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1일 월요일

가창오리 때문에 새 됐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가창오리 떼. 멀리 서해대교가 보인다.


황새가 왔다고 해서 서산만에 갔다. 황새는 더 이상 한국에 텃새로 머물어 살지 않고 철 따라 이동할 때만 들른다고 한다. 미꾸라지 등을 먹고 살기 때문에 서산만 그 넓은 평야에서 아직 논바닥에 물이 남아 있는 곳에 가야 볼 수 있다. 황새는 날개 끝이 까맣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대략 여섯 마리를 본 것 같은데, 다른 새들보다 더 예민해서 사람이 근처에 가면 날라가 버린다. 천천히 젓는 그 날갯짓이 두루미보다 더 여유롭고 우아하다. 가만히 보니 항상 처음에는 앞 방향으로 날아오르다가 곧 방향을 틀어 휘 옆으로 날면서 고도를 높인다. 무언가 공기 부력을 이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황새가 몇 마리 안되는 것에 비해 흑두루미들은 여기 저기 떼로 나뉘어 있다. 몸은 까맣지만, 목부위는 하얗고, 머리 꼭대기에 붉은 색 반점이 있어서 색 조화가 절묘하다. 간혹 목 부위가 옅은 회색에 가까운 놈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어린 새들이라고. 우리가 본 흑두루미들은 순천에서 겨울을 나고 북상 중이란다. 일본 이즈미에 있는 흑두루미 떼는 아직 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아냐고? 이동을 시작하면 그곳 사람들이 연락을 해준단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와도 그냥 두는데 이 흑두루미들은 사람에 예민하다.

억새 풀밭 사이에 자리를 틀고 있는 알락해오라기를 발견한 것은 망외의 소득. 나를 데려가 준 야생조류 전문가가 차를 몰면서도 어떻게 그것을 알아봤는지 그 대단한 실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방 길 아래 약 20미터 가량 떨어져서 누워있는 갈대밭 안에 있었지만 그가 알려주는데도 막상 새를 알아보는 데 한참 걸렸다.

망원경으로 본 모습은 화려하다고 할 만큼 아름답다. 알락달락한 무늬 때문에 붙인 알락해오라기라는 이름처럼, 누런 바탕에 고동색 줄 무늬가 화려한데 마치 불로 살짝 그슬린 오동나무 무늬목 같다. 재미있는 것은 풀밭에 앉아 뾰족한 부리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있다는 점. 가만히 있으면 영낙없는 억새풀이다. 바로 코앞에서 우리가 자기를 보고 있어도 그대로 가만히 땅바닥에 붙어 있었다. 자기 엄폐 능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가진 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고 기다리던 우리가 지친다. 조약돌을 근처에 던져봐도 능청맞게 모르는 척하니 픽하고 웃음이 난다. 결국 우리가 졌다. 고얀 놈.

오는 길에 가창오리를 보려고 삽교호수에 갔다. 해가 질 무렵에 하늘로 날아올라 펼치는 군무를 기대하고 찾아갔다. 가창오리는 거의 모든 개체가 한국에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군집성이 유난히 강하고, 낮에는 물에 떠 있다가 밤에 되면 곡식 낱알을 먹으려고 논으로 올라온다. 서산만 먹거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요새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단다.

삽교천 방둑을 따라 차를 천천히 몰면서 망원경으로 찾다가 호수 가운데 있는 작은 섬 가까이에 붙어 모여있는 오리떼를 발견했다. 하도 많은 오리들이 촘촘히 물위에 모여있어서 처음에는 섬의 끝자락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눈으로 보면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망원경으로 지켜보니 다른 오리들이 섬 뒷편에서 계속 날아와 합류하고 있었다. 야생조류 탐사가들이 공유하는 정보에 의하면, 그제 저녁에는 7시 5분 쯤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한다. 그 시간까지 차에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날씨가 좋아 각도가 낮은 햇살이 마지막까지 남아있어 석양의 햇빛에 반사되는 최고의 군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침이 꼴깍.

석양이 먼산 기슭에 걸치기 시작하는 6시 반이 넘어가자 오리들의 움직임이 슬슬 부산해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눈으로 보면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상류쪽 끝자락에 있는 오리들이 계속 하류 쪽으로 낮게 날아 옮겨가고 있다. 마치 전체 떼가 모여 이룬 섬이 하류 쪽으로 천천히 떠가는 것처럼 보인다.

6시 55분 경, 붉은 석양이  먼 산 등성이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 주위가 거뭇한 땅그림자에 휩싸이자 오리떼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다. 갑자기 전체 무리 중 삼분의 일 정도에 해당하는 놈들이 낮게 날아오르기 시작하더니 한바퀴를 돌아 다시 내려 앉는다. 이러기를 몇 차례 하면서 오리떼 섬은 어느덧 빠른 속도로 하류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차를 돌려 따라가는데 갑자기 검은 먼지 구름이 하늘로 올라간다. 이 구름의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면서 나비 모양 처럼 옆으로 퍼지더니 금방 다시 둥그런 뭉치로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군무가 시작되었다.

어! 그런데 구름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간다. 너무 빨라서 차로 따라갈 수가 없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어느새  서해대교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너무 멀어서 날아간 방향 하늘에 거무스레한 자국만 가웃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이 30초 정도 만에 벌어졌다. 이런 허망한 노릇이!

원래부터 가창오리의 군무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떤 때는 한 자리에서 30분에 걸쳐 군무를 펼치기도 하지만 다른 날에는 그냥 훌쩍 저녁 먹으러 날아가 버리기도 한단다. 나를 데려간 분도 여러 번 봤지만 제대로 만족스럽게 군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개체 수는 많았지만 군무가 너무 짧다. 그것도 너무 빨리 멀어져가면서 벌어졌다. 입맛만 다실 뿐. 이놈들! 다시 만나면 잡아 먹어 버릴까 보다.

자연 현상은 이렇게 변화무쌍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대를 훌쩍 벗어나기도 하고, 기대 하지도 않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그게 어쩌다 한번씩 자연을 느끼려고 여행을 다니는 재미 중 하나다. 변화막측.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일부를 접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아, 그렇지. 이 지구에는 사람과 시멘트와 차만 있는 게 아니었지! 이 지구는 인간 말고 다른 생물도 사는 곳이었다.

댓글 3개:

  1. 사진 한 장 없이도 이리 실감 나는 묘사를 해주시다니... 글 솜씨에 놀랐습니다. 저도 보러 가고 싶어지네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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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와, 사진 정말 멋지네요!!! :D 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질까요. 멋진 사진과 글,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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