가 잠재적 부채를 떠 안는 것이다. 특히 보증을 통한 정책금융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늘면 차입자와 민간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여 우발채무를 증가시킬 수 있다. 또, 위에서 말한 좁은 의미의 정책금융만이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경제규모에 비해 일반정부 채무 부담이 작게 나타나지만 일반정부 채무대비 공기업 채무비율이 높다.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 발행액을 제외할 경우 일반정부 채무 대비 공기업 채무비율은 80.7%(378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호주(62.9%), 일본(43.0%)보다 높다.2) 보금자리 사업, 4대강 사업, 학자금 대출 등 정책추진사업에 공기업의 부채가 동원되고 있고, 에너지 관련 시설 투자,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공공요금 인상 억제에도 동원되었다. 심지어 근래에 들어서는 저소득층 소득 지원에 정책금융과 공기업 부채가 동원되고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현상으로 더욱 우려스럽다. 정책금융은 한국경제의 발전 단계에 비추어 보아 이미 그 시효를 다한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기조절을 전통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신용정책에 의거하지 않고 과거와 같이 정부 개입에 의한 신용정책, 부동산 부양정책, 환율정책으로 운영하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물론 재정정책의 실종이다. 경제성장률이 3%에 못 미치고, 실업자가 아무리 양산되어도 한편으로는 균형재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 조절과 구조조정을 정부 의도대로 하기 위해 정책금융을 통한 신용정책의 칼자루를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공기업의 부채를 통해 소득 보전과 신용 확대도 추구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경제정책 운영의 틀을 그만 버릴 때가 되었다.
(윗 글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재정포럼 10월호에 권두컬럼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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