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유난히 예민한 이유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으로 보이는 이유가 공공복지가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평시 내가 갖고 있던 이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외 언론 기사가 있어서 소개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4차 산업혁명에 훨씬 더 유난스럽게 예민하다. 식자층 쳐놓고 이것에 대해 한마디 안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심지어 정부는 4차혁명 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나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잠재성을 인정하지만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쉽게 달아오르는 한국 사회의 냄비 근성 탓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한국 사회가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더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사회적 요인이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공공복지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도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원청과 하청으로 나뉜 사회에서 원청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다 한번 원청에서 떨어져 나가면 받쳐주는 안전망이 없다. 그래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예측에 이토록 모두들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래 뉴욕 타임즈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공포가 스웨덴에선 별로 없다고 한다. 기자는 그 이유가 사회복지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고 노사간에 신뢰 관계가 있어서 그렇다고 진단하고 있다. 
영어 기사라서 읽지 않을 사람들에겐 기사 중간에 있는 그림이라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엔 공공복지 지출 비중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국가간에 비교한 그림이 있다. 아마 모두들 한국이 어디 있는지 찾아볼 것이다. 미리 얘기하면 제일 끝에서 두번째다. GDP 대비 10.4%로 미국의 반 수준이고 일본의 23.1% 에 비해서도 반도 안 된다. 스웨덴은 27%다. 꼴찌는 멕시코다. 한국과 멕시코는 노동시간이 제일 많은 나라 순서도 같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공공복지 지출 비중은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니다. 사람의 꿈과 절망과 땀과 눈물과 핏물이다.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도 어린이 집부터 시작하는 교육비와 집 값에 허덕인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한국처럼 거의 사립에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 만약 건강이 한번 나빠지면 60% 밖에 보장하지 않는 건강보험도 문제지만, 그전에 직장을 잃어 금방 저소득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더 크다. 실업보험이 유명무실하니 다른 직장을 적극적으로 찾으러 나서기도 어렵다. 원청에 속해서 가파른 연공급과 후한 기업 복지제도 덕분에 당장은 편한 것 같지만 50대 중반이면 대다수가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 한다. 공적 연금과 기업 연금 모두 미비해서 대다수는 노후 생활을 할 소득이 막막하다. 원청이 그러니 하청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속한 한국의 기성 세대는 경제 체제를 결혼, 양육, 교육, 건강, 실업, 은퇴 등, 인생 사이클 상 모든 단계를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만들어 놨다. 그들은 세금과 국가 재정을 가진 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 놓았다. 고속성장과 부동산 값 상승만 되면 만사형통인 것처럼 말하고 살았다. 
이젠 안 통한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평소에 불안하니, 그것이 로봇이든 인공지능이든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만 하면 더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4차 산업혁명 타령에 모두들 민감하다. 
이건 우리 탓이다. 우리가 그렇게 설계해서 그렇다. 아니, 몰라서 그렇게 했다. 미국 것과 일본 것을 베껴왔는데, 어설프게, 잘못 베껴왔다. 스웨덴? 좋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나라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하고 싶다. 한국형 프랑켄슈타인 경제체제의 원형을 제공한 미국과 일본도 우리 처럼은 안 한다.
4차 산업혁명? 잊어버리자. 흥분하지도 말고, 걱정하지 말고, 닥치면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는 그게 아니다.

댓글 7개:

  1. 절절히 공감합니다.

    글을 하나하나 읽을때마다 꼭 어딘가 토론프로그램이라도 정기적으로 나와주셨으면합니다. 오만과편견을 기다렸는데 안하신다곤하지만 누군가 이런 이야기는 계속해야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각자의 위치때문에 진짜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너무 소극적인것 같습니다. 꼭 방송에서 만나서 더 많은사람들이 공선생님의 글을 접했으면 좋겠네요 방송이 아니더라도 책이라도 좀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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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진실을 말씀하시니 가슴깊이 공감합니다 팝케스트이던지 저술하신책이던지 공선생님의 말씀에 감동받은 사람입니다 먼저 답글쓰신분의 말씀처럼 공선생님의 말씀이나 글을 간절히 바라오니 자주 뵙고싶습니다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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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트코인에 대해 세계적인 관점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번 글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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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글 잘 읽었습니다.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이 낮다고 하셨는데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어떤 부분의 세금을 공공복지지출로 옮겨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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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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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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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기적인 개인주의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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