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1일 금요일

다가오는 거시경제정책 최후의 심판, 어떻게 피할 수 있나? (I)

한국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논의에는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른 특징이 있다. 거시 경제정책의 실종이다. 특히 재정정책의 실종이다. 경기조절을 위해 현대 국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정책수단이 재정정책과 통화 정책이다. 그런데 한국은 재정정책은 완전 실종상태에 가깝고, 그나마 통화정책이 아주 약한 숨을 쉬고 있다. 대신 신용정책, 부동산정책, 환율정책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은 당연히 후유증을 남긴다. 지금 한국 경제가 겪는 고통, 즉 가계부채, 부동산 버블 붕괴, 내수경기침체 등이 바로 그 후유증이다. 더 이상 옛날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경기 조절을 재정정책으로 하기 시작해야 한다.


개별 시장의 움직임을 다루는 미시 경제학에 비해 거시 경제학은 국가 경제의 생산, 실업, 물가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경기 호황과 불황, 일자리와 실업, 물가, 이자율, 환율 같은 문제는 일반 시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굳이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도 자연스럽게 거시경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시경제학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막상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경기조절 수단으로 갖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전부다. 재정정책은 경기가 나빠질 때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낮추어서 투자나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통화정책은 주로 인플레를 조절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해서 소비와 투자를 조정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보통은 환율정책을 거시정책의 수단으로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율은 상대방 국가와 자국 통화 사이의 상대적 교환가치 비율이어서 한 나라의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의 서구 국가들은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드물다. 금리정책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금리정책에 부수되는 결과일 뿐이다.경기 조절을 위해 직접 외환시장에 뛰어드는 나라는 드물다.

이와 같이 경기와 실업 및 인플레 등의 거시 경제 이슈가 일반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거시 경제 조절 수단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기 때문에, 서구국가들에서는 정치권 뿐만이 아니라 언론에서도 항상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대한 논쟁이 주요 주제다. 증세와 감세, 재정적자와 흑자, 이자율 상승과 하락이 허구헌 날 신문의 주요 기사다. 그 중에서도 선거 철이 오면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 조세와 재정정책 기조다.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에게 독립성을 주었기 때문에, 정부 교체를 통해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이 조세와 재정지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조세나 재정정책이 선거에서 논란 거리가 안된다. 조세정책이 대통령 선거 이슈로 처음 등장한 것이 2007년 선거였다. 종부세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부세가 부동산 경기에 미칠 영향 때문이었다. 조세 수입으로는 미미한 액수(2~3조)에 불과하다. 전반적인 조세정책에 대한 논쟁은 전혀 없었다. 재정지출에 관한 논쟁은 아예 없었다. 감세를 하겠다는 이명박의 공약도 선거 이슈로는 부각되지도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그때까지 감세가 중요 이슈로 제기된 적도 없고, 그 당시 유권자들 사이에서 감세정책을 보고 이명박을 뽑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는 바닥을 헤메는데 아무도 현재와 같은 재정정책 기조가 적절한지에 대해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두 후보 모두 주장했지만 증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러면 재정적자를 일으켜서라도 복지를 늘리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 말도 안했다. 아예 2012년 경기 불황과 2013년 경기에 대한 대책이 아예 거론도 안되고 선거가 끝났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왜 거시경제정책, 특히 재정정책이 선거 기간 중에도 이슈가 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한가지 이유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가 모두 균형재정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예 얘기 시작 단계부터 적자재정을 일으키면 크게 잘못인 것처럼 생각한다.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을 "인위적 경기부양"이라고 하여 여야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보수는 물론 진보 언론도 같은 생각이다. 노무현도 인위적 경기부양정책을 쓰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헐! 아니, 인위적 경기부양 말고 다른 경기부양이 있나?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정치권은 그것을 핑게로 눈을 부리리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최근 박근혜 6조 국채 운운하고 야당이 시비를 걸자 전격적으로 다른 예산을 깎는 것으로 마무리진 것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시 경기 조절을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하지 않아온 과거 습관 탓도 크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재정정책을 거시 경기 조절에 동원하지 않고 살아왔다.


댓글 3개:

  1.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균형재정 상태라는 부분인데요. 그렇다면 그동안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해서 뿌린 돈은 어떻게 회수되서 균형상태가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돈들은 공기업 부채로 잡혀 있고, 결국은 궁극적인 국가부채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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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지공사의 부채는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GFS 기준으로 보면 시장성 공기업에 해당하기 때문.

      한국에서 대규모 토지 개발은 거의 독점적으로 토지공사가 갖고 있습니다.. 토지보상금은 주로 토지공사가 땅을 살 때 일부는 현금, 다른 일부는 채권으로 지급한 돈입니다. 토지공사는 이 땅을 택지로 개발한 후 값을 더해서 분양을 해서 팝니다. 혁신도시 개발도 이에 포합됩니다. 지금까지는 이 택지개발 사업의 이익율이 좋았습니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 정부 기간 중 토지보상금을 지급하면서 토지공사의 부채가 많이 늘었습니다만 그 중 상당부분은 택지 판매를 통해 회수되었습니다. 2010년 말 토지공사 자산 140조, 부채 125조 원입니다. 이 중, 이자를 내는 금융부채가 약 90조 원입니다.

      앞으로 택지 사업의 수익성이 나빠지면 토지공사의 부채 중 일부를 국고지원으로 풀어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경제규모에 비하면 그 가능성이 실현된다고 해도 국가부채비율에 큰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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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답변 감사합니다.

      공기업 부채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지방자치체의 상황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방자치체가 여기저기 벌려놓은 무리한 사업들이야말로 분명 적자재정으로 경기부양한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결과 지자체가 파산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말들도 나오곤 하는데, 이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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