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일 일요일

자율적 임원 인사

많은 사람들이 한국정치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한다. 그러나 제왕적 또는 지나치게 집중화된 권력은 국가 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어느 조직이든 권력의 핵심은 예산권과 인사권이다. 둘 중 인사권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집중화된 권력이란 인사권이 한두사람에게 집중되었다는 뜻이 된다. 권력의 전횡도 결국은 인사권의 전횡이다. 
나는 보다 자율적이고 분권화된 조직 운영을 꿈꿔왔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별러왔던 것을 한화투자증권에 있는 동안 실행에 옮겼다. 
인사권한을 부사장 및 다른 임원들과 나누었다. 임원 승진과 해임 결정을 부사장과 임원들이 토론을 거쳐 결정하게 했고 나는 최대한 뒤로 물러서 있다가 최종 숫자 결정, 즉 몇명을 승진 시키고 몇명을 해임할지에만 참여했다. 
모두들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이 물러난 동료 임원들은 돌이켜볼 때 가장 좋았고 내 퇴임으로 계속되지 못해 가장 아쉬운 제도로 이것을 꼽았다.
나는 한국인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력 사용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러나 기존 황제경영방식에 매몰된 재벌회사 문화에서는 내가 떠나면 없어질 제도였지만, 세상에는 얼마든지 훌륭한 다른 방식도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실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틀 전, 그 방식으로 3년 내내 동료 임원들과 부하 직원들 사이에 가장 높은 지지도를 받았던 사람이 이번에 물러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악화는 양화를 몰아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아래는 1년 전 자율적 인사 결정을 어떻게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글이다.
한화투자증권에 와서 일하면서 강조했던 것이 자율과 규율 사이의 균형이었다. 직원들에게 자율 권한을 더 많이 주는 대신 보다 더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런 자율권 확대 중에서 아마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던 것은 임원 승진, 평가, 퇴임을 임원들끼리 모여 토론을 거친 후 공개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흔히들 상급자의 권력으로서 가장 놓기 싫어하는 것이 인사권이다. 나는 취임 했을 때부터 그것을 대폭 위양하기로 했다.
정기 임원 인사 철에 되면 우리 회사 임원들은 날을 잡아 회사 밖에 모인다. 제일 처음 순서는 신임 임원 선정이다. 사업본부장인 부사장들이 올해에 임원으로 승진시킬 후보를 제안한다. 주의 동료들의 익명 평가와 부서 직원들의 상향 평가도 같이 공유한다. 그러면 그 후보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여러 임원들이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나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다. 
이렇게 후보자들에 대한 소개와 토론을 모두 거친 후 신규 임원 승진 우선 순위를 적어내게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각자의 투표 내용과 그 우선 순위 합산 결과를 화면에 공개한다. 그렇게 하면 누가 누구를 우선적으로 뽑았는지를 서로 알 수 있다. 후보자가 소속된 본부 임원들이 자기 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한 것을 제외한 결과도 알 수 있다. 최종 결과와 가장 근접하게 투표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고, 가장 다르게 투표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이것이 끝나면 상무보들은 퇴장한다. 상무보에 대한 평가를 상무와 전무, 부사장들만 남아서 하기 위해서다. 각 사업본부장들이 상무보에 대한 일차 평가 의견을 제시하고 나머지 임원들이 그에 대해 논의한다. 그 토론이 끝나면 상무들이 퇴장한다. 그러면 남은 고위임원들이 상무들에 대한 평가를 같이 논의한다. 
최종 임원 고과는 나와 부사장들만 모인 자리에서 부사장들이 논의를 해서 결정한다. 각자가 임원들에 대한 고과 순위를 적어낸다. 이 순위를 합산해서 올려놓고 최종 순위를 결정하기 위한 이견 조정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임원 승진 후보 우선 순위를 결정할 때 아예 나는 투표를 하지 않는다. 최종 임원 고과 순위를 위한 일차 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나는 내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의견을 말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부사장들 사이의 이견을 조정 할 때만이다. 그렇게 해야 부사장들과 임원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 
퇴임 임원 선정도 투표로 한다. 대신 이것은 비밀투표로 한다. 각 임원들은 나에게 퇴임 후보 세명을 순위를 정해 적어낸다. 그러면 내가 그 투표 결과를 모아서 정리한 후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는 알리지 않고 최종 결과만을 부사장들과 공유한다. 부사장들은 자기들이 선정한 퇴임 후보와 다른 임원들이 선정한 퇴임 후보를 비교해서 최종 퇴임 후보 순위를 정한다. 
내가 하는 일은 그 중에서 몇명을 승진시키고 퇴임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첫해인 2013년부터 이렇게 했으니 올해에는 세번째다. 

댓글 16개:

  1.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바라보고 이야기로 풀어주시는거 좋았습니다. 정치알바 짱입니다. 세이노라는 사람이랑 비슷한 부류같네요 ㅎㅎ 정권교체후 청와대 입성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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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뿌연 먼지가 가득한 곳에서 산소호흡기를 발견한 기분입니다. 앞으로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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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그 길에 주진형 선생님을 만났네요. 느리겠지만 쉬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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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녕하세요. 주진형 선생님.
    평소 개혁적인 행보로 익히 알고 있던 분이었지만
    최근 청문회에서 보여주신 소신 있는 태도로 더욱더
    팬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메일주소라도 알 수 있을까
    알아보았지만 쉽지가 않네요,, 선생님~
    이 블로그의 내용만으로도 책 한 권 나올 것 같은
    내공이시라 꼭 제안을 드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메일 주소라도 알려주세요~~ ㅠㅠ
    heajaec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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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와진짜 이런사람이정치해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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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공선생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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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리문제... 자원 배분 의사결정의 대리체제가 그 주체의 의지의 방향왜곡 , ... 희석 한다고 해야하나... 자원배분은 궁극적으로 그 의지와 실현의 대칭은 1값에 수렴하는 것이 인간진화의 방향이 아닌가..하는 상상도 해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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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퇴화와 발생, 발견으로 인한 퇴화 , 이 두가지가인간진화의 파동적 패턴이라면 대리의 불필요, 대리의 장치의 발견은 자원배분의 대리 양식의 발전을 가져오지 않을 까도 하고... 쓰다보니 두서 없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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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 그러니깐...결론은 분권이 좋다는...의지에 근접하는 길로서 또... 이는 자원의 측정과 병행되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이 인지하는 자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되도록 뚜렷히 분절가능한 장치를 마련하여 유통이 되도록 최대한 발생할 수 있도록 하여 의지로 부터 출발한 그것이 실현에 이르기까지 비대칭요소를 제거... 또 두서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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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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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정치알바에서도 위의 글과 같은 내용을 들었습니다
    주진형님! 아니 공선생님!
    권력이란거 그게 무엇이길래.. 한번 맛보면 끝도 없어지고 도덕 윤리도 몰라보게 되는 것인지요
    현재 지자체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입니다
    국정농단에 나라가 시끄러운 시기에 저는 더더욱 정신못차릴 만큼 바삐지내고 있답니다
    물론 바쁜와중에도 진실은 내손안의 스마트폰 속의 인터넷 방송에만 존재하기에 꼭 꼭 챙겨보고 듣고 있답니다 11년전 입사당시에도 느꼈던 저급한 회식문화, 그리고2년 전부터 행패에 가까운 6급 남자 계장님의 의자왕, 김정은 놀이에 힘없는 부하 여직원으로써 독재행위에 너무 힘들었고 불의와 타협할수 없었기에 결국도감사과에 비위행위와 성추행 성희롱 등을 제보하였습니다 제가 바보였나봐요 계장님은 경징계 솜방망이 처벌로 간단히 체벌이 마무리 되셨고(도감사과에서는 체벌을 소속군청에서 주독록 함)그후 조직과 계장님은 저를 내부고발자라며 괴롭히더니 급기야 모함하여 도리어 저를 수사기관에 고발하였습니다 더욱 한심한건, 지방 군에 위치한 경찰서마저도 유착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더라는 것입니다 군의상황과 상사의 행위들 모함 당한 배경등을 수사관에게 알렸으나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과 진술서 확인서등은 전면 무시된채 기소로 해당검찰청에 사건 송치 해버렸습니다
    보건소에서 9명 정도의 부하직원에게 왕같은 존재인 본인의 저급한 회식자리 참석 명령에 불복하였으며
    2016년4월 말 개인적으로 밤에 일대일 술자리 요구하였을때 정중히 2차례 거절한 이후 그해 5월달부터 상사의 보복이 시작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홀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얘기가 길어졌네요 어쨌든 직장내에서의 직권 남용, 월권행위 큰 문제입니다
    불합리함 앞에서도 인사권자의 권력때문에 동료들은 아무도 저와함께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한민국이 이나라의 불의가 정의를 억누룰수 있었음이 밉습니다 정말!
    주진형님과 같이 약자의 마음 알아주시고 위해주시는분들이 계셔서 큰 위안을 받습니다
    관심 가져주셨고 약자의 아픈 부분들 느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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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많이 배우지 못하였고 어려운 용어에 알러지 반응일으키는 정치에 관심도 없었던 30대 직장인 여성입니다. 종교 정치 사회에서 훌륭한 분들은 많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권력만 있어 보이는 어른들을 보며 이치에 맞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것을 점점 더 느끼며 살아가고 있던중...청문회를 보며 공선생님 처럼 바른말 하시는 분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에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경제알바를 듣고 또 듣고 있습니다.
    권력보다는 권위있는 가르침 계속 꾸준히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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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많이 배우지 못하였고 어려운 용어에 알러지 반응일으키는 정치에 관심도 없었던 30대 직장인 여성입니다. 종교 정치 사회에서 훌륭한 분들은 많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권력만 있어 보이는 어른들을 보며 이치에 맞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것을 점점 더 느끼며 살아가고 있던중...청문회를 보며 공선생님 처럼 바른말 하시는 분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에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경제알바를 듣고 또 듣고 있습니다.
    권력보다는 권위있는 가르침 계속 꾸준히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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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경제 알아야 바꾼다 1~13편 정주행 하였습니다.
    먼저 감사 인사 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된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각을
    얻게 해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주소를 모르고
    이메일 주소도 몰라 이렇게 블로그 찾아 감사 글을 올립니다.

    가장 감명 받았던 부분은 국민연금 부분이였으며
    새로운 시각과 주관을 갖게 해주신것에 감사드립니다.
    교육, 직장민주화, 경제성장, 재벌개혁...
    많은 부분 친절히 쉽게 설명해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항상 응원하고 선생님의 건강을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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