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의 용: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서평 II

김종인이 지난 11월에 출판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는 사실 평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서평을 쓰는 것을 계속 미루어왔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여러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40년간 그가 교수, 국회의원, 장관, 경제수석 등을 거치면서 겪은 것을 회고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가를 정리하고, 또 그에 덧붙여 경제민주화를 위한 주요 정책과제도 분야별로 훑고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책을 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완결된 글로서의 촛점을 잃고 책의 각 부분을 단순 요약 서술하는 서평이 되기 쉽다.

그의 전력에 비춰봐서 그의 짧은 회고담은 70~80년대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특히 1977년 의료보험 도입에 관한 부분은 한국에서 복지제도 도입을 추진할 때 부딪치게 마련인 관료들의 현상유지 위주의 저항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약 반을 차지하는 경제민주화에 관한 부분은 아마도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에 관해 쓰여진 글 중 가장 읽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 글일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상호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경쟁과 평등은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누가 양보해야 하나? 자본주의가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둘 다 같이 살 수 있다. 누가 할 것인가? 국가가 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해야 한다. 그래야 둘 다 산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생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시장경제는 인간의 탐욕을 전제로 하지만 그렇다고 그 탐욕을 그냥 놔두면 필연적으로 경제력 집중을 초래하게 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국가 뿐이다. 국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그 개입의 대상은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을 해치는 독과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이 필연적으로 낳는 소득 양극화이다. 독과점을 놔두면 경쟁의 효율성을 해치고 소득 양극화를 그냥 놔두면 사회 불안정이 심화되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해친다.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재벌이 독과점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낳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사회 안정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시각은 전후 유럽의 신자유주의와 독일 기민당의 정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알려져 있는 신자유주의는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영미권의 신자유주의다. 규제완화, 민영화, 시장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라고 하지만 독과점에는 너그럽다. 그에 비해 2차대전 후 유럽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 심지어는 케인지안 정책에도 반기를 들면서 나타난 유럽의 신자유주의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신봉하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독과점을 엄격히 배격한다. 또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사회의 유대감과 안정을 해치는 소득 불균등에 국가가 사회적 기구를 통해 개입해서 완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를 인간의 자유를 완성시키는데 필요한 절대적 선이라고 본 헤겔과 그 이후 독일 철학계의 국가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가 바로 전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원천이었다. 1948년에서 1963년까지 15년간 아데나워 정부 기간 내내 경제상을 맡아 경제부흥을 이끈 사람이 바로 에르하르트였다. 그 에르하르트가 주창한 것이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가격 통제나 양적 통제 등 시장경쟁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면서도 독과점 역시 엄격히 배척했다. 이 때 그가 세운 독일경제체제는 지금까지도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국가가 국가적 기업을 운영하고, 정부가 시장경제에 직접 개입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김종인이 한국의 지식인들이 흔히 빠지는 외국 모델 추종론에 빠져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한국이 독일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그가 한국에서 경제정책에 참여하면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다. 유럽과 독일의 역사적 전통과 특수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지 유럽 지역이나 국가의 사회경제체제를 한국의 모델로 삼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정책가라면 세계적 차원에서 현대 국가가 직면하는 주요 흐름과 모순의 보편성을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살고 있는 특정 사회의 전통과 구조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다. 즉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이 같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예의 주시하면서, 행동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재벌 개혁을 주창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당분간은 재벌 개혁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런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한 훌륭한 해설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부문별 정책 과제에 대한 논의가 그 중대성에 비해 논의 수준은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요 정책과제에 대해 언급한 것들은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한 얘기들이 하나도 없다. 하나 하나가 모두 그것 하나만으로도 온 나라가 들썩일 정책 과제들이다. 또, 이들에 대한 그의 시각 역시 한편으로는 급진적으로 들릴만큼 신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만큼 대단한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하다. 예를 들면, 그는 교육과 보육을 복지로 볼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복지는 소득의 중단을 막기 위한 것인데 교육과 보육은 출산과 생산성을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퍼주기 타령을 할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또, 노동조합을 기업 밖으로 내보내야한다고 했다. 단순히 산업노조로 가자는 말에 그치는 주장이 아니라 노사관계를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적 관계가 되도록 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조와 기업 모두 펄쩍 뛸 얘기다.

국민연금제도에 관해서는 적립식과 부과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온 계층이 1960~70년대 근로자들, 즉 지금의 노년층인데 이들의 생계보장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기초노령연금에 관련된 논쟁의 핵심이 바로 이것인데, 그는 국민연금제도가 처음부터 잘못 고안되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이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국민연금을 깎는 쪽으로 개악한 것은 참으로 아쉬웠다. 그 당시 진보 진영 학자 중 유일하게 이 바보 같은 짓을 적극 비판한 것이 유종일 뿐이었을 정도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지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이를 추진했다는 이유로 유시민을 일 잘한 장관이라고 한단다.

그는 또 국민연금기금을 유가증권, 특히 주식 사는데 쓸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재정사업, 그 중에서도 출산율을 올리는데 쓰자고 한다. 이 역시 진작부터 누군가가 제기했어야 하는 문제의식이다. 지금처럼 적립기금이 늘어날 때는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 적립기금을 줄어들 때쯤 되면 주식을 팔아야 한다. 그 때가 되면 주식시장은 대폭락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지 않고 기업연금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착오다.

이 책에는 이런 뛰어난 통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그냥 지나가면서 놓치지 쉽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아주 평이하게 쓰여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에 관해 쓰여진 글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쉽게 읽히는 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장점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단점이 될 수 있다. 무겁고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주제인데 쉽게 풀어서 쓴다고 해도 일부 독자는 너무 어려운 용어가 횡행해서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또 다른 독자층은 도리어 깊이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그가 툭툭 던지듯이 언급하고 넘어가는 얘기 중에는 어지간한 독자가 아니면 그 깊은 의미를 모르고 지나가기 쉬운 것들이 많다. 또 그런 얘기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은 채 넘어가서 과연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기가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책은 어려운 주제와 쉬운 서술이라는 양자간의 긴장을 성공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나라에서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평이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쓰여졌다. 그러나 이 책에는 구체적인 정책과 액션플랜은 없다. 그는 서문에서 이를 차기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바쁜 일정 사이에 단기간에 써낸 책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또 써보았자 실행에 옮겨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짧은 책에서 많은 분야를 모두 다루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개별 정책 분야에서는 수박 겉핥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김종인 특유의 주옥 같은 통찰이 여기저기 그냥 널려져 있어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정책가로서 인정을 받고 난 후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책을 쓴 적이 없다. 치밀한 글을 쓴 지가 오래된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오랜만에, 그것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에 쓴 글이다. 주의를 기울여 읽는 독자만이 그 통찰의 편린을 겨우 엿볼 수 있다. 보일 듯 보일 듯 하지만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의 용 같다. 누군가가 그를 쫒아 다니면서 집요하게 그의 머리 속 생각을 더 끌어내었으면 좋겠다.

정책가는 일종의 교향악 지휘자와 비슷하다. 한 악기에 깊이 천착하는 대신 다양한 악기에서 나는 소리의 화음과 박자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 이 책은 그가 지휘자로서 들려주었을 지 모르는 음악의 일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그가 지휘하는 교향악을 들을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김종인을 논한다: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서평 (I)

한나라당의 변신과 김종인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의 당선으로 끝났다. 1년에 걸친 선거 과정에서 가장 큰 주제로 부각된 것은 경제민주화였다. 사실 이건 야당이 아니라 박근혜 덕이 크다. 야당이야 원래 그러련 하겠는데 여당 후보도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경제민주화는 모두의 과제가 되었고, 과연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촛점이 쏠리게 되었다.

그 경제민주화 논란의 한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었던 인물은 김종인이었다. 아마도 작년 정치권 보도에서 세 대선 후보를 제외하고 언론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이 김종인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재작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양당은 국민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야당은 단일화 경선에서 시민 운동가 출신 박원순에게 지면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아침에는 민주당이 버스를 대절하여 조직을 동원했지만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 시민들에게 밀렸다. 여당도 박원순에게 졌다. 토론과정에서 박원순은 준비가 안된 티나 너무도 났고, 선거 유세도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박빙을 예상했던 선거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보다 큰 차이인 7.2%의 표차로 박원순이 이겼다. 

그 후 한나라당 지도부는 궤멸했고, 예정보다 빨리 12월 중순부터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그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구성했을 때 당 외에서 영입한 인물 여섯 중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었던 사람이 김종인이었다. 그는 정책쇄신분과위원장을 맡아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이끌었다. 그는 한나라당이 창조적 파괴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서는 이상돈 교수와 함께 인적 쇄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압박했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한나라당 정책의 선두에 올려놓았다. 과거 한나라당으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변화였다. 박근혜 측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선택한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과감하기 짝이 없는 변화였다. 박근혜도 과감했고, 김종인도 과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한나라당의 변신에 반신반의했다. 한나라당의 과거 행적이나 새누리당의 이름을 바꾼 후의 행보만을 보면 의심할 만도 했다. 당내에서도 이러한 인적 쇄신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도 막상 이상돈과 김종인의 요구에 비해 인적 쇄신에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러한 새누리당의 변신은 성공했다. 박근혜는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의제 진지에 거침없이 쳐들어와 자기 것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고, 이명박 정권 심판을 외치는 야당의 주장에 김을 뺐다. 야당은 처음에는 차출한 인물 문재인을 내세웠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출몰한 인물 안철수와 단일화에 몰두하다가, 겨우 선거 2주일을 남기고 뒷북 캠페인에 나섰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왜 졌는지 모른단다. 자기들끼리 정리되고 나면 연락 주기를 바란다.)

모호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방안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막상 여당에서 그 경제민주화에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가 선거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새누리당 내에서도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정책 공약으로 가다듬어진 것은 11월 중순이었다. 일년 내내 가장 중요한 의제라고 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이 드러난 것이 선거를 겨우 한달 남겨둔 시점이라는 것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사실 이런 새누리당의 혼란에는 김종인의 탓이 크다. 그 동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대표적 주장자로 알려져 온 그가 작년 말 박근혜 측에 합류했을 때부터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김종인은 이에 대한 답변을 하는 대신 주로 경제민주화가 여당 내에서 주요 의제로 채택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만을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줄 곳 지금 자기 생각을 얘기하면 그것 갖고 싸움만 일어나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무엇을 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박근혜 후보가 빠르면 10월 중으로 대선 공약으로 무엇을 발표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정치과정에서 국회보다 집권자의 의지를 더 중요하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한나라당을 통한 혁신에는 큰 기대가 없었고, 그보다는 박근혜를 통한 혁신을 더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의 책 출간

 그런 김종인이 선거 바로 전 11월 중순에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을 냈다. 경제민주화를 한나라당의 정책으로 집어넣고 난 후 일 년이 거의 다 지나고 나서야 김종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를 설명하는 책을 낸 것이다.

출판 날짜가 묘하다. 11월 20일이다. 박근혜가 그가 위원장으로 있었던 행복추진위원회의 제안 중 일부를 삭제하고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한 것이 11월 16일었다. 그 후 약 20여일 간 그는 새누리당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사이에 책이 나온 것이다. 출판 시기로는 최악이라 할 만하다.

책을 출판한 시기가 이미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확정되고 난 후였기 때문에 이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방안 구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어떻게 박근혜 정책 공약으로 귀결될 것인가를 모를 때였다. 이미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발표되고 난 후에는 그의 흉중의 생각에 대해 한국 사회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한해 한국을 뒤흔든 경제민주화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김종인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진영 논리를 벗어난 김종인

김종인은 거의 30년에 걸쳐 시종일관 공개적으로 재벌의 탐욕스러운 행태에 대해 비판을 해왔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노태우 정권 시절까지 경제정책에 직접 참여하면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등 복지제도의 기초를 닦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87년 개헌 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남도록 공헌을 했고,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하면서 재벌들로 하여금 업종 전문화를 하도록 압박했고 투기를 위해 매집해 놓은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게 했다. 그 후에도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재벌의 탐욕을 막아야 한다고 했고, 후배들로 하여금 재벌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했다. 김상조, 전성인, 김우찬 같은 개혁 성향의 젊은 학자가 보이면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나서 격려하고 이들의 연구를 후원했다.

이는 보수 정부 직책을 맡거나 정부 정책에 참여했던 경제학자로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관변 경제학자들은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도 대부분은 공개적으로 재벌에 대해 각을 세우는 것을 꺼린다. 또, 관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처음에는 재벌에 대한 비판적인 소리를 내던 사람도 정부에 들어가거나 사회에서 알아주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 목소리가 잦아든다. 다들 한국 주류 사회에서 출세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가 알아서 말조심, 몸조심을 한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그처럼 일관되게 강한 목소리로 탐욕스러운 재벌과 소득 양극화에 소극적인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이 없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양분화된 한국의 정치 진영 논리를 뛰어 넘나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그의 할아버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잃고 조부 슬하에서 컸다고 한다. 그의 조부 김병로는 의병 운동에 참여했고,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고,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정권에 대항했고, 박정희 정권 초기 야당 대표를 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김병로는 정당 내력 만으로는 야당 인사지만 보통 한국의 보수 야당 인사와는 조금 다르다. 신간회 시절부터 좌우 대화와 타협을 주장했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강화되자 아예 경기도 양주에 내려가 13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타협을 거부했고, 해방 후 처음에는 독자 정권 수립을 반대하고 좌우합작을 주장했고, 무상 토지개혁을 주장하면서 한민당 내에서 충돌했다. 그 험난한 시대에 자기 삶을 통해서 권력과 금력에 굴하지 않은 모습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젊은 청년 시절 조부의 비서로 야당 정치를 경험한 그는 조부 사후 독일 유학에 갔다가 돌아온 후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정책에 참여했다. 5공 시절 비례대표로 국회의원들 두 번 했으며, 노태우 정권에서 보사부장관과 경제수석을 지냈다. 비록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갈라져있던 시절 민주당 전국구 의원을 한번 더 했지만 사회경력 만으로 보면 보수 쪽에 가깝다. 혹시 젊은 나이에 조부를 통해 알게 된 야당인사들의 행태에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의 정책 노선은 지난 30년 간 항상 진보에 가까웠다. 비록 한국에서 진보라는 용어가 운동권의 급진적 성격 때문에 오염이 된 면이 있으나, 시장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과 사회통합을 위한 복지증대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진보진영의 주장과 같다. 그는 박정희 정권시절 의료보험과 재형저축을 주장해서 관철시켰고, 기업 노조가 아니라 산업노조를 도입하는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다.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의 위험에 대해 경종을 울렸고, 재벌의 탐욕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회통합을 위해 복지체제 강화를 강조해왔다. 외환위기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재벌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했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를 부담스럽게 느껴 그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김종인을 보면서 느끼는 혼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야당 집안에서 태어나 보수진영에서 일했는데 막상 그가 주장하고 추진한 정책은 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이었다. 보수 정권에 있으면서 복지제도 강화를 주장했고 재벌 개혁을 밀어붙였다. 김대중이 구조조정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했고, 노무현이 재벌 개혁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고, 소득 양극화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권의 규제완화, 감세, 기업친화정책을 정신 나간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신의 신조를 펼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5년 전 줄푸세를 주장하던 박근혜를 돕겠다고 나섰다. 못 말리는 독자행보(도꼬다이)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돈키호테적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한자리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면서 노욕, 노추라고 깎아 내렸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그가 나이가 들면서 자기의 꿈을 실현해 줄 정치가나 나타나지 않자 초조해진 것은 아니냐고 했다. 언론에서는 그가 말하는 주장 보다는 주로 언제 그가 박근혜와 충돌해서 자발적으로 나가거나 팽을 당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진보 언론은 박근혜과 새누리당이 겉으로만 이미지를 변신하는데 그를 이용하고 있다고 빈정댔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는 이렇게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고 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종인은 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만의 행보를 계속해왔다. 한국의 진영 논리를 벗어나, 자신의 정책 경험에 기반을 두어, 재벌 규제와 복지국가를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이를 실행에 옮길 대통령감을 찾아왔다.

김종인의 선택

이명박 덕분에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소득 양극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데에 합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가 기존의 한나라당 정책 노선을 이 정도까지 수정하게 된 것은 가히 혁신적이라 할 만하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박근혜의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여기까지 왔을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김종인은 한국사회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여당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당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쇄신이 되어야 한국 사회의 쇄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는 그 쇄신을 위해 박근혜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 그의 판단이 맞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이념적 주장이 횡행하고, 교활한 정치논리가 설치고, 집요한 이익집단의 억지가 버젓이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김종인만큼 줏대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온 지식인의 사고와 경험이 담겨 있는 책을 선거가 끝났다고 그냥 넘겨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계속)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가계부채 해결: 금융권의 손실 분담 없이는 불가능하다

I. 두마리 토끼: 경제민주화와 경기 불황 탈출

대선 최대 이슈로 제기되었던 경제민주화는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소득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불만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만 보면 박근혜는 적어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경제민주화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인식은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지금과 같은 소득 양극화가 지속되면 안정적인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소득 양극화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5년 안에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에 의한 국내 산업구조 조정 (또는 그 구조조정의 부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 불공정 거래, 대기업 귀족노조와 비정규직 간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불공평한 세금체계, 취약한 사회 안전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박근혜가 제시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모두 시행한다고 해도 그 정책적 효과가 드러나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릴 뿐만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소득 양극화가 만족스러울 만큼 해소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에 비해 차기 정부는 출범을 하자마자 심각한 경제 현안을 직면할 것이다. 당장은 경기 침체와 과중한 가계 대출 문제, 그리고 그에 따른 금융권 부실채권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또,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들의 배후에 자리잡은 소득 양극화, 출산률 저하의 문제를 그냥 두고 있을 수도 없다. 경제민주화와 경기 불황 모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 현안을 살펴보자. 그 중에서도 이번 글에서는 주로 거시경제 안정에 영향을 주는 금융 관련 이슈에 집중하고, 특히 가계 부채 및 부실채권 대응 방안을 정리하고자 한다.

II.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 현안 

아직 최종 숫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3/4분기의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 대비 1.5%에 그쳤는데 그 중 내수가 공헌한 것은 0.5%에 그쳤고, 대외부문이 공헌한 비율은 1.0%였다. 정부는 세계 경기 둔화를 이유로 둘러대지만 작년 한국의 경상수지는 여전히 흑자였다는 점에서 현재의 경기 침체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경기 침체는 대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수 침체가 더 큰 원인이다.

지출 항목별 성장기여도



2010
2011
2012(3/4)
총생산
6.3
3.6
1.5
내수
7.0
2.0
0.5
    민간소비
2.4
1.2
0.9
    정부소비
0.5
0.3
0.5
총자본형성
1.7
-0.3
-0.6
재고증감
2.5
0.8
-0.3
순수출
-0.6
1.8
1.0

이러한 내수부진은 지난 5년 동안의 기업부문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전체 근로자 실질 임금이 하락한 것과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소비 수요가 정체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미 부동산 경기 하락이 시작되었지만 정부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던 중 세계적 금융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대마불사가 아니라 전마불사 정책을 써서 거의 전방위적으로 부실채권 처리를 지연했다. 채권단이 부실한 건설기업을 부도처리하지 못하도록 대주단협약을 만들었고, 정부 기금으로 부실대출을 사들였다. (자세한 것은 여기) 가계대출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계 대출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분양된 아파트들의 입주시기가 왔을 때 집단대출이 가계대출로 전환되지 않으면 대규모 미입주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집권 기간 중 문제가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이명박 정권의 이해와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맞아떨어지면서 가계 대출은 계속 늘어만 갔다. 대출은 늘었지만 부동산 값이 계속 떨어지자 결국 하우스 푸어란 소리가 돌게 되었고, 국내 소비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김영삼 정부 때 기업 부실문제를 도외시하던 것과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지속되는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정책을 쓰지 못한 것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에 이 문제를 방치했기 때문에 정권 후반에 가서 이를 들추어내기가 거북해진 것이다. 남은 일은 그저 자기 정권 기간 중 큰 일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금융권의 잠재적 부실 누적 문제는 더 이상 눈감기 어려운 지경에 왔다. 특히 다중채무자 가계부채, 부동산 PF, 중소형 조선사, 환율하락에 따른 중소기업 도산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성규의 칼럼을 권한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관련 선거 공약을 구현하기 위한 입법에 착수하되 이와 동시에 경기 침체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거시 및 금융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통화, 재정정책의 모든 수단을 경기 침체 가속을 막는데 동원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GDP 2~3%에(25~35조원) 해당하는 재정지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거론되는 6조원 정도의 추경예산은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 상황은 균형재정에 연연할 때가 아니므로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증세를 연기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금리 역시 추가 하락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비해 환율정책의 역할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미국과 일본이 모두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정책 상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부동산 시장과 가계 부채 문제가 경기회복을 저해하고 금융위기로 진화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재부와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면서 책임을 회피해왔다. 그러나 자고로 이러한 내부자적 시각에 빠져 미봉책으로 대처하는 관료집단의 의견은 신뢰하기 어렵다. 1997년 가을에도 재경원 관료들은 외환위기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다가 IMF 사태 초래했다. 미국의 폴슨 재무장관과 버낸키 연방은행총재는 2008년 봄까지도 모기지 부실에 의한 은행권 손실을 2-3천억불 정도로 과소평가했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한국 특유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위험도 역시 매우 높다. 금감원 발표에 의하면 2012년 6월말 전체 가계대출(870조원)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포함한 부동산 담보대출이 425조원이고 신용대출이 445조원이다. 주택담보 대출 중 모기지 대출(약 50%?) 못지않게 자영업자가 기존 주택을 담보로 빌린 대출이 많다. 이에 반해 외국의 경우 가계대출의 80%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빌린 모기지 대출이다. 이미 있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대출(Home Equity Loan)은 모기지에 비해 위험이 높은데도 아직 한국에서는 대출 목적별 대출 상품의 분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은행권 대출 대비 비은행권 대출비율이 높다. 각각의 대출이 약 50%다. 그러나 비은행권 대출에 대한 이자비용이 월등히 높고 연체율 역시 매우 높다. 신용협동조합이나 저축은행의 가계 대출 연체율은 10%를 넘는다. 그 결과, 동일한 주택에 저당권을 걸어놓은 채권자가 다수 존재한다. 그래서 연체가 발생할 때 적절한 채무 조정 경로를 찾기가 어렵다. 채권자간 이해 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가계 대출은 LTV를 제외하면 외국에서는 대부분 서브프라임으로 분류할 만한 대출이다. 주택담보 대출 중 약 80%가 이자만 내는 대출이고 이는 다른 대출도 마찬가지다. DTI 규제가 있지만 실제로 DTI 규제 대상 주택담보대출은 전체 주택담보 대출의 20%에 불과하며 그 DTI 한도비율도 외국에 비해 매우 높다.

한국의 가계 대출 구조가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금융당국의 상호모순된 정책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부동산 정책으로 경기 조정을 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권 부실을 우려해서 담보가치 대비 대출 한도를 낮게 규제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정책 조합이 현재와 같은 한국 특유의 가계대출구조를 낳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 국민이 부동산 투기에 참여하도록 조장해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의 대출 비율을 눌러놓았으니 자연스럽게 풍선효과처럼 그 대출수요가 신용대출과 비은행권 대출로 흘러간 것이다.

이러한 대출이 지속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주었기 때문이다. 대출 시 담보비율만 지키면 소득이나 상환능력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정체 및 하락하면 지금처럼 순식간에 전체 구조의 취약성이 노출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과 관료들은 LTV 비율이 낮고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높아서 한국의 가계 부채가 시스템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이는 책임 회피성 또는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홍보성 발언에 불과하다. 관료들의 이런 행태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2009년 은행의 대출은 예금 대비 130%에 달했었다. 이 예대비율에 대한 우려로 한국만 환율이 급등했을 때 정부는 CD 조달금액을 예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변했다.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장이었던 서울대 교수 출신 이창용은 아시아판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와 같은 취지로 기고를 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금융위 관료들은 앞으로는 이런 억지를 부리면서도 뒤로는 슬그머니 CD를 제외한 예금만을 인정하는 예대비율 기준으로 바꾸었다.

가계부채 문제는 일단 발생하고 나면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원금 상환 유예, 장기대출전환 등 구조적 취약성을 경감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이는 애초부터 부분적인 성과 밖에 기대할 수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개인회생절차를 통한 채무탕감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임 추궁과 금융시장 불안 증가를 두려워하여 근본적 수술에 착수할 용기를 관료들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또, 수많은 대중을 상대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지 않을 방안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박근혜가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 방안은 실현 가능성도 낮고 설사 실현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이 계획에 의하면 1,000만원 한도로 비은행권 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은행대출로 전환해주겠다고 한다. 금융권의 연체채권을 매입하여 채무감면을 해주겠다는 것은 매입가격 결정 과정에서의 논란은 물론 대출자들의 연체 유발 등 도덕적 해이 위험이 매우 높다. 또, 도리어 은행권 밖 시스템적 위험을 은행권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1.8조 기금을 기반으로 국채를 통한 18조 자금 조달 계획 역시 설사 실현된다 해도 900조원에 달하는 전체 대출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아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가 앞으로 5년에 걸친 집권 기간 중 대규모 부실 발생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기간 중 처리를 지연시켜왔지만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 지연시 일본식 장기침체의 위험만 높아진다. 정권 초기에 과감하게 가계 부채 관련 부실채권을 도려내어야 통화 및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회복도 가능해진다.

III. 가계대출 부실채권 대책 

이러한 인식과 각오 아래 향후 정부는 두 방향에서 가계대출 부실채권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Two Track Approach)

첫째, 가계의 주택 소유권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권의 부실은 그 다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개인회생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개인파산, 회생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기) 다중채무자의 빚에는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빌려준 금융회사의 책임도 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 채무자가 빚을 갚기 어려울 때 차압 압류 및 경매 보다 금융권이 손실을 더 부담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둘째,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연체가 없는 채무자에게는 은행권 LTV 조건을 완화하여 이자거치기간이 없을 경우 최대 80%까지 재대출을 허용하되 대신 DTI 규제는 현행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가. 강제 채무 재조정


다중채무자들이 연체를 하게 되면 비은행 대출부터 연체를 할 것이다.

그 경우 후순위 채권자들은 비록 채무액이 작아도 원금회수를 위해 채무자의 주택을 차압 압류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채무자는 집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런 가구가 늘수록 경매시장에 나오는 주택도 늘게 된다. 이는 다시 주택가격의 하락을 초래한다. 이는 담보액 대비 부채의 비율을 올리게 된다. 이자만을 내다가 원리금을 모두 내야 할 시기가 되어서 다시 거치기간이 있는 재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경우 재대출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채무액 대비 집값이 담보비율을 못맞추기 때문이다.  

다중 채무자의 채권기관이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앞다투어 차압 압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채무 조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중채무자가 기존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채권 금융기관들이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채권자들 사이의 이해 관계를 교통정리 할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다중채무자의 부채를 한곳에 몰아 관리하는 것부터 해야한다. 이런 면에서 오늘 매경기사는 반가운 얘기다. (다중채무자 빚 1곳 몰아 관리) 한 곳에 몰아 빚 잔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워크아웃을 통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손실을 분담하게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기존의 신용조정 경험이 있는 신용회복위원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당연히 금융기관들은 저항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부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싫어하더라도 쓴 약을 억지로 목구멍에 쑤셔 넣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어로는 이를 cramdown이라고 한다.)

정부는 연체 발생 다중채무자에 대한 금융회사 간 채권 순위별 손실 분담과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퇴임을 앞둔 김석동이 행복기금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이해할 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말하듯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일이라는 그냥 놔두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다. 비은행권 채권자가 먼저 빠져나가려고 채권 회수를 들어가 서로 먼저 차압 압류 경쟁에 들어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연체발생 부채에 대해 대출조건을 변경하여(대출만기 연장, 이자 감면, 원금 일부 탕감 등) 금융회사가 부담하는 손해액에 비례해서 정부가 금융회사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 문제를 어느 정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출조건 변경 후 더 이상 연체를 하지 않으면 채무자에게 추가로 원금의 일부를 탕감하는 금전적 유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나. 재대출 조건 개선

지금부터라도 한시 바삐 모기지 대출의 담보비율은 올리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은 낮추어야 한다.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는 소비자 보호를 무시한 금융권의 대출 관행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지금 같이 LTV 조건은 엄격하고 DTI 조건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채무상환능력을 무시하고 채권자의 채권회수만을 추구하는 나쁜 대출 관행의 결과다.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 뿐만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개선이 시급하다. 거치기간 없는 모기지 대출의 경우 LTV비율을 최대 80%까지 상향하고 사업자금을 위한 일반 주택담보대출 LTV도 상향조정해서 비은행권 대출과 신용대출을 은행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DTI를 40% 아래로 낮추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담보비율 한도를 올려도 DTI 기준 때문에 재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양 기준의 조정은 점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다른 금융자산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적격 모기지를 신청할 유인을 주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DTI 비율이 일정 기준보다 낮은 모기지 대출의 경우, 소득세에서 이자비용을 일정 한도내 공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본인이 거주하는 주택과 장기 고정금리 대출에게만 추가로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도 재대출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위에서 말한 강제 채무 재조정으로 넘겨야 한다.


IV. 마치면서

이러한 정책은 비은행권에 대규모 부실 채권 및 도산을 발생시킬 것이다. 하지만 무슨 정책을 쓰던 간에 피할 수 없다. 전체 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만이 남았다.

우선 예금보험 대상이 아닌 금융기관에 대해 공적자금을 이용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적기시정조치와 증자, 및 인수합병을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혹시라도 금융시장 혼란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여 대처해야 할 것이다.


비은행 금융기관은 물론 은행도 저항할 것이다. 아직도 은행은 낮은 LTV와 채권순위상의 우위 덕분에 자신에게 돌아올 1차적 부실부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부동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 다중 채무자에 대한 비은행권 채권이 급격하게 부실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은행권에도 부동산 부실채권에 따른 대규모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은행의 대형 부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국가 경제적인 피해는 막심할 수 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다가오는 거시경제정책 최후의 심판, 어떻게 피할 수 있나 (II)

그러면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무엇으로 경기 조절을 했나?

신용정책, 부동산 정책, 그리고 환율정책으로 했다. 금융권의 대출 관련 규제를 주물러서 대출량 조종을 통해 경기조절을 했다. 그러다가 부실채권이 쌓이면 정부기관이 나서서 부실채권을 사주었다. 또 조금만 경기가 나빠도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모두들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부동산 관련 세제를 수시로 바꾼다. 또 다른 수단은 우리는 수출 밖에 없다고 하면서 외환 시장에 개입해 환율 절하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돌아온 노병 강만수가 들고 나온 것이 환율절하에 의한 수출경기 진작이었다. 한국의 관료는 경기부양을 원하는 정권의 요구에 이 세가지를 번갈아쓰면서 살아왔다. 

각 정권 별로 들여다보자. 외환위기를 졸업했다고 선언하자마자 김대중은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다. 분양가를 자율화 했고 당첨된 아파트 전매를 허용했다. 제발 투기해달라고 초청하는 꼴이었다. 노무현 시절 달아올른 부동산 투기 열풍에는 김대중 정권 시절 풀어준 부동산 정책이 한 몫을 했다. 환율은 외환위기로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져 있어서 굳이 대규모로 조작에 나설 필요도 별로 없었다. 김대중정권 기간 중 시작된 외환시장 안정용 국가채무는 2002년 말 20.7조원에 불과했다. 이 돈으로 달라를 사들여서 이자율이 낮는 미국국채에 투자했다. 대신 벤처 붐을 일으키고 신용카드 대출을 급격히 확대했다. 2003년 카드사태가 터지기 전 카드대출 액수가 250조원에 달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정권이 물려준 카드 사태가 잦아지자 2003년 말부터 이헌재가 건설경기 활성화를 들고 나왔다. 균형국토개발을 한다는 핑계로 토지보상금을 100조원 가깝게 뿌렸다. 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 돈으로 달라를 사들여 환율시장에 대규모로 개입했다. 2002년 말 20.7조였던 외환기금용 국가채무가 2007년 말에는 89.7조로 69조가 늘었다. 5년간 국가채무가 총 165.4조원이 늘었는데 그 중 42%를 차지한다. (133.8조에서 299.2조로 증가) 총 165.4조 늘은 것 중 예보채권을 국채로 전환하면서 생긴 국가채무가 52.7조(증가액의 31%)이니, 이를 제외하면 노무현 정부 기간 중 늘어난 국가채무의 2/3가 외환기금용 채무인 셈이다. (69/112.7=62%) 노무현정권 기간 중 재정적자가 평균해서 연간 GDP의 0.4%에 불과했는데도 국가채무가 많이 늘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토지보상금은 토지공사 부채로 잡혀 국가채무에는 안 잡힌다. 땅을 팔아서 원금 환수가 얼마나 되는가가 관건이다.)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환율절하를 추진했고, 꺾이기 시작한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온갖가지 애를 다 썼다. 외환채무는 2007년말 89.7조에서 2012년말 155.7조로 66조가 늘었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 증가액 69조와 비슷하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랍시고 스무가지가 넘는 몸부림을 쳤다. 가계대풀도 계속 늘도록 방치했다. 아니 미소금융이니 하면서 더 조장했다.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 가계 채무 증가액은 더 크다. 2008년 중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몰아치자 2009년 추가 경정예산을 짜서 재정지출을 늘렸지만 조금 잠잠해지자 금방 다시 균형재정기조로 돌아갔다.

이렇게 정통적인 거시정책 수단은 무시하고 불건전한 경기조절 정책을 쓰면 후유증이 남는다. 작금의 한국경제가 바로 그 증거다. 침체하는 내수경기를 빚을 늘려 지탱하려고 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빚을 내서 산 땅과 아파트의 값이 계속 올라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비싸져서 새로 살 사람이 없다. 부동산 값이 내려가면서 이제는 빚 갚을 일만 남았다.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환율을 높혀 수출로 경기 부양을 꾀헀다. 대기업 수출 채산성은 늘었지만,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들은 그 덕분에 구조조정을 피하고 버텼다. 이제 환율이 다시 내려가면 또 다른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지금부터는 과거의 비정통적인 거시정책의 후유증에 시달릴 일만 남았다. 가계부채 문제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신용팽창 정책을 쓰기 어렵다. 부동산 경기는 장기 침체만 남았다. 활성화는 꿈도 못꾼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환율이 절상되고 있다. 시장개입으로 절하를 추진하려면 흐르는 강물에 거슬러 헤엄치기는 것처럼 힘만 들고 중간에 익사하기 쉽다. 그동안 미루어온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생겼다.

정통으로 돌아가자. 아무러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밖에 남은 게 없었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거꾸러지는 와중엔 통화정책이 별 힘을 못쓴다. 그러니 재정정책 밖에 남은 게 없다. 다행히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좋다. 금융성채무를 제외하면 GDP의 17%에 불과하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재정적자 걱정하지 말고 과감히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야당은 그런다고 비난하지도 말아야 한다. 배운 것 좀 써먹어보자.

다가오는 거시경제정책 최후의 심판, 어떻게 피할 수 있나? (I)

한국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논의에는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른 특징이 있다. 거시 경제정책의 실종이다. 특히 재정정책의 실종이다. 경기조절을 위해 현대 국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정책수단이 재정정책과 통화 정책이다. 그런데 한국은 재정정책은 완전 실종상태에 가깝고, 그나마 통화정책이 아주 약한 숨을 쉬고 있다. 대신 신용정책, 부동산정책, 환율정책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은 당연히 후유증을 남긴다. 지금 한국 경제가 겪는 고통, 즉 가계부채, 부동산 버블 붕괴, 내수경기침체 등이 바로 그 후유증이다. 더 이상 옛날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경기 조절을 재정정책으로 하기 시작해야 한다.


개별 시장의 움직임을 다루는 미시 경제학에 비해 거시 경제학은 국가 경제의 생산, 실업, 물가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경기 호황과 불황, 일자리와 실업, 물가, 이자율, 환율 같은 문제는 일반 시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굳이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도 자연스럽게 거시경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시경제학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막상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경기조절 수단으로 갖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전부다. 재정정책은 경기가 나빠질 때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낮추어서 투자나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통화정책은 주로 인플레를 조절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해서 소비와 투자를 조정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보통은 환율정책을 거시정책의 수단으로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율은 상대방 국가와 자국 통화 사이의 상대적 교환가치 비율이어서 한 나라의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의 서구 국가들은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드물다. 금리정책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금리정책에 부수되는 결과일 뿐이다.경기 조절을 위해 직접 외환시장에 뛰어드는 나라는 드물다.

이와 같이 경기와 실업 및 인플레 등의 거시 경제 이슈가 일반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거시 경제 조절 수단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기 때문에, 서구국가들에서는 정치권 뿐만이 아니라 언론에서도 항상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대한 논쟁이 주요 주제다. 증세와 감세, 재정적자와 흑자, 이자율 상승과 하락이 허구헌 날 신문의 주요 기사다. 그 중에서도 선거 철이 오면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 조세와 재정정책 기조다.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에게 독립성을 주었기 때문에, 정부 교체를 통해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이 조세와 재정지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조세나 재정정책이 선거에서 논란 거리가 안된다. 조세정책이 대통령 선거 이슈로 처음 등장한 것이 2007년 선거였다. 종부세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부세가 부동산 경기에 미칠 영향 때문이었다. 조세 수입으로는 미미한 액수(2~3조)에 불과하다. 전반적인 조세정책에 대한 논쟁은 전혀 없었다. 재정지출에 관한 논쟁은 아예 없었다. 감세를 하겠다는 이명박의 공약도 선거 이슈로는 부각되지도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그때까지 감세가 중요 이슈로 제기된 적도 없고, 그 당시 유권자들 사이에서 감세정책을 보고 이명박을 뽑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는 바닥을 헤메는데 아무도 현재와 같은 재정정책 기조가 적절한지에 대해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두 후보 모두 주장했지만 증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러면 재정적자를 일으켜서라도 복지를 늘리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 말도 안했다. 아예 2012년 경기 불황과 2013년 경기에 대한 대책이 아예 거론도 안되고 선거가 끝났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왜 거시경제정책, 특히 재정정책이 선거 기간 중에도 이슈가 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한가지 이유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가 모두 균형재정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예 얘기 시작 단계부터 적자재정을 일으키면 크게 잘못인 것처럼 생각한다.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을 "인위적 경기부양"이라고 하여 여야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보수는 물론 진보 언론도 같은 생각이다. 노무현도 인위적 경기부양정책을 쓰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헐! 아니, 인위적 경기부양 말고 다른 경기부양이 있나?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정치권은 그것을 핑게로 눈을 부리리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최근 박근혜 6조 국채 운운하고 야당이 시비를 걸자 전격적으로 다른 예산을 깎는 것으로 마무리진 것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시 경기 조절을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하지 않아온 과거 습관 탓도 크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재정정책을 거시 경기 조절에 동원하지 않고 살아왔다.


2013년 1월 7일 월요일

재정정책 실종 국가: 경제 불황기에 왠 균형재정?


작년 한국의 GDP 성장률은 2%에 그쳤다. 그런데도 재정 적자가 겨우 GDP 대비 1.6%였다. 201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인데도 이명박 정부은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았다. 여당 역시 재정지출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언론의 비판도 없다. 지금처럼 재정정책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현 상황은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다.

지난번 글 <넌 누구냐?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비율>에서는 주로 대차대조표 상 자산을 고려하지 않고 부채만 부각시키는 것의 오류에 대해 얘기했지만, 오늘은 한국의 재정적자에 관한 실제 데이터를 보자. 그러면 한국에서 재정정책이 정치적 이슈로 제기되지 않는 것이 왜 이상한지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아래 표를 보기 전에 말해둘 것이 있는데, 낯선 용어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는 재정적자를 얘기할 때 통합재정 수지와 관리재정 수지로 나누어 본다. 대다수 사람들은 통합재정과 관리재정이 무슨 뜻인지 모를텐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관심을 둘 것은 관리재정 수지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여전히 더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해 부언하면, 통합재정은 정부기관의 모든 세입과 세출의 차이다. 지방재정, 공공성 공기업이 모두 포함되었다는 뜻에서 통합재정이라고 부른다. 관리재정은 여기에서 사회보장성기금 흑자와 공적자금 상환액을 제외한 수지이다. 정부차원에서 관리 대상인 수지란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사회보장성기금은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기금 등을 뜻하는데 이것은 연간 재정예산계획 대상이 아니어서 관리대상도 아니다. 최근 들어 고용보험기금에서 약 2조 정도 적자를 보지만 국민연금 등의 흑자가 워낙 커서 이를 빼고나면 항상 관리대상수지가 통합재정수지보다 적자 규모가 더 크다.)


정부지표를 설명하는 사이트에서 통합재정수지에 관한 페이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2002년 이전 데이터는 내가 추가한 것이다.)   




통합재정수지 통합재정수지/ 관리대상수지 관리대상수지/
  (조원)  GDP(%) (조원)  GDP(%)
1997 -7.0 -1.4 -12.8 -2.5
1998 -18.8 -3.8 -24.9 -5.0
1999 -13.1 -2.4 -20.4 -3.7
2000 6.5 1.1 -6.0 -1.0
2001 7.3 1.1 -8.2 -1.3
2002 22.7 3.2 5.1 0.7
2003 7.6 1.0 1.0 0.1
2004 5.2 0.6 -4.0 -0.5
2005 3.5 0.4 -8.1 -0.9
2006 3.6 0.4 -10.8 -1.2
2007 33.8 3.5 3.6 0.4
2008 11.9 1.2 -15.6 -1.5
2009 -17.6 -1.7 -43.2 -4.1
2010 16.7 1.4 -13.0 -1.1
2011 18.6 1.5 -13.5 -1.1
201218.51.3-17.4-1.3

































           2013                    14.2                      1.0                  -21.1                     -1.5           2014                      8.5                      0.6                  -29.5                     -2.0
           2015                     -0.2                      0.0                  -38.0                     -2.4


한가지 특징적인 사실은 2003년에서 2007년, 즉 노무현 정권 도중 국가 재정 기조가 줄곳 흑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 기간 중, 정부가 제시한 예산은 항상 나중에 결산을 해보면 예상보다 수지가 호전되었다. 예상 세수보다 항상 더 많이 걷혔고 예상 지출보다 덜 썼다. 한두해도 아니고 매년 그런 것을 보면 복지지출을 늘이고 싶어하는 정권에 대항해서 일부러 세입을 비관적으로 짠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할 만하다. 이러한 보수적 재정 추정치는 이명박 정권에서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2010년과 2011년 정부 예산에 의한 관리수지 적자는 GDP대비 각각 -2.7%와 -2.0%였는데 실제로는 두해 모두 -1.1%에 그쳤다. 이렇게 관료들은 항상 예상 수입을 과소 추정하고 지출은 과대 추정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 재정 적자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일면 기사로 자주 등장한다. 당연히 그 규모에 대한 언급이나 GDP 대비 비율도 자주 회자된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재정적자가 중요한 정치 이슈로 취급받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전번 글에서 말했듯이 정부관료는 물론 여야 정당 및 언론 마저 모두 균형재정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장기에 걸친 균형재정이 아니라 매 해마다 균형재정을 달성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경제가 불황에 빠져도 재정 지출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약하다. 재정 적자 규모가 항상 미미하고, 따라서 재정 적자 자체가 이슈로 등장하기 어렵다.

한국의 재정 적자가 얼마나 국가 경제에 비해 미미한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위 정부지표 사이트에서 가져온 표를 보자. 



<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재정수지 개선 폭  >
(단위: GDP 대비, %)        

한국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선진국평균
통합재정
관리대상
’10년
1.4
△1.1
△10.5
△9.4
△4.3
△7.1
△9.9
△7.7
’11년
1.5
△1.1
△9.6
△10.1
△1.0
△5.3
△8.7
△6.6
개선폭
0.1
-
0.9
△0.7
△3.3
△1.8
1.2
1.1
 * IMF Fiscal Monitor('12.4월),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 결산치('11년은 결산 잠정치)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모두들 균형재정 도착증에 빠져 있어서 재정정책의 역할이 거의 없다. 심지어 세계적 금융위기가 가장 심각할 때 추가로 재정지출을 늘린 2009년, 한국의 재정적자가 겨우 -4.1%였다. 한국이 균형재정 도착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경제가 불황에 빠져도 재정 적자가 미미한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기가 하락하면 세수가 감소하고 세출이 증가한다. 세수가 감소하는 이유는 소득이 떨어지면 개인소득세와 법인 소득세 수입이 줄기 때문인데, 개인 소득세에 누진성향이 강할 수록 세입 감소가 더 두드러진다. 세출이 느는 이유는 경기가 나빠질수록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지출이 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가 한국보다 잘 구비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평시에 재정이 균형재정에 가깝던 나라도 경기가 나빠지면 재정적자가 급속도로 증가한다. 또 그런 덕분에 경기 회복이 그만큼 빨라지기도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GDP에서 개인소득세와 법인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서 경기가 나빠진다고 해도 세수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지출의 증가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추가 경정으로 회계기간 중 지출을 추가로 늘리지 않는 한 경기가 하락해도 재정적자가 별로 늘지 않는다.

작년 한국의 재정적자가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1.6%에 그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도면 국제 기준으로 보아 균형재정이 가깝다.

그래도 어쨋거나 GDP 대비 -1.6%이니 균형재정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재정적자는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감세정책을 반영한 숫자다. 약간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흑자재정이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전에는 세수가 GDP의 21%였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이것이 19%로 떨어졌다. 세수를 GDP대비 2% 감소시키고 난 결과가 1.6%의 재정적자로 나타났으니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재정흑자가 나왔을 것이다. 감세를 하지 않는 대신 그만큼 재정지출을 늘렸어도 재정지출확대에 의한 승수효과로 재정적자가 -1.6%보다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재정부 장관 박재완은 지난 9월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적정 채무비율이 30%라고 주장했다. 2016년까지 채무비율을 30%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란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소리다. 지금 한국이 국가채무비율 감축 목표를 운운할 나라인가? 실제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17%이고, 잠재 성장률 대비 실제 성장률의 격차가 GDP 대비 약 3%에 이르도록 인력과 설비가 놀고 있는 나라에서 국가채무비율을 왜 2016년까지 30%로 줄여야 하나? 정 줄이고 싶으면 금융성 채무를 줄이면 된다. 외환시장 개입을 줄이고 택지 조조성, 아파트 건설, 주택자금대출을 줄이면 된다.

균형재정 도그마, 하루라도 빨리 깨어나야 한다.

2013년 1월 3일 목요일

넌 누구냐?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비율

이 블로그에 와서 글을 읽을 정도인 사람이면 교육층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시사나 경제에 관심이 있는 축에 속한다. 그러면 물어보자. 당신은 작년(2012년) 한국의 예상 재정적자 규모를 아는가?

물론 모를 것이다. 

당신만이 아니다. 나도 어제까지 몰랐다.

새로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가 채택해야 할 올해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글을 준비하면서 작년 재정적자 숫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대강의 감도 안잡혔다. 평시에 거시 경제 통계의 주요 지표를 눈여겨 보는 습관을 갖고 있는 내가 한국의 예상 재정적자에 대해 감이 없다는 것은 작년 내가 읽은 책과 기사 중 이를 언급한 글이 없다는 것을 뜻할 수 밖에 없다. 

2012년이 이미 지나갔는데 아직도 추산을 안해보았나? 그럴리 없다. 재정 적자는 기업으로 치면 연간 손익이다. 하다못해 어지간한 규모의 중견기업에서도 늦가을이 되면 연말기준 예상 수익과 손익을 추정한다. 하물며 국가 재정을 다루는 중요한 통계를 아직도 추정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미 보도가 되었는데 내가 놓쳤을까? 온라인 검색을 해보았다. 놀랍게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언론에는 아예 보도도 되지 않았다.

사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한국의 언론은 정부재정 적자에 대한 보도에 인색하다. 일년에 한번 전년도 결산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 뿐이다. 정부가 보도자료를 뿌려야 보도된다. 그리고 그게 다다. 재정 결산은 이미 지나간 상황에 대한 회계적인 작업이므로 경제 뉴스로서 가치가 없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면 그 대신 예상 재정적자는 관심사여야 한다. 실제로 검색을 해보면 다른 나라의 예상 재정적자가 얼마인가에 대한 기사는 많다.

어떻게 다른 나라의 예상 재정적자는 보도를 하면서 자기나라의 예상 재정적자는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일까? 받아적는게 주업인 한국의 언론을 탓하지 말자. 한국 정부나 그 많은 정부와 기업 연구원들은 왜 예상 재정적자를 추정해서 발표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비해 한국의 언론에는 GDP 대비 국가채무에 대한 기사가 매우 풍부하다. 대부분은 국가채무가 작년 대비 또는 정권 기간 중 얼마나 늘었는지, 아니면 앞으로 국가채무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기사들이다. 어느 신문을 보든지 한국은 모두들 국가채무비율을 걱정한다. 가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지 않다거나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기사도 간혹 있지만 거의 모두들 말미에 가서는 향후 노령사회와 통일을 대비하여 균형재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이런 습관성 균형재정 강박증은 언론과 정치권 모두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공통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기간 중 보수언론은 정부가 빚으로 나라살림을 한다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진보언론에서 부자감세로 국가재정을 악화시켰다고 비난한다. 새누리당은 지금 야당이 정권을 담당하고 있었을 때 공기업과 보증채무, 우발채무, 국민연금 까지 다 감안하면 한국이 천문학적인 국가채무를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권 기간 중 국가 채무비율이 올라간 것을 갖고 이번에는 야당이 집중 비난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국가채무는 과거 정부가 일으킨 연간 재정적자가 쌓인 것이다.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것이 그렇게 걱정되면 그 원인인 과거 연간 재정적자도 걱정을 해야 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간 재정적자 규모가 이슈로 등장해본 적이 없다. 왜 국가채무비율은 걱정하면서 연간 재정적자를 문제삼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내 생각에 이는 지난 30년에 거쳐 관료집단이 한국사회에 걸어 놓은 최면술의 결과다. 한국 관료들의 균형재정 숭배는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거의 균형재정 강박증이다. 아니 차라리 강박증(obsessive disorder)을 넘어 도착증(fetishism)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그들과 얘기를 해보면 정치권의 요구에 맞서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을 자기들의 신성한 의무로 생각하는 듯하는 사고방식이 확고하다.

이러한 관료들의 균형재정 지상주의는 한국의 경제운영체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저부담 저복지 경제체제를 갖고 있다. 이 체제는 모든 경제정책의 촛점을 경제성장에 둔 결과다. 일반 선진국 대비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개인과 법인의 소득에 낮은 세금을 물려 국민들의 노동의욕과 기업의 이윤추구 욕구를 최대한 고취했다. GDP대비 개인 소득세가 OECD 평균 9%에 비해 3%대에 불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축과 투자에 대한 세금도 낮게 부과해 자본축적을 촉진하고자 해서, 금융소득을 분리과세했고, 유가증권 자본차익에 대해 세금을 면제했다. 산업사회화가 진전되면서 대두된 상대적 빈곤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 욕구를 최소한의 복지 제공으로 막고 대신 이를 모두들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투자를 하도록 해서 경제성장으로 달래려고 했다. 

세금을 낮게 부과하니 당연히 여유 돈이 없다. 있는 돈 마저 토목건설에 써야 하니 더욱 돈이 부족하다. 그런데 소득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인 불만을 막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인이 걱정할 일이지 관료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 의료보험 도입을 관료들은 극구 반대했다. 결국 1977년 박정희가 관료들과 국책 연구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추진을 명령해서 의료보험이 겨우 시작되었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될 때도 마찬가지여서 노태우정권은 관료들의 반대를 뚫고 실시했다.

이렇게 균형재정 지상주의에 빠진 관료들이 국민을 상대로 균형재정을 설득하고 겁주기 위해 위해 고안해낸 것이 국가채무비율이다. 한국의 연간 재정적자는 그야말로 미미하기 짝이 없다. 경기가 가장 안 좋을 때도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적자가 GDP 대비 얼마 되지도 않아서 2009년에 4.1% 적자(관리대상재정 기준)였고, 또 흑자일 때도 종종 있다. (2007년, 0.4% 흑자였다.) 게다가 일반정부만 보면 거의 항상 흑자였다. 그런 재정적자 숫자를 국민들이 널리 알게되면 자기들이 균형재정 타령이 무색해진다. 그래서 재정적자를 뒤로 감추고 대신 들고 나온 것이 국가채무비율이다.

그렇지만 재정적자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도대체 국가채무비율은 어떻게 높아졌을까?

그 답은 국가채무의 구성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사이트에 의하면 2012년 말 예상 국가부채는 445조원, GDP 대비 34%로 OECD 국가 평균 103%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다. 게다가 이 34%도 다른 나라 식으로 하면 거의 반으로 줄어든다. 한국은 자산, 융자금 등 자체상환 재원이 있는 금융성 채무가 전체의 50.8%(213.6조원)이다. 이건 환율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데 쓴 자금과 아파트 개발에 쓴 주택기금등이 대부분이다. 미국 국채와 아파트 건물을 재산으로 갖고 있다. 적자성  채무는 49.2%(206.9조원)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타국의 경우는 국가부채가 대부분이 적자성 채무다.  미국의 경우는 국가채무비율이 90%에 달하지만 그 중 금융성 국가채무는 GDP 대비 겨우 2%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과거 재정적자가 쌓여 생긴 적자성 국가채무는 GDP 대비 겨우 17%에 불과하다. 이제 조금 말이 되기 시작하지 않는가? 그동안 재정적자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재정적자가 그리 높지도 않았으니 국가채무비율이 지금 거론되는 수준까지 올 이유가 없다. 지금 34%라고 알려져 있는 숫자는 재정적자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고나면 그동안 재정적자를 정부가 애써 숨겨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국가채무가 엄청나게 과장된 숫자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아, 참! 내가 검색을 통해 겨우 알아낸 작년 예상 재정적자는 19조원이다. 그것도 국회예산정책처가 2013년 이후 중기재정계획에 대해 분석하면서 슬쩍 흘린 숫자에 의하면 그렇다.

많다고? GDP에 대비하면 1.6%에 불과하다. 아마 2012년 예산상으로는 15조원 정도  적자가 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경기 불황으로 세수가 줄어 4조원 정도 덜 걷혀 그런 것 같다. 이렇게 극심한 불황인데도 재정적자가 겨우 1.6%라니!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2012년 예상 정부 재정적자 규모를 아는 희귀한 사람이 되었다. 기획재정부의 담당 공무원들과 국책연구원의 일부 연구원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경제 통계에 해당하는 숫자가 이렇게 한국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숫자가 되어있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김종인이 남긴 가죽, 박근혜가 입을까?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된 박근혜가 어떤 정치와 정책을 구사할 지 모두들 지켜보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는 선거가 끝나자 마자 선거 공약일랑 잊어버리라고 주문했다. 아무리 보아도 공공 언론으로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은 선거 유세 도중 후보자가 내놓은 정책 공약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다. 국민을 대신해서 이를 찬찬히 따져보고 비판하고 정치인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적인 의무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그 일은 소홀히 한 채, 여론조사 지지율 경주 보도와 정치권 인사가 쏟아내는 언사를 여과없이 전하는 데에 몰두하더니, 이제 와서는 공약은 잊어버리라고 충고를 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 참 복잡한 사람들이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박근혜의 공약집을 사놓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어디 한번 얼마나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는 지 두고 보자는 것이다. 약간은 귀여운 분풀이 처럼 들린다. 하지만 박근혜가 그동안 자신을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고 자리매김해온 만큼 그가 자기 공약을 얼마나 실천에 옮길 것인지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은 관심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박근혜의 지지자만이 아니라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박근혜의 공약은 설마 이명박이 그 실눈 웃음을 날리면서 내걸었다가 당선 후 사라져간 공약들 같이 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가 내세운 경제공약은 크게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 등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던 경제민주화 정책의 처음 물꼬와 큰 틀은 제시한 것은 김종인이다. 상당수의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가 선거 후 용도폐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 지지자들 중에도 박근혜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새누리당 안에는 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박근혜가 자기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방안에서 물러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 재정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어서 어려운 재정을 핑계대기도 어렵다. 경기가 나쁘니 나중에 하겠다고 하기에는 이미 경기침체가 1년간 지속된 것을 봐서도 말이 안된다. 그냥 입법만 하면 당장 실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에 비해 일자리나 복지는 재정적으로도 고려할 사항이 많고 실시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내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실행에 옮길 것으로는 경제민주화 정책만한 것이 없다.

국민 여론을 생각하면 새누리당 국회의원중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보수 언론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기도 쉽지 않다. 그들 입장에서 제일 좋기는 박근혜가 흉내만 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것인데 지난 박근혜로서는 1년간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수많은 언론 보도와 국민적 관심을 생각하면 그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김종인이 위원장이었던 행복추진위원회에서 내놓은 방안 중 박근혜가 받아들인 것만 그대로 실시해도 그것은 대단한 변화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은 개혁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횡령과 배임죄를 저질렀을 때 집행유예가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이것만 제대로 실행되어도 대단한 개혁이다. 금산분리를 강화해서 5년에 걸쳐 금융, 보험 계열사가 보유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5%로 낮추겠다는 것은 과거에 제대로 추진해본 적도 없는 얘기다. 공정거래 위반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한다는 것도 나름 대단한 변화다.

나는 처음에는 대통령 선거 전에 경제민주화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희망이 적다고 봤다. 그러나 행추위가 제시한 정책안을 박근혜가 일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일어난 논란을 보면서 오히려 생각이 바뀌었다. 행추위안은 사실 새누리당으로서는 1년 전에만 해도 거의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전향적인 것이었다.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제시했던 방안보다 더 개혁적인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박근혜가 그냥 모두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내부 조정을 통해 아예 이 방안이 공표되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대대적인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켜가면서 일부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기 공약으로 받아들였다. 

일단 이렇게 되면 이 경제민주화 방안은 박근혜 안이 되었다. 박근혜로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은 논란을 거쳐 자기가 직접 삭감 조정한 경제민주화 방안을 당선후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만약 행추위안을 박근혜가 그냥 받아들였다면 도리어 나는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와서 다시 돌이키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경제민주화 방안에 관한 한, 박근혜는 김종인의 등에 업혀 원래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왔을 수는 있다. 김종인은 그런 사람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정책을 만드는 관료나 일반 관변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자기의 방안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현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난 여러 정부에서 그를 기용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그의 성향을 알고도 박근혜는 그에게 자기 캠페인의 경제민주화 방안을 맡겼다.

나는 지난 몇 달간 야당이나 안철수의 경제민주화 방안 보다 김종인과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방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현실 정책에는 이론적인 완결성이나 논리적 정합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2012년 한국이라는, 지금 여기서 실현 가능한가가 가장 중요하다.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이고, 박근혜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만약 문재인이 당선된다 해도 그가 내세운 기존의 순환출자 해소 같은 것은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그만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김종인이 팽을 당할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팽을 당해도 그가 남긴 경제민주화 가죽은 남아있다. 김종인은 지난 25년간 일관되게 주장해온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박근혜를 선택했고, 그 결과물로서 남긴 그의 가죽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가 입고 있던 가죽에 비해 훨씬 두껍고 튼튼하다.

이제 우리는 과연 박근혜가 그 가죽을 걸칠 지 기다리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김종인이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 허망한 꿈이 아니고, 박근혜가 김종인을 선택한 것이 정치적인 계산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