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세 대선후보 진영 정책 좌장 인터뷰 유감

어제 경향신문이 각 대선후보 진영에서 경제민주화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세 사람의 인터뷰를 실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자세히 살펴보자.

김종인의 인터뷰에서 우선 눈에 띄는 부분은 이것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이 공약으로 제시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순환출자 금지 등에는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재벌 개혁’이나 ‘재벌 해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그는 “외부의 힘으로 재벌을 개혁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하던 얘기다. 재벌을 규제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배구조나 출자구조를 손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효과가 없다. 순환출자도 신규 출자만 금지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경제현실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일거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정치하는 사람의 가장 큰 덕목은 책임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도 하면서 우리 경제가 큰 손상을 받지 않고 같이 가는 그런 정책을 내야 한다. 그런 데서 (박근혜 후보는) 차별성을 찾으려고 한다. 박 후보가 기분대로 ‘재벌 해체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사실 재벌 개혁 하겠다는 것도 헛소리다. 재벌은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없다.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가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놓고 (재벌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처벌하면 된다. 그러면 재벌들이 적응할 것 아닌가.”

김종인은 지금 진보 학자들이 내놓는 재벌 개혁 방안이 너무 이상론에만 치우쳐 있다고 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각 야당 진영의 경제민주화 방안은 너무 논리적으로 완결된 얘기를 만드는데 빠져서 과연 그것이 현실에서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실행할 수 있는지, 또 실행에 옮겨지려면 추가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그가 실천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과 노사협상 단일화 폐지다.

전속고발권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시되던 것이고 작년 민주당 특위에서도 나온 얘기다. 당시 특위에 참여한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인사가 끈질기게 반대했었지만 결국 최종 민주당 안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요새 와서는 왠지 이 방안에 대한 관심은 낮은 듯 하다. 아마 더 화끈한 다른 재벌개혁안에 묻힌 것이리라.

나 역시 작년에 중간 토의 과정에서 전속고발권 폐지가 흐지부지 되는 것에 시비를 걸어서 재론할 것을 주장했었다. 감시나 규제를 할 때는 바로 그 감시자를 누가 감시할 것인지도 신경 써야 한다. 감시 권한을 한 곳에만 주면 권한의 독점이 일어나면서 감시자가 피감시자에게 포획되기가 쉽다. 실제 기업에서 일해본 내 경험으로도 기업인들은 공정거래위원회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 가 있는 퇴직 인사들을 통해 주무르거나 아니면 그 동안 번 돈으로 벌금 내고 말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노동개혁은 김종인이 오래 동안 생각하던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규직 위주 기업노조 구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인 개선 방법도 잘 안 보인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기업과 정규직 노조의 야합으로 늦어졌던 복수노조가 시행된 것은 2010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노사협상은 정규직 노조가 대표하고 있다. 아직 박근혜 진영의 공약으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김종인 개인 의견으로는 적어도 이것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얘기를 야당에서 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한국 진보 진영의 한계이고 모순이다.

그 다음 문재인 후보진영의 이정우 인터뷰를 보자. 먼저 경제민주화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으나 그의 인터뷰에는 억지가 많이 눈에 띈다.
학자로서 양심을 걸고 이야기하겠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아니고 이전 정부에서 정책을 펼친 경제 관료들의 실패다. 노무현 정부가 정권을 인수받았을 때 이미 경제 거품이 심했다. 거품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경기가 좋고, 성장률도 높은데 그게 동시에 다 꺼진 시기가 참여정부이다. 그렇지만 참여정부는 과거 역대 정부가 했던 식으로 임시방편적이고 도식적인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 낀 거품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하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거품을 유지하려고 했다. 재임 기간 중 전국에 토지 보상금으로  약 100조원을 풀었다. DTI 규제를  실행하는 것을 머뭇거렸다. 어쨋든 지나간 일이니 그의 변명에 대해 너무 시비를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경제민주화 방안이 국민들에게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는 지적에 대해 대답한 것을 보면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출자총액제한이나 순환출자금지 등은 일반인에게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따져보면 국민 개개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의 재벌 소유지배 구조는 총수 일가가 적은 자본으로 많은 기업을 거느릴 수 있게 돼 있다. 총수가 황제경영을 하며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자기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편법적으로 재산을 상속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계속되는 한 새로운 대기업이 출현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모두 패배한다. 대기업이 새로 생겨나지 않으니 대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 청년실업이 발생하는 것이다.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대기업이 많이 생겨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는 것인데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재벌체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 소유지배구조 개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결국 내 자식의 취직문제와 직결돼 있다.”
굵은 표시는 내가 한 것이다. 좋은 직장은 대기업인데, 재벌 때문에 대기업이 새로 생겨나지 않고, 그래서 청년실업이 발생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어이 없는 주장이다. 재벌을 규제하면 다른 대기업이 나타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기존의 재벌 대기업 중 일부는 축소되거나 퇴출될 수 밖에 없다. 이정우는 그 전에도 가끔 이런 엉터리 같은 소리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더 억지 주장을 폈다.

2010년 초 컬럼에서 이정우는 이명박 정부가 등록금 대출을 취업 후 상환하는 제도로 바꾼 것은 잘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제도를 취업후 상환제로 바꾼 것이 다행이라면 왜 노무현 정권은 자기가 그것을 도입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는 이 컬럼에서 한국에서 등록금이 높은 이유는 학교재단이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학교재단이 부실한 것인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데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또, 재단이 부실해서 등록금이 높다고 진단한 사람이 그 처방으로 그 등록금에 상한을 두자고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캠프의 정책 수석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장하성의 인터뷰를 보자. 주로 재벌의 지나친 사업범위 확장과 재벌이 사회 곧곧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고 막상 정책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어서 논평할 거리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인터뷰의 주요 내용은 아니지만 눈에 거슬리는 얘기가 여기 저기 눈에 띈다.
- 국가가 발전하고 있음에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2만2000달러를 넘어선다고 한다. 2001년에는 1만1000달러였다. 개인 평균으로 보면 2배 정도 잘살게 된 셈이다. 그러나 격차가 심해지니 보통 사람들은 그 ‘2배’를 느끼지 못한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0년에 두배가 되기 위해서는 매년 약 7%씩 성장해야 하는데 한국 경제가 그렇게 성장하지는 않았다. 장하성의 주장은 2001년 대비 달러 대비 환율이 내려간 것을 무시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부정확한 주장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한 예만 더들면, 

- 한국은 경제사범에 대해 처벌이 관대한 편인가.

“(미국에서) 마이클 밀켄은 금융천재로 꼽힌다. 밀켄이 내부자 거래를 했다가 구속돼 종신형을 받았고, 벌금으로 거래금액의 10배가 부과됐다.

마이클 밀켄가 종신형을 받았다고? 감옥에서 얼마 있지도 않고 나와 재단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는 것으로 아는데?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내부자 거래로 구속은 되었지만 그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것은 다른 증권법 위반이었고, 형도 10년을 선고 받았고, 그것도 다른 동료들에 대한 재판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2년 형으로 감형되었고, 실제로는 감옥에서 22개월 살았단다. 벌금으로 거래금액의 10배가 부과되었다는 것은 나도 금시초문이지만, 적어도 내부자 거래 금액은 아니다  또, 그는 증권거래법 위반 죄를 인정하면서 벌금으로 2억불, SEC가 제기한 소송에서 투자자에게 4억불 상환, 드렉셀에 대해 투자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5억불 등 총 11억불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20억불의 자산가이다. 인터뷰가 있었던 날이 16일이라고 하고 기사가 나온 것은 22일이니 그동안 본인이나 신문사가 얼마든지 기사가 나가기 전에 사실 확인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짓이 버젓히 신문에 실리고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이것 뿐 아니라 그의 인터뷰는 사실이 아닌 얘기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장하성이 왜 이런 엉터리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모른다. 자기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되는 대로 갖다 대는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치꾼도 아니고 교수가 이렇게 사실이 아닌 얘기를 서슴없이 하다니?

세 사람의 인터뷰를 읽고 난 후 보면 막상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는 얘기를 한 사람은 김종인 뿐이다. 물론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안을 아직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다른 두 사람은 그 짧은 인터뷰 도중에도 부정확한 얘기와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신경에 걸린다.

어쨋든,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와 복수 노조 독자 협상을 새누리당이 채택하고, 또 그것이 양당 찬성으로 법으로 통과 되기를 기대해본다.

댓글 1개:

  1. 각당의 정책좌장을 평가할 수있는 주진형님의 해박한 정보와 탁월한 견해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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