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3일 일요일

벽에 막힌 한국경제 위기 탈출,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2013년까지 영국 금융감독청 수장이었던 터너는 부채 과잉이 2008년 금융 위기의 원인이라고 보고, 부채 의존도를 낮춘 성장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빚이 늘어나는 원인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있으며, 이는 언제든지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내가 한국 경제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가 이러한 진단을 요즘 세계 경제 전체에 대해 내리고 있는데 반해 나는 이런 생각을 한국 경제에 대해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 정도다. 그의 인터뷰를 한국 상황에 비추어 가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경기 침체와 반복되는 금융위기가 부채 과잉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이 부채에 의존한 경기 확장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있다고 믿는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구조개혁을 했어야 하는데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경기 침체를 대기업의 부채 확대를 통해 벗어나려고 했다. 설비 과잉과 은행 부실이 늘어갔지만 좀비 재벌을 계속 키웠다. 국내 대출은 정부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었지만 대외부문과 금융 자유화를 거치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외환위기를 당했다. 경제 자율화의 방향은 맞았지만 속도와 순서를, 특히 순서를 망친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부채에 의존한 성장전략을 유지했다. 이번에는 기업대출만이 아니라 가계 대출도 가세했다. LTV는 낮았지만 상환능력을 반영한 DTI를 너무도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다. 
진단을 하는 시각이 비슷하니 해법에 대한 시각도 비슷한 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빚을 늘리는 근본적인 원인인 경제 불평등의 심화, 부동산 시장의 과열, 국제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려면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고 최저임금 인상이나 기본소득 보장제도처럼 더 적극적인 정책들을 다양하게 결합해,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을 일정 이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엔 한국 경제 역시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불평등의 심화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안전망의 근간을 이루는 4대 보험제도를 개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국민연금, 건강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물론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의 개혁이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가는 와중에 이미 규모가 400조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모든 국민이 노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는 무슨 정책을 내놓아도 소비 증대를 이룰 수 없다. 일부 층을 위한 불안정한 적립식에서 보편적인 부과식으로 바꿔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사회적인 인식과 공감대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계급적 구도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국민연금 개혁이나 건강보험료 부과체제 개혁에 대기업 노조가 소극적인 것이 좋은 예다. 
한국의 사회안전망 도입 과정은 매우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밑으로부터의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다. 고도성장기에 독재자들이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입했다. 이에 반해 대기업에 뿌리를 둔 노조 운동은 사회안전망 확대보다는 자기들 월급을 올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마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 사회 기반층의 정치적 의식화가 이루어질 새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한국의 지배층은 만주국에서 시작한 개발독재 체제의 틀을 대치할 사고의 틀을 갖고 있지 않다. 일본을 모방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경제가 개방되었지만 과거 자기들이 갖고 있던 인허가권 권력을 내놓는데 아직도 인색하다. 체제 순응적 관변학자들은 시장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다. 걸핏하면 미국을 들먹였지만 막상 미국의 조세체제와 사회보장제도, 그리고 법치주의 및 기업지배구조의 규율에는 무지하거나 알아도 입을 닫았다. 자기들 입맛에 맞을 때는 미국을 운운하면서 막상 중요한 기득권층의 이해에 반하는 개혁에는 한국 실정을 내세워 뒤로 뺐다. 
한국의 지배층은 더이상 한국을 어떻게 끌고 갈 지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지난 10여년간에 걸친 그들의 정책을 보면 안다. 조세율이 GDP의 20% 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감세를 주장하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기 위해 가계 부채 증가를 부추키는 것 외에 그들이 내놓은 것이 없다. 
시장 만능주의에 빠져있지 않은 사람들도 막상 선진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대해서는 까막눈에 가까웠다. 선진국에 유학을 갔다 온 지식인 층도 대부분은 학교 안에 있으면서 자기의 좁은 분야에서 학위 하나 따고 귀국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직도 사회 부문별 정책의 틀은 관료들이 일본 것을 베껴와서 쓰는데 의존하고 있다. 서구의 지방 분권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나는 한국사회가 변화를 할 준비가 어느정도 되었다고 믿는다. 고도성장에 대한 추억을 이만큼이나마 단념하는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10년이 걸렸다. 이런 것은 누가 알려줄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결국 자기가 겪어봐야 알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해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얼마나 있는 것인가? 과도기 구조개혁의 고통을 누가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내년을 잘못 보내면 또다시 5년을 낭비해야 한다.

댓글 1개:

  1. 빚, 부채없는 경제성장은 거짓말 허구죠!
    진짜 그런 세상을 원한다면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대로 중앙은행의 화폐발권 독점권부터 박탈해야죠.

    국민연금을 활용을 통한 사회투자도 냉철히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유동성이 낮은 투자와 원금 회수가 늦은 것에 투자하구선...인구감소 시대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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